Friday, 13 March 2015

행 19:1-7 성령과 세례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0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03 바울이 가요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0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0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0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07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들어가는 말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별 재수 없는 소리 다 듣겠네!' 할른지 모릅니다.  성령이야기만 나와도 안색이 달라지는 분도 있습니다. 성령을 주제로 설교했더니 예배당 밖으로 나가는 분도 있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 배경설명 ]

 21절에서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났었는데 그 약속을 따라 다시 에베소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3차 선교 여행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에 와보니 문제가 있습니다. 신자란 사람들의 신앙이 미완성 신앙입니다. 아는 것이 세례요한의 세례뿐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위기, 믿는 것 같은데 알맹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말씀 안에서 신앙의 본질을 찾아 회복시켜 가는 바울 사도의 사역을 따라 가면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성령(파라클레토스)'이란 말뜻은 '보혜사(保惠師)'입니다.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실 뿐만 아니라 위로하시고 변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요16:13)
성도들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십니다.(갈4:6).
성도들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히9:14)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 오직 성령이십니다.(롬8:26)
그러므로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主)라 시인'라 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8:9).

그러므로 성도가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기독교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성도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고전 3:16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성령으로 시작되었습니다.(오순절:교회생일) 기독교는 성령으로 진행됩니다. 아나니야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다가 사형 당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예화]
가시나무를 장미 정원 한 가운데 옮겨 심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시나무 가지를 끊은 후에 그곳에 장미 가지를 접붙였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장미꽃이 가시나무에 피었습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가시나무 가지를 끊은 후에 그곳에 장미 가지를 접붙인 사건과 같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랑합니다.
기뻐할 수 없는 사람이 기뻐합니다.
화평할 수 없는 사람이 화평합니다.
오래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오래 참습니다.
자비할 수 없는 사람이 자비합니다.
양선할 수 없는 사람이 양선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랑합니다.
충성할 수 없는 사람이 충성합니다.
온유할 수 없는 사람이 온유합니다.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이 절제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말할 것입니다.
성령을 어떻게 받는가 하구요. 어떤 부흥사들은 '성령을 받으라!' 외칩니다. 마치 자신들이 성령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할 때 성령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 접붙여진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이 임하십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성령받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런 일입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입니다.

눅11: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 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의 가지가 되십시오.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본질적 질문입니다. 바울 사도에게는 본질적인 일이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묻지 않습니다. 그들에 있어서 성령을 받는 것은 문제가 아니니까요. 성령과 상관없는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믿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는 고백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전이 되었습니다.

2.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분께 접붙임 바 되고, 그 안에서 자라고, 그 안에서 새로운 열매를 맺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0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 곧 예수를 믿으라!
 회개하였으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리스도에 접붙임을 받았으므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세례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자에게 주는 구원의 표(벧전3:21)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행10:47)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예한 것입니다.(신29:12)
이렇게 보면, 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자가 올리는 언약식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온 천하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속했다 온 천하에 공포하는 것입니다.

갈2:20 말씀 대로입니다.

레슬리 B. 플린이란 분이 정리해놓은 글을 보니까 세례 받을 때의 흥미 있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침례를 받는데 한사코 오른 손을 물 속에 넣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소매치기를 해서 먹고 사는데 만일 이 손까지 세례를 받아버리면 무엇으로 먹고살겠느냐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스운 말인데, 시사하는 바가 많지요.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주님과 연합한 표이기 때문에 옛사람과는 결별하게 됩니다. 옛사람의 습관, 옛사람의 언어, 옛사람의 생각, 옛사람의 생활이 끝났다는 선포식이기도 합니다.


3. 성령받는 것과 세례받는 것, 둘은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 됐지 형식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세례를 받겠다고 하는 사람보다 나을른지 모르겠습니다.
김재준 박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김익두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집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거부했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 덕스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지도하신 김영구 목사님은 열열하게 사랑하는 두 남녀가 결혼식 없이 동거하는 것보다 결혼식을 한 후에 동거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고 하셨습니다. 김영구 목사님은 세례를 '당신이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교회의 공인증'이란 설명을 해 주셨는데, 김재준 박사가 두고두고 감사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의 사랑은 깊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의 것임을 만인 앞에 선포하고 그 분의 신부로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요즈음 한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호피코트 사건입니다. 장관 부인
이 재벌 부인에게 호피코트를 얻어 입었거나, 혹은 재벌 부인이 장관 부인에게
호피코트를 입혔거나 뭐 그런 사건입니다. 저는 솔직히 어떤 분의 의견이 옳은
지 모릅니다. 별 흥미도 없습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 그들이 호피 가죽 코트를
입고 싶어했고 입히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불신자들이라면 그것도 괜찮아
요. 문제는 그분들이 장로요, 권사요, 집사이십니다. 그것도 한국 기독교인들의
자랑스런 분들이세요. 그런데 그들에게 안타깝다는 이유는 왜  호피코트를 얻어
입었거나 호피코트를 입히는 일에 승부를 거는가 하는 것입니다.

갈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우리 믿는 자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
도로 옷 입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혀주어야 하고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
야 합니다. 승부처는 바로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전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신부요, 그리스도의 대사로 선
포되었습니다. 이제는 옛사람에 속한 옷을 벗어버려야 할 때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생활습관이든, 언어생활이든, 이제는 옛사람에 속한 옷을
벗어버려야 할 때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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