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19:8-12 두란노 서원

들어가는 말

두란노 서원!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출판사?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웬만한 집엔 두란노 서원에서 출판된 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장소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터-키에 갈텐데 제일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물론 서머나 교회도 가보고 싶지요.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이 서머나 교회와  두란노 서원이 생기게 된 유래를 알려줍니다.
원래의 두란노 서원은  무명한 장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시는 대로 하나님의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었던 장소로 쓰임 받고 나서 이처럼 유명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서 이처럼 유명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이 왜 쓰임 받게 되었습니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그곳에서의 사역을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우리들의 사명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두란노 서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는 곳입니다.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0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에베소 회당에서는 신앙의 거장이라 자타가 시인하는 바울 사도가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이름 있는 목사들이 사흘만 강론해도 신문에 기사화가 되고 역사가 있다는 둥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웬만한 부흥사가 아니라 대 사도인 바울입니다.
매주 빠짐없이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한두 주일도 아니고 석 달 동안을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사흘이 아닌 석 달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담대히 강론했습니다. 석 달이란 기간은 이제까지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중 가장 긴 기간이었습니다.  담대히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심 전력했습니다.
강론의 주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고 있었습니다. 석 달 동안을 담대히 전한 하나님 나라! 이는 하나님께나 모든 성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삶의 주제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곧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에게 우선적으로 맡겼던 본국입니다.
그렇다면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참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9)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았습니다. 마음을 닫고 불순종했을 뿐만 아니라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이 목회 하시는 교회에서 목사님을 싫어하고 그의 가르침을 못마땅해 하는 교인들이 있었답니다. 나병환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목회 하시는데 무엇이 불만일까 생각하여 봅니다.
우리는 이 기가 막힌 사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에베소 회당과 바울 사도를 비교해 볼 때, 에베소 회당이 바울 사도를 감당하지 못하였구나! 에베소 회당이 하나님 나라를 감당하지 못하였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에베소 회당에는 똑똑한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나 놀라운 것은 바울이나 그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에베소 회당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방거리밖에 되지 못하였습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그들에게 감동(感動)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적용]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감동(感動)이 되십니까? 그리운 본향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시민 정신과 시민의식으로 사십니까?
에베소 회당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회당 사람들은 하나님나라와 관련을 맺고 싶지 않았습니다.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품기에는 마음이 너무 좁아 있었습니다.

고전6:11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하십니다.

세상(世上)으로 가득찰 때, 마음이 좁아집니다. 자기 의(義)에 가득찰 때, 마음이 좁아집니다. 죄(罪)로 가득찰 때, 마음이 좁아집니다. 하나님나라가 임할 공간이 없습니다.

[예화]
컴퓨터를 사용할 때,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컴퓨터에 담을 수 있습니다. 수백, 수천 권의 책들을 요즈음에는 컴퓨터에 담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컴퓨터에 담을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오락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 교육 프로그램과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컴퓨터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정보나 컴퓨터에 가득 채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작 나에게 필요한 정보, 나에게 중요한 정보를 입력하려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공간이 조금 남아 있어도 컴퓨터 원활히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 정보가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세상 것들로 마음이 가득 차 있어서 마음이 좁아질 때, 정작 나에게 필요하고 , 나에게 중요한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좁아질 때,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좁아질 때, 순종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답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회개(悔改)하면 됩니다. 회개(悔改)란 생명에 불필요한 세상 것들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회개(悔改)란 생명에 불필요한 세상(世上)으로 가득, 자기 의(義)에 가득,  죄(罪)로 가득, 가득가득한 내용물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천국(天國)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세레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소리를 기억하십니까?
 "회개하라 천국(天國)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께서 사역의 장을 여시면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요한1서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991025일자 /바티칸시티·아우구스부르그=외신종합에는
'루터교-가톨릭 5백년만에 화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이 구원론에 관한 이견을 뒤로하고 화해의 길로 들어서기로 공식 합의, 5백년 가까이 이어져온 신구 기독교간의 교리 논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31일 “가톨릭과 루터파 교회가 인간 구원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것은 어려움으로 점철되어온 기독교 통합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가톨릭과 루터파 교회 지도자들은 앞서 30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성당에서 화해 선언에 서명, 지난 1530년 마르틴 루터의 ‘면죄부에 관한 반박문으로 시작돼 30년 전쟁으로 이어졌던 교리 분쟁을 사실상 끝냈다.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이날 선언문에서 “신앙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라면서 우리는 함께 인간 편의 어떠한 덕목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의 구원과 은총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고 말했다.구원에 관한 논쟁은 “인간은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루터교와 “신앙과 함께 선행을 쌓아야한다”는 가톨릭의 교리가 맞부딪치면서 그동안 숱한 갈등과 저항을 낳았다.

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500년 전에 로마 가톨릭은 "인간은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루터의 성경적 주장을 이단시하고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당시 로마 가톨릭은 루터와 종교 개혁자들의 "인간은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루터의 성경적 주장을 비방했습니다. 신앙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루터와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을 갖는데 500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이제 억지로라도,  500년 후라도, 그만큼이나마 마음을 넓힌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좁아터진 때문에 후스나, 위클리프 같은 수많은 신앙의 용장들은 화형을 당해야 했지 않습니까? 30년 전쟁 때, 희생당한 독일 백성의 3/5은 어떻게 합니까? 그 많은 성도들에게는 한마디 사과가 없고, 하나님께 한마디 회개함 없는 것을 볼 때, 그들의 화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의문시 됩니다.
화해도 좋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회개 속에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남긴 회개(悔改)에 관한 명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 구원하실 수 없는 것과
회개한 사람 벌하시지 못하는 것이다."
[회개촉구]
세상(世上)으로 가득, 자기 의(義)에 가득,  죄(罪)로 가득, 가득가득한 마음을 회개하십시오. 회개하고 주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십시오.
우리야는 다윗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은 충신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충신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은 범죄를 범하였습니다. 그가 죄 가운데 있을 때는 그의 충신 우리야 조차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했을 때, 반역하는 아들과 신하들까지 용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회개함으로 마음을 넓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마음을 갈아야 합니다. 넓혀야 합니다.

2. 두란노 서원은 제자들에게 주의 말씀을 강론하던 훈련장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 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 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 을 듣더라
회개한 마음에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 제자들은 회개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6:1;9:10, 26). 바울이 회당에서 가르치는 동안 그곳에서 회개한 제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로부터 떠날 때, 회개한 제자들은 모두 두란노로 나왔습니다. 여기서 '따로 세우고'의 헬라어 '아포리조' (*)는 '한계를 분명히하다', '구별하다', '떼어놓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로부터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을 따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마음에 말씀으로 채워갔습니다. 원래 서원(書院, 스콜레)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란 뜻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두란노 서원을 제자들에게 주의 말씀을 강론하는 영적 훈련장으로 삼았습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회당이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에게 주의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당시 받은 말씀을 에베소서에서 읽어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회개한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10)

제자들의 사명이 새롭게 살아납니다. 이런 말씀을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습니다. 사나흘 부흥 성회를 한 것이 아닙니다. 하루 한두 시간을 강론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두 해 동안을 매일 네다섯 시간씩을 강론하였습니다.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런 말씀을 두 해 동안을 매일 네다섯 시간씩을 강론하였습니다. 어떤 성경(Western Text)에 의하면 그 도시의 여가시간으로 알려진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다섯 시간씩 성경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노동 시간을 일 한 후, 다른 사람들은 휴식하는  이 시간에 바울은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그 영향력은 아시아 주변으로 뻗어나가 2년 동안 바울 열심있는 사역은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많은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루커스 계곡(the Lycus Valley)에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들이 세워졌고, 소아시아 지역에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등 여러 교회들이 속속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서머나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곳에서 훈련받은 성도들에 의해서 세워졌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사역은 이렇게 귀합니다.

3.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려면 앞서 바울 사도를 통해 선포한 메시지를 다시 환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신시키시려고 하나님께서는 그 종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적을 대할 때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이적은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이적은 모두 사실입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하실 때의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적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입니까? 도구일 뿐이지요.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실 사도로 고용하셨습니다.  바울의 손을 빌어 이적을 마음껏 드러내십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전기 또는 열을 전하는 물질을 도체(導體) 혹은 전도체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시도록 내어놓은 전도체(傳導體)와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부도체(不導體; 절연체絶緣體 nonconductor)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류가 통하지 않습니다. 양질의 전도체(傳導體)와 같은 신자가 없습니다. 바울처럼 온전한 도체(導體)가 될 수 없다면 半導體(semiconductor)라도 되기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두산백과사전)을 펼쳐 보면서 흥미있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전기적인 도체와 부도체의 구별은 거시적인 면에서는 반드시 명확하지 않으며, 고온 또는 강한 전기장에 놓거나 불순물을 가하면 부도체도 전도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절연체로 알려져 있는 것의 대다수가 약간씩이나마 전기전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半導體)는 절연체의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반도체의 전기전도는 온도상승과 더불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땅에서 육신의 한계 속에서 몸부림치는 우리들에게 한 줄기 빛을 줍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어서 半導體(semiconductor)와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강권적인 열이 닿을 때, 하나님의 전류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하나님의 나라가 에베소 회당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방거리밖에 되지 못하였습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그들에게 감동(感動)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감동(感動)이 되십니까? 회개한 마음에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전도체(傳導體)로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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