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고,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어떤 소년이 말 타는 것을 배우고, 아리조나 사막으로 나갔습니다.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시간 지나는 줄 모르고 가던 중, 소년은 자신의 앞에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합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낯선 길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몇시간 뒤면 어두워질 것 같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말의 고삐를 더욱 세게 쥐었습니다.
말고삐라도 세게 쥐지 않으면 더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더 세게 말고삐를 잡고 이리 저리 움직여서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소년의 손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길이 보이지 않을수록 고삐를 더욱 세게 쥐었습니다.
하지만 고삐를 세게 쥘 수록 말은 고통 때문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소년은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은 두려움으로 말을 몰기에 길을 잃기 쉽지만 오히려 이 사막 속에선 자신보다 말이 길을 더 잘알 것이란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도 말을 믿지 못하여 고삐를 놓치 않고 있다가 이러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그렇게도 단단히 쥐고 있던 고삐를 내려놓았습니다.
말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말을 움직이던 위치에서 말이 가는 곳을 따라 움직이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고삐가 풀린 말은, 그러나, 소년의 바램대로 바로 길을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조금 움직이는가 싶더니, 풀이 많은 곳을 발견하고 멈추더니 풀을 뜯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풀을 먹고 있는 말을 보면서, 조급하고, 불안하고, 두려움에 싸인 소년은 망설입니다. 말이 길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한없이 지체하다가 날이 저물면 어찌해야 하는지, 그러니 차라리 놓았던 고삐를 다시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온갖 고민과 걱정 속에 고삐를 다시 쥐고 싶은 충동을 소년은 가까스로 참았습니다.
마침내 풀을 배부르게 먹은 말이 자신의 고삐가 여전히 풀려 있음을 확인하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래도 고삐에서 아무런 신호가 느껴지지 않자 말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소년은 모든 것을 말에게 맡깁니다.
고삐 풀린 말은 마침내 소년이 그렇게 찾고자 했던 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소년이 자기에게 구원이 있다고 고삐를 바짝 잡았지만, 그에겐 구원이 없었습니다.
오직 말에게 구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 성도를 구원하시는 손입니다.
우리 인생의 구원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있는 구원을 얻기 위해 그분께 자신의 삶을 맡깁니다.
이것이야 말로 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1.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시온의 대로입니다.(1-4)
[1-3절]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사도를 통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주시는 첫째 권면은 기도입니다.
1] 기도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시온의 대로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시온의 대로입니다.
어떤 사람은 낮고 비천한 자만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기도의 대상으로 권세자들을 포함시키라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권세자들을 두시고 그들을 주관하시기 때문에(롬 13:1) 네로와 같은 부류의 황제들이 아무리 합당치 못한 통치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권세 있는 독재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을 훼방하지 않는 한계 내에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는 나라의 안녕과 사회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위정자들과 국가 지도자들에게 밀착되어서 자신들의 이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서와 안녕의 축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독재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도를 기다립니다.
모든 사람이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모든 사람이 기도의 대상입니다.
모든 민족이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기도는 인간의 형편과 관습과 제도를 초월(超越)하여 필요한 시온의 대로입니다.
2] 기도란 시온의 대로가 열려 있어야 내가 살고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선한 기도가 열려 있어야 그 기도를 통하여 사랑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저는 쏘련이 철의 장막처럼 닫혀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동구권이 깊은 장막처럼 닫혀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북한이 감옥처럼 닫혀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동족 가운데 나아가며 길이 막혀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갖게 됩니다.
저렇게 길이 막혀 있고, 그 길을 따라 오가는 것들이 없으면 어떻게 부요함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독일에 가니 고속도로가 엄청 발달되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차들이 무한 질주를 합니다. 고속도로 가득이 무한 질주를 합니다.
고국을 방문하면 고속도로가 엄청 발달되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차들이 무한 질주를 합니다. 고속도로 가득이 무한 질주를 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캐나다는 도로가 엄청 발달되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차들이 무한 질주를 합니다. 고속도로 가득이 무한 질주를 합니다.
기도란 시온의 대로가 열려 있어야 내가 살고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3] 기도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란 말씀에서 보는 대로, 기도한다고 해서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지만, 그의 속전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죄의 멍에로부터 풀려나게 됩니다(롬 10:10-13).
우리 고국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졌는데, 어떤 위정자가 정권을 잡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아주 달라졌습니다. 김일성 이승만 두 사람의 차이는 지금의 결과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셨습니다.
한 사람은 그분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았습니다.
결과는 오늘 하늘과 땅입니다.
4] 모든 방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묻는 분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 신앙의 선배이며 목회자들의 스승인 박윤선 박사는
‘기도가 안나오면 나올 때까지 하라.
기도가 막히면 열릴 때까지 하라.
기도가 안되면 될 때까지 기도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간구' 해야 합니다.: '긴박한 상황에서의 어떤 특별한 성취를 위한 탄원'을 의미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경건함으로 아뢰'야 합니다.
'도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간구하는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 과거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2. 믿음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7절]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전파하는 자'는 원래 '임금, 군주, 행정 장관, 총독, 군대 장관 등의 공식 통신문을 배달하거나, 공공문서를 전달하고 기타 여러 가지 의무를 이행하는 배달인 또는 사자(使者)'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용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선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고 이 일을 위하여 그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도행전 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26:13-18]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교회 역사 속에서 믿음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전파한 대표적인 인물을 말하자면 장로교 창시자라 사람들에게 불리워지는 칼빈을 말할 수 있습니다.
파리대학 총장의 취임식을 하는데 당시 27세쯤 된 칼빈이 취임사를 써 주었고 총장은 그대로 읽게 되는데,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이런 것이니 파리대학은 앞으로 이러한 복음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
선포하니 천주교의 아성인 그 곳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누가 썼는지 알아내서 체포령이 내려졌습니다.
칼빈은 제네바에 가서 숨어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렐목사님이 칼빈의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함께 일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칼빈은 나이가 아직 어리고, 학문도 더 해야하고 성경공부도 더 해서 어느 정도 갖추면 일하겠노라 사양하였습니다.
파렐은 "당신이 학문을 그렇게 귀하게 여긴다면 학문과 함께 망할 것이다."라고 강권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칼빈은 복음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믿음을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으로 축복하셔서
제네바로 놀라운 변화가 있었고
지금까지 힘있게 장로교가 발전하게 하셨습니다.
무엇이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까?
3. 믿음 사랑 거룩함 안에서 선행하는 일입니다.
[10절]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어제 밤 연합찬양집회가 서부장로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우리 서머나찬양대는 어려운 곡을 잘 소화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시150편 구약 깊은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함이 돋보였습니다.
기형탁 집사님이 찬양대에 선 모습도 좋고 젊은 정석진 황혜원 부부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입은 옷이었습니다.
곡 자체가 거룩을 담고 있었는데 옷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은 의상과 거룩한 찬양단은 걸맞는 것 같습니다.
의복이 날개란 말이 있습니다.
1] 여성들이 입지 않아야 할 옷이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옷입니다. 남자를 가르치고 주관하는 옷이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런 옷입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부모님이 어린 딸에게 맞는 옷을 입힙니다. 선머슴이 입어야 할 옷을 입고 다니면 야단을 맞습니다.
그래서 이런 옷은 입지 말아라 법으로 제정하셨습니다.
돕는 베필로서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지 말라 하십니다.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려드는 옷은 입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에덴에서도 이브가 그런 옷을 입고 동산을 거닐다가 하나님의 작품을 망쳐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입으라고 정해주신 옷을 무시하였을 때 인류 전체에 비극이 임하였습니다.
그녀는 복종하는 옷 대신 아담을 주관하는 것을 입었습니다.
2] 믿음의 여성이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15절]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입으면 아름다운 옷 네 가지를 소개하십니다.
정절의 옷입니다.
믿음의 옷입니다.
사랑의 옷입니다.
거룩함의 옷입니다.
이런 옷들은 여성 그리스도인들에게 훨씬 어울리는 옷입니다.
자유 분방한 남성 성도들보다 정절과 믿음 사랑과 거룩함은 아무래도 여성에게 더 빼어난 옷들입니다
무엇보다 소중히 행할 일은 선행입니다.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명하십니다.
'선행'은 '자선 행위'입니다(5:10; 고후9:8, 9; 골 1:10).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인 선행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보석이나 값비싼 옷을 훨씬 능가하는 가치 있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다비다는 그 대표적인 여성입니다.
그녀의 자선 선한 행위는 여성 그리스도인만이 입을 수 있는 소중한 옷입니다.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고 믿음이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 여성도의 선행과 구제하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요, 신앙의 열매였습니다.
다비다는 이름에 걸 맞는 옷을 입었습니다.
다비다의 헬라말이고, 도르가는 유대말인데 이름의 뜻은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입니다.
다비다의 귀한 점은 그 이름에 걸 맞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는 점입니다.
다비다가 입은 옷이 왜 그렇게 잘 어울렸습니까?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의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는 일에 그녀의 정숙을 쏟아 부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의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는 일에 그녀의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의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는 일에 그녀의 믿음을 쏟아 부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의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는 일에 그녀의 거룩함 을 쏟아 부었습니다.
당시에는 옷감이 귀할 때였습니다. 사형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눠 가질 만큼 천 한 조각이 소중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다비다는 그런 연약하고 가난한 형제자매들을 잘 돌보아 주었던 것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성을 뽑으라면 여제자라 호칭된 다비다입니다.
다비다는 외모나 신분에서 무엇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기 힘든 여제자란 호칭을 얻고 있습니다.
다비다는 그녀가 입은 아름다운 삶의 옷 때문입니다. 정절과 믿음 사랑 거룩한 옷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받고 진실히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란 명예를 얻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봉사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던 다비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귀한 사람을 더 우리 곁에 두지 않으시고 데려가십니까?
낙심천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선행의 열매를 올려드린 다비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혀 주신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요한삼서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무엇이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까?
1. 기도입니다.
무엇이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까?
2. 믿음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무엇이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까?
3. 믿음 사랑 거룩함 안에서 선행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번 주간에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하고 받으실 만한 분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주에 우리 서머나 교회 성회 강사로 오시는 김명혁 목사님은 믿음과 진리 안에서 한 평생 하나님을 전파해 오신 분이십니다.
12살 때, 순교 직전에 북녘 땅 옥중에 아버님을 이별하고 삼팔선을 넘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과 진리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진리 안에서 살기 원하여 삼팔선을 넘던 그를 지키셨습니다.
그와 함께 남쪽을 향하던 사람들이 공산당에 잡혀 갔지만 그는 홀로 그 위험을 벗어났습니다. 언젠가 천사가 그를 업어 임진강을 건너 서울 이모님 댁까지 인도 하시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말씀을 언젠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부친을 순교자 반열에 모시고, 12세에 홀홀단신 남하하여 서울 문리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후, 예일대를 거쳐 아퀴나스 신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총신 합신 교수로 목회자 양성에 앞장서 왔습니다.
한국에 건강한 복음주의 운동에 앞장 서온 그는, 2003년부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으로 '성서한국' 공동대표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으로 한국 교회 건강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저술로는 "십자가와 나" "근세교회사" "한국교회 쟁점 진단" "어떻게 살 것인가?" "성경에 나타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 "교회역사에 나타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 "성경속 믿음의 선배들 이야기" 외 20여권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보배로 모시는 한경직· 박윤선 목사님의 직계 반열에 서 있으면서 "다시 만나고픈 신앙의 선배들을 그리워 남긴 한 마디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유행을 좇느라 신앙의 선배들을 그리워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김명혁 목사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과 진리 가운데 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신의 어린 아들 철원이를 천국에 보내고 나서 한 설교 내용입니다.
“철원이는 1973년 11월 11일 미국 예일대학이 있는 뉴헤이븐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 뇌수종 이라는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4년 동안 머리뼈가 벌어지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지내다가 1977년 10월 10일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갔습니다. 저는 만 4년 동안 철원이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체험하면서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가장 뜨거운 기도와 사랑을 그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이제 제가 철원이에게 써서 보낸 슬픔과 아픔의 편지 일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아픔을 당할 때마다 아빠에게 기도해 달라고 했었지? 이 아빠는 너 때문에 기도하는 법을 차츰 배우게 되었단다....네가 시력을 잃은 마지막 1년 동안 때때로 ‘아빠 하늘이 보여!’ ‘아빠 예수님이 오셨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것을 보는 너의 눈을 가리우시고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을 여시었던 것을 깨닫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괴로울 때마다 ‘아빠 나 천국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누나 다같이 천국 가고 싶어. 천국 가고 싶어. 천국에 가면 구주 예수님이 나 아픈 것 완전히 다 고쳐주시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지. 너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지. ‘아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피 흘렸지! 손에도 발에도 못 박히어 피 흘리셨지! 아빠, 예수님은 나보다도 더 아프셨지!’ 네가 하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가슴은 너무도 귀한 아픔으로 가득히 미어지는 것만 같구나! 고난의 축복을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참으로 고맙다. 아빠는 너의 무덤 앞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세우려고 한다. 고난의 의미와 천국의 평화를 가르치고 먼저 주님의 품으로 간 어린 아들 철원이가 영화로운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여기 편히 쉰다. 주후 1973년 11월 11일에 나고 주후 1977년 10월 10일에 가다.”
목사님은 먼저 하늘나라에 입성한 아들 철원이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슬픔과 아픔을 은혜로 보석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저는 김명혁 목사님을 철원이의 묘지를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고난의 의미를 배웠고 고난도 믿음과 진리 안에서는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설교할 성경 본문]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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