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0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03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 0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에는 간다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사도는 다시 갑니다. 2차 선교여행 때 갔던 길로 다시 갑니다. 그 지경으로 다녀갑니다. 함께! 갑니다.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면 돌아갑니다. 선발대 몇 사람은 먼저 갑니다. 최선을 다하여 사역을 마치면 떠나갑니다. 올라갑니다.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면 며칠이고 머물렀다 다시 갑니다.
우리는 오늘, 가고 또 가는 사도를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새 천년을 믿음으로 정진하는 방향을 받으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사람 가는 길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유1:11)에는 세 가지 사람의 길이 옳지 않은 길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1:11)
발람의 어그러진 길은 물질이 하나님보다 앞서는 길입니다. 어그러진 길이었습니다. 욕심을 따라가는 길이요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에는 천사가 칼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오직 부끄러운 길이었으면 말 못하는 나귀에게 책망을 받도록 하였겠습니까? 옳은 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가 바로 발람의 시대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입니다. 말 못하는 나귀 대신 기계에게 책망을 받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통 신호등이 사람을 나무라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벧후2: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성경이 지적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잘못된 길에 가인의 길이 있습니다. 자아가 하나님보다 앞서는 길입니다. 자기 의에 충만하여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지 않는 길, 하나님 사랑하는 형제를 외면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어느 때까지 '내어버려 두실' 뿐입니다.
2. 사람 살리는 길이 옳은 길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길에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1] 바울은 구제로 옳은 길을 갑니다.
[발람의 길을 극복한 것입니다]
바울이 기근에 처한 예루살렘 교우들을 구제하려고 각 교회에서 구제금을 모아 동족을 구하러 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의 여행의 주 목적은 그곳 교회들을 계속 격려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곤궁(困窮)한 신자들을 돕기 위하여 연보를 거두는 데 있었습니다(Tyndale). 바울은 이 연보를 위해 갈라디아와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들에게 준비시켰던 것입니다(롬15:25-32;고전16:1-4). 이방인 교회들의 연보는 단순히 사랑을 나타내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된 교회를 이루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였습니다.
-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리운 318명을 데리고 롯을 구하러 갑니다.
- 다윗이 사로 잡혀간 가족과 동족을 구하러 갑니다.
2] 바울은 자아를 희생함으로 옳은 길을 갑니다.
에베소의 3년 헌신의 대가는 아데미 신전에서의 낭패로 돌아왔습니다. 앞에서 많은 선교여행에서 그러한 것처럼 헌신의 결과는 늘 고난이었지만, 바울사도는 늘 자아를 쳐서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렸습니다.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여호와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헌신으로 가인의 길을 극복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을 살리는 또 하나의 길은 제자들을 권함으로 교회를 세우는 영적 사역입니다.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영혼을 구하러 유럽 대륙에 다시 상륙을 합니다. 이 중요한 사역은 2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와 지도자들을 직접 방문하여 재교육하는 일입니다. 여러 곳을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합니다. 바울은 처음 전도의 옛 중심지인 빌립보(16:12), 데살로니가(17:1), 베뢰아(17:10)의 공동체를 다시 방문했을 것입니다.
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2] 서신으로 교회를 살리고 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나님께서는 크게 축복하셔서 서신서를 기록하는 결과로 남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후서 이때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후 7:8-)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 11 보라 !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바울이 체류하였던 곳은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였습니다. 체류 기간은 삼 개월로 A.D. 56-57년에 걸친 겨울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Bruce). 바울은 고린도에서 가이오의 따뜻한 대접을 받으면서(롬 16:23) 석 달을 있으면서 이 기간에 로마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서신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그의 방문에 대한 준비도 시키고 또한 체계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복음의 내용을 설명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로마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장차 로마를 복음 전파를 위한 전진 기지로 확보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롬 15:17-23).
적용]
저는 금년도 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정리해온 창세기 성경공부 교제를 출판하여 그 책을 가지고 중국 조선족 교회들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교재가 너무 필요하기 때문에 사용법과 함께 그 책을 전해주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금년에는 매일 성경으로 QT를 하는 것과 함께 성경을 1독 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전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주의 말씀으로 빚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위한 길에는 늘 도우심이 있습니다.
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08 우리의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드로아에서 한 주간 머무는 동안 바울의 갈 길이 급합니다. 바울은 유월절 명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원하는 자들이 타고 가는 순례선(Pilgerschiff)을 타려고 했었습니다(18:18). 그런데 바울을 박해해 오던 유대인들이 그가 배에 탔을 때 그를 암살하거나 또는 배 밖으로 밀쳐 버림으로써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부득불 노정을 변경하여 해상보다 훨씬 늦은 육로를 통하여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동족을 위한 구제헌금이 모아졌습니다. 이 일곱 사람은 지난 2년 동 안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궁핍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연보롤 냈던 것을 맡아 가지고 가는 사명을 받은 각 교회의 대표자들입니다. 어서 전달해 주고 싶습니다. 바울 중심은 뜨겁습니다. 또한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드로아에서 사람들은 바울에게 복음을 듣기 위하여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자연히 시간이 길어집니다. 밤은 깊어가지만 전할 말씀은 많기만 합니다. 그때, 유두고란 청년이 이 집회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는 아마 낮에 중노동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말씀을 듣는데 자꾸만 졸음이 옵니다. 창가에 않으면 졸음이 달아날까 하여 창문을 열고 창에 걸터앉아 말씀을 듣습니다. 시원합니다. 혹은 유두고는 청년이기에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창문턱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까빡 졸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삼층 창문이고 보니 그냥 대책 없이 떨어졌고 마침내 죽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큰 낭패입니까? 더구나 그날은 주일입니다. 안식 후 첫날은 안식일 다음날로 그 주간의 첫째 날, 곧 주일입니다. 초대 교인들이 이제는 유대인으로부터 독립되어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모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 강림이 안식 후 첫날에 일어났으므로 교회가 이 날을 교회 예배일로 지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죄의 세력과 사망의 권세가 무너지고 참된 안식과 영원한 소망이 도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일에 하나님 말씀을 듣는 그 거룩한 시간에, 말씀을 듣다가 죽은 사람이라도 살아나야 할 그 시점에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사고로 죽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낭패입니까?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위한 길에는 늘 도우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신 것입니다.
전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도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린 아이 한 명이 강당 위에서 놀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졸도해 버렸습니다. 저도 그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달려가 아이를 안아보니 흐느적거립니다. 얼마나 황당한 지 모르겠습니다. 다행이 그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다시 깨어났습니다. 그때 몇 사람은 정말 간절히 기도한 줄 압니다. 만일 그때 불상사라도 있었다면.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시는구나 깊이 체험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중고등 학생들을 태운 미니벤이 수련회를 다녀오다가 HWY400에서 두세 바퀴 돌았습니다. 끔찍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도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시는구나 깊이 체험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위한 길에는 늘 도우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신 것입니다.
행사를 주관하는 분들은 이런 사건들을 대하면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길에는 늘 도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맺는말
우리는 서머나교회(서머나 방주(方舟)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림(설계도)에 관심이 깊습니다. 노아의 방주를 설계하시고 또 짓게 하셔서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서머나교회를 위해서는 어떤 그림(설계도)을 그려놓으신 것일까요? 그 방주에 관심이 가는 것입니다.
1. 이 서머나 방주는 천국의 운항선!입니다.
이 방주에 탄 서머나 가족을 사랑 안에서 천국까지 운반할 수 있는 천국의 여객선입니다.
2. 이 서머나 방주는 영적 전투함!입니다.
선교사들과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지경을 확장하고 있는 영적 전투함입니다. 기도로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깊이 있는 기도에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3. 이 서머나 방주는 진리 파수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대로 빚어진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방주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 하나님께서는 보게 하신 것을 얻게도 하신다. 무엇을 손에 잡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쥐어주신 지팡이를 통해 역사 하신다. 맡기지 않은 것은 책임지지 않으신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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