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6 March 2015

갈2:11-21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

 [들어가는 말]

   봄이 옵니다.
화단에 튤립 움이 돋아나고, 나무들이 봄 의상을 준비 중입니다

   풍성하고 살아있는 신앙생활,
이것은 우리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모릅니다.

   봄이 누구에게나 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하여 산 사람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어떻게 그 축복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1. 외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2:11-14)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의 바람이 불 때,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도 교회를 세웠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나바를 중심으로 일어난 안디옥 교회는 선교적인 열정이 강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고,
이방인들을 수용하고 있었고
이방인들을 교제권에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안디옥 교회에 베드로가 찾아와서 이방인들과 함께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로부터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방인을 피해 다른 방으로 옮겼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였고
마침내 안디옥 교회의 담임 목사라 할 수 있는 바나바까지 이런 외식을 행한 것입니다.

    베드로를 인하여 복을 받았어야 할 교제권의 이방인들은 오히려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1] 게바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예루살렘 회의 이후,
초대교회의 수장으로 있던 베드로는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 지역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던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행 15:35).

  베드로는 다음 몇 가지 이유만으로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외식을 행하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들로 인하여 복을 받아야 할 이방인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방인 선교를 보여주셨습니다.

 피장 시몬의 집에서 기도하던 중, 행10:11-15 사건을 체험합니다.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는 고넬료를 만남으로 이방인을 속되다고 차별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이런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2] 예루살렘 공의회 결정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외식을 행하여서는 안 될 분명한 답을 공적으로 주고 있었습니다.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개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이방인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선교를 힘있게 진행하고 있는 사역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덕을 세우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방인과 함께 식탁을 하다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람들이 도착한다고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연약했습니다.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그 연약함이 살아났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람들이 도착하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외식을 취하여 이방인과 식탁을 함께 하지 않은 것으로 위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바나바와 같이 마음이 유한 사람은 더불어 외식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2] 바나바는 그래도 중심을 지켜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레위 지파 출신의 유대인으로 구브로에서 태어나 바울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으로서 이방인들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방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안디옥 교회로 파송하였습니다(행 11:22).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으나 사도들은 그를 '권위자', '권위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바나바'로 불렀습니다(행 4:36).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습니다(행 11:24).
그는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놓은 초대 교회의  헌신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고 바울을 변호하여 사도들이 그를 기독교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일에 공헌하였습니다.
함께 1차 선교여행을 떠나 좋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나바 역시 연약한 면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외식에 떨어졌습니다.

    이는 바나바와 베드로와 같이 빼어난 영적인 지도자들조차 실수할 수 있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외식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베드로와 지도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바울이 2장 6절에서 인간들의 "영적인 지위들"이 외식에 빠진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하고
  [1] 두려워해서는 안 될 사람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2] 외식을 취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외식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바나바가 사람을 두려워하다가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외식에 빠졌다면 우리들에게도 이런 시험은 늘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외식을 얼마나 싫어하셨는지 모릅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속은 전혀 다른데 배역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외식이라 합니다.
   이런 외식은 신앙인의 독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외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구제를 외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헌신을 외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의와 인과 신을 버리고 십일조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헌신을 합니까?

   주님께서는 이런 외식자를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겉은 아름다운데
밖에는 비석도 있는데
속에는 썩어서 구더기가 우굴거리는 그런 무덤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두려움과 외식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자기를 내려놓음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외식이란 자기가 죽지 않음으로 오는 병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계실 때에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되어서도 다시 이방인 형제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 병이 도진 것입니다.


  바울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온 우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 아래서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극복할 수 없는 외식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 율법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15-18)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주신 좋은 선물입니다.

   A. 율법의 유래

율법의 유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친히 기록하여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행동의 체계로서, 율법은 인간의 삶과 하나님의 의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약속으로 주셨다.( 출24:12;34:28-29.)

그러나 인간이 그 율법의 의무를 다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인간편에서 보면 수용 불가능하였다.( 롬3:10-12; 약2:10.) 율법은 인간에게 완전복종을 요구하였다.(갈 3:10) 허나 인간은 율법대로 살 수 없으므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롬8:3-1410:2-4.)고 바울은 서신에 기록하였다.


B. 율법의 본성

모세가 전한 율법의 본성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친히 써주신 십계명이다. 다윗은 시편 19편 7-8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세가 전한 율법이 613이나 된다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의 본성에 대하여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또한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하였다.( 롬7:1214.)

하지만 사람으로서는 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죄한 자가 되나니"...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약2:10; 갈3:10.)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믿었다.(히 12:2)


C. 율법의 역사

회심 후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의 율법관은 180도 변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이 본 율법의 역사는


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함(롬3:19)
②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다 함(갈3:10)
③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자 됨(약2:10)
④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며(롬7:1)
⑤ 율법은 죄의 권능이 되며(고전15:56)
⑥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갈3:16)
⑦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으며(히7:1910:1)
⑧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만 하며(롬3:20)
⑨ 율법은 믿음이 오기까지 우리를 율법 아래 매여 갇혀 있게 하며 (갈3:23)
⑩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된다 (갈3:24) 하였다.
이와 같이 율법의 역사는 예수가 오기까지 필요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율법 아래 매여있는 모든 자들을 율법에서 해방 자유케 하였다 했다.( 갈3:21-23; 롬8:1-2; 히7:17-1910:9-10,14.)



   2] 그러나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은 없습니다.

  [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16)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좋은 사례입니다.

  회심 전의 바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대표적인 바리새인의 가정에서 엄한 유대교 사상을 교육받고 성장한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언약이며, 축복의 약속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인 율법을 지키므로 의로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항상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뛰어난 유대인임을 자랑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메시야관도 다른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오리라하신 "메시야"는 반드시 영광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 권세 자들을 심판하고, 영원히 통치하실 줄만 알았습니다.( 사9:6-7; 시89:3-4; 곌37:25; 단2:44; 눅1:32-34.)

   예수님을 그는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예수님은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복음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대교 종교가정에서 율법으로 성장한 그는 빌립보서 3장 5절에
"내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하였습니다.

또, 사도행전 22장 3-4절에는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다.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옥에 넘겼노니 "

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로마서 7:14-24에서 이렇게 그 심정을 밝힙니다.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 구원은 율법을 행함으로서가 아니라, 그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왔습니다.

  다메섹 도상까지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오리라 한 "메시야"가 예수이심을 믿게 되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던 그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롬3:20-24; 빌3:9.)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지위를 받아 의로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같이" 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율법의 사역으로는 인간을 결코 의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 중에 누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화]

  브라더 마세오가 프랜시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용모가 뛰어나지도 않고, 학식도 없으며, 귀족의 혈통이 아닌데 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따르려고 애쓰는 것일까요?”

  프랜시스는 기쁨이 충만하여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오랫동안 명상에 잠긴 후, 무릎을 꿇고 놀라운 열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높이 계신 분의 시선이 그런 일을 하시고자 뜻하셨기 때문이오. 그분은 죄인 중에서도 더 이상 죄인일 수 없는 작은 사람, 이보다 더 자격 없고 이보다 더 죄인인 사람을 찾을 수 없으셨던 것이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나를 택하셨다오. 그분은 나보다 더 천한 인간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를 택하셨고, 이 세상의 고귀한 신분과 위엄, 강함, 미모, 그리고 학식을 깨뜨리기 위해서 이렇게 미천한 나를 택하셨던 것이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속화 되지 않은 프랜시스의 기독도의 겸손은 율법 앞에서 온 의가 아닙니다.
율법이 프랜시스를 성자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율법 앞에서 자신의 "죄인 중에서도 더 이상 죄인일 수 없는 작은 사람, 이보다 더 자격 없고 이보다 더 죄인인 사람을 세상 사람들이 찾을 수 없으셨던 프랜시스란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프랜시스를 성자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3.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어야 합니다.(19-21)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율법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율법을 따라 살려하면 베드로라도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고
그 법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생명의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죄로 인하여 죽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를 죽음의 심판대 앞에 세우는 이 율법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구나 알면 됩니다.
주님, 저는 이 율법이 알려주는 대로 죄로 인하여 사형을 선고받은 존재입니다 고백할 일입니다.

그 다음엔?

  살 길을 찾아야지요.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사는 것입니다.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인은 외적인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영원히 연합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함께 죽었으며 그가 부활하실 때 함께 부활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이 믿음으로 행할 때 그들을 통하여 그의 삶을 사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이것은 규율과 규례와 의식을 종합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놀라운 찬양의 고백을 담습니다.

갈 2:20은 우리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한 모든 성도들의 영원히 마음에 새겨야 할 보석 같은 말씀입니다.

함께 암송하며 함께 노래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예화]

  펜실베니아 주는 갈매기를 사랑하여 주를 상징하는 새로 삼고 있다.
펜실베니아 지역으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이 벼농사를 짓고 드디어 수확기가 되었다.
들판의 황금빛 곡식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메뚜기 떼가 밭을 점령하고 낱알을 파먹기 시작했다.
  모두들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며, 손이나 막대로 해본댔자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그저 울고 싶을 뿐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마침 주일도 아닌데 교회 종이 울렸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종을 친 장로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합심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열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마칠 무렵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이 많은 갈매기 무리가 날아들어 메뚜기 떼를 잡아먹고 있었다.
갈매기들은 포식을 하고 배변까지 하고 떠났다.
청교도들은 메뚜기 걱정을 덜었고, 이듬해 농사까지 풍작이었다. 갈매기들의 분뇨가 비료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갈매기를 통하여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문제 앞에서나 우리가 과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느냐 하는 점이다.(양창삼)

   하나님의 복음은 풍성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위그노 교도들이 성 켄틴에서 포위당했을 때, 스페인 군은 항복할 것을 권유하는 편지를 화살에 달아 위그노들이 집결되어 있는 시장 쪽으로 쏘았습니다.
  위그노 교도들의 사령관인 콜리그니는 세 마디로 된 편지를 달아 화살을 다시 되쏘아보냈습니다.

  "우리에게는 왕이 계시다."

   왕 앞에서 외식을 극복하고
왕 앞에서 율법주의를 극복하고
왕에 대하여 산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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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갈 2:11-21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참고]

    어떤 분이 쓴 북한 실정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본인 추산에는 북한은 남성 흡연율이 90%가 넘을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담배와 관련된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오늘은 ‘마라초’라는 잎담배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북에선 공장에서 생산되는 담배는 많지 않다. 대신 장마당에 가면 마라초를 컵으로 판다. 마라초는 말아 피운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말 같다. 즉 잎담배를 신문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것을 말한다.

노동신문으로 마라초를 피우게 되면 중독성이 생긴다. 즉 노동신문 인쇄 잉크의 맛에 중독되는 것이다. 그러면 딴 종이로 담배를 피워도 별로 맛이 나지 않는다. 신문종이로 담배를 피워보지 못한 분들은 상상이 잘 되지 않겠지만
물론 노동신문으로 만 마라초가 외제 필터담배보다 맛이나 인기가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아피울 때에는 이왕이면 노동신문이 제일이란 뜻이다."



[예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닥치자 평양에서 집집마다 가축 기르기 열풍이 불었다.

 아파트 부엌(한국과는 달리 화구가 있는 재래식 부엌이다)에서 돼지를 기르고 개를 기르고 했다. 그런데 문명의 도시 평양에서, 집안에 돼지 똥 냄새 풀풀 풍기게 당국이 이를 가만둘 리 만무하다. 인민반장이 돌아다니면서 계속 단속했다.



 결국 사람들이 선택한 가장 좋은 아이템은 닭이었다.

 저 베란다에 바로 닭장을 내놓고 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

 닭이 아침마다 “꼬끼요”하고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이걸 막기 위해 북한 주민들이 개발한 방법은 이렇다.



 베란다에 내놓은 닭장의 매 칸 높이를 한 뼘 조금 넘게 만든다.

 그러면 닭이 들어가 머리를 들 수 없다. 닭이 울 때 보면 머리를 하늘에 젖히고 ‘꼬끼요’하고 운다. 그런데 목을 못들 게 하면 울 수가 없다.

 닭장 칸 높이만 조절을 잘 하면 닭은 정말 소문 없이 기르기에 제격인 가축이다.(http://www.journalog.net/nambukstory/9830)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고양이’ 이야기의 교훈은 뭘까. 여우는 적이 나타났을 때 생존방략이 100가지나 있다고 고양이에게 자랑했다. 고양이는 자기는 나무로 올라가는 한 가지 방법밖에 모른다며 여우를 부러워했다. 한 떼의 사냥개들이 나타나자 고양이는 나무로 올라가 목숨을 구했다. 여우는 100가지 방법을 두고 갈팡질팡하다가 붙잡혀 죽었다.

이 우화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의 효과성을 말했다. 경제위기를 선택과 집중으로 헤쳐나가라는 교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우와 고양이’엔 맹점도 있다. 나무가 없었으면 고양이는 죽었을 것이다. 사냥개들이 여우를 해치운 다음 나무 밑에서 고양이를 기다리는 장기전에 들어갔으면 고양이도 죽었다. 경제 위기는 장기전이다.



   북한 남성 흡연율이 90%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많은 남성들이 흡연을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에 흡연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텐데, 많은 사람들이 흡연을 하고 있습니다.

   담배를 피움으로 오는 어떤 만족감이 그를 사로잡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흡연에 빠져 사는 사람을 우리는 담배에 대하여 산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중국 江西성 슈쉐이(修水)현 黄港파출소의 경찰 4명은 관할구역을 순찰하다 우연히 못질을 하고 있던 60대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할머니가 못질하고 있는 모습이 힘에 부쳐보며 돕기 위해 가까이 다가섰다가 깜짝놀라 뒷걸음질 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가 손에 들고 있던 망치는 다름아닌 박격포 포탄이었던 것입니다. 확인 결과 문제의 포탄은 할머니의 남편이 젊은 시절 민병대 중대장으로 활동했을 당시 9개의 포탄을 집으로 들고와 보관하고 있었던 것 중 하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양식을 따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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