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March 2015

약2:1-13 믿음은? 차별없이 받아들이는 행동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차별받는구나 생각하신 적은 없었는지요?
믿음은? 차별화냐? 받아들임이냐?
이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1. 차별화는 세상의 생존 법칙입니다.

[야고보서2:2-5]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우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1] 외모를 차별합니다.

이용도 목사가 1931년 2월 18일 부흥회를 인도하러 재령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부흥회를 청한 교회 제직들과 신자 여러 명이 정거장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기다리던 차가 도착하고 내릴 손님이 다 나왔는데 마중 나간 사람들 중 아무도 이 목사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신다는 목사님이 안 오셨으니 어찌할꼬 하며 사람들이 실망하여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 목사는 교회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마중 나갔던 교인들은 검은 무명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손에 허름한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이 목사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2] 신분의 차별이 있습니다.

루소라는 분이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이라는 책에서 해석을 했습니다. ‘인간은 왜 불평등하게 되었나?’ 인간은 원래 혼자 고립되어 자연 속에서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때는 아무 죄악이 없고 각자가 다 스스로 자유롭고 평등했는데, 점점 혼자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서로 만나서 사회를 이루고 집단을 이루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소유에 대한 개념이 생겨납니다. 이 소유에 대한 개념이 생겨나면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에 불평등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소유 때문에 차별이 생겨난 것인데, 이 차별이 소유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것을 은폐하고 원래부터 차별이 있는 것이라고 믿게 하려는 것이 신분제도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자’ 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평등한 관계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3] 피부차별이 있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어느 흑인이 출장을 갔다가 예배 시간이 되어서 부근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게 되었답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성경 찬송을 가지고 들어가는데 예배당 입구에서 안내위원이 막았습니다. “당신은 들어갈 수 없소.” “왜 그렇습니까?” “이곳은 백인교회이니까! 너는 흑인 아니냐? 그러니 다른 교회로 가라.” 그래서 예배시간에 본당에 들어가질 못하고 계단에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아 뒤돌아 보았더니 눈에 많이 익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묻기를, “아니, 예수님! 왜 안 들어 가고 여기 서 계십니까?” 했더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나도 백인이 아니라고 쫓겨났다.” 그러시더랍니다. “저도 쫓겨났습니다.” 했더니, “울지 마라. 너는 한번 쫓겨났지만 나는 매번 쫓겨났다” 하셨답니다.

4] 빈부차별이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물질의 풍요는 신의 축복이요, 가난은 신의 저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은 물질의 부유함을 누릴 뿐 아니라 사회에서 존경과 대우를 받아왔고, 가난한 자는 차별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로 생각하여 가까이 하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경멸했습니다.

며칠 전 기사를 보니, 어떤 사람이 5년 간이나 감옥에 살다가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극형을 선고받고도 상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 기사는 그렇게 한 까닭은 이 세상의 생리를 알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가난한 자를 차별하는 이 세상에 항고를 포기하였다는 것입니다.

농장을 크게 경영하던 미국의 테일러씨에게 짐이라고 하는 청년이 찾아와서 일자리를 하나 달라고 사정하자 건장하고 착실하게 보였기에 허락했습니다.
그는 건초더미에서 아무렇게나 자고 얻어먹으며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가 매우 진실하게 성심껏 일을 하자 테일러씨는 좋아했고, 그의 딸이 짐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테일러씨는 깜작 놀라며 돈도 없고 족보도 알 수 없는 주제에 감히 내 딸을 넘보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를 바로 내쫓아 버렸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30년이 지난 어느 날 테일러씨가 건초 창고를 수리하기 위해 대청소를 하다가 창고 기둥에 짐이 그의 칼로 제임스 아브라함 가필드(James Abraham Garfield)라고 새겨놓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깜짝 놀라 집으로 달려들어가 대통령의 사진을 보니 그가 바로 옛날 짐이 아닌가! 그 짐이 제임스 아브라함 가필드로 제20대 미국 대통령이요,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학력차별이 있습니다.

5]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의 차별이 많습니다.

문둥병과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그 육신에 병든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정죄 받고, 사회에서 심한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약2:6-7]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7] 유대인들은 차별화합니다.

먹는 음식을 차별화합니다.
행동을 차별화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함으로 차별화합니다.
사람을 차별합니다.
세리를 차별했습니다.
창기를 차별했습니다.
이방인들을 차별화했습니다.

20세기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 라는 책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 물질과 지식 혹은 지위, 이런 것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소유 중심적 가치관이 있고, 또 하나는 존재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존재 중심적 가치관은 그의 인격과 인간됨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입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그가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 하는 기능과 관계없이 사랑하는 것, 이것이 인간관계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유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은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병자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어요. 또 능력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적자생존 원리에 따라 약한 자는 다 사라져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존재 자체를 중요시하며 존귀히 여기는 그 가치관만이 인류를 살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가치관입니다. 이것이 그의 철학의 요점입니다.
사람이 소유를 조건으로 볼 때 차별이 나옵니다.

8] 탕자의 친구들이나 형이 바로 그런 유형입니다.
그러나 탕자의 아버지는 다릅니다.
아들이란 존재로 봅니다. 그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맞아들입니다.

9] 적용

가난한 동족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북한 기사를 보니까 어떤 탈북하신 분이 다시 북한에 갔습니다.
그리고 회견을 합니다.
어떤 분은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였다는 견해를 말합니다.
그분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을까요?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차별을 겪지 않았을까요?

[9절]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2. 차별받아 마땅한 우리를 주님은 용납하셨습니다.

[약2:1]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자기 방식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절대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에리히 프롬의 글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우리는 존재도 중요하지만
“존재하는 인간이 왜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니다.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겉모습이 준수한 다윗의 형들을 보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약2:5]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빌레몬은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는데 그가 주인의 재산을 훔쳐 로마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도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는 믿음을 갖게 되고 바울은 그에게
빌레몬서라는 편지를 서서 주어 주인에게 보냅니다.

(몬 1: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안에서 상관 된 네게랴


당시 노예라는 신분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 받는 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관계가 성립된 때문입니다. 노예로 보지 않고 형제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믿음에 풍성하게 하시고, 내세에서 하나님 나라까지 유업으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이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는 소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부르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급으로 마련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믿고 바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 중요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차별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행11:5-9]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차별하지 않는데서 나아가 주님께서는 받아들일 것을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여 긍휼을 행하여야 할 사람에게 유보할 때 심판이 있습니다.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죄에 대하여는 받을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계명도 어기는 것이 됩니다.



3. 최고의 법, 사랑을 주님은 명하셨습니다.

[약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사랑이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프렌시스 후꾸야마, 「트러스트」에 따르면, 경제 윤리에 바탕은 트러스트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신뢰성 지수에 따라서 경제가 이루어집니다.
그에 따르면, 공산주의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이유는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밀경찰이 있고, 그 뒤에 또 감시자. 의심해요. 못 믿어요. 기술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지도력이 부족해서? 아니에요. 신뢰지수! 이게 문제랍니다.
사업이라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요, 돈을 관리하는 것이요,
경영이라는 것은 사람을 버는 것이요, 사람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된다 하는 말은 돈이 잘 벌린다는 말이요, 경영이 잘된다는 말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을 10분 발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경영에 성공했다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간은 정경철 선교사님과의 대화로 인하여 매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급증하는 이슬람의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이 약한 것이 문제랍니다.
자신감 말입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이슬람에 속한 대다수 사람들이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답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최고한 법)입니다.

미국의 헬렌 월트라고 하는 대학교수이며 사회사업가요, 교회 여전도회장이고 교회학교 교사였던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이분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갔더니 정밀 진단을 받으라고 하는 거예요. 받아봤더니 에이즈라고 판명이 났어요. ‘세상에 내가 얼마나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아왔는데, 에이즈에 걸리나?’ 조사를 해봤더니 6-7년 전에 큰 수술을 한 번 받았는데 수혈을 할 때 에이즈환자의 피를 받은 것이 드러났습니다. 꼼짝없이 환자가 되었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런 일을 만나자 화가 나고 원망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극도의 우울증에 빠집니다. 몇 달 동안 깊은 침체에 빠졌다가 그는 다시 회복한 후 기독교 잡지에 투고를 했습니다. “내가 맨 처음 에이즈로 판명 났을 때, ‘왜 내게 이러한 고통을 주십니까? 왜 나의 길을 모두 막으십니까?’라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회개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잊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은 내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는데, 썩지 않을 영원한 새 몸을 주셨는데, 나는 왜 낡고 얼마 남지 않은 다 늙은 육체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것입니까? 주님, 부디 이제부터는 얼마를 살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고 살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삶 속에서 나타난 긍휼을 통하여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요일 4:17), 심판을 이기고 자랑할 수 있게 됩니다. 가난한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자들은 심판대 앞에서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심판도 그 긍휼을 이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긍휼'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는 자비심으로 본절에서는 특별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비심을 나타냅내다. 이러한 긍휼을 행하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며(마 5:7)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자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게 됩니다(마 6:2).


[마무리하는 말]

긍휼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랑이 되시오.
요한웨슬레가 자기 동생 찰스웨슬레와
함께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Bible Study'클럽을 만들었습니다. 그 래서 "아침 몇 시에 일어나자."고 하게 되면 함께 일어납니다. "기도하자."고 하면 함께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공부하자."고 하면 자기들끼리 성경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학과 공부를 한 후에 전도하러 나갑니다. 이 단체가 점점 부흥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요한웨슬레가 "이제는 나도 할 수 있다. 이만 했으면 누가 나를 당하랴?"라는 자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미국의 인디언들을 전도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모자라고 부족하니까 전도 못하는 거지, 내가 가면 할 수 있다.'라는 교만에 한껏 빠졌습니다. 미국 조지아의 인디언들에게 전도하러 갑니다. 거기서 몇 달 동안 전도를 했지
만 인디언들이 누구의 말이라고 요한웨슬레의 말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믿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하면 될 줄 알았던 요한웨슬레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쓸쓸한 귀국 길, 대서양 풍랑 속에서 모라비안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풍랑 속에서도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모라비안 교도들은 찬송할 수 있었습니까? 중생했고, 성령을 받았고, 이 성령에 의해 감동 받아 믿는 믿음이기 까닭에 풍랑 속에서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1738년 5월 14일 수요일입니다. '어느 교회를 갈까?' 하다가 풍랑 속에서 찬송했던 사람들이 모인다는 올더스케잍교회로 갔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습니다. 강단에 선 사람을 보니
어떻게 보면 목사 같고, 어떻게 보면 아닌 것 같은데 설교준비는 없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그대로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석책의 서문을 읽고 있었지만 요한 웨슬레의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시간 중생했다."
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가 저녁 9시 15분이었습니다. "나는 이 날을 평생 잊지 못하고, 이
시간에 거듭났다."고 그는 일기장에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거기에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지혜와 그 경륜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기본이요.
둘째로는 나 자신입니다. 십자가 안에 있는 나입니다. 나의 정체의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자신의 정체감 이 아주 중요한 것이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이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믿음이 난속에서, 역경 속에서 부요하게 됩니다.
6.25전쟁, 너무 어려울 때 죽 한 그릇을 쑤어 놓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고 권했데요. 당신 밖에 나가 일해야 되니까 한 숟가락 더 먹고 가라고. 아니 당신이 아이들과 하루 종일 수고해야 되니까 당신이 한 숟가락 더 먹으라. 죽 한 그릇을 놓고 서로 더 먹으라고 권하고 할 때에 믿음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행복도 있었데요. 요새 와서 사업을 한다고 돌아다니니까 열흘에 한번 코빼기도 볼 수가 없데요. 너무 바쁘데요.

가난한 자에게 오히려 믿음이 있고. 거기에 행복도 있었던 것이지요.

[로마서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골로새서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야고보서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성경본문]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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