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1 March 2015

히2,1-4 큰 구원을 굳게 붙들고

  [들어가는 말]

    7월 30일자 조선일보 신문에는 이런 안타까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지난 3월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겪었던 일본 후쿠시마(福島)현과 인근 니가타(新潟)현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29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시간당 80mm 이상의 폭우가 내렸다. 후쿠시마 일부 지역에는 이날 오후 6시 현재까지 최대 680mm의 비가 내렸으며,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에는 한때 시간당 100mm가 퍼부었다.  주택 30채가 침수됐다.

    이런 안타까운 홍수 피해가 우리 고국에도 있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도 여러 곳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100년만의 폭우, 이런 기사는 이제 그럴 수 있는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에게 이런 무서운 홍수가 넘쳐 올지라도 준비하고 유념함으로 이런 무서운 홍수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14 말씀처럼 우리는 구원얻을 하나님의 후사인데, 우리 앞에도 넘쳐오는 영적 홍수가 있습니다. 세상 홍수는 육신을 휩쓸어가지만 영적 홍수는 우리 영혼까지 휩쓸어 지옥에 쳐넣기 위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홍수를 넉넉히 이기고 영생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유념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흘러 떠내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까?




    1, 하나님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3절]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큰 구원'이 무엇일까요?

    요나단이 다윗을 구원하였습니다. 다윗에게는 큰 구원입니다.
    삼손이나 삼마와 같은 사사들이 그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큰 구원입니다.
     모세가 430년 간 애굽의 압제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이런 경우 더욱 큰 구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러한 개인이나 민족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말하는 이상으로 중대한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초대 교회가 받은 복음 안에 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의 구원입니다.

    모든 날 마지막, 즉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로 말씀하시는 구원입니다.
이 아들은 천지의 창조자시며,
만유의 후사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시며,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입니다.
천사보다 뛰어나시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친히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이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구원을『큰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왜 가장 큰 구원일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위대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천지 모든 만물은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시8:6).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구원은 제한적인 구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영원합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영원전에 계획하시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큰 구원입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

    [에베소서 3장 11절]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디모데후서 1장 9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은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했습니다.

    [디도서 1장 2절]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할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죄를 정복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를 이기려면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긴 것이 아니라 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큰 구원은 죄를 정복한 구원입니다. 때문에 죄가 우리의 구원을 무효화 할 수 없습니다. 빼앗을 수 없습니다.


    넷째, 천사보다 우월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게서 주신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얻은 구원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만 얻은 구원이기 때문에 큰 구원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후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기 때문에 큰 구원입니다.

여섯째, 삼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받은 구원은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용시킨 구원입니다. 그러므로『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좋은 신앙은 더 많이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등한히 여기지 많고 더 굳게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브리 교인들은 처음 믿을 때의 신앙적 긴장을 잃어버리고, 배교와 불신의 자리에 들어갈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저들 앞에 밀려 오는 영적 홍수 앞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믿음의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흘러 떠내려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삼가지 아니하면 '흘러 떠내려갈' 위험, 또한 '공정한 보응'을 받을 위험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떠내려가지 않기를 진정 바람으로 말씀하십니다.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큰 구원을 등한히 하면 피할 수 없는 일이 옵니다. '피할 수가 있다면 내게 말씀해 보라. 나는 우리가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의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그 믿음을 소중히 여기고 굳게 붙잡으십시오.




    2. 범죄와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받음으로 하나님의 큰 구원에서 떨어집니다.

    [2절]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구속력이 있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정한(just) 보응을 받았습니다 (2절).

    공정은 '치우침이 없다'는 뜻입니다.
'공평(公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에게나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게 행하시는 심판입니다.

    다윗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을 때에 요나단이 다윗을 보호하려 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진정성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삼상 20:3]

     나와 사망의 차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이는 생명과 사망의 차이가 큰 차이가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큰 구원과 공변된 보응을 바로 이어 말씀하십니다. 큰 구원과 공변된 보응은 한걸음 차이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얻을 후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귀히 여겨야 하고, 공정한 보응을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유대인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천사들이 받아서 사람에게 전해 주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약에서도 말씀과 구원을 거부한 자에게 심판이 있었다면, 신약 시대에서는 두 말할 것 없습니다. 이 구원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요,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그 목격자들에게서 전해들은 것입니다 (3절).

    천사들이 전한 것(갈 3:19,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의미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 큰 벌을 받았다면 천사보다 더 큰 이가 전하고, 하나님께서 성령과 함께 친히 증거한 것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씀으로부터 표류하면 영혼의 홍수를 만나 마치 항구를 눈앞에 둔 배가 항로를 잃고 표류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항로에서 표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하는 말은 1장의 내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천사들보다 우월한 존재이므로' 그 분에게서 들은 것을 더욱 조심스럽게 간직하라는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라는 말은'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최종계시는 더욱 많이 주의하여 숙고하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천사들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날 마지막에 전해준 복음은 온전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열심히 상고해야 한다고 강조한 히브리서 기자는『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흘러 떠내려 가다'라는 말은「흘러가다(fiow by), 새어 나가다(slip away), 씻겨나가다(be washed away), 흘러 떠내려 가다(drift away)」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① 배가 정박지를 놓치고 이리저리 표류하는 경우.
    ②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는 경우.
    ③ 물이 금이 간 항아리에서 새어나가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1절)
여기서 '삼가다'라는 말은 원어로 '집중하다, 몰두하다, 전념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미 들은 바를 더욱 굳게 간직하라는 것입니다.(2절)

    성경에는 하나님의 큰 구원을 끝까지 잘 붙들었던 인물들이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큰 구원을 붙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기까지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큰 구원을 붙들었습니다.
    다윗은 우편에 계시는 하나님을 목자로 삼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구원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아내는 어떠했습니까?
삼손이 어떠했습니까?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운 왕도 범죄와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받음으로 하나님의 큰 구원에서 떨어집니다.


    3. 하나님께서 증언하셨던 표적과 기사와 능력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4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표적들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은 초대 교회 당시의 사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성령의 능력이나 은사들로써, 하나님은 큰 구원을 증거해 주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표적들과 기사들 여러가지 능력, 성령이 나누어 주신 모든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죽으심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행 5:30-32]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 3:14-15]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이 십자가 사건은 말씀의 최종 계시자이신 주님이 직접 확증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들은 자들이 확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친히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으로 확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성령의 은사들로 확증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은 증명되고 완성이 됩니다.



    [마무리하는 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에서는 두려워해야 할 것을 거듭 말씀하십니다.
이런 두려움은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히 3: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 히 12:15a,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 히 12:15b,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 히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큰 구원을 간절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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