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2011년 여름 서머나 화단은 풍성합니다.
그 중에 전년도에 비하여 가장 약진을 보인 화초가 수국입니다. 원래 수국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화초인데, 금년 화단에 귀한 분들이 거름을 수북이 준 까닭인지 더욱 풍성한 꽃들을 이곳저곳에 피운 채 오가는 사람들을 흥겹게 합니다.
그런데 유독 뒷쪽 화단에 수국 한 그루는 꽃 소식이 없습니다.
웬일인가 가서 살펴보니 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네 송이나 아름답게 피우긴 하였는데 무성한 원추리에 가렸습니다. 1미터 안팎의 큰 원추리 잎들이 마주 안은 듯 휘어져 뒤로 젖혀진 채 키가 작은 수국을 완전히 가리고 말았습니다. 기품있고 고상하여 성장(盛裝)한 여인을 보는 듯하다는 이 화초가 작은 키고 뒷전에 서 있던 수국에게는 높은 장벽이 되었습니다.
수국은 원추리 그늘에서 꽃은 피웠지만, 보이지 않는 채 가려 있다 땅에 쓰러져 있습니다.
저는 땅에 닿도록 쓰러진 이 수국 꽃 가지들을 세워 굵다란 원추리 줄기 사이에 세웠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고 핀 수국을 보면서 여기도 예쁜 수국이 피어있네 웃으며 지나가요.
조그만 배려에 감격했는지 얼마나 화사한 웃음을 웃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워주는 조그만 배려만 있으면, 가려지고 쓰러진 수국도 얼마든지 화단 속 아름다운 꽃들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여러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세워주고 붙들어주고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조금만 배려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질식당할 수밖에 없는 심령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본문 속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예수님은
세워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10절]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 하나님의 자녀들을 주님의 형제들로 세우시려 성육신하셨습니다.
[17절]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같은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혈육에 동참하셨습니다.
죄인들과 동일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사망의 그늘 속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사탄의 시험이 있는 곳으로
제한이 없으신 주님께서 제한이 있는 인간 속으로 오셨습니다.
배고품과 목마름이 있는 인간 속으로 오셨습니다.
천대와 무시와 배신과 시기와 질투가 있는 있는 인간 속으로 오셨습니다.
형제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인하나님의 진노 아래 머무셨습니다.
인간들과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자신을 비하시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1] 성도를 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셨습니다.
[히2:11]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거룩하게 함을 입은 우리와 같은 근원이라 함은 황공한 일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거룩함을 입은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근원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기 때문이지요.
성육신 사건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2] 죽기까지 망가뜨리는 마귀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14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우리 믿는 성도들도 어찌하든지 파멸시키는 어두움의 권세를 극복하는 길은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실 수 있는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미국 LA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민아 변호사는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李御寧) 초대 문화부 장관의 딸입니다. '저항의 문학' 이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 등 160권이 넘는 책을 펴내며 평생을 합리적 이성에 입각한 사유, 지적 작업에 매달려온 이어령 '교수'를 신(神) 앞에 무릎 꿇게 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무신론자, 이성주의자임을 자처하던 70대 노장이 2007년, 세례를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그가 사랑하는 딸 이민아씨의 실명이었습니다.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그는 응답을 받았고 약속대로 하나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의 딸 이민아씨의 증언도 우리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그분은 '땅끝의 아이들'이란 간증집을 출판하였고, 그 기사는 조선일보에 실려 있습니다.
그 기사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재혼해서 얻은 둘째 아들은 특수자폐 판정을 받았다.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 초등학교를 다섯 번 옮겼고, 중학교도 1년 다니다 쫓겨났다. 하루도 내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이가 밉고, 가족도 싫더라. 그때 깨달았다. 내가 내 아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회개하고 하와이에 있다는 크리스천 스쿨을 찾아갔다. 그 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아이를 내 몸처럼 사랑하려고 기도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르자 아이의 자폐증상들이 봄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칵테일’이라고 부를 만큼 한꺼번에 7~9개의 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자폐가 그렇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3] 대제사장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17절]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형제들과 같이 되심' 즉 성육신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의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여 대속을 위한 제사 행위를 주관하였습니다.(민18:19; 렘33:20-26),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성결(聖潔)하게 세우셨습니다(출28:38; 민18:1).
하나님께서 성도를 자녀 삼으시고
마귀의 권세를 멸하시고
대제사장으로 죄를 깨끗하게 하심은
우리를 하나님의 꽃으로 세상에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2. 시험을 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세우십니다.
[18절]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과 유혹을 맛보셨습니다.(마4:1-11; 눅4:1-13)
그분의 시험과 고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4:15; 5:2,7-10).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모든 고난과 시험은 앞 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에 대한 '충성된 대제사장'임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체휼하셨습니다.
이땅에 당하는 모든 죄의 유혹들과 악한 세력의 공격, 그리고 세상에 있음으로 인하여 당할 수밖에 없는 영육간의 고난들을 체험하셨습니다.
모든 시험받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통 받는 사람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앞 절에서 제시된 '자비로운 대제사장'이 되심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Lane).
시험을 당하신 주님께서 시험당하는 성도를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민아씨는 얼마전 하나님 나라로 떠나신 하용조 목사님과의 만남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갑상선 암이 재발됐던 1996년, 목사님이 LA의 한 교회에 오셨다. 하나님 믿으면 복받는다고 해서 믿었는데 암이 재발되니 내가 좀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설교 중에 하 목사님이 자기도 아프다고 하시더라. 얼마나 아프면 강대상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설교를 하셨다. 그렇게 아픈 지 30년이라더라. '목사도 아픈가?' 하면서 쳐다봤다. 그런데 그 얼굴에 평안과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사고로 오른 팔을 잃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낙망하여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문불출하고 절망 속에서 지냅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목사님 한 분을 모셔왔습니다.
물론 그 목사님을 소년은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불쑥 나타난 목사님 두 팔이 없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두 팔이 없는 것을 감사하며 살고 계셨습니다.
그는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일어났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3. 그리스도로 고난을 대신 받게 하심으로 성도를 세워 하나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10절]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구원의 창시자!"
우리 하나님께서는 "만물이 그를 위하고" 만물이 "또한 그로 말미암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받게 하심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세우십니다.
아브라함 비닝거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어린 소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취리히를 떠나 덴마크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여행 중 그는 부모를 잃고 힘든 역경을 헤치며 살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그는 성 토마스 섬에서 비참하게 노예 생활하는 흑인들의 열악한 상황을 들었습니다.
그들을 혹사하던 백인들은 노예 이외에는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비닝거는 성토마스 섬 다스리는 최고 관원에게 자신이 그 섬에서 충실한 노예로 살게 해 주십사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닝거의 충정이 섬 통치자와 덴마크 국왕에게 전달되고 그는 그 섬에서 모든 계층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길이 열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당하심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생각하시며,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세워주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저는 서머나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하고 삽니다.
요즈음 교회 앞에 단장해 주고 있는 콘크리트 보도블럭 사건을 말하지 않더라도, 서머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은혜의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히2:12-13]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우리가 이 예수님을 알 때, 우리 성도들에게는 중요한 믿음이 생깁니다.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선포하고 싶어요.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초대 교회가 메시야 시편으로 해석한 시 22:22의 인용입니다(마 27:26;막 15:34;요 19:34). 본절의 내용 중에서 1인칭 대명사는 인용문인 시 22편이 메시야 시편이므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Bruce). 그리스도께서 '주의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영적인 형제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세워주시기 위해 우리 중에 찾아오신 하나님이의 아들십니다.
그분 안에 쓰러지고 상처받은 우리 인생의 답이 있습니다.
그분은 쓰러질 수밖에 없는 우리가 의지할 받침대이십니다.
[설교 본문: 히2:10-18]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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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가 있습니다. 그 지폐를 구길 수 있을 만큼 구겨봅니다. 찢어지지 않을 만큼, 아니 어느 정도 찢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요? 여전히 같은 값어치가 담겨져 있습니다. 구겨지고 찢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원의 값어치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고국에 있었을 때, 코미디언 가운데 이주일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인물만 두고 볼 때 그분은 방송을 탈 사람이 아닙니다. 그때 그분이 들고 나온 유행어는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못생겼으면 어떻습니까?
"못 생겨도 맛은 좋다"는 유행어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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