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 21:1-17 내가 달려갈 길은?

들어가는 말 

1954년 8월 7일, 부리티쉬 콜럼비아 벤쿠버에 있는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임스 헨리 피얼스는 마라톤 경기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한 마일 한 마일 달릴 때에 그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습니다.  그가 마침내 관중의 갈채를 받으면서 결승지점인 매인 스타디움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주 경기恙?이르게 되었을 때에는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보다 20분이나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력이 다한 그는 발걸음이 점점 늦어졌습니다. 그리고 비틀거리다가 쓰러져버렸습니다. 안타까운 관중들은 그를 향해 일어서라고 외칩니다. 그는 일어나서 몇 발자국 가다가 다시 쓰러졌습니다. 안타까운 관중들의 환호성은 그를 향해 일어서라고 외칩니다. 피얼스는 일어나 다시 몇 걸음 가다가 쓰러졌습니다. 그러기를 열 두 번, 그는 끝내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피얼스는 입상하지 못했습니다.  20분 후에 제임스 맥게라 이름하는 스코트랜드  청년이 결승 테잎을 끊었습니다. 
경주자의 눈에는 달려갈 코스와 골인 지점을 향한 결의가 불타고 있습니다.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바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또 하나의 결의가 불타고 있습니다. 동족 복음화! 곧, 내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롬10:1)  

바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한 결의가 불타고 있습니다. 그 결의는 세계 복음화!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것입니다.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바울에게는 가장 앞선 우선 순위입니다. 로마든, 예루살렘이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에 그의 생명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처럼 그의 달려갈 길은 명확합니다. 주님을 위한 바울의 각오는 각별합니다.  

1. 올라가지 마세요. 

그러나 바울을 만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립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합니다.  
두로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합니다.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며칠 머물고 있는데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여러 동역자들이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합니다. 일행은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바울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충분하게 기도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함께 생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주님의 뜻에 대하여 알만한 동역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열이면 열이 모두 하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올라가야 합니까? 올라가지 말아야 합니까?  

2. 바울은 그러나 올라가려 합니다. 

고집불통입니다. 타협이 없습니다. 그 부분에 한에서는 앞뒤가 꽉 막혔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유태인들의 서슬이 퍼렇게 되어 있을 때는 돌아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선언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 자신을 위해서라면 다른 곳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의 종 된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께서 가신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께서 가신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옳습니까?  
올라가야 합니까? 올라가지 말아야 합니까?  

3. 올라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야할 길은 선지자들에게도 있었습니다.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것입니다.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러나 모세는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친히 인도하시겠다고 하시는데도 모세는 거부합니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시는데도 모세는 거부합니다.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 이름도 일러주시고, 할 말까지 자상하게 일러주시고, 파송장까지 주셔도 모세는 거부합니다.  
 

4:1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지팡이가 뱀이 되고 손이 문둥이 손이되었다가 고쳐지는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모세는 거부합니다.  
 

4: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 나 여호와가 아니뇨 ?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셔도 모세는 거부합니다.  

4:13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향 아론을 붙여주어 가게하기까지 여섯 번의 거부를 당하십니다. 
믿음의 거장 모세에게도 순종하여 올라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셨습니다. 요나는 No!를 했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하려 했습니다. 순종하는 일, 올라가는 것이 그들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처음에 No!를 했습니다.  

4. 그러나 주님께서는 올라가셨습니다. 

막8:27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28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라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올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막10:32) 

바울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바울은 그 주님 가신 길을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5. 지금 달려가는 길은 어디입니까? 

지난 1월 9일 대한 기도원에 최 경선 목사님께서 집회를 인도하러 오셨습니다. 그는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 온 1.5세 목사입니다. 적응하기가 힘이 들어 몇 번이나 가출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공부를 그만두고 야채가게에 취직을 하여 돈을 벌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심도 오래 가지 못하여 술, 담배, 마약에 손을 대다가 번 돈까지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결국 마피아에게서 마약을 훔쳐오는 일에까지 손을 대다가 수 차례 감옥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절망적인 청년에게 한 목사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2천년 전에 당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물론 그는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기는커녕 침을 목사님의 얼굴에 뱉고, 뺨을 때렸습니다. 거짓말로 우롱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계속 그 청년을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감방을 버팔로로 옮겼을 때, 그곳에까지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2년, 매 주 1회씩 10시간을 운전하여 달려오신  그 목사님의 사랑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 청년은 외칩니다.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2천년 전에 당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복음을 다시 전해주었습니다. 그가 그 복음을 들었을 때, 그 이야기는 2년 전과 달랐습니다. 예사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그의 심장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종이 되어 그의 일생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이 술, 담배, 마약에 희생되어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천년 전에 당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저는 그 청년을 끊임없이 찾아 달려간 그 목사님의 2년이란 기간을 주목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 십자가의 길이 그 청년을 지옥에서 천국일꾼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주님 가신 길을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어디를 향해가고 계십니까? 원수를 용서의 길은 어렵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가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환대와 감사는커녕 야유와 핍박이 있는 길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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