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바울사도는 영적인 개선장군이 되어 예루살렘교회를 향하여 힘차게 입성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선교 현지인들이 자원하여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친 헌금(노략물 대신)이 들려 있습니다. 그는 알렉산더가 정복한 땅을 역으로 나아가 소아시아는 물론 로마의 동남부 통치구역인 그리스까지 왕 중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권을 확보하였습니다. 남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입니다. 알렉산더가 사용했던 칼과 같은 무기를 그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이란 유대인들의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의 복음을 들고 나아갔습니다.
그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역사상 어느 개선 장군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기도 했습니다.
고후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러나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덕을 잃지 않았습니다.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이 모진 고난의 길을 이겨낸 바울 사도는 이제 영적인 개선장군이 되어 기독교의 본산지인 예루살렘 교회에 힘차게 입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위대한 개선장군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꼭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德)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그는 어떤 덕을 세우고 있습니까?
1. 교회와 지도자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 야고보 장로를 방문하였습니다(12:17). 야고보 장로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首長)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지혜롭게 잘 지도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일반 유대인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Bruce).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일반 유대인들은 그에게 '의인 야고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 야고보 장로를 방문하였습니다. 갈 곳은 얼마든지 있었겠으나 먼저 교회를 찾고 지도자를 찾아갑니다. 이는 교회 중심 신앙을 중요시함입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덕스럽습니까?
교회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성도들을 세상으로부터 초청하여 하나님의 권속(가족)으로 삼으시고, 이곳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셔서 사역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라고도 합니다. 이는 성도들이 가진 특권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특권과 함께 소명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에 사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십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이십니다. 모든 족속, 전세계를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부름 받은 특권이 있으면 보냄 받은 소명에 순종해야 합니다.(옥한흠)
이 하나님의 교회를 무엇보다 존중하는 신앙이 덕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바울 사도는 교회의 소명을 마친 후, 파송하신 교회에 돌아와서 하나님의 가족들에게 사역을 보고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그는 세상에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자기가 세상에서 사역한 일을 보고합니다. 이 사역은 '봉사'(*, 디아코니아)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종', '일꾼'을 뜻하는 '디아코노스'(*)에서 파생된 말로 '사명'(20:24), 또는 '직분'(롬 11:13) 등으로 번역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교회와 사람들에게 봉사하였습니다. '사명'(20:24), 또는 '직분'을 감당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도 전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도의 덕목을 만납니다. 바울은 자기가 이방 가운데서 사역한 그 모든 일들의 주체(主體)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세상에 보냄 받은 소명자이므로 그가 행한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자신은 보냄 받은 자로 봉사한 것이지요. 겸손한 신앙의 자세를 봅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자기가 최선을 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차원 높은 덕(德)이다.
그러면 이것이 거짓입니까?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다 짓습니다.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김을 멥니다. 추수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농부의 땀이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입니다. 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키우셨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절대로 결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농사는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입니다. 농부의 수고를 빌리셨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하십시오. 그러나 늘 마침 부호를 잘 찍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이것이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3. 교회의 지도력을 인정했습니다.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하니라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뵈었습니다. 그 부활의 권능을 입고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수많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사도적 권위는 결코 야고보 장로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가 받은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보더라도 야고보 장로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결례 비용을 감당해 가면서 그는 교회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는, 번제물로 일년 된 수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일년 된 어린 암 양 하나, 화목제로 수양 하나, 그 외에 무교병 과자 등이었으므로(민 6:1-21) 그 비용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비용을 바울에게 부담하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난한 서원자를 위하여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것은 매우 경건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바울 자신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하지만,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같이 된다는 원칙을 따라 행동했습니다(고전 9:20, Meyer, Weiss, Knowling).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에 순종했습니다. 바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볼 때, 율법주의자들과의 타협이며 그 결과는 실패였지 않은가 생각됩니다(Furneaux, Calvin).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위한 그의 노력은 귀한 것입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노 의일이란 분이 정리한 글 가운데 '반 석평'이란 사람됨에 대하여 기록한 글이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반 석평(潘碩枰,?-1540)이란 분은 겸손하고 청렴하여 덕이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원래 종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격과 학문을 갖추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주경야독을 하였습니다. 이를 아름답게 생각한 주인 이 참판이 그의 종 문서를 불태워 버리고 어느 몰락한 양반 집의 수양 아들로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여 형조판서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거지 몰골을 하고 있는 옛 주인 이 참판의 아들 이 오성(李 五成)을 보았습니다. 그는 즉시 그 앞에 넙죽 업드려 큰절을 하였습니다.
"저는 당신의 종 반석평이란 놈입니다."
그는 관례에 따라 자신의 옛 노예 신분이 노출됨으로 모든 특권이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그 인격에 감동한 신하들과 임금의 배려로 그의 사표는 반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추천한 이 오성(李 五成)도 사옹원(司饔院) 별좌(別座)라는 좋은 벼슬을 얻었다 합니다.
덕이 있는 한 사람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온 나라를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덕이 있는 한 사람이 가정에 존재함으로 인하여 온 가정이 훈훈하게 됩니다. 덕이 있는 한 사람이 교회에 존재함으로 인하여 온 교회가 훈훈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용장입니다. 인류 역사에 그를 추월할 거목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하여 감화를 받는 까닭은 믿음에 덕을 세우는 인품 때문입니다.
1] 예루살렘 교회는 여러모로 연약한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을 찾아야 할 일입니다. 바울이 하나님 나라르 확장할 수 있도록 선교비를 대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선교지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거기에서 구제금을 모아 온 바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와 그 지도자를 인정합니다.
2] 자신이 최선을 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3] 결례의식이 바울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바울 사도의 믿음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지도력을 존중합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덕을 세우는 사람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베드로 사도는 믿음에 덕을, ..... 공급하라! 했습니다. 덕이 있는 믿음! 이런 사람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입니다 사도와 같은 믿음에 덕을 더하심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참고]
1. 덕(德)이란 그리스도인이 생활 중에 갖추어야 할 품성입니다.
덕(德,Vertue=아레테)이란 말은 그리스도인이 생활 중에 당연히 갖추어야 할 품성입니다.
공자(孔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노자(老子)는 덕을 우주의 원칙인 도(道) 다음에 위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리한 통찰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볼 때, 말씀(道)이 단연 위이고, 사람이 말씀을 따라 갖추어야 할 인격이 믿는 자의 덕(德)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왕 같은 제사장들은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1]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심 있는 자들은 소위 유대적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모세의 율법을 비롯한 각종 규례들을 소중히 여겨 지켰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깨달은 바,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율법을 폐기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율법의 매임으로부터 자유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에 매이지 않는 바울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을 비방(誹謗)하는 소문의 진원지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유대교적 전통에 철저한 자들이었습니다. '모세를 배반한다,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무시한다, 곧 하나님에 대한 배반한다!'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 자체를 부정한 바 없으며 오히려 그는 율법을 신령한 것으로 보았습니다.(롬 7:12) 율법의 긍정적인 역할도 인정하였습니다(갈 3:24). 다만 바울은 사람들이 율법 자체에 얽매여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행위들을 배격(排擊)하였습니다(롬 10:3). 율법이 지향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형식주의 또는 완고한 유대주의에 매여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폐기되어야 마땅했습니다(엡 2:15). 또한 바울이 할례를 금하였다는 것도 전혀 터무니없는 허위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할례 그 자체에 대해서 어떤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나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고전 7:18, 19;갈 5:6),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들은 바대로 오해를 하고 있었으며 이 오해를 해소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2] 서원은 주로 나실인의 서원과 관계되는데, 부모에 의한 서원이나(삼상 1:11),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서원이 있으며 서원의 기간은 영구적인 것이 있었습니다.(삿 13:7;삼상 1:11). 또한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민 6:8, 12). 서원자는 서원한 것에 대해 반드시 신속하게 행해야 합니다.(신 23:23;시 15:4;전 5:4, 5), 남용하거나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잠 20:25;마 15:4-6). 또한 서원한 기간 동안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는 독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를 깎지 말며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명의 서원은 본인의 자유 의사에 의해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서원이라 여겨집니다(Robertson)
베드로 사도는 믿음에 덕을, ..... 공급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는 곧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큰 약속을 따라 살게 마련인데, 믿음에 이 덕(德)을 공급하라 하십니다. 덕이 있는 믿음!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벧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0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 공급하라
사도 바울은 대인관계에서 덕(德)을 중요시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14:19)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15:2)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29)
특히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전14:12)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14:26)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고전10:23)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8:1)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고후12:19)
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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