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19세기의 유명한 목회자 스펄젼 부부는 닭을 몇 마리 키웠습니다.
그리고 달걀을 얻고 하면 이웃에 팔곤 하였습니다. 그는 당대 가장 큰 교회 목회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좀 넉넉해 보이는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달걀을 사먹는 이웃 사람들은 좀 야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이웃들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하였기 때문이죠.
사모님이 돌아가신 후,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스펄젼 목사님이 판 달걀 값으로 가난한 과부 두 사람을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세계적인 설교자이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종다운 삶 때문에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1. 욕심은 선행으로 !
[벧전2:11-12]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영혼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의 본체입니다. 이 영혼을 거슬려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육체의 욕심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NIV 성경에서는 ‘sinful desire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죄를 갈망하는 마음이라고 번역해도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대적하는,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하는 삶이 정욕입니다. 이 세상을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다스리고 통제해야 합니다.
이런 ‘sinful desires’가 인간의 내면에서 영혼을 거스립니다. 영혼을 ‘against’합니다.
Moody는 '자기 자신이 그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무디 자신과 트러블(trouble)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나의 영혼을 거스르는 욕심이 나의 적으로 내 속에 있는 자리잡고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은 남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삽니다.
내가 좋고 내가 즐겁고 내가 만족하면 그만입니다.
남의 가정이 깨어지든 말든,
나의 욕심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행하는 것이 육신의 정욕입니다.
이 육신의 정욕은 여러 형태로 드러납니다.
성적 욕망으로만 배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명예욕으로
권세욕으로
육체의 정욕이 소유욕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돈에 대한 욕심,
옷에 대한 욕심,
어떤 물건에 대한 욕심들이 육체의 정욕으로 드러난 열매들입니다.
때로는 의로운 일을 행하는 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람의 욕망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정욕은 남을 짓밟으면서라도 불타오릅니다.
이런 명예와 권세는 날개 없는 비행기와 같아서 결국 곤두박질하게 됩니다.
거류민은 바로 지나쳐가는 과객, 한곳에 머물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보실 때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나그네로 보니다.
이 세상에서는 거류민이요 나그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상이 본향인 것처럼 세상에 푹 잠겨 삽니다. 나그네처럼 살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을 외국인과 나그네로 증거하였으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그네와 행인으로 사셨습니다.
부모님이 여행중 태어나셨습니다.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을 떠나셨습니다.
사역 중에도 나그네셨습니다. 여우도 ,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는데 예수님은 나그네이셨습니다.
[누가복음 9: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나그네는 본향을 그리워하지요. 객지의 것 소유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나그네 생활을 하면 몸이 가벼워야 합니다.
더 소유하고자 하는 이기주의에서도 벗어고, 배타주의에서도 벗어납니다.
본향을 선포해야 할 성도들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살려고 할 때,
이 세상을 너무 좋아할 때, 생명력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제어하여야 해요.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렘23: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2] 선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성도 또한 선합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일로 모함을 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의 네로황제는 자신의 악행을 기독교인들에게 덮어 씌웠습니다.
네로는 군인들을 시켜 로마 시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는 모함을 퍼뜨렸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우물 물에 독을 넣었다는 악담을 퍼뜨렸습니다.
이 악한 이방인 중에서 모함을 받고 악담을 덮어 쓰면서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저들의 악담과 모함을 이기는 지혜를 오늘 말씀하십니다.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여주라는 말씀입니다.
저들과 말로 변론으로 맞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선하게 산다는 의미는 가장 기본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다 그렇게 대적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신 선한 일을 보”여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새 백성들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을 하게 함으로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비참하게 만들어요. 성도들이 지켜야할 선은 바로 진실의 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왜 우리들을 구원하여 주셨을까요?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으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889년 한국에 온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M.C. 펜윅은 최초의 침례교 선교사였는데 함경남도 원산에 자리잡고 다른 선교회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만주·간도·시베리아·몽골 등)에 복음전도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한국 선교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당시 장로교가 선교대상 지역으로 정하지 않은 지역을 들어가려다 보니 침례교가 장로교보다 먼저 울릉도에 도착하여 선교한 것입니다. 현재 울릉군에는 40개의 교회가 있는데 이 중에 감리교가 2개, 침례교가 17개, 장로교(통합, 합동, 고신 등 합계)가 17개 교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2. 주를 위하여 권세에 순종하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본문에서 순종이라는 것은 헬라어 원전에서 'hupotassei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순종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대등한 두 사람 사이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 또는 '양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는 아주 악하기로 이름이 난 네로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로마의 황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고 방백은 '왕을 통하여 보냄을 받은 총독들'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왕을 통하여'하는 말 속에는 왕이 국가제도의 궁극적인 주권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궁극적인 주권자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만약 왕이 국가를 만들고 왕이 총독들을 세웠다면 '그를 통하여'가 아니라 '그에 의하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왕도 하나님이 세우셨고, 총독들도 왕을 통해서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제도와 권세를 운행해 나가신다는 말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니까 국가제도를 무시하지 말고 그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롬13:1에서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느브갓네살과 같은 폭군도 하나님께서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렘25:9 하나님께서 '내가 내 종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을 치겠다'고 하셨습니다.
단5:18에 보면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브갓네살에게 나라와 권세를 주셨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가 다스리고 있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정부의 체제는 인정할 수 없다'고 제도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왕이 하나님께 불복하는 일들을 요구했을 때는 단호하게 못하겠다고 거절했었습니다. 그래서 극열히 타는 풀무불에도 던져지기도 했었고 사자굴에 던져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회 지도자에게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복하는 것이 될 때는 거절하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권세를 잡은 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다가는 전도를 하지 말라고 위협을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너희가) 판단하라'(행4:19) 고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왕이 하나님께 불복하는 일들을 요구했을 때는 단호하게 못하겠다고 거절했었습니다. 그래서 극열히 타는 풀무불에도 던져지기도 했었고 사자굴에 던져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처럼 사람에게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될 때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 지도자에게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복이 안될 때는 내게 손해가 나더라도 그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해야 합니다. 악하다고 생각되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성경이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많이 있었고 특별히 노예가 많았습니다. 많은 노예 중에 누구의 노예인가를 따지면 노예의 신분이 결정됩니다. 평범한 시민의 노예와 시이저의 노예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같은 노예이지만 시이저의 노예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만왕의 왕이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권세는 대단한 권세입니다.
왕의 노예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데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종은 자유가 없고 주인의 손에 조종당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자신을 종이라고 밝히면서 주저하는 것이 없습니다. 비하하는 것도 없습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귀한 자랑거리요 재산인 동시에 디도에게 전해주고 싶은 삶의 특권이었습니다.
일찍이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아침에 나갈 때나 저녁에 들어올 때 자기 저택을 지키는 경찰에게 인사하고, 항상 출입할 때마다 경례를 했다고 합니다. 왜 대통령이 경비에게 그렇게 정중히 경례하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그 사람에게 경례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인격과 개성, 직책에 대해 충성하는 것과 그 충성심에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노예에게는 책임이 없는 대신 자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인에게는 자유가 있는 대신에 책임이 없습니다. (딤전 6 : 1) 성숙한 사회인일수록 자신에 대한 책임을 속박이라 생각하지 말고 자유인에 대한 특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나 국가의 제도에 따라야 하는 이유는 모든 제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질서를 위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벧전 2 : 13)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 스스로가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를 이루길 바라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성도가 사회의 제도를 어기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입니다. 그러나 사회나 국가의 제도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명백히 위반된다면 그 법에 의한 형벌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3. 하나님 종답게 사랑하라
[벧전2:16-17]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 뭇 사람을 공경하며
"공경" 혹은 "존경"("티마오")의 뜻은 "가치와 값을 인정하고 바르게 세우는 것(to fix the value)" 입니다.
뭇 사람을 공경하라는 것은 사람의 존재와 인격, 그의 권리와 소유와 믿음을 존중하라는 말입니다.
공경이란 순복하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사람이 서로 양보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너무 이권에만 매달려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지 말고 서로 양보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1] 우리가 모든 사람을 존경해야 할 첫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8:5]
주께서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고 동시에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인간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은 존재이며 존귀와 영광을 관 씌우셨고 하나님을 대리해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하나님께서 존귀와 영광을 덧입혀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하나님은 한 사람도 쓸모 없이 비천하게 만들지 아니했습니다. 무가치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는 사람까지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2] 우리가 모든 사람을 존경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전서 1:18-19]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은이나 금과 같은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3] 우리가 모든 사람을 존경하면 다른 사람도 존경합니다.
존경받기 원하면 다른 사람들을 먼저 존경하십시오.
인정받기를 원하면 먼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미소를 짓기를 원하면 여러분이 먼저 미소를 보내어 보십시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존경하는 사람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형제 사랑
형제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혈족이고 다른 하나는 믿는 사람을 뜻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랑에 사용된 단어는 '아가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44/눅 6:27,35). 원수가 만일 네게 와서 용서를 구하면 그것까지도 받아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을 나타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일서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만약 어떤 사람이 사랑할 줄 모르고 친절하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닮았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긍휼하게 여기는 인생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을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비록 저주받을 행동을 하고 있는 순간까지라도 용서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셨습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이 좋아지면 일어나는 변화는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형제 사랑하는지를 보면 우리의 신앙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5]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
무례하다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례한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무례함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무례함은 공경의 반대입니다. 무례함은 연약한 자가 강한 자를 흉내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땅히 표할 예의조차 나타내지 않고 지나간다고 해서 굉장한 인물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실 무례한 것을 배우는 데는 노력도 필요치 않고 아이큐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을 존경하는 일에는 고도의 인격과 성숙과 능력이 요구됩니다.
요셉은 본이 됩니다.
뭇사람을 공경합니다.
형님들을 끝까지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뭇사람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의 종답게 사람들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요셉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서머나 교회 15주년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 욕심은 선행으로 !
2. 주를 위해 순종하며
3. 하나님 종답게 사랑하라
우리는 두 분의 선교사역자 생애를 책으로 출판하고 감사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서머나 교회가 좋은 신앙인들로 채워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원하여
신앙의 길을 바로 걷기 위해 힘쓴
1. 욕심은 선행으로 !
2. 주를 위해 순종하며
3. 하나님 종답게 사랑한
선배들을 존경하고 따라가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설교할 성경본문]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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