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기도원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수요일 밤, 구름 사이로 달이 별을 따라 갑니다. 구름이 빨리 동으로 움직이는 것이겠지만, 별이 달을 데리고 푸른 창공을 지나는 구름 위로 올라가는 것 같이 보여요.
저는 하나님의 작품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은 무엇일까요?
HWY404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복의 근원 교회가 있습니다.
한 젊고 유능한 목사님께서 교회 개척의 꿈을 안고 시골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날은 어두워가고 갈 길은 막막하기만 한데, 어디서 어떻게 교회를 개척해야 할른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앞을 바라보니 시골 마을 언덕에 아담한 교회당이 서 있습니다.
저 교회당에서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
그때였습니다. 어두워가는 골목 길에서 낯 선 사람이 나타나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뉘시며 무엇을 찾으시냐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어요.
내일 이 교회 담임 목회자를 만나게 해드릴 테니 내일 다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교회 책임자들과 대화를 나눈 뒤, 놀라운 결과를 들었습니다. 일 년 동안 교회 사용로 $1로 계약을 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그 교회가 후원하는 사택비 $500을 받아서 지금까지 지불하던 월세를 합하여 그 교회 사택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소수의 교우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지만, 그 교회는 캐내디언 교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일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조그만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장차 그와 같이 아름다운 일을 행하리라는 소망을 갖게 되고 이 소망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2012년도 저물어가는 오늘,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알아보면서,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로 우리의 삶을 채워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께서 선행의 본이 되셨습니다.
[벧전2:22-23]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1]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값진 선을 행하셨습니다.
한 청년이 예수님께 다가와 인사를 합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볼 때, 예수님은 참 선하신 분이셨습니다.
[마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세례 요한에게 보낸 보고였지만, 눈을 뜨게 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놀라운 선행입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착하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부모님과 그물을 남겨두고 좇을 만한 부모와 직업 이상이었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세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도 감사하기만 한 재산 이상이었습니다.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말할 수 없이 치욕스런 삶을 살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기념비적인 위인 이상이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결혼을 위해 준비한 예물 이상이었습니다.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 세상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어떤 좋은 남편 이상이었습니다.
2] 그러나 선하신 분이 십자가 위에서 고난과 욕을 당하셨습니다.
선을 행하셨으니까 상을 받으셔야 하는데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표창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황제의 상(면류관)을 받아야 했습니다.
훈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표창도 면류관도 훈장이 아니었습니다.
[벧전2:24a]
24. 친히 나무에 달려
채찍에 맞으시고, 친히 나무(십자가)에 달리시고,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고난 받으심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움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상에서 희생 제물이 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속죄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죄인에 대하여는 제물을 대신하였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공의를 만족시켰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동참하여 의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3]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벧전2:24b]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사53:4-5]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뜻이요, 이루시기 원하시는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그 글자본을 열심히 따라 써도 그렇게 완벽하게 잘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글자본처럼 잘 쓸려고 자꾸 자꾸 노력하고 따라 쓰다보면 그렇게 완벽하게는 못쓰지만 비슷하게는 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사가 예수님이 본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하고 또 어떻게든지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를 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가 없으시며'
예수님의 대속제물 되신 사건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영원히 지옥불에 떨어져 갈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 가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2.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분께 돌아 온 일입니다.
[벧전2:25]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1] 구원받기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다 양과 같아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인식치 못하고 습관적인 방황에 빠져 비참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전에'와 '이제는 구원받기 이전의 죄의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던 영적 죽음의 상태와 생명을 얻은 현재의 상태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2] 주님께서는 길이 되셔서 영혼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목자'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었습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신약성경에서 목자는 구원받은 자들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요 10:14-16]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감독'은 '목자'와 거의 같은 의미로 목자의 기능적인 면, 곧 돌보고 감찰하는 면을 나타냅니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죄인으로서 죄의 종노릇을 하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목자와 감독되신 그리스도에게 그 영혼을 보호받습니다.
그리고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를 따라 바른 길을 갑니다.
영혼의 목자요 감독자 되신 하나님 앞에 돌아온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앞에 돌아온 사건은 망가진 그의 인생이 살아난 것입니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이 목자를 만나 99마리 속으로 돌아온 것은 생명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길 잃은 양이 영혼의 목자요 감독자에게 돌아온 사건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탕자의 귀환을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처럼
잃은 양의 돌아옴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예화]
1704년 독일의 베냐민 슈몰크 목사 내외가 먼 지역의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주택이 완전히 불에 타버리고, 여기 저기 아직 타다 남은 곳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슈몰크 목사 내외는 집을 보던 어린 아들 형제를 열심히 불러보았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타다 남은 잿더미를 들쳐보니 거기에 두 형제가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불에 타죽어 있었습니다. 슈몰코 목사 내외는 새까맣게 타버린 사랑하는 두 아들의 시신을 앞에 놓고 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시가 바로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입니다.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영혼의 목자요 감독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온 사람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3. 주 안에서 순종과 참음 아름다운 일입니다.
[벧전2:18-20]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라고 명하십니다.
1] 사환이 주인을 '두려워함‘은 주인의 형벌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함(포보)은 존경심을 가지고 경외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17절).
오직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환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들의 권위를 중시하는 것이지요.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주인에 대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2]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러하라!
사환들의 순종은 주인의 인격의 좋고 나쁨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습니다.
주인들의 인격이 까다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뒤틀린 자'란 의미입니다. 성품이 온당치 못해서 하인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자들입니다. 비인격적인 주인입니다.
3] 그런 주인에게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사환들은 주인의 인격을 불순종의 변명거리로 삼지 않고 주인의 인격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순복하는 자입니다.
하인이 주인의 부당한 처사를 당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으면 그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은혜 받을 증서가 됩니다.
고난을 받음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죄의 결과라면 수치스러운 것이나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은혜로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종으로 팔려가는 부당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그 집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유혹이 왔습니다. 요셉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악으로부터 도망을 갔습니다. 요셉은 상을 받는 대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요셉의 당한 고난은 부당한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그 모든 슬픔을 참았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하나님을 믿고 참았습니다.
옥중에서 요셉은 선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았습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아름답'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내 위에 세우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 드렸던 대로 정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고 계신다고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복해야 할 뿐 아니라 어떠한 환경이 주어지든지 그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국은 무엇이었습니까?
부당하게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이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함으로 그 괴로움들을 참으면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그 고난을 참고 인내하는 삶을 위해서 부름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체험한 죠(Joe)라는 늙은 노예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죠를 매우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인은 죠와 의논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죠와 함께 노예를 사기 위해 노예시장에 갔습니다.
상품처럼 진열된 많은 노예들 중에는 대단히 늙고 야윈 흑인 노예가 있었습니다.
죠는 그를 한참 바라보더니 그의 주인에게 요청했습니다.
"주인님, 저 사람을 사시지요."
"그러나 그건 너무 늙어빠져 내게 별 쓸모가 없겠는데. 이봐, 죠! 원기왕성하고 젊은 애들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잖나?"
그러나 죠의 뜻이 너무 간곡하여 그 늙어빠진 노예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죠는 정성을 다해 그를 돌보았습니다.
주인은 죠를 계속 주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주인은 죠를 불렀습니다.
"죠! 왜 너는 그 늙고 쓸모없는 노예를 사라고 고집했을까? 그 노인을 정말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돌봐주는구나! 혹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아닙니다. 주인님! 그는 저의 원수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 그는 나를 유괴해서 지금 주인님께 판 자입니다. 시장에서 그를 보았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요 6:35)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이 마르거든 마시우라.(롬12:20)
주인은 크게 감동했습니다.
죠는 노예였지만, 그에게는 정말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대사였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신 것으로 인하여 고난과 욕을 당하셨지만, 우리 가운데 구원을 이루기까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목자 앞에 돌아온 일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순종하고 참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다가오는 한 해를 맞을 준비하면서 내 인생에 피어날 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일,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도 소담스럽게 피어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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