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어제 밤에 진행된 WBC 야구 월드컵에서 한국이 결승에 올랐습니다. 주일 설교 준비 때문에 보지는 않았지만, 2차전 일본과의 두 차례 경기는 보았습니다. 캐나다에 이민 온 지 20년 가까이 되는 데, 밤늦게까지 스포츠 중계를 본것은 처음입니다.
그 두 경기에서 저를 감동시킨 사람은 봉중근 선수입니다. 조선 총독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사와 이름이 같아서 봉중근의사로 한국 국민 사이에서 사랑을 받게되었습니다.
3월 7일 한·일 1차전에서 2-14, 콜드게임으로 진 대표팀은 초상집 같았았습니다.
몸이 불편한 김 감독은 그날 저녁 폭탄주를 마시며 쓰라림을 달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틀 후 열리는 리턴매치는 누구에게도 부담스러운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봉중근 선수가 김인식 감독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던지겠습니다.”
일본 도꾜 수만명 일본 응원 속에서도 눈하나 까닥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라운드 1, 2위 결정전. 배트를 곧추세운 채 기다리는 일본의 첫 타자 스즈키 이치로를 마운드 위에서 굽어보던 한국의 선발 봉중근(29·LG)은 뜻밖에도 타임을 신청하고 주심을 불렀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너무 터져 투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장내방송을 통해 환기시켜 달라.”
전문가들은 봉 선수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그 자신감에 혀를 내두릅니다. 그 자신감은 가족들의 사랑과 종교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사실 '하나님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봉중근 선수는 멋있는 기독교인입니다.
미니홈피의 대문글은 ‘Jesus loves U’다. 신앙은 가족과 함께 그의 야구와 인생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봉중근 선수는 남 또는 환경에서 이유를 찾지 않습니다.
“현장 직원과 트레이너 등 고생하는 사람을 배려한다. 뭔가 받으면 반드시 보답하려고 합니다”
그는 아주 겸손합니다.
그렇게 붙임성 좋고 겸손한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차명석 코치는 말합니다.
그래서
성깔 있는 투수, 이기적인 투수가 좋은 성적을 낸다는 야구 게임에서 인간성 좋기로 소문난 봉중근 선수가 두번이나 일본을 꽁꽁 묶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 기독교인 선수를 나누는 까닭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 안에는 그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주제를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갈2:20에 주시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암송함으로 은혜받을 마음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1. 율법주의에는 매력 포인트가 많습니다.
위어스비는 오늘 본문을 연구하는 가운데 흥미있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어떻게 유대주의 자들이 율법의 길이 은혜의 길보다 더욱 좋다고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신시켰을까요?"
이 열쇠를 "꾀다"는 말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매혹할 만한, 꾈만한 매력을 저들의 율법주의에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단들이 사람들을 꾈 때에 교인들을 매혹할 만한, 꾈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비유로 말하면 먹음직한 낚싯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똑똑한 사람이 저런 못된 이단에게 넘어가랴 싶은데 그 나름대로 사람을 꾈 만한 매력이 이단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주의가 가지고 있는 매력포인트가 무엇입니까?
1] 율법주의가 가진 종교성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돌듯,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든 육체는 종교적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에는 이런 인간의 종교성을 충족할 수 있는 매력 포인트가 있습니다.
- 율법을 잘 지키는 종교성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멋대로 사는 것 같지만 율법을 잘지키는 종교성을 존중합니다.
저는 고2 때, 암태도에 산중에 있는 절에 가서 방학을 지낸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기독교인이었지만, 절의 분위기가 주는 매력에 끌려 친구와 함께 찾아간 것입니다.
공부를 하자는 목적이었지만, 그곳에서 훌륭한 분을 만났다면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격한 계율을 따라 살 것으로 생각하였던 주지 스님이 땡 중이었습니다. 아무 법도도 없고, 삶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무개념의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하여 갈 데 없어 찾아와 이럭저럭 시간만 보내는 존재였습니다.
어떻게 주지스님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입에서는 불평과 부정적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저 절을 지켜야 하고, 누군가 주지여야 하니까 그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대주의자들은 법도를 잘 지켰습니다.
요즈음도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토론토 배더스트 근처 거리를 지나노라면 차들이 빼곡하게 거리를 매우고 사람들은 별로 움직이는 기운이 없습니다. 이런 안식일을 엄숙하게 지키는 저들의 종교성이 참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신교가 너무 이런 면에 법도가 무뎌져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생명의 구주로 만왕의 왕으로 섬기면서도 그 주님의 날에 주일 성수에 대한 중심을 교회에서 찾을 수 없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쓰립니다.
- 유대주의자들은 절기를 잘 지켰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어떻게 지냈는가를 보십시오.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그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모입니다.
제물을 들고 모입니다.
한 주간 동안을 헌신합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한 세상도 아닌데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모입니다.
놀랄 만큼 감동적인 퍼포먼스로 채웁니다.
이슬람교 안에도 라마금식기간이 되면 절기에 몰입합니다.
몇달 동안 낮 금식을 합니다.
성지 순례하여 자기들의 성지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다가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천주교에서는 절기의식이 강합니다.
고난 주간과 부활 주간을 앞두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 천주교가 그 기간에 갖는 행사는 대단합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니까, 십자가를 만들고 그 위에 진짜로 사람을 못박는 그런 행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온 도시가 들 떠 있습니다.
이런 헌신적인 절기 의식에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유대주의 자들은 기도 생활에도 열심입니다. 일 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슬람 국가를 가면 하루에 다섯 번씩 온 도시에 신호를 울리고 기도하는 소리를 내보냅니다.
이곳에 온 이슬람교도들을 보면 공부시간에도 그 기도시간에 나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엉덩이를 하늘에 올리고 기도하고 돌아옵니다.
이슬람권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은 머리가 지긋지긋하다고 고통을 호소핳ㅂ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는 못할 망정 기도에 더 열심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노라면 반성이 됩니다.
- 예식이 아주 엄숙합니다.
당시 유대주의자들을 정복한 이방 제국들은 유대교 예식을 모독함으로 저들을 파괴하려는 정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유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예식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던졌습니다. 순교했습니다.
요즈음도 캐톨릭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숙한 예식이 마음에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요즈음 열린 예배도 좋고, 젊은이들을 교회에 인도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이 좋지만, 예배에 거룩성이 훼손되는 경향은 아쉬운 모습입니다.
교회를 찾는 성도들이 의상에 좀 예의를 갖추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예배 순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꾈 수 있었던 매력 포인트가 바로 이런 종교성이었습니다.(1절)
율법을 온전히 행하는 자가 의롭게 된다는 율법주의를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이 일어나서 그 입장을 자랑하면서 오히려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연약한 갈라디아 교인들이 저 율법주의자들의 꾀임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든 사람, 모든 종교에 내재되어 있는 종교성은 중요합니다.
그 종교성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두신 종교성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유대주의자들이가졌던 종교성이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있었기에 나쁜 것입니다. 생명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그 종교성 가운데 있는 매력 포인트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받은 종교성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종교성을 아름답게 가꿀 때, 얼마든지 선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일을 더 거룩하게 보낼 수 없는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 주간과 부활주간을 더 의미있게 보낼 수 없을까 연구해 봅시다.
주님께서 열납하실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을 더 기쁘시게 할 수 없는가 연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율법주의에는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는 의가 없습니다.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몇 주일 전에 위와 장 검사를 받았습니다.
지난 겨울 한 때 위의 기능이 온통 서버려서 가정의를 찾아갔더니 나이도 있고 하니 위장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여서 그 지시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검사를 해본 후에, 아직 쓸만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좀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검사를 할 때 X Ray로 사진을 찍는다고 합시다. 이런 기계가 병을 발견하는 데는 더 없이 귀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계가 사람을 고치는 것은 아닙니다.
1]율법주의에는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는 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그러나 분명한 현실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에는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의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서 1:16-17]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의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에서도 선포되었고, 로마서에도 선포된 유명한 선언이지요.
(11절) 말씀과 같이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이유입니다.
11절]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2] 율법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이 율법을 다 행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거울입니다.
어떤 인간도 율법을 다 행할 수 없음으로 결국은 저주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고
율법 안에서 율법을 따라 삶을 살려 하면,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사람의 삶은 인간의 제한성으로 인하여 늘 한계에 봉착하게 마련입니다.
율법이 선하지만 그 선한 율법의 요구를 인간은 완벽하게 충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은 충족시킬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충족시키지 못하면 오히려 화가 됩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법을 다 지킬 때의 문제이지 지키지 못하고ㅡ 또 지킬 수 없는 사람에게는 법은 저주입니다.
그래서 오늘 10절 말씀은 율법주의의 매력포인트에 솔깃하는 우리에게 중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좋은 것이로되, 율법주의자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그러므로 율법주의에 미혹되어서 복음을 떠난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런 질책을 받게 됩니다.
이런 연유로 율법주의에 미혹된 교인들은 어떤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까?
(3절)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3]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입니다.
“어리석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육체로 마치겠느냐?”
미혹된 갈라디아 교인들이 왜 이런 수치스런 질책을 당합니까?
하나님께서 믿음 안에서 공급하시는 무궁무진한 영적 보배를 얻을 통로를 버리고 저주 아래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2절과 5절에서 바울 사도는 유대주의에 미혹된 교인들에게 엄한 질책을 함으로 그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려 합니다.
[2절]
[성령]을 율법을 행함으로 받았는가?
or
[성령]을 듣고 믿음으로 받았는가?
[5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or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듣고 믿음에서냐?
[참고] 율법을 행함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
(6절)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무엇을 그의 의로 정하셨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울법과 믿음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X-Ray와 같이 율법이 우리의 죄를 잘 발견하여 알려주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우리를 진단하게 하시고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믿게 하셔서 믿음으로 의롭게 하십니다.
3. 성도는 믿음 안에서만 하나님의 좋은 보배를 얻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각양 귀한 보배를 선물로 주시기 원하십니다.
[9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 성도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1] 울법의 저주에서 우리(저주 아래 있는)를 속량하셨습니다.(13절)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함"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8절)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
모든 이방인들이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아직 율법이 있기 400년 전이었습니다.
1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3] 성도가 "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은"(9절) 것입니다.
-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이십니다(요14:7-11)
-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위로부터 거듭나게 하십니다(요3:1-8)
-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한 지체가 되게 하십니다.(고전12:12-14
- 성도 몸 안에 거하시면서 많은 일을 행하십니다(갈5:16,25)
- 영원히 함께 하시는 (14:16) 성령님과 매일 동행하십시오.
성령충만은 성령에 의해 지배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계속적인 경험입니다.
샘에서 물을 떠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다웁게 성령 안에서 행하십시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4] 믿음 안에서 성도는 정체성이 달라집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통하여 볼 때,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특별햔 존재(정체성)가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7절)
7절]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의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설교본문]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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