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후2: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들어가는 말]
서머나교회 청소년 30명이 원주민 마을에 한 주간 다녀왔습니다.
그 모습을 잠깐 동영상으로 보겠습니다.
[동영상]
보신 느낌이 어떻습니까?
저는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리다고만 생각한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성숙한 모습으로 원주민 선교를 감당하였는지 모릅니다.
[살후1:13a]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저는 오늘 이 본문을 대하면서 바울 사도의 심정이 오늘 나의 마음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13a)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서 사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로 인하여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할 근거를 살펴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를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13절]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성도를 택하셨습니다.(살후2;13)
[13절]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많은 민족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던(신 7:6, 7;10:15)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를 선택하셨습니다.(살후2:13)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13)
하나님은 우리 성도를 창세전에 선택하신 분이십니다.
에베소 성도들을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엡1:4-5]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영원 전부터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분의 손바닥에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새겼습니다. (사49:16)
손바닥에 어떤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가지고 나간 적이 있습니까?
결코 잊어서는 안될 특별한 사람의 명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를 그와 같이 새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는 진흙 한 덩이를 선택하셔서 귀히 쓸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롬9:2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길 자로 택하셔서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이루시기 원하는 선한 생각이 있으시기에 그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이 시대에 이렇게 택하신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사건은 깊은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영광입니다.
스코틀랜드 목사 James Grandray Small은 이렇게 찬송(90장)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내가 아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 맘에 늘 계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2] 성령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고전6:11)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13)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십니다.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성도를 거룩하게 하십니다.(살후2:13)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따라서 '거룩'은 성령의 활동에 의한 결과입니다.
(살전:23)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성도의 거룩함은 성령의 현재적 역사로 말미암아 진행됩니다.
성도의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완성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도를 성령의 전이라 합니다. 성령의 전된 몸으로 주께 영광 돌리기 원하십니다.(고전3:16-17,6:19-20, 엡4:30, 롬12:1)
3]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고전1:30)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성도가 하나님의 계시와 복음안에서 알려준 구원의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함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 성도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구원이 임합니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2. 복음으로 부르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우리 복음'이란 살후 1:8의 '우리 주 예수의 복음'입니다.
[살후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우리 주 예수의 복음'(살후 1:8)은 바로 '우리가 전파한 복음'입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전파된 복음사역을 통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부르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케 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안에 왕으로 임재하심으로 저들도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영광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뿐 아니라, 창세 전에 작정하신(엡1:4) 그 구원은 예수의 재림 때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특권과 축복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성취됩니다.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세상 영광은 변하고 쇠잔합니다. 세월이 가면 모두 잊어 버리고 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한 것입니다. 무지개 같은 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 영광을 미리 바라 보면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 고 저들을 일깨웠습니다.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디도는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고린도후서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디도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광일 수 있습니까?
디도 /// 헬라 사람으로 바울이 신임하던 협력자 중의 한 사람(고후 8:23; 갈 2:3). 담대하고 의리 있는 사람으로서 바울의 전도로 신자가 되었으며(딛 1:4),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갈 2:1,3). 이 회의에서는 그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으나, 유리하게 해 결되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바울의 서신을 지니고 고린도 교회로 가서(고후 2:13), 이를 잘 처리함으로써 그를 기쁘게 하였을 뿐 아니라(고후 7:6-7), 고린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성공했다(고후 8:16). 그 후 그레데섬에서 전도하였으며(딛 1;5), 그레데의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요17:24)
이 세상에 태어나 영원한 세계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이 누리는 최고의 특권과 진보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데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였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청교도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던 죤 오웬 (John Owen, 1616~1683)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부총장이요, 크롬웰 경의 국목(國牧)이자 한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은 신학적 저작을 낸 저자요,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긴 인격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저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런 명언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나는 교회라는 배를 폭풍의 바다에 두고 떠납니다. 그러나 위대한 선장이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배밑창에서 노젓는 나 같은 사공 한 사람이 사라진들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 영광 자체보다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실 수 있는 외면적이고도 물질적인 부차적인 복에 대하여 너무 큰 관심이 쏠려있는 오늘 이 시대입니다.
그리스도 그 자신과 영광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즐거워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과, 그로 인하여 우리에게 올 수 있는 부수적인 것으로 즐거워하고 그 기대감 속에서 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 둘에 다 참여하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영광을 늘 우리의 소망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그리스도 자신과 그 영광의 소망으로 만족하는 것에 바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진정성은 바로 믿음의 주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에서 비롯됩니다. 천국은 바로 그 그리스도의 영광을 얼굴과 얼굴로 대하여 보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진수로 삼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할 때 그러한 하찮은 것들 때문에 우리가 고통당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치 못한 일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각을 성령께서 베풀어 주셔서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는 것은 바로 그 방식과 그 방편을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믿음으로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이점 1 - 하늘나라에 걸맞는 인격으로 변모해 갑니다.
이점 2 -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점 3 - 그 묵상을 실제로 행하는 자들의 영혼에 안식과 만족과 행복감을 줄 것입니다.
이점 4 -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복락의 샘근원이요 원인입니다.
감사에 대하여 말씀이 나왔으니까 조금 더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동족에게 탁아소를 지어주고 양식과 의류를 공급하자고 교회가 결정하고 $30,000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 3 개월이 채 안되었는데, 오늘 주보를 보니 벌써 $26,000이 넘었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의 형편으로 보면 이 헌금 액수는 여러분의 5병 2어 동족 사랑이 모인, 기적입니다. 지난 아이티에 재난이 났을 때 헌금한 액수가 2천 몇 백불을 보내면서도 감사하였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것과 비교하면 열 배가 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교회 어른들이 앞장 서서 헌신하고 여러 지체들이 합심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 압니다.
안수 집사님 가운데 어떤 분은 저에게 내일(월) 점심을 약속해 두셨습니다. 그분이 아시는 분을 모시고 저와 함께 자리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동족에 대한 중심이 뜨거운 분입니다. 그분도 우리와 함께 동족을 돕는 일에 참여할 수 있기를 원해서 이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원주민 선교든, 동족 사랑이든 선한 일에 합심하고 열심하는 친백성들이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3. 사랑과 위로와 소망을 은혜로 주십니다.
[16-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새번역)
"사랑하시며 은혜 가운데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우리말성경)
(1) 영원한 위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성도들을 강건하게 하며 영원히 흔들림 없이 굳건히 서게 합니다.
그들이 당하는 박해와 신앙의 혼돈을 잘 극복하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위로는 늘 흘러가는 구름 같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는 성도들을 강건하게 하며 영원히 흔들림 없이 굳건히 서게 하는 영원한 위로입니다.
(2) 좋은 소망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소망이란 하나님의 속성과 약속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그 본질상 좋은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있어서도 좋은 것입니다.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위로나 소망은 극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하며 굳건한 믿음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소망이란 하나님의 속성과 약속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그 본질상 좋은 소망일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있어서도 좋은 소망입니다.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위로나 소망은 극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하며 굳건한 믿음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합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두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의 날에 관한 잘못된 지식으로 혼돈과 고민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는 것이며
또 한가지는 모든 선한 일과 말에 있어서 그들을 강하고 견고하게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Constable).
여기서 바울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7)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롬 1:11)을 향하여 그의 소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박충은 전도사님은 처음으로 원주민 선교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중심을 지난 수요예배 때 이런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생수와 같은 우리 주님의 은혜를 저 원주민들도 받아들이고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매일 밤마다 기도하였습니다.
EM과 KM이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한 목적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서로가 울며 기도하면서 한 목적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란 원주민 아이가 식사 시간에 나와서 기도하겠노라 합니다.
기도할 줄 모른다면서도 자원하여 달려나와 기도하고, 아멘으로 기도를 마치는 원주민 아이가 자라서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권지훈]이 발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단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기를 원하면서 원주민 마을로 향했지만, 생각보다 부잡스런 아이들을 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함께 지내면서 나의 선입관은 여지없이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재롬이 나와서 울면서 기도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프랭크가 오늘 채팅 중 기도하냐고 물었더니 많이 기도한다고 답을 받았습니다.
천국이 이런 사람들이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처음 의심하였던 나의 모습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고 싶은 것을 샀기 때문에 느낀 기쁨이 아니라 주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하여 기뻤습니다.
제 아들 위로도 이런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좀더 자고 싶다 좀더 쉬고 싶다 일하기 싫어 저거하고 싶다 이걸하고 싶다
난 내가 왜 거기있었는지를 까먹었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꺠 선교를 갔었던 애들이 원주민 애들과 놀고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우린 그곳에 그들의 동료, 친구가 되기 위해서 갔다는 사실을.
그들이 슬퍼하거나 절망했을 때, 우린 그 곳에 그들을 위해 갔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간이유는 그들이 힘겨워할 때 또는 그들에게 아무런 희망이없을 때에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을 위해 함께 있다는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의 상황이 어떻건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한다. 이것이 우리가 그곳에 간 이유입니다. 전 이것들을 께달았고, 또 전 원주민분들을 위해 기도하는시간을 보낼수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원주민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과, 가족과, 그리고 이 교회에 감사합니다."
이 밖에도 호준이, 충경이, 소영이가 발표하였는데 제가 적지를 못해서 소개할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공통점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넉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통해 원주민 가운데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원주민 마을에 15년 이상 우리 지체들과 함께 오르내린 것 같은데, 이런 우리 지체들의 마음에 원주민을 향한 하나님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을 보니 참 감사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굳게 서라는 것은 예기치 못하는 충격에 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빌립보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주 안에서 굳게 서라.'는 가르
치고 있습니다. 굳게 선다는 것은 차가 레일 위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레일을 떠난 기차는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레일 위에 있지도 않거나, 레일이 있지만 지반이 약하다고 하면 아무리 달리는 힘이 강하고 고급 열차라고 하여도 무너져 그 상함이 극심할 것입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가 어떤 레일 위에 굳게 서야 하겠습니까?
'살전'과 '살후'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관한 깊은 가르침이 담긴 서신서입니다. 특히 후서는 '살후'는 신약의 어느 책보다 재림에 관하여 더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오시기 전에 일어날 일들을 열거하여 바른 준비를 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대하여 오해를 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행해야 할 실제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임박한 위기에 직면하여 악의 세력이 크다고 두려워하거나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동요하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부여잡고 담대하게 대처하여야 합니다.
'전통',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고 사도에게 계승된 복음의 진리를 삶의 중심에 영접해야 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승천의 사실을 강조한 표현으로서 비록 사람에 의해서 복음이 전달되었지만 그 복음은 신적 근원을 가진 것으로 그러한 복음에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굳건한 레일 위로 가까이는 원주민을, 그리고 고난 가운데 있는 내 혈육을 돌아보며 힘있게 천국을 향해 정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본문]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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