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영문 밖에서 순교할 직전에 구조 받은 바울! 몸의 곳곳은 맞은 매로 멍들어 있습니다. 흐르는 피는 아직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유대인이라. ...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악이 바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의 복음을 전하려 하는 것입니다. 영문 밖에서 순교할 고비를 넘긴 거인, 바울은 영문 안에 들어오자마자 천부장을 붙잡고 담대히 말합니다.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딤후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주님을 못박은 바로 그 유대인들에게,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바로 그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당하신 바로 그 자리에서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 바울은 전형적인 유대인입니다.
01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02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0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0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0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부형들아(형제들과 선배 여러분),
혈통적으로 볼 때, 바울은 전형적 유대인입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사도 바울은 예절 바른 호칭으로 유대인들을 부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대하여 동의를 했습니다. 그의 형제들이었고, 선후배였고, 함께 공부하던 동문들입니다. 같은 혈통에 속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매우 정중하게 형제들과 선배 여러분에게 자기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유대인입니다.
또한 이 호칭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저 의인'(14절) 등에서 보는 대로 유대인들도 공감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자신과 유대인 무리들과의 동질적인 입장에 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민족을 버린 매국노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절 바른 호칭으로 유대인들을 대하며,
부형들아, 나는 유대인입니다.
매우 정중하게 유대인으로서의 자기 소개를 합니다. 그가 이미 몇 번이고 '나는 유대인이라(39)'고 말한 대로 그는 유대인 중의 참 유대인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훼방하는 자로 오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언어적으로 볼 때도, 바울은 전형적 유대인입니다. 그는 무리들과 언어적 동질성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히브리 방언으로 말합니다. 유태인 중에서도 그들 중에 제대로 정신이 박인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히브리인의 얼이 들어있는 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합니다. 사실 당시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 대다수는 히브리어를 잘 몰랐습니다. 심지어 1세기의 가장 뛰어난 유대인 학자인 필로(Philo of Alexandria)조차도 , 모세 오경에 대해 방대한 주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로 씌어진 오경을 해독하지 못했다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히브리 방언으로 유창하게 말합니다. 이는 그가 전형적 유대인임을 반증해주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나 일본에서 2세나 3세로 태어난 사람이 1세들 앞에서 한국어로 연설을 한다면, 듣는 사람들은 일단 모범적 한국인으로 그를 경청할 것입니다. 매국노라든지 민족 배반자로 쉽게 몰 수 없을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볼 때도, 바울은 전형적 유대인입니다. 그는 증언합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무리들은 바울을 율법을 버린 배교자(背敎者)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고발한 내용은 바울이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신성한 율법을 거슬려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이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로 소개할 만큼 율법에 철저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것보다 훨씬 더 열심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음을 강조합니다.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처넣은 사실이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0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그래서 자신을 가리켜 '훼방자', '핍박자', '포행자'(딤전 1:13), 또는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에 최고의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당시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인정받았던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증인으로 내세웠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열심에 있어서 바울은 전형적 유대인입니다.
이상의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건데, 바울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유대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2. 하나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0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0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0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바울이 사랑하는 동족 앞에서 한없이 증언하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온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비몽사몽간에 찾아오신 일이 아닙니다. 대낮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오정쯤 되어 큰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홀연히 바울을 둘러 비추인 하늘의 빛이 매우 강렬했습니다 이 빛은 정오의 태양 광선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강렬했기 때문에 바울은 사흘 동안 눈이 먼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9:9). 이 빛은 바울에게 집중적으로 비추었습니다. 바울에게 비추인 하늘의 빛이 단순히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어 그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라는 이름은 바울의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은 사울의 헬라식 이름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바로 그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께서 사울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신 사건은 야곱의 생애에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의미합니다.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심을 의미합니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창28:15-17)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신 사건은 베드로의 인생을 고기 몇 마리에 기쁨을 찾는 인생에서 영혼 구원을 위한 사도로 바꾸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4:18)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시고, 사무엘을 찾아오셨을 때, 거기에는 놀라운 민족의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이미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
이는 주님께서 성도들이 당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일찍이 주님께서 성도들과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바의 성취이기도 합니다(마 28:20).
찾아오신
3.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할 일을 찾습니다.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사도 바울은 찾아오신 주님 앞에서 즉각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바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는 경험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빛을 보기는 하였으되 그것을 영광스러운 예수의 계시로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 구체적인 의미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바울만이 그 순간에 있었던 사건의 경험자이자 완전한 참여자였습니다. 바울은 그 순간 하늘에서 들려오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하려고 했던 일들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왜 주님께서 자기를 찾아 오셨는가? 一國의 대통령이 어느 곳을 방문하여도 하실 일이 있으신 법인데 왜 자신을 찾아 오셨는가? 그렇다면 나에게 하실 일이 있으시구나! 그래서 바울은 즉각 주님께 묻습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결국 바울은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물음을 묻게 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10절).
이것은 마치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예루살렘에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유대인들의 질문과도 일맥이 상통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2:37)
바울은 찾아오신 주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장차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찾고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회심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할 일을 받기까지 사흘동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기까지 장님으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하셨습니까? 우리는 할 일이 있습니다. 진솔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여쭈어야 합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
뼈 빠지게 농사를 하고도 창고만 짓다가 지옥에 떨어진 부자의 비유가 성경에 나옵니다.
어떤 의사 부부가 목사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면서
"목사님, 조금만 더 이해해 주십시오. 집 페이먼트와 차 페이먼트만 끝나면 십일조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아내 되는 의사가 집 페이먼트와 차 페이먼트가 끝나기도 전에 암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어떻하면 좋아요. 하나님께서 뭐하다 왔느냐고 물으시면. 집 페이먼트와 차 페이먼트만 하다가 왔습니다. 이럴 수는 없쟎아요? 이제 하나님께서 살려만 주시면 헌금하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녀의 생명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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