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March 2015

벧전3:1-7 부부에게 두신 하나님의 비밀

[들어가는 말]

오늘은 빈명호 집사님의 맏딸 빈나아 자매가 하정민 형제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하며 음식으로 대접하는 날입니다.
제가 이 가정을 위해서 이 본문을 택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을 축복하셔서 이 말씀을 준비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꼭 신혼 부부만을 위해 결혼식장에서 예식사로 주시는 말씀 이상입니다.

사회심리학자 클리퍼스 스웬슨과 그 연구팀은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를 더 모르고, 서로의 감정, 태도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예측하는 정도가 더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들은 감소된 서로에 대한 공감지수를 의식하지 못하고, 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분을 받은 지 오래되었다고 직분을 잘 감당한다면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부부 생활을 오래하였다고 해서 공감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보다 낫다는 말씀도 있는 것을 보면, 직분 생활이나 부부 생활에서도 안일무사주의 보다 좀더 치열한 정진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2012년도, 한 해가 다 저무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벧전3:1]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1] 신랑에게 순종하는 신부

이 말씀은 아내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받는 아내들은 가장 거부반응이 많습니다.
오히려 이 말씀을 환영하고 잘 기억하고 암송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은 남편들입니다. 남편들이 이 말씀을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게 듣습니다. 그리고는 아내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하고, 이 말씀을 따라 순종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남편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면 주님의 신부된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시간 아내 된 분만 아니라,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고백하는 성도들은 말씀에 집중하여 들을 수 있기 바랍니다.


2] 거듭난 성도가 순종함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을 하는 일을 명령받았지만, 사탄의 꾐을 받아 순종하는 일에서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순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신앙덕목이 아닙니다.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크리스천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영적인 성품입니다. 
어떤 성도가 순종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이요, 은혜 받은 성도라는 의미입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은 불순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 구원을 위한 순종

오늘 믿음에 굳게 선 아내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먼저 나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신을 단장하라 "

믿음의 아내들에게 남편들에게 순종하라 명하십니다. 남편이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거듭난 아내를 통해서 믿지 않는 남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무신한 남편의 구원을 위한 순종입니다.
이 경우 순종은 남편에게 몸이 순종하고 있지만, 동시에 중심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벧전2:13(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 총독에게 하라)에서 우리는 주를 위하여 세상 권세에 순종하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에베소서에는 남편들에게 순종하기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아내의 순종은 구원을 위한 순종이오, 주님을 생각함으로 주님께 드리는 순종입니다.

이런 구원을 위한 순종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룹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순종하는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
누가 말을 해도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들은 시중도 하지 않는 남편이,
아내를 통해 순종을 봅니다.
그리고 구원받을 빛을 봅니다.

아내는 완악한 남편에게 순종했는데 남편은 순종하는 아내를 통해 구원을 만납니다.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우리는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완악함으로 인해 고민하고 안타까워하는 현실을 만납니다.
지금도 우리들의 기도제목 가운데 큰 이유는 믿음 없는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들의 딱한 형편입니다.
남편이 구원을 받아야겠는데 마음이 굳어져서 꼼짝달싹을 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는데 마음이 완악합니다.
남편의 생활이 좀 바뀌었으면 하는데 변화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 같으면, 불신자 같으면 세상적인 방법이라도 사용해 보겠는데 어떻게 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는 해결의 열쇠를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이에 대한 해답입니다.
순종이라는 열쇠입니다.
남편이 완강한 것 같습니다.
완악한 것 같습니다.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두려워할 것 없다고 하십니다.

[벧전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와인, 스다치 와인이 있답니다. 이 와인이 명성을 날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보니까, 흥미가 있습니다. 그 와인 재료인 포도나무가 자라나는 토양은 진흙벌이랍니다. 날씨는 안개가 잦은 스테론과 바르삭 지방입니다. 포도가 제대로 익어 숙성되기 힘들어요. 겨우 포도를 익어갈 즈음이면 포도는 귀부병(Botryris)균에 걸려 말라비틀어집니다. 농부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 포도 알을 거두어 즙을 축출합니다. 축출 량이 너무 작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와인이 보통 다른 와인보다 수십, 수백 배 값을 받는 것은 그 포도주의 맛과 향기의 탁월함 때문입니다. 포도가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 좋은 열매 맺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 몸부림 속에서 병에 걸리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라비틀어져가면서까지 열매를 맺는 그 포도의 열매, 그 즙을 짜서 만든 포도주이다 보니 특별한 향기가 나고 맛을 내는 극상품이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아내가 ‘두려워하(앤 포보)’는 대상은 남편이 아닙니다. 아내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인이 주인을 두려워해서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아직 믿음에 들어오지 못한 남편이 참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났을 경우 그 한 사람밖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는 아내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경외할 수 없는 자신을 경외하고, 순종할 수 없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아직 믿음에 들어오지 못한 남편은 참 크리스천 삶을 자세히 관찰함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런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내로서는 그런 완강한 남편에 대한 순종은 너무 버겁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온 몸이 말라붙고 영혼이 달라붙는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다 말라 비틀어지기도 하고, 병에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맺은 열매를 짜서 이루어진 순종이다 보니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고 크리스천의 맛이 납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은 성도가 아니면 이 귀한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만이 그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그 어려운 십자가를 멍에를 매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아내의 기대치에 훨씬 믿도는 이런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를 통해 그 절망적인 남편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순종의 길을 갈 때,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함, 정결한 행실을 유지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와 맛이 그 남편에게 구원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 그를 통해서 남편이 생명을 얻게 되는 방법입니다. 

순종할 수 없는 자리에서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을 주라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아버지, 가능하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지만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전적으로 순종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남편에게 순종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십니다.

4] 정결한 행실

당시 이방신을 믿는 사람들의 세계는 참으로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에베소를 가본 적이 있는데요. 반원형 야외 음악당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이방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무대가 있고, 수천 명이 앉을 수 있는 반원형 좌석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검투사들의 시합이나 이방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무대에 남아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돌에 새겨진 남녀가 성적 의식을 갖는 순서였습니다. 그 음란한 그림이 돌에 새겨져서 지금껏 남아있습니다. 
그런 음란한 사회에서 기독교인 아내들은 정숙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남편들이 보았습니다.
흠이 없고 깨끗한 '순결한 삶'을 보았습니다. 
비록 이교도처럼 이교신을 숭배하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저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예배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 아내의 정숙한 삶을 보았습니다.
당시 크리스천 아내는 당시 사회의 정숙한 아내상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 비그리스도인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를 인정케 하고 그 아내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2. 하나님 앞에 갚진 것으로 단장하라

1] 외모로 단장하지 말라

[벧전3:4]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외모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의미 이상입니다.
여자들의 단장은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외모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너무 인위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려고 단장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다는데 이 정도면 된 것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이 유행을 따라 나의 외모를 어떻게 보고 판단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단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스모스'는 질서를 가진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쓰인 장식을 나타냅니다. 
당시 이방세계에서는 머리를 땋고, 금장식을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과장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시대 유행을 따라 나를 단장하고 그것을 참 아름다움으로 착각하며 살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2] 마음에 숨은 사람을 단장하라

[벧전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머리, 금, 옷'과 '심령'을 대조시켜서 그리스도인 여인이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마음에 숨은 사람'은 앞절의 '외모'와 대조 개념으로 '속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속사람을 잘 지킬 것을 권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롬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고후 4:16]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골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속사람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생명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마음으로서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두며, 그와 연합하여 깨끗하고 신실하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속사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동하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1) 온유하라!
남편의 태도나 요구를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기질입니다. 
(2) 안정하라! 
남편에 의해서 일어나는 동요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입니다.(Bengel) 샬롬이 가정에 임하도록 하는 마음입니다.
한자어에서도 '편안 안'자는 여성이 집안에 있어 평안하다는 의미의 글자입니다.

아내가 갖는 온유와 안정은 남편을 보필하는 속사람입니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사라와 같은 믿음의 선진들은 그들의 뜻이 하나님 앞에 고정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메시야를 갈망했습니다(5절; 1:3,13)
내면의 아름다움을 단장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3] '순종함'으로 단장하였습니다.

[벧전3:5-6]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순종을 통해서 내면적인 아름다움으로 단장한 '거룩한 부녀들' 중 '사라'를 실례로 들고 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름으로 그에게 복종했습니다(창 18:12). 
비록 자기 남편을 주라 칭했던 것이 당시의 풍습이라 할지라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주'라는 호칭이 아브라함에 대한 사라의 순종의 표시임을 강조합니다. 
저는 사라 속에 포함된 리브가의 예가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리브가가 이삭이 노년에 에서에게 장자권을 넘기려 할 때, 어떻게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분명 하나님께 야곱이 장자권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편 이삭은 늙고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명령하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그 자리에서 남편을 면박하지 않습니다. 순종합니다.
대신 에서가 사냥갔을 때, 야곱을 불러 장자권을 받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는 우리 크리스천 아내들이 믿음 없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지혜를 얻게 합니다.

거룩한 부녀들'이 갖춘 내면을 '순종'으로 단장하는 것입니다. 
'단장하다'(에코스문)는 습관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로서 '단장하곤 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인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내적인 단장이며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되는 장식이었습니다.


3. 아내를 귀히 여기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고 행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내들에게 해야 할 의무입니다. 

남편이 믿음이 있든 없든 알아야 하고 행해야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남편 된 자들이 마땅히 아내들에게 결혼 생활 속에서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부부로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는 마땅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지식'(그노신)은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있는 결혼 관계에 대한 인식 즉 결혼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1] 더 연약한 그릇이요 

아내가 지적이나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남편보다 우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육체적으로는 연약하게 하셨습니다. 남편을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육체적인 연약함을 돌보라 명하십니다.

2]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라

3] 귀히 여기라

남편들이 아내들을 귀하게 대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실제로 남편들 가운데 아내를 오늘 말씀처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상위시대를 사는 요즈음 연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천국에 가서도 아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남편이 얼마나 많을까요?

아내를 귀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신부되는 성도들을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서 찾아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것을 보셨고 이를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세리인 마태나 삭개오를 보실 때, 손가락질 하지 않으셨습니다. 연약한 그릇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까지도 연약한 그릇으로 생각하셨습니다. 

그 흔한 돌 하나 들어 그들을 깨지 않으셨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려 고통당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보실 때,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보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는 부자 청년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거듭나야겠다는 말씀을 주시면서 니고데모를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은 연약했습니다. 
함께 살고 싶은 매력이 없었습니다.
귀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신부된 그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그들을 위해 내어 놓으셨습니다.

주안에서 남편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랑되신 주님께서 신부된 우리를 얼마나 귀히 여기셨는가를 이해하시고 아내를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따르는 축복이 있습니다.

4] 기도가 열립니다.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는 말씀은 기도가 응답된다는 말씀이지요.
성도에게 기도 응답의 축복은 다 된 것 아닙니까?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기도 생활에서 남편이 악하게 아내를 대하거나 서로가 불화하는 경우에는 기도의 효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꾸미는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협력하며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였을 경우 두 세 사람과 함께 계신 주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어떤 목사님이 오늘 본문을 설교하시면서 참 재미있는 설명을 해놓으셨어요.
“상상으로 여러분의 눈앞에 조금 크게 삼각형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삼각형을 그리시고 그 꼭대기 꼭지점은 하나님으로 그리고 왼쪽이든, 오른 쪽이든 정하셔서 남편, 아내로 정합니다. 
밑의 두 점인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서로에게 다가오라고 하고 다가가면 갈수록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모르는 채로 남아 있습니다. 멀리 있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가 위의 꼭지점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갈수록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 하나님의 부부 원리인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면 두 사람은 점점 서로를 더 깊이, 더 많이 알아가게 됩니다.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를 더 잘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늘 말씀이 새로 가정을 꾸미고 새 삶을 시작하는 하정민 빈나아 부부에게 뿐만 아니라, 주 안에서 부부된 분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힘과 은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할 성경 본문]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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