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2:19-22 크고 영화로운 날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아 ! 이 말을 들으라.” 무슨 말을 들어야 합니까?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온다는 소식입니다. 주님께서 거듭 약속하신 대로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소식입니다.  그날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는 소식입니다.
인생 사는 동안에 많은 날들이 있지만, 결혼식은 그 중에 ‘크고 영화로운 날’이 될 수 있습니다.  결혼식은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크고 영화로운 날입니다. 신부가 좋은 신랑을 만나고, 신랑이 좋은 신부를 만나는 일은 중대한 사건입니다. 그들이 좋은 신랑이나 신부를 만나면  남은 일생이 놀라웁게 좋아지고, 변화되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결혼식은 크고 영화로운 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누구에게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있습니다. 신랑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하는 그날입니다.
󰃨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 '영화로운'(*, 에피파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사용된(살후2:8; 딤전 6:14; 딤후4:1; 딛 2:13) '나타나심'(*, 에피파네이아)과 동일한 어근을 갖는다. 따라서 본구절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표현으로서(고전 1:8; 고후 1:14; 빌 1:10; 살전 5:2) 심판과 동시에 구원이 완성되는 날을 말한다. 이 '주의 날'은 구약에서도(사 13:10; 암 8:9 등)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예수께서도 세상의 종말과 관련해서 언급하신(마 24:29) 것이다.

 1. 그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입니다.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 말세에 -  유대인들의 말세란 엄밀히 말해서 메시야가 오시는 때를 가리킨다(사 2:2; 미 4 :1). 베드로가 이 말을 오순절날에 임한 성령 강림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을 볼때 이 말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를 지칭하는 종말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종말 개념은 신약 시대에 와서 생겨난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죄의 상태 하에 있던 인간들이 끝내 회개치 않아서 죄를 떠나지 않았을 때 받게 되는 영원한 형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를 그리스도 신앙으로 극복할 때 얻은 구원이 있습니다.

  1. 재림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예연 가운데 '초림'에 대한 말씀이 456번 예언되어 있으며, '재림'에 대한  말씀이 1518번 예언되어 있다고한다.  예수는 때로는 비유를 통하여 분명한 의도를 가지신  말씀들을 통하여, 자신이 친히 재림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1.1. 예수님  자신이 친히  증거한다(마24:30,44; 25:31;  26:64; 막13:26;  눅21:27; 12:40; 요14:3,21; 계1:8; 2:25; 3:3,11; 22:7,12,2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것을 보리라"(마24:30).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마25:31).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26:64).
  "그때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막13:26).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21:27).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12:40).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요14:3).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자요..."(계1:8).
  "내가 속히 임하리니..."(계3: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계22:7).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

  이상의 것들이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오시겠다는  재림의 약속을 증거하는 구절들이다. 이렇듯  예수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인격적이고  가시적이며 육체적인 오심 또는 임재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재림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재림에 관한 이러한 언급들이 신약 성경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 또는 명확성을 더 확실하게 해주는  것이다.

  1.2.그리스도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마24:36,42,44;25:13;막13:32-33;눅12:40,46;행1:7).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마24:42).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너희는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12:40)'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행1:7).
  "그러나 그 날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막13:32-3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 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엘는지 그가 홀연히 와서..."(막13:35-36).
  "...너희는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12:4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눅12:44).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행1:7).

  예수의 재림에 대한 사실은  성경에서 매우 강하고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만은 그렇지 않다.  예수가 재림하실 정확한 때를 우리가 모르며 또한 확인할  수도 없다. 물론 하나님께서 는 명확한  때를 정하셨을지라도, 그 시간은 계시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재림의 정확한 때(마24:3)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막13:32)고  답변하다. 한마디로 재림의 때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종말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날이 가까워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기사와 징조가 나타나게 되지만 막상 재림이 이루어지는 정확한 그  날과 그 시점에 대해서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심지어 재림에 대해 교훈을 주시는 예수 자신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 내재한 두 성품중 신성을 부정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예수께서는 신성으로서는 아버지와 동등하셨지만, 인성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권한에 두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재림에 관한 비유(막13:35-36)를 말씀하시면서 이처럼 밤시간을 세분하여 나열하며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재림의 불예측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주께서 언제 재림하신다  하실지라도 영접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를 하라는 예수님의 의도가 있다고 볼 수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때에"(마24:44)라는 표현에서 이중부정을 사용하는 것을 볼때 전혀  예기치 못한 불시의 상황을 더욱 뚜렷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가복음 13장 33절에 나오는 "때"라는  단어는 헬라어       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인데 , 이 단어는 길이와는 상관 없이  단위 기간으로 구분된 시간이라면 어느 기간에 대해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자원 편저, [그랜드종합주석]  제 12권 (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95), p.1028.
 ) 에버렛 카버, op. cit., p. 363.

  중요한 것은 예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재림을 미래적 시점으로 고정시키지 말고 항상  현재적인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여  늘 종말 의식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마태복음 24장 44절 "...예비하고 있으라"에서 미래사를  포함하는 현재형'       '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생각지 않은 때에'(마24:44)에서        와  (44절'오시리라') 모두 현재형 동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있다.
  또한 예수님은 여러가지 비유를 통해서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  예를들면
"무화고  나무의  비유"(마24:32-33;  막13:28-29; 눅21:29-31).
"노아의 때"(마24:37-39; 눅17:26-27,34-35),
"집주인의 비유"(마24:42-44),
"두 종의 비유"(마24:45-51; 눅12:42-46),
"달란트의 비유"(마25:14-30; 눅19:11-27),
"열쳐녀의 비유"(마25:1-13)  들이다.
역시  이비유들의 핵심 내용은 재림의 시기의 불예측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의 재림의 때가 계시되지 않은 것은 불시성과 그 결과로서 생기게 되는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예수의 반복적인 강조를 설명해 주는 것(마24:44,50; 25:13; 막:35 등)이라 할 수 있다.

 밀라드 J. 에릭슨, [복음주의 조직신학] 신경수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89), p.32.

  1.3. 그리스도 재림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가? 또한 그리스도 재림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것을 그리스도 재림의 특성이라고나  할까? 예수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종말에 있을 재난을 예언하셨습니다(마24:15-28; 막13:14-23; 눅21:20-24).

  본문은 예수께서 세상의 종말 이전에 있게 될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심과 동시에 세상 종말에 있게 될 대환난의 참혹함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멸망의 임박성과 긴박성을  나타내 주는 표현들을 보면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마24:16-18; cf 막13:14-16; 눅21:21)라고 말하고 있다.  임박한 심판이 눈 앞에  닥쳐 옴에도 집안에 있는 재산을 염두애 두는 것은 마치 롯의 처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은 것(창19:26)이 될 것이다. 이 말 속에는 환난의 급박성과 더불어 환난시 이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을 예수는 말씀하고 있다.
  또한 "밭에 있는 자는...뒤로 돌이키지  말지니라"(마24:19; 막13:16)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은  밤낮의 일교차가 심해  농부들이 낮동안 일을 할  때는 더위 때문에 겉옷을 입지 않고 집에 두고 오거나 가까운 곳에 벗어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본 절은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여 추위가  엄습하는 밤에는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겉옷조차 가지러 갈 여유도 없이 도망해야 하는 상황을 보여 준다.(제자원 편저, op. cit., pp. 1023-24.)
  이와 같이 종말의 때도 아주 급박하게 임할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그 날에는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마마24:19; 막13:17;  눅21:23)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임산부와 젖먹이는 자는 환난중에 빨리 피신하지  못하는 처지이므로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형벌의 처절함과  심판의 돌발성이 암시되어  있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Ibid., p. 605.) 다시 말해서 그들의 고통이  남을 돌볼 만큼 여유있게 대쳐 할 만한 것이 못되기에 미리미리 종말의  때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는 무슨 의도로 종말의 때에 성도들이 취해야 할 태도와 택한 백성을위해 환난의 때를 감하실 것이라는 사실(마24가21-22; 막13:19-20)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슨 의도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마24:23-28;막13:21-23; 눅21:24) 교훈들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들로 인하여 두려움에 빠져서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와 목적에서 말씀한 것으로 파악되어진다.


  1.3.3. 도적 같이 오시는 예수(마24:43; 눅12:39; 계3:3)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마24:43).
  "...집 주인이 만일 도족이 어느 때에 이를 줄을 알았더면..."눅12:39).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일할 는지..."(계3:3)

  예수는 재림의  문제를 도둑이 드는 것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 재림의 임박성보다는 돌발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임하겠다는 표현은 곧 임하시겠다는 의미보다는 언제 임하실지 모른다는 의미로 예수가 사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본 비유는 집 주인과 도적의 관계를 말하면서 주를 맞이할 성도들의 준비성을 강조하고 있다.  '도적'은 예기치 못한 사건을 표현할  때 사용되어진 말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돌연성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고 볼 수있다.

 ) 제자원 편저, [그랜드종합주석]  제 13권 (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95),p. 301.

 예수는 도적 같이 오신다.
 1.4.3. 데려감과 버려둠을 당한다(마24:40-41; 눅17:34-35).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0-41).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눅17:34-35).

  본 구절들은 예수님의 즉각적인 재림으로 인해 생기는 분리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동일한 일에 종사하지만, 그 두  사람의 영적인 상태는 정반대의 상태였기 때문에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남겨진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휴거  상황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심판의 돌발성과  구원의 차별성 및 엄격성을 말해  주는 것이며, 이 땅에 구원 받을 사람과 구원  받지못할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함을 가르쳐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재림 때에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 되듯이  최종적으로 '분리'가 생긴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리스도가 재림  하시므로 나타나는 재림의 결과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있다.

바벨론 왕 벨사살은 당시 세계 최강 제국의 왕이었다. 난공불락 금성철벽의 그의 성에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무적의 이 제왕은 1,000명의 문무백관과 왕후 궁녀들로 더불어 잔치를 배설하고 우상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성전기명으로 술을 마셨다.  그때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자가 쓰여졌는데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는 글이었다. 다니엘이 해석한 즉 "너는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서 모자란 놈이며 네 시한은 다 끝났다.  네 나라는 메대와 바사에게준다(단 5:28)"는 뜻이었다. 그날 밤 벨사살은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의 저울, 하나님의 시한은 착오가 없다.


2. 불신 자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1.4. 재림의 징조와 재난의 시작

     예수는 재림이 가까워졌다는 징조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재림을 예고하는 징조와 사건들은  무엇인가? 예수의 말씀에 근거해서 분석해 보기로 한다.

  1.4.1. 재림의 징조: 감람산 강화(마24:3-14; 막13:3-13; 눅21:8-19).

  본문은 예수가 말세에 일어날  징조와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유명한 "감람산강화" 라 불리우는 말씀이다.
  예수의 종말  예언은 직접적으로는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종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Ibid.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말세의  징조들을 몇가지로 구분해 보면, 먼저  적그리스도의 출현(마24:5; 막13:6; 눅21:8)을 들 수 있다. 재난 시작의 가장 탁월한 징조는 자칭 그리스도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칭 하나님이라 하여  자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선포하는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말하는 것이다. 종말에  대한 두번째 징조는 전쟁, 기근, 지진(마24:6,7; 막13:7; 눅21:9,10)의 소문이 흉융해진다는 것이다. 셋째로, 핍박(마24:9,10; 막13:9; 눅21:12-19)이 있을 것이며, 넷째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주의는 예수와 사도들에 의해 여러번 언급되어져 왔는데(마7:15; 24:5; 고후11:3; 딤후2:17,18),  그들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 질서와 진리를 와해시키는데 앞장섰던 자들 이었다.

 강병도 편저, op. cit., p. 803.

 다섯째, 불법의 성행(마24:12; 막13:12; 눅21:16)이다.  이것은 부도덕성과 무질서적인 방종을 가리키는 말로서 전통적 규범이나 윤리적 가치기준이 상실됨을 말한다. 여섯째,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이다(마24:12). 이런 현상은 불법의 성행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일곱째, 복음의 확산(마24:14; 막13:10) 이다. 예수께서 종말의 징조로 보이신것 가운데 마지막은 복음이 온세상에 전파된다.
는 것인데, 이는  예수께서 종말의 끝 시점을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되는 때로 정하셨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전세계 모든 사람이 성도가 되는 때를 가리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이들에게 복음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이상에서 언급된 것들이 예수님께서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다.
  재림 징조에 대한 예수의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영을 잘 분별하여 악한 영들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과, 마지막으로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소망 중에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함이 예수의 의도인 것같다.

김익두 목사님이 전도하실때의 예화이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김익두 목사님의 전도를 방해하면서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대들더랍니다. 그 이유인즉 애써 길러놓은 농작물에 벼락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왜 나쁜 사람도 많은데 곡식에 벼락을 때리냐는 것이었다. 그런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김목사님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합니다. "너 소학교는 나왔지?"  '그럼요' "공부할때 너희들이 장난하고, 졸고, 떠들때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지휘봉으로 흑판을 때리지않더냐 그 흑판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냐? 아니다 그것은 경고다. 계속 떠들고, 장난하고, 졸면 이 흑판을 때리는것과 같이 때리겠다는 경고용 행동이란다 마찬가지로 너의 농작물에 벼락을 내리신것은 너에 대한 경고용 행동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라" 이말을 듣고 청년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는 예화가 있습니다 왜 말없는 무화과 나무에 저주를 내렸을까요? 그것은 당시 바리새인들(열매없는)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였다.


  성경에서 다가 올 심판에  관한 예수님의 일상적이면서도 다소 긴 언급들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 가르침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주  백성을 심판하는 자신의 현재적인  사역에 관하여 이야기 하였지만, 그러나 이런 가르침들의 절정은 자신의 재림의 때에 있을 최종적인 심판에 집중되어 있다.

 체스터 K. 레만, op. cit., p. 281.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심판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의 말씀들들 중심으로 살펴 보기로 한다.

예수는  심판을  미래적인 사건으로  말한다
(마10:15;  11:24; 12:36;19:28; 요5:27-29; 12:48).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10:15).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1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
12:36).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마16:2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 눅22:30).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심판의 부활로 나오
리라(요5:27-29).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리니...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여러 본문에서 보여주듯이  심판은 미래적 사건임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
에 관한 본문들 중의 하나는 그가 올때에 "그가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시
리라"(마16:27)고 예언하고 있다.   이것은 심판이 재림 이후에  일어날 것임
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마태복음 13:37-43(가라지비유);
24:29-35; 25:31-46(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발견된다.

 밀라드 J. 에릭슨, op. cit., p. 407.

  제자들을 배척하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중대성에 대해서도 예수는 비유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 말씀하고 있다. 위의 성서 본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영접치 아니하는 자가 마지막 날에 받을 심판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예수께서 미래 심판을 기대하였다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말씀은 요한복음 12장 48절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리니 곧  나의 한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이다. 여기서 심판을 마지막 날에 연계시킨 것은 그 근거가 그리스도에 애한 사람들의
현재적 반응이더라도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도날드 거스리, op. cit., p. 963.
 특히 주목할 것은  현세에서 예수에 대하여 명백히  거절하는 태도가 미래의 재판(마10:32 이하;  막8:38; 눅12:9 참조)의 근거를  형성 한다는 것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경부 고속도로 톨게이트주변에 대형 저울을 설치해 놓은 곳이 있읍니다. 커다란 대형 트럭이 무거운 짐을 많이 싣고 와도 거뜬히 달아볼 수 있습니다. 적재적량을 넘긴 차량은 짐을 덜어놓기 전에는 고속도로로 통과할 수 없읍니다. 작은 차는 적게, 큰 차석  많이 싣는데 차에 맞추어서 적당하게 실은 차량만 통과하게 합니다. 제 아무리 무거워도 모두 달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품이나 됨됨이의 척도는 측량할 수 없읍니다. 세상에 아무리 큰 저울을 구해도 사람의 마음은 달아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 저울이 하나님께 있읍니다. 조그마한 오차도 없는, 대단히 정밀한 특수 저울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이 땅의 모든 인생이 이 저울 앞에 서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5.2.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마7:23;  11:27; 19:28; 25:31-33; 요5:22,27; 9:39;12:48)

  "그 때에...애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마11:27).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로 각각 분별하기를..."(마25:31-3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 맡기셨으니"
(요5:22).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5:27).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요9:39).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 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8).

  일반 심판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 실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후  심판도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사역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범위를좁혀 말한다면  성자이신 그리스도가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이는 성부 하나님의 심판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심판이 수행 됨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요5:22,27). 다시 말해서 심판의 권위를 아들에게 위임하셨다는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 5장 22절 "아버지께서...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에서 맡기다'를 헬라어 본문에 보면        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의 깊게 볼필요가 있다. 시제를  완료 형태를 사용하여 맡기는 행위가 이미  완결된 상태가 되었음을 보게 된다. 다시말해서 예수가 하나님으로 부터  심판의 권세를 이미 받았으며 그 권세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완료형을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뭏든 실제적인 심판자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그의 여러 말씀 속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5.3. 심판의 대상은 누구인가?(마25:31-32; 계22:12; cf 히9:27)

  "인자가...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마25:31-3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모든 민족'(             ) 라는 것은 '모든  족속들' 이란 뜻으로 유대 민족 뿐만 아니라 이방 세계의 모든  민족을 가리킨다.

제자원 편저, op. cit., p. 628.

 그렇다면 예수의 재림과 그가  수행하실 인류의 심판이 보편적  심판이라는 것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의인들은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아든  대개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혹은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라는 말씀에  근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어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심판'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흠정역이 더 정확한 의미를 제시한다(흠정역과 개역 한글 성경의 난하주 1에서는 '혹 정죄'로 번역했다).

 ) 에버렛 카버, op. cit., p. 728.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믿는 자들은 그들에게 불리한 정죄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믿느자들은 형벌 받을 자들이 아니다. 믿는자들은 이미 영생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사형 판결이 내려  질 수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심판의 대상은 즉 심판을 받은 주체들은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판검사는 뇌물로써 매수되어 판단을 그르치는 일이 있어도 최후의 심판을 맡은 재판장은 매수되는 일도 없으려니와 철두철미 공정무사하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최후의 심판을 믿기 때문에 내 마음은 항상 든든합니다.


3. 그날이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1.3.1. 예수의 재림은 인격적이다(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개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예수는 다시 오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예수는 천국에  처소가 예비되면 재림하사 믿는 자들을 영접하시고 그가 계신  곳에 영원히 같이 있게 하시려는 위대한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인격적인 재림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씀은  아니지만 "주께서  친히 하늘을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4:16)라는 바울의 진술과 사도행전 1장  11절에서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오리우신 이 예수는 하를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한 말은 그의 재림이 그의 올라가심과 같이 정확히 인격적일 것임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Ibid., p. 392.

 아울러 본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데려가 그 분과 함게 있게 하시기 위한 재림의 목적이 되는 말씀이기도 하다.

  예수는 성령의 사역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문맥에서 "그가 와서 자기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8-1)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의 심판은 인간이든 혹은 사단까지 포함한 타락한 천사들이든 간에 모든 피
조물에게 미칠 것이기 때문에 이 선언은 특히 중요한 것이다.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심판의 성격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예수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
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최후의 심판이 인간의 법정과  유사하다는 사실, 즉
재판을 받는 사람이 자신의  행위들을 설명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말
해 주는 것이다.
  또한 예수는  여러가지 비유들을 통해서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밭의  가라지 비유'(마13:37-43)와  '바다에 던진  그물 비유'(마
13:47-50)를 보면, 가라지를 모아 불로  태워 버리고 나쁜 물고기를 던져 버
리는 것처럼, 인자가  오실 때도 천사들이 모든 죄의 원인들과  모든 행악자
들을 그의 나라에서  끄집어 낼 것이며, 그렇게 하여 의인과  악인을 분리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자들은  맹렬히 타는 불속으로 던져질 것이며, 그
곳에서 울고 이를 갈것이지만,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열처녀의 비유'(마25:1-13),  '달란트 비유'(마25:14-30), 그리고 '양과  염소
의 비유'(마25:31-46)도 역시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달란트와 므나를 참된 청지기답게 이용한  사람들은 "잘하
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마25:21)라
는 비슷한 칭찬을 들었다. 또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하였을 때 불충성
한 하인들에게는 비슷한 엄한 종죄의 말씀이 주어졌으며,  또한 "그 종을 바
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26,30절)는 명
령이 내려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은 심판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심판의 최종은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 가리라"(마25:46)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일단 심판이 내려지면, 그  심판은 영원하고 취소할 수 없을 것이며, 의로
운 자들과 불의  한 자들이 각각 그들의  최종적아딘 장소들로 보냄을 받게
됨을 예수는 말씀하셨다.  심판의 평결이 변경 될 수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찾아 볼 수 없다.

  1.3.2.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마24:30;막13:26;눅21:27).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막13:26).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21:27).
  예수는 구름타고 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때도  구름 타고 오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이는 다니엘서 7장 13절을  배경으로한 인자의 재림 모습이다. 물론  다니엘서에서는 인자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그렇게 묘사했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인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땅으로 심판을 위해 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강병도  편, [호크마 종합주석]  제 1권  (서울: 기독지혜사, 1990),   p.811.

  본문에서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신적인 존재로서 영광스러운  위엄을 갖추고  오신다는 것이며,"큰 권능과 영광"은 고난  당한 예수의 초림 때의 모습을 탈피하여 본래 지니셨던 신적 권능과 영광스러운 속성을 갖고 임재하심을 가리킨다.

  제자원 편저,  op. cit., p. 1026.

 즉 예수가 구름을 타고 큰 능력과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가 하늘로 오리우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시적이었던 것 처럼 그리스도의 재림 역시 눈에 매우 현저할 것임을 분명히 해주는 재림의 가시성(cf. 마24:27)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재림은 불가견적인 재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가시적인 방법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

  "웹스터씨, 당신의 일생을 통하여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니까 그는 조금 있다 얼굴을 들고 대답하는 말이   "제일 나에게 엄숙하고 중요한 생각은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 내 마음이 제일 엄숙해 집니다." 하고 말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어떤 사람이 미술 애호가의 손에 이끌려 미술 전시회에 갔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미술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기 싫어, "에이, 모두 시시한것 뿐이잖아 !"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들은 세계 제일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것들이었습니다.그때 옆에 있던 미술 애호가가 말했습니다.  "이 걸작품은 심사대를 지난지 오래 되었고,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심판대에  오른  것입니다."그는 자기의 무지를 나타낸 것 뿐이었습니다.

  예수에게 대한 인간의 태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를 만날 때 그 영혼이 그의 신기와 아름다움에 놀라고 기뻐하면 그는 구원에 든 사람이요,  그를 보고 아무 반응도 없으면 스스로가 자신을 정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 기자는 서두에서 빛의 비유로 이야기 합니다.  참 빛이 세상에 왔으되 그 빛을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속으로 숨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웹스터라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가 있었다. 이 사람이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된 일이다. 뉴욕의 어떤 호텔에서 저명한 사람 약 20명과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저녁을 다 먹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웹스터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있더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어떤 목사님의 지옥에 관한 설교를 듣고 있던 한 부인이, 목사님에게 자녀가 있느냐고 물었읍니다. 목사님이 있다고 대답하자, 그 부인은 "그렇다면 질문할 것이 있는데요. 자녀가 고통 가운데 빠져 있어도 구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하고 물었읍니다. "그야 물론 그런 아버지는 폭군이나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목사님 대답에 부인은 "목사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으로 취급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은 그런 권능을 가지시고 그 자녀들을 구원치 않고 지옥에 떨어뜨린다면 폭군일 수 밖에 없지 않읍니까?"고 비판했읍니다. 이때 목사님은 대답해 주었읍니다. "하지만 부인, 부인께서는 한가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읍니다. 하나님은 지옥에 있는 자녀들은 한 사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옥에 있는 자녀들은 모두 마귀의 자녀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에 있거나 천국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위한 집을 따로 가지고 있고, 마귀는 그 자녀들의 집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 "모든 육체'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뜻한다.  사회적인 신분이나 조건이 없다는 의미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복음의 우주적인 확산을 상징하는 사건일 뿐 아니라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준다는 말은 이후에 있게 될 성령의 보편적인 강령을 의미한다.

 이로써 성령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 심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사 9:50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0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0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겔 21:32 네가 불에 섶과 같이 될 것이며 네 피가 나라 가운데 있을 것이며 네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라 계 8:7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에 애굽이 당했던 재앙을 연상시킨다(출7:17볼지어다 !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9:24;10:21ff.;19:18

󰃨 기사와...징조를...피와 불과 연기로다 - 베드로가 설교할 당시의 상황에서는 무리들에게 더욱 호소력있게 작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를 통하여 여러가지 초자연적인 기사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잠시 해가 어두워진 사실을 예루살렘 사람들이 목격한 지 불과 7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F. F. Bruce) 따라서 이러한 기사와 징조는 '여호와의 날'의 도래에 대한 표시이며 이 날은 심판의 날 곧 "마지막 날'인 동시에 보다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초대 교회 당시를 포함한) 모든 날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다른 성경 본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눅21:25-28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 하시더라  오히려 본절의 표현은 마지막 날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묘사로 이해됨이 무난하다.
'기사'와 '징조"란 다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표시하는데 전자는 주로 하나님의 이적적 권능(wonders)을 나타내고 후자는 장래 일어날 일이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표시(sign)을 가리킨다. 이 '기사'와 '징조'는 '피와 불과 연기'라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설명되고 있다.

[행2:20]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부른다'는 표현은 '믿는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롬 10:13, 14).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