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은 한 주제를 놓고 몇 달씩 설교를 한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교인들이 그 진리를 실천할 때까지 설교하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생각하며 한 번 더 이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에게는 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형성에 있어서는 꿈과 환상(비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형성되는 시기에 모든 교회의 지체들이 성령의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꿈을 갖게 하셨습니다.
당시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물도 이미 던져버리고 주님을 좇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헌금을 많이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회적인 지위가 있었겠습니까? 예루살렘에 집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습니까? 그들의 주축된 멤버는 대부분 갈릴리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셨던 성령과 그 안에서 가진 꿈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질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건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지위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령 안에서 꿈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젼을 가지고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젼을 가지고 핍박을 극복해 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젼을 가지고 고난과 가시밭길을 헤쳐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꿈과 비젼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해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시대는 기독교인들이 이 꿈과 비젼을 잃고 소시민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젼을 가지고 살아가는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우리 이민지에 사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힘듭니다. 그 가장 큰 이는 꿈을 잃고 살기 때문입니다. 꿈과 비젼이 없다는 것은 이 세대의 한 양상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우리 서머나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 우리는 더 높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 그는 다른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적인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물을 버리고 부모와 처자를 뒤로 할 만큼 대단한 결단을 대가로 치룬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무덤에 묻히도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강해하여 온 것으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이요, 그로인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라는 것입니다.
행1:0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0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는 그들이 원하던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신 꿈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그들의 현실적 욕구와 상치된 것입니다. 이 꿈은 손에 지금 잡힐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곧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그들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더 높이 날 수가 있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볼 수가 있는 꿈이었습니다.
고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참 신앙이 무었입니까?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물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니라"(things are not what they seem)고 시인 롱펠로우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그보다 높은 꿈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이지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은 꿈을 현실 중에서 누리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상은 무엇입니까? 그 꿈이 당신 내면에서 역사하는 성령충만을 표현합니다. 베드로는 그런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원치 않은 것이었지만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김삼환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으로 공부의 길이 막히자 14세부터 새벽기도회에 나가 종을 치며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호소하였습니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이 없어서 어머니 치마를 우산처럼 덮고 가서 종을 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 소년이 자라서 목사가 되었는데 그는 그 새벽에 하나님께서 주신 새벽기도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져서 그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는 새벽기도회가 세계에서 제일 왕성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는 나에게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대부분입니다. 목회자들조차도 새벽기도를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연합교회는 목사가 새벽기도하러 오는 것조차 금지합니다. 그러나 김 삼환이란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새벽기도의 꿈을 하나님 안에서 키워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섬기는 교회는 새벽기도회가 세계에서 제일 왕성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람이란 제한된 능력밖에 타고나지 못하였고 본시 그리 대단한 피조물도 아니라고 체념하고 살면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성령의 사람에게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무한의 가능성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젼입니다. 성령 안에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완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리처드 바크가 지은 <갈매기의 꿈>을 읽은 일이 있습니까? 갈매기 조나단은 고독한 선구자였읍니다. 가만히 보니까 갈매기들이 해변가에서 조금 날라서 겨우 먹이를 찾고 먹이를 찾은 다음에는 또 제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시 배고프면 가서 먹이를 찾곤 합니다. 이것이 평범한 갈매기들의 삶의 양태입니다. 그것 밖에는 갈매기들이 더 이상 돌아다니는 데가 없읍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몇 마리의 물고기 건져먹는 것이요, 사람들이 먹다남은 찌꺼기를 얻어먹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갈매기의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꿈을 가진 조나단이라는 갈매기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 갈매기는 꿈을 가졌습니다. 비젼에 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도전을 시도합니다. 자기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읍니다. "우리는 더 높이 날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라볼 수가 있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날아가자고 속삭입니다. 그랬더니 모든 갈매기들은 이 갈매기가 정신이 돌았다고 합니다. 소외시킵니다. 결국은 동료들이 쫓아냅니다. 그래서 동료사회에서 추방됩니다. 이 추방당한 갈매기 조나단은 서글펐습니다. 동료들의 세계에서 추방되었다는 슬픔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커다란 슬픔이 있었읍니다. 높이 날 수가 있는데 더 높이 날지 않고, 더 멀리 볼 수가 있는데 더 멀리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슬픔이었읍니다. 다른 갈매기들이 더 높이 날지 않고, 더 멀리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슬픔이었읍니다.
죠나단 리빙스턴 씨걸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은 갈매기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가장 높이 나르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는 그 말은 틀림없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지 결코 갈매기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더 높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이 가진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더 높이 날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로 더 멀리 바라보기를 원하시기에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한 부족의 추장이 노령으로 자신의 후계자를 선정해야 할 때가 되어 아들을 불러 앉혔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일 아침 저 앞에 있는 제일 높은 산정에 올라가 무엇이든 보고 오너라"고 명했다 그리고 다음날 추장의 말대로 다녀온 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큰 아들에게 무엇을 보고 왔는가고 물었다. 그 아들은 꽃을 내 보이며 산정에서 보고 뽑아온 희귀한 꽃이라고 했다. 둘째 아들은 약초를 내보이며 몸에 좋은 오래된 약초라고 했다. 추장은 막내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무엇을 보았는가라는 추장의 물음에 아들은 "저는 산정에 올라가 땅의 동서남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땅에는 푸른 초원이 풍부하고 강이 흐르고 있어 목축과 농경작을 하기에 적합할 듯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지리적으로 협소하고 강도 흐르지 않아 불편 하니 제가 보고 온 그 땅으로 옮긴다면 우리 부족의 장래는 희망이 더 크다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추장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너는 희망을 가져왔구나. 내가 죽거 든 네가 추장이 되어 우리 부족을 저 남쪽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도록 해라"고 말하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곧 떠나가는 아버지를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아름답고 희귀한 꽃 한다발이 중요합니다. 건강에 혹시 도움이 될 수 있는 산삼같은 약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추장은 그 부족을 사랑했기에 자신을 위로하고, 오래 살게 하려는 눈 앞의 효도보다 부족의 장래를 선택하였습니다. 앞날을 꿈꾸는 막내 아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우리는 더 높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때리 알프스 지방 가나베스 지방에 있는 아이브리아(Ivrea) 공장은 사무용품및 타이프라이터를 만드는 유명한 공장이다. 54 에이커에 병원과 도서실과 아름다운 아파트가 지어져 있는 이 공장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공장으로서 종업원들의 이익과 개발된 복지사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한 청년의 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수년전 어느 가을 날 이태리에서 온 한 젊은 방문객이 코네티케트 하트포트에 있는 공장 마당에 서서 붉은 벽돌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완전히 도취되어 있는 그 청년을 바라본다면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그토록 주의를 쏟고 있는 공장에는 아무렇게나 지은 붉은 벽돌건물 외에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건물은 그저 뉴 잉그랜드의 다른 수천개의 공장들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렇지만 아드리아노 올리베티( Adriano Olivetti)에게 있어서 그 낡은 건물은 일생의 꿈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언더우드라는 회사는 타이프라이터분야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었다. 어느날 자기는 그와같은 회사를 소유할 것이며 올리베티라는 이름이 같은 품질을 갖게 되리라고 그는 서약하였다. 자기 마음과 생각 속에 실제적인 건물을 결정함으로서 그는 기도에 촛점을 맞출수 있는 상상적인 모습을 그려보고 있었다.
34년후 아드리아노는 올리베티 주식회사의 대표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는 이태리에 있는 동업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지금 막 샀다네! "
여기서 그의 목소리는 격정으로 중단되었다.
"나는 언더우드 회사를 샀다네"
8,700만 달러가 방금 지불되었던 것이다. 낡은 미국 회사의 지배권을 획득하면서 아드리아노 올리베티는 자기의 34년전 꿈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더 높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슬비 전도의 엽서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꿈이란 돛단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돛이 바다 위로 미끄러져 나아가는 돛단 배를 거들어 주듯이 꿈은 우리의 삶을 도와 전진케 한다는 것입니다. 돛이 배의 동력과 크기에 비해 너무 크면 난파되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꿈을 갖되 자신의 힘과 분수에 맞는 합당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꿈이 커서 파산되기 보다는 꿈이 없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2.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십시요.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베드로는 요엘을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를 성령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그들에게 꿈과 환상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중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열흘 전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며칠 동안 저의 머리는 금속성 소음으로 요동을 치고 있었습니다. 제 아내는 튀어나온 에어 백에 맞아 코피를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의 눈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날 새벽, 하나님께서 주신 한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스가랴 3장 말씀이었습니다.
0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0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0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0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0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06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0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0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하리라
0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저는 이 환상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 제 자신을 보았고, 용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고 후, 저는 하나님께 죄송해서 몸둘 바를 모르고 서 있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 우편에 서서 나를 고소하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좀더 조심스럽게 운전을 할 것이지 이게 무슨 꼴이냐? 그래도 네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은 커녕 하나님의 수치로구나.’ 하나님께서 저를 책망하실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들은 말씀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0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나를 책망하는 대신에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고 이해하여 주시고, 오히려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사단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심판 대신에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며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 내가 내 종 순을 나게하리라 !
이는 “0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는 말씀대로 저는 이 말씀을 나를 향한 예표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의 허물을 씻어주시고, 수치를 변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더욱 교통법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종이 되겠습니다.’
리버싸이드 처치의 장로 한 분이 심각한 심장 질환을 앓아 오다가 혼수 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한 외과 의사는 그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으며, 또 살아난다 해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그가 입원한 직후에 병원에 들렸었는데, 유명한 신경 외과 의사인 스마일러 브랜튼 박사의 얘기를 생각했었다. "두개골 부분에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뇌에는 정상적인 부분도 아주 많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그의 얘기를 믿으며 그 장로가 들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서 이렇게 얘기했었다. "스탠리 씨, 슐러 박사입니다. 당신은 회복될 것이라더군요." 그러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첫번째 표식이었다. 그리고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으면서도 스탠리 씨는 꿈을, 자신은 회복된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교회에 온 스탠리 씨는 목발도 없이 주위를 걸어다녔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뛰어나가 그를 맞이하였고,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목사님, 당신은 위대한 분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스탠리 씨, 위대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포기하지 말아라! 포기한다는 것은 오직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꿈을 죽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꿈이 깨어지도록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십시오. 스탠리 장로님께서 슐러 목사님 말씀을 자신은 회복된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을 때, 주의 종의 전해주는 말로 믿고 하나님께 매달렸을 때, 그는 회복되었습니다. 왜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꿈을 발견해야 합니까?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3. 꿈을 가진 자를 위해 축복하며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요셉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아버지와 형님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를 조롱하고 그를 나무랬습니다. 이는 우리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의 한계요 비극입니다. 그때 만일 그 형들과 아버지가 그를 격려해주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면 그들에게도 얼마나 좋은 일이었겠습니까? 꿈을 가진 자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 주십시오. 성령의 사람은 꿈꾸는 자입니다. 또한 성령의 사람은 꿈꾸는 자를 우해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입니다.
미국에는 Promise Keeper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미국 사회에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일어난 남성들의 단체입니다. 김장환 목사님께서 그 집회에 강사로 초빙되어 갔습니다. 곁에 한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그분께 어떤 꿈을 가졌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대통령이 되려는 꿈을 가졌다고 대답했습니다. 당황한 쪽은 김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과 당신이 가진 꿈을 위해 기도해드리겠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김목사님께 기도를 받은 그분은 정말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통령 취임식에 김목사님을 초빙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지미 카터입니다. 김목사를 만났을 당시 지미 카터는 주일학교 교사요, 죠지아 주의 지사였지만 그의 마음 안에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감사한 것은 그의 꿈을 충심으로 축복해주고 격려해준 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지난 주일 밤, 대학생, 청년 다락방 모임에서 우리는 자신들의 꿈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기도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의 꿈을 나누고 그 꿈을 위해 기도해 줄 때, 마음이 기뻤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삽니다. 또한 성령의 사람은 꿈꾸는 자를 위해 기도해주고 격려해 줍니다. 성령충만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의 꿈을 알고 그 꿈을 위해 서로 기도해 줍시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결론
미국의 장로교 목사인 아더 저드슨 브라운 박사는 103회 생일을 맞아 장수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짧막하게 대답했다. "죽지 말게"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아무리 나이가 드셨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기대하고 살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소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고 돌보실 것을 믿습니다.
생명의 삶에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어느 구두회사에서는 아프리카에 가서 그들의 상품에 대한 시장성을 파악하고 오라고 두 세일즈맨을 그 곳에 파견했다. 두 사람은 몇 주일 동안 자세히 조사한 후, 그 중 한 명은 이런 전보를 본사에 보냈다. "이곳에는 아무도 구두를 신지 않습니다. 시장성은 하나도 없습니다.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두 세일즈맨 중 나머지 한 명은 전혀 다른 전보를 보냈다. "이곳에는 아무도 구두를 신지 않습니다. 모두 구두를 신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경쟁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장성은 무한합니다 상황은 희망적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보고서를 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다 함께 환상을 가진 사람, 꿈을 가진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비참한 현실 때문에 더 큼직하고, 더 애정적이고,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들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된 경우는 허다하다. 시인 워즈워드는 말했다. "깊은 걱정거리 때문에 내 영혼은 정화되었다." 버터를 녹이는 불, 그 불은 바로 계란을 단단하게 삶아준다.
어떤 부인이 남편과 아들 삼형제와 함꼐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남편의 직업은 선장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바다에서 폭풍우에 휘말려 배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는 비보가 날아들어왔다. 그리고 나서 세월은 흘렀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렸건만 큰 아들도 남편의 뒤를 이어 배를 탔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또한 둘째 아들도 한사코 말리는 어머니 몰래 선원이 되었다가 그도 역시 얼마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막내 아들조차 장래 선원이 되겠다고 하였다.
어머니와 모든 친척들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네 사람이 바다에 미친 까닭을 몰라 이 부인은 이웃에 사는 목사님꼐 그 원인을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한참 동안 집안을 살펴보던 목사님은방에 걸려있는 그림과 사진을 당장 떼어내고 대신 다른것을 걸도록권하였다.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 정도로 시원한 바다 그림과 선장차림의 멋있는 아버지의 사진이 아들들의 마음을 바다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부인은 바다 그림 대신 산과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 린 그림을 걸었다. 얼마 후 막내 아들은 선원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 고 대신 농부가 되어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오영석이라는 소년은 가난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 진학의 길을 열어 주십시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겉봉에 [하나님께]라고 적힌 이편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우체국에서 생각끝에 어느 교회로 보냈다. 그 교회 목사의 주선으로 이 소년은 대학에 진학하고 해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신대의 조직신학 교수가 되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다.
헨델이 런던의 어떤 집에 들어가서 23일간을 조용히 방에 앉아서 두문불출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영원한 나라를묵상하는 가운데서 이 메시야를 썼다고 합니다. 그 메시야를 쓰는 동안에 어떤 날 한 번은 그 집의 일꾼이 들어가니까 헨델의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하면서 울고 있기에 그 일꾼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헨델이 대답하는 말이 "하늘이 내 앞에 열렸다"고, 아니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을 내가 뵈었다"고 하였답니다.
위대한 철학자이며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90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한 청년의 의사로부터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위대한 생애를 영위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산에 오르게]라고대답했다. [산에 올라 무엇을 합니까?]라고 다시 묻자 듀이는[다시 올라갈 다른 산을 보기 위해서 라네]라고 대답하고는 이런명언을 덧붙였다. [그러다가 더이상 산에 오를 흥미가 없어지면자네는 죽을 날이 가까이 온거야] 비젼이 없으면 삶의 가치는 없는 말이다.
생명의 삶
성냥불을 끄는 바람, 그 바람은 바로 큰 불을 일으킨다. 사람은 사실의 한쪽 측면만 바라보고, 자기 혼자의 견해에 얽매여서는 살 수 없다. 어느 지독한 무신론자가 그의 견해를 광고하기 위해 길가의 벽보판에 이렇게 써 붙여 놓았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계신다." 그러나 일곱살난 소녀가 벽보판 앞을 지나게 됐다. 그 소녀는 엄청난 흥분과 감동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그소녀는 이렇게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미국에는 '힐튼'이라는 고급 호텔이 있다. 그 호텔을 시작하게 된 내력은 이러하다.옛날 미국의 텍사스 주의 어떤 맛방 호텔에서 종업원으로 일 하던 힐턴이라는 소년이 어느날 신문에 아스토리아라는 거대 한 빌딩의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그 빌딩 사진을 오려서 자 기 침대의 머리맡에 붙였다. 그리고 매일 '나도 이러한 빌딩을 건축할 수 있다'라는 비젼을 가지고 생활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성한 그가 바로 그 빌딩을 사들이고 그곳에서 힐튼 호텔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힐튼 호텔의 시작이다.
책 명 : 소리새
저 자 : 한 희철
출 판 사 : 다산글방
출판년도 : `92. 8.25. 2판
작 성 자 : 고 성봉
작 성 일 : `94. 1. 7.
주 제 : 희망,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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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새
새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새들은 그 마을을 새터라고 불렀습니다.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가 하루종일 그치지 않는 작은 숲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새들은 한밤중에도 노랠 불렀습니다.
푸르게 나무가 자라고, 바람이 시원하게 지나는 평화로운 동산이었습니
다.
그런데 어느날, 그 새터가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맑기만 하던 하늘이 별안간 먹구름으로 깜깜히 덮이더니, 강한 바람마저
불어닥쳐 나무들이 온통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휘이익 !
잘 되지 않는 휘파람 소릴 끊어질 둣 이어대며 바람은 단숨에 숲을 삼킬
듯 무섭게 불어댔습니다.
부러질 듯 나무들은 허리가 휜 채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고, 잔가지들은
꺾여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숲이 술렁대기 시작한 건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번 쯤 찾아오는 폭풍우를 견뎌야 하는 것은 새터에선 늘상
있어온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폭풍을 견디는 것은 그것을 처음 겪는 어린 새가 아니라면 제법
익숙해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습니다.
불어닥친 폭풍과 함께 이상한 소문이 번지기 새작했던 것입니다.
시커먼 하늘보다도 더 어두운 소문이 거센 바람을 타고 쉽게 퍼져 갔습니다.
새터가 무너질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이번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새터의 모든 나무가 쓰러지고 말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어디서, 누구에게서 시작됐는지 모를 그 이상한 소문은 숲이 작은 탓이기도 했지만, 너무도 쉽게 숲으로 퍼져 나갔고,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새들은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캄캄해지는 하늘과 드세지는 바람이 새들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았습니다.
까짓 소문만 아니라면 꾹 참고 견뎌 볼만도 한데 아무래도 그 이상한 소문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연신 눈을 깜박이는 새들의 얼굴엔 두려움의 그늘이 짙게 깔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새들이 놀라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하나 둘 새터를 떠나는 새들이 있었습니다.
약삭 빠르고 계산 빠른 새들이었습니다.
새터가 옛부터 조상들이 살아온 정든 땅이긴 했지만, 눈앞에 닥쳐온 위험을 뻔히 보면서도 그냥 새터에 남아 있는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였던 것입니다.
많은 새들이 처음에는 아쉬운 듯 아타까운 듯 떠나더니, 나중에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새터를 떠나 갔습니다.
그들은 급하게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거센 바람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날아오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지만, 그들은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밀려 갈 뿐이었습니다.
멋있고 힘찼던 평소의 날개짓은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고, 곤두박질하듯 떠밀려 갔습니다.
안전한 땅을 찾아서......
그렇게 쉽게 새터를 떠나 버린 새들도 많았지만, 어떻게든 견뎌 보려는 새들도 적진 않았습니다.
거짓일 수도 있는 소문 때문에 쉽게 새터를 떠날 순 없는 일 이었습니다.
한밤중이 되자 드디어 하늘에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겹겹내리쳤습니다.
천둥과 번개도 야단입니다.
날카롭게 하얀 이를 드러낸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번쩍이는 번개는 이쪽 하늘에서 저쪽 하늘을 단숨에 갈랐고, 하늘이무너져라 천둥은 번개가 간 금을 따라 맘놓고 울어대는 것이었습니다.
비와 버티던 나무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새들이 한 군데 모여 피해 있던 숲에서 가장 굵은 나무마져 한쪽으로 뿌리를 솟구치며 어이없이 쓰러지게 되자.
새들은 더 이상 피할 데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날아올랐습니다.
온통 비에 젖은 몸이라 그들은 처음에 떠난 새들보다도 초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새터를 떠나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무척이나 아팠지만 어쩔 수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은 모두들 떠나고 말았습니다.
새터에 살던 새 중에는 소리새라는 새가 있었습니다.
몸뚱아리가 작았고 털의 빛깔도 우중충한, 한 마디로 볼품없는 새였습니다.
그런데다가 그는 노래도 잘 못했습니다.
새터에 사는 새들은 시시때때로 바뀌는 노래를 잘도 배워 신나게들 불렀는데, 유독 그 소리새만은 옛날 조상들이 불렀다던 느리고 느린, 마디마디 구슬픈 노래만을 고집스레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반쯤은 쉰 목소리로.
바로 그 노래 때문에 소리새는 날 때부터 새터에 살았으면서도 이렇다
할 친구 한 명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따뜻한 관심 주지 않아 참 외로운 새였습니다.
그 날, 이상한 소문과 함께 폭풍이 몰아쳐 왔을 때, 사실 소리새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몸이 작았던 만큼 겁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놀라 쿵쿵 뛰는 제 가슴의 방아 소리에 스스로 눌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소리새는 새터를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처음엔 그도 얼떨결에 새터를 떠나는 새들을 따라 새터를 떠나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죽는 것이 무섭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고, 괜히 남아 지기를 자랑하고 싶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소리새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소문따라 밀어닥친 폭풍에 숲속 나무들이 힘없이 쓰러지는 것도 그러했지만, 그걸 보고 황급히 새터를 떠나는 새들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아프게 했습니다.
모두가 떠나면 새터에 남겠다고, 무서운 마음을 누르고 소리새는 그렇게다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유라면 그게 전부였습니다.
무너질 듯 무섭게 내리긋는 굵은 빗줄기를 뚫고서, 소리새는 새터에서 제일 높은 나무를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있는 힘을 다했지만,작은 몸뚱아릴 가지고 거센 비바람을 뚫고 날기란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냥 날아도 힘들었을텐데, 그의 부리와 양발에는 무엇인가 길다란 것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몇번의 실패 끝에 겨우 나무 꼭대기에 날아오른 소리새는 나무가지 끝에겨우 나무 꼭대기에 날아오른 소리새는 나무가지 끝에 앉아 노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위에서 야단인 천둥과 번개가 무서웠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크게노랠 불렀습니다.
매섭게 얼굴을 때리는 비바람이 쓰리고 아팠지만, 그것도 참았습니다.
비바람에 밀려 몇번이나 떨어질 뻔하였지만, 그 때마다 발에 더욱 힘을주었습니다.
비에 젖어 그런지 소리새의 노래는 더욱 낮고 축축하게 들렸습니다.
울며 부르는 노래같았습니다.
어쩜 그는 정말로 울며 노래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모르는 비바람을 향해, 어딘지도 모르고 새터를 떠나가는 어둠 속 새들을 향해......
그렇게 부른 소리새의 노래는 천둥에 묻히지않고, 비바람에 지워지지 않고 멀리멀리 퍼져갔습니다.
그 노래는 마치 빗줄기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떠나가는 새들도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알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소리새의 그 노래는 떠나가는 새들의 가슴 속에 싶숙이 화살
처럼 박혔습니다.
새월은 흘러갔습니다.
참 빠른 세월입니다.
그런데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폭풍을 피해 새터를 떠났던 새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약속이나 한것처럼 새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랬만에 돌아온 새터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나무들이 뒤엉킨 채 어지러이 쓰러져 있었고, 고개를 내민 것이라
곤 새로 자라기 시작한 어린 나무 몇 개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돌아온 새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을 때였습니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새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새터를 떠날 때의 괴로웠던 심정과 떠나간 후 남의 땅에서 눈치보며 살던 때의 여러 가지 어려움 등을 낮은 목소리로 얘기 했습니다.
모두들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얘기를 하던 나이 많은 새가 자기가 새터로 다시 돌아오게 된 이유를 말하자, 모두들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소리새의 노래 때문에 새터로 돌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그의 가슴 속에 소리새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폭풍 몰아치던 그 날 밤, 새터를 떠날 때 들었던 소리새의 노래가 어느날 문득 가슴 속에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떠오른 생각이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새의노래 소리가 점점 더 분명하게 들려오더랍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노래 소리가 그의 가슴을 꽉 채우게 되었고, 그렇게되자 그는 가슴이 불붙는 것 같아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 노래 소리를 따라 다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얘기를 듣던 새들이 하나 둘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지금한 얘긴 바로 자기들의 얘기였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소리새의 노래 소리 때문에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말을 잊은 채 한동안 시간만 흘렀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소리새를 찾자!"
온통 새터를 해맨 새들이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거기 소리새가 있었습니다.
쓰러진 굵은 나무가지 끝에 소리새는 매달려 있었습니다.
소리새 주위로 몰려든 새들은 모두들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습니다.
뎅그마니 뼈만 남은 채 앙상하게 말라버린 소리새의 작은 몸뚱아리도 그랬지만, 정말 놀랐던 건 소리새의 비쩍 마른 발목 두 개가 나무가지 끝에 칭칭 철사줄로 동여 매져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엉성하게 묶이긴 했지만, 분명 그의 발목은 몇번 씩이나 철사줄로 되감겨져 있었습니다.
소리새의 발목이 철사줄로 묵여 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하늘 쪽으로 고개를 쳐 들고 죽은 소리새의 부리끝이 형편없이 부러져 있었고, 그렇게 형편없이 부러진 그의 부리로 보아 소리새의 발목을 철사줄로 묶은 건 소리새 스스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고이는 눈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새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소리새, 소리새의 저 기이한 죽음이라니.
모두들, 참 서럽게들 울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그들의 울음 사이로 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리새의 노래였습니다.
새들은 울음을 그치고 소리새의 노래를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옛부터 조상들이 불렀던 노래, 폭풍 몰아치던 그날 밤 흔들리는 가지 끝에 앉아 자기 발목 스스로 묶어 부른 노래, 새터를 떠났던 자기들의 가슴속에 살아와 마침내 자신들을 다시 새터로 돌아오게 한 그 노래. 모두들 소리새의 노랠 불렀습니다.
새터엔 소리새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노래를 부르느라 아무도 보진 못했지만,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소리새는 어디론가 다시 날아 올랐습니다.
그는 결코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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