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7 March 2015

행22:22-29 시민의 충성

들어가는 말

요즈음 북한에서는 선교사들을 인민들 앞에서 공개 처형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들이 누구인가 살펴보니까 바로 탈북했던 동포들입니다. 이분들이 머무는 곳이 주로 중국 연길 등에 있는 교회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혹은 반 의무적으로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산 정권 하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진 정신적 공백을 이 복음이 강하게 점령하면서 헌신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얼마 기간 동안 중국에 머물다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들이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였다는 죄목으로 붙잡혀 처형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최근 탈북한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온 마을 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그들을 공개 비난한 후, 돌로 치게 하고 총살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복음은 서서히 북한 동족들 안에서 불이 붙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히브리서에 나오는 성도들을 생각하였습니다.

히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말씀대로 확신합니다. 누가 우리 동족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행 22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동족을 접붙이려 몸부림치는 바울을 만납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거역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북한동족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유대동족을 위한 바울 사도의 충정은 과연 어떤 꽃으로 피어날까요?

1. 하나님의 사랑은 크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0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도다 하셨도다

양육해주신 하나님의 사랑,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가볍게 여길 수 없는 하나님 사랑이 있습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크십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 교회 이 응천 집사님께서 몇 달 전에 집에서 10여년을 기르신 강아지, BJ에 관한 글을 쓰셨습니다.

B.J.의 장점은 무엇보다 삶을 전적으로 주인에게 의뢰하는 점입니다.  주인을 그의 온 희망과 기쁨으로 알고 삽니다. 주인의 마음의 동향을 살핍니다. 주인의 뜻까지 이모저모 살펴서 어떻게 하면 주인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주인께 순종할까 애를 쓰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랍니다.

개도 주인의 사랑을 잘 압니다. 주인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 지 못합니다.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탄하십니다.

사1:0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0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크십니다.
이번 서삼정 목사님께서 부흥회 때, 말씀하신 이야기인데요. 재미있어서 인용합니다.

예화] 오병이어로 500을 먹이셨다!고 설교하자 항의하는 어린이에게
" 얘, 나도 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500명을 먹이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단다. 그런데 5,000명이라고 하면 믿겠니?"

웃자는 말씀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모릅니다. 믿고 의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믿지 못하니까 주님께서도 그 백성의 성읍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십니다. 독생자까지 보내주셔도 그 사랑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 그 백성들이 너무 안타까와 우시는 것입니다.

눅13:34 예루살렘아 ! 예루살렘아 !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랑을 받아들일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눈물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백성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품으로 초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날개 아래 품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랑을 100% 신뢰하시고 그 사랑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책임지실 수 있으신 그분께 삶을 맡기시기 원합니다.
바울 사도가 전하고 있는 복음은 찾아오신 주님의 날개 아래 자기 자신을 맡겼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닭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 하여도 원치 않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2. 끝까지 거역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22 이 말 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이 발언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매우 격한 발언입니다. 그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바울의 조심스러운 연설을 잠잠히 듣던 무리들은 바울의 이방 선교 소명(召命)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치 휴화산이 폭발하듯이 다시 아우성치기 시작했습니다. 종잡을 수 없이 설치고 날뛰는 난폭한 군중들은 격렬한 분노와 흥분으로 인하여 '살려둘 자가 아니라'! 외치고 있습니다. 배타적이며 완고한 선민 의식과 이방인에 대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감당할 수 없어 하는 장면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 편이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 편이다.
그러므로 '살려둘 자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깨닫지 못한 몰지각에서 온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는 유대인의 모습입니다.

성경에는 분명 인간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부분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우리 인간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나1:6)

다윗은 자기 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시38:4

그러나 받아들여야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백부장처럼, 탕자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백부장은 믿음으로 예수님이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분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마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탕자는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에 안깁니다.

눅15:21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바울 사도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그들은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영국 여왕이 위스트민스터 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할 때, 가장 감동적인 장면들의 하나는 대관식이 행해지기 바로 직전이라고 합니다.(죤 스토트)
"캔터베리는 대주교는 성당 안에서 동,서,남,북 각 방향의 청중들을 향하여 네 번 소리를 지릅니다.
'귀빈 여러분! 저는 이분이 틀림없는 영국 여왕 임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분 에게 기꺼이 충성을 맹세하겠습니까?"
대주교가 물을 때마다. 위스트민스터 성당 안에 모인 청중들이 큰 소리로 네 번 승인의 대답을 해야 비로소 왕관이 여왕의 머리에 씌워집니다.

"성도 여러분, 저도 오늘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틀림없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분께 기꺼이  충성을 맹세하겠습니까?"(스토트)

주님의 부르는 음성 널 받아 주시나니
죄 버린 네게 임하시사 끝까지 널 도우시네
피하지 말라. 피하지 말라.
우리가 곁길로 피해도 맘 속에 오시리(319장)

사도 바울을 찾으신 주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찾으십니다. 거역하지 마십시요.


3. 로마인 이상의 시민권이 있습니다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당시에 로마 시민권은 로마인이 아니고서는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매우 중요한 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은 정부의 고위층이나 로마를 위해 뛰어난 공헌을 했던 사람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토가'(toga)라는 긴 겉옷을 걸침으로써 로마 시민임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토가는 착용이 불편했기 때문에 국가적 행사 등이 있을 때 외에는 잘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바울이 이 토가를 입고 있었다면 로마 군대에 의해 연행되지도 않았겠으나 그는 앞의 이유 외에도 민족적 배타성이 강한 예루살렘이었으므로 더욱 그 옷을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들은 백부장은 매우 당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무고한 로마 시민을 결박하여 채찍질을 가한 것은 명백한 범법(犯法) 행위였습니다. 당시에 로마 사람들은 발레리안 법(Lex Valeria)과 포르시안 법(Lex Porcia)에 의해 보호를 받았습니다. 정당한 재판에 의해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채찍질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이 법을 어기고 함부로 채찍질을 가할 때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처벌이 어떤 것인지는 백부장 본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보고를 들은 천부장 또한 상당히 당황하였습니다. 그가 직접 바울에게 달려왔습니다. "네가 로마 사람이냐". 이에 비해 바울의 대답은 담담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간단하게 그러하다고만 대답하였습니다.
바울에게는 더 귀중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1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비록 지금은 지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므로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합당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기뻐하여야 합니다. 빌립보 시민들이 비록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로마 제국에 속해 있어서 로마의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빌립보 교인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벧전 2:11)처럼 산다할지라도 하늘에 소속된 시민입니다(Martin, Kent, Calvin).

히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연고지가 하늘입니다.  모든 관심사가 하늘에 있습니다.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삽니다(롬 8:21-23).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왜냐하면 그의 재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Muller).

맺음말

북한동족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유대동족을 위한 바울 사도의 충정은 과연 어떤 꽃으로 피어날까요?

       추운 겨울 날, 눈 오는 거리에서 한 소녀가 얇은 옷을 입은 채, 밥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화가  밀어서 당장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왜 이런 일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무슨 대책이든 대책을 세워 주셔야지요."
 "나는 틀림없이 대책을 이미 세웠었노라. 나는 너를 대책으로 세웠노라."

우리가 바로 북한 동족을 위한 하나님의 대책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1] 날개 아래 모으시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2] 유대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사도 바울이 충성심이  필요합니다.
3] 로마의 백부장, 천부장들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사도 바울의 천국 시민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천국 시민의식이 바울 사도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영적 거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리 선데이는 소년 시절에 교회에 갔다가 목사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매일 15분씩 성경을 읽어라.
매일 15분씩 하나님과 이야기하라.(기도)
매일 15분씩 하나님에 대해 말하라(전도)
매일 15분씩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라.
그러면 누구든지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이 작은 일은 하루의 4%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실천했을 때, 영적 거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마지막 시대에 세상과 더불어 썩지 않기 위해서 이것만 있으면 썩지 않을 4%의 소금기, 즉 천국 시민의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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