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7 March 2015

행 23:27-24:9 비방(誹謗)을 넘어서라

머리말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살아오면서, 혹은 신앙생활 중에서 비방을 당한 아픔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나 이 비방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습니다.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고, 우리가 요즈음 고국의 선거 속에서 보는 대로 우리는 비방에 익숙한 사회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이해를 받아본 경험도 있습니다. 칭찬과 격려를 주고받은 적이 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비방을 뛰어넘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해와 격려를 할 수 있는 신앙 인격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 성도들이 유념할 것은 비방 받을 언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딤전 3장 7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그러나 비방을 너무 두려워해서도 아니됩니다.

1. 바울은 비방을 받았습니다.

잘하자는 일이었습니다. 동족을 살리자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비방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구로부터 비방을 당하고 있습니까?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을 비방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신분과 위치가 누구보다 책임이 있는 대제사장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면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책임 있는 위치입니다. 비방을 뛰어넘어 이해와 격려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변사 더둘로를 데리고 함께 바울을 혹독하게 비방하는 위치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네데배우스(Nedebaeus)의 아들로 48년에서 58년까지 대제사장직을 수행하였습니다. 잔인함과 탐욕으로 유명했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그는 분반 제사장들로부터 십분의 일 세(稅)를 몰수하여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고관들에게는 아낌없이 뇌물을 바쳤습니다.  아나니아는 탐욕적이고 술수에 능한 자였습니다. 그의 친로마 정책으로 인하여 유대인 국수주의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이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을 떠났다는 종교적 이유로 바울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로마 법정에서 바울에게 불리한 판결을 확실히 하기 위해  변사(辯士)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비방은 바울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거장 모세도 엄청난 비방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그를 가장 사랑하는 형님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그를 비방하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충분히 타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여성도 60만이 있는데, 하고많은 히브리인을 두고 왜 이방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한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비방 받을 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보다 먼저 나서서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모세를 비방하는 일이 마땅히 해야 될 사명처럼 생각했습니다.

0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그 사건에서 비방을 옳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의 교만을 더 강하게 치셨습니다.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자신들의 영적 교만에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에는 결코 그를 비방하지 말라.'(인디언 격언)

그러나 아나니야는 세례요한과는 달리 벨릭스에게는 아부하였습니다.
'벨릭스 각하여!...감사 무지하옵나이다,' 재판장을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 낯간지러운 아첨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의 아첨의 요지는 벨릭스의 뛰어난 통치력으로 민족이 개혁되었고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셔야 할 말을 벨릭스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독 벨릭스의 상습적 잔혹 행위는 그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벨릭스는 총독으로서의 특권을 이용하여 뇌물과 여색을 탐하는 등 온갖 악행을 도모하였으며, 특히 자신의 비위를 거스리는 자들은 그가 제사장이라 하더라도 암살자를 동원하여 살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자기 전임 제사장이 바로 그런 희생자였습니다. 또한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당시에 많이 일어났던 소요를 진압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강도떼들을 부추겨 약탈하도록 하여 그 약탈물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나중에 벨릭스가 총독에서 물러나 로마로 소환된 이유도,  앞의 일들에 대해 유대인들이 탄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Tacitus Ann, XII, 54).
그러나 아나니야는 '감사 무지하옵나이다' 아부하고 있습니다. 벨릭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거짓 찬사를 통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려는 것입니다.
정치가에게는 아부하면서 동족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바울에게는 그토록 매서운 잣대를 들이대며 혹독하게 비방하는 제사장입니다. 그가 바울에게 행한 비방을 봅시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염병 - '염병'(*, 로이모스)은 흑사병과 같이 전염성이 강하고 일단 감염이 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전염병을 가리키며, 형편없는 사람에 대한 욕으로 사용되. 더둘로는 바울이 전한 도(道)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그것이 마치 흑사병과 같이 사람들에게 해가 된다고 잘라 말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흑색선전이었을 뿐이다. 여하튼 바울을 염병(染病)이라고까지 부른 것은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나갔음을 말해준다.
 소요케 하는 자 - 아나니아 일행이 상당히 치밀한 준비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어떤 문제가 벨릭스의 분노를 유발시킬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고소 내용의 제일 첫번째 항목으로 그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울이 정치적 혁명 세력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벨릭스는 유대를 통치하는 동안 여러 가지 소요 사건들에 직면하여 그 주동자들은 물론 추종자들까지도 십자가에 처형시키는 방식으로 강경하게 진압했다(Jos, Wars II). 그리고 그는 로마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떤 소요에 대해서도 즉시 잔인하게 진압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나사렛 이단의 괴수 - 더둘로가 바울을 정치범으로 몰고 가려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이는 예수께서 당하신 모함(謀陷)과 상당히 유사하다(눅 23:2). 아마 누가는 주께서 당하신 고난을 제자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인식하기 바랬을 것이다.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 - 성전 즉 종교에 관한 것은 로마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판결하는 자료가 되지 못함을 저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간략하게만 끝으로 언급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하게 만든 것이 성전 정화 사건이었고(막11:15-19) 바울이 결정적으로 음모에 걸려든 것도 성전에서였다

이렇게 보면 아나니야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신앙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신앙인이기 이전에 정치적인 인물이란 것에 불과합니다.

십자가상의 강도가 예수님을 왜 비방합니까?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 '
강도가 비방 받는 것은 강도 짓을 했으니까 정죄를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강도가 왜 예수님을 비방합니까? 자기에게 예수님을 비방할만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른쪽 강도가 지적해준 대로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십자가상의 강도가 예수님을 비방하는 것은 그 자신의 문제입니다.
욥의 아내가 욥을 왜 비방합니까? 욥에게 원인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욥의 아내가 욥보다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그 자신의 문제입니다.

욥2:9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 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산헤립의 부하들이 왜 히스기야 왕을 비방합니다.

열방의 신들이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 하고

유리컵에 물을 담고 젓가락을 보세요. 꺾여보입니다.

이 경우 그 비방은 비방하는 사람 자신의 문제입니다.

이 모순된 비방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사 51장 7절: 의를 아는 자들아 !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예수님께서도 비방을 받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유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를 비방하는 자를 평화로운 태도로 대하는 자는 이미 비방을 이겨낸 자다(톨스토이)'란 말이 있습니다.
바울은 입이 있었으나 같이 맞서지 않았습니다. 잘잘못에 대한 말이 없습니다. 변명이 없어요. 대신 시종일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만 충성되게 감당하였습니다.
모세에게는 이 비방이 매우 큰 아픔일 수 있습니다.  가장 자기를 가까이 지내던 이들이 지도자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가정문제, 즉 여자문제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모세의 약점을 치고 나온 것입니다. 강물에 버려진 모세를 구원하는데 절대적인 공로를 세운, 그의 누님 미리암과 모세 입의 대변자요, 친 형님인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세는 철저한 침묵과 온유함으로 대처합니다.

0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모세는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대신 성령을 좇아 행하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온유함으로 침묵하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약한 부분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한 부분은 덮으시고, 모세의 좋은 부분을 펼쳐 보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경우 바르고 똑똑한 미리암이나 아론보다 모세의 팔을 들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된 사람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모세는 어떤 선지자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집에 충성된 자였습니다.

0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허물지고 약한 부분을 드러내 온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도록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의 충성된 부분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적용]
저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겨 오면서 참 흥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 참 귀한데, 그게 틀렸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릅니다. 그 종 모세의 약점은 덮습니다. 대신 충성된 점은 귀히 보십니다.
  "그 사람 그건 틀렸을 지 모르지만,  참 귀한 사람이야!"
얼마나 은혜롭고 성경적입니까?

모세처럼 온유함으로 침묵하고, 비방한 자를 위해 기도해 줍시다.
하나님처럼 약한 부분은 덮고 충성된 부분을 박수쳐  격려합시다.



맺음말


예수님께서도 비방을 받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미쳤다! 귀신들렸다!'는 비방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비방을 받는 사람들을 이해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1]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비방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이해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2] 배신한 베드로가,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가 예수님으로부터 비방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이해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와 격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0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0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비방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뉴욕타임스 보도.  '빛나는 제 2 인생!' 카터:
1981년, 미 사상 가장 젊은 전직 대통령. 빚만 $100만
그를 향한 여론의 비방은 따가웠습니다.
남은 25년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비방 받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을 격려하며 살기로 결심함.
주일이면 여전히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에모리 대학의 명교수로
14권의 책을 저술함

목사다운 목사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당신이 목사다운 목사가 되라.
장로다운 장로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당신이 장로다운 장로가 되라.
성도다운 성도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당신이 성도다운 성도가 되라.


우리가 이제 와서 대통령이 되고, 세상에서 크게 출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비방하는 삶을 극복하고 격려하는 삶을 살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