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2:33-36 이 예수를 하나님이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1]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셨습니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 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 을 부어 주셨느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링컨과 간디가 그런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의 전기와 자서전을 읽어보았습니다. 과연 아름답고 귀합니다. 그들의 생애는 범인들보다 높은 곳에 있습니다. 사람을 보아도, 좋은 점을 봅니다.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합니다. 인류의 아픔에 동참합니다. 아, 이래서 존경을 받는구나 생각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보다 예수님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격과 삶을 가지고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 자신이 그것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링컨이나 간디가 우러러 볼 대상이요, 닮기를 원하는 분이지 비교한다는 것은 본인들로서도 황송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신 것입니다. 하늘까지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정녕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분은 하나님께서 온 인류 위에 높이신 분이십니다.
1] 그분을 바라보라고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높이셨습니다. 그분처럼 마음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셨습니다.
2] 영원한 생명의 사람이 돠라고  높이셨습니다.  위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분을 바라보고 영생을 얻으라고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셨습니다. 광야에서 높이 들린 놋뱀을 바라본 자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 오른 손에 높이 들린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누구의 손에 붙들림 받아 높아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른손으로"란 하나님의 전능과 그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인간을 보셨을 때, 주님은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모습이 참으로 불쌍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은 적습니다. 유리하는 양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성도들이 성령의 전다웁게 살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위엣 것을 바라보라.
3] 성령의 전으로 살라고 높이셨습니다. 위에 것을 바라보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만 바라보고, 아랫것만을 생각하면서 성령 충만을 외칩니다. 곡식을 담는 부대를 아십니까? 곡식을 받으려면 곡식 자루의 아구를 위로 향하고 열어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자루는 늘어집니다. 아래로 쳐집니다. 그런 상태로 곡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위를 향해 자루 아귀를 열어졌혀야 합니다. 그때 곡식이 그 아귀까지 넘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높이신 줄 아십니까? 우리들에게 성령을 주시기 원해서입니다. 왜 바라보라고 하십니까? 성령을 충만히 주셔서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입니다. 성령의 전으로 하나님의 성전다웁게 살기 원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 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 을 부어 주셨느니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뜻과 정성 다하여 날마다 바라봅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서게합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2.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왜일까요? 우편은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적에 그는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몸은 핍박자들의 돌들로 인하여 산산히 찢겨갔지만, 그는 위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본 분이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저는 이번 이슬비 전도학교를 참석하면서 매우 좋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옥토화작전이 그것입니다. 길가도 돌밭도, 가시덤불도 열매맺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전부터 동감해 오던 터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도팀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옥토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깊은 관심으로, 간절한 기도로, 인내함으로, 좋은 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봅니다. 마10:19을 봅니다. 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지는 않았습니다.
나의 마음은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때로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아가는 길가와 같았습니다.
나의 마음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돌짝 밭과 같았습니다.
나의 마음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가시떨기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신 후, 나의 마음은 옥토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내 안에서 황무지와 같은 마음을 일구시며 사단의 권세를 박살내고 계시는 우편에 계신 분을 감사합니다. ‘옥토화작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 없는 마음치고, 복음을 바로 받아들이는 좋은 땅을 찾기란 너무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길가와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덤불 같은 마음은 곳곳에서 만납니다. 그러면 이 밭들은 황무지로 버려둘 것인가? 하나님은 광야에 세례요한을 세우셨습니다.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은 ‘충성된 사자’ 세례 요한을 세워 유대인들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이 충성된 사자의 수고의 터 위에 복음을 심어서 아름답게 열매맺은 것입니다.

요즈음 북한 당국자들과 비료협상이 한창입니다. 비료는 황폐한 땅에 곡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비료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름입니다. 거름은 땅의 산성화를 막아줍니다. 편지 보내는 일은 상대의 마음을 좋은 땅을 옥토로 만드는 거름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옥토화 작전’입니다.
옥토화 작전의 중요한 핵심은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거름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옥토로 만들 수 있을까요?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며칠전 신문을 보니까, 죽은 지 열흘이 된 어머니의 팔에 누워 거의 죽어가는 어린 아이가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린 아이를 두고 죽어야 했던 그 어머니는 얼마나 누군가의 관심을 애타게 기다렸을까요? 그 어머니는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요? 관심이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을 향한 관심은 살벌한 마음, 황폐화된 마음을 좋은 옥토로 만들어줍니다.

이정희 집사님의 간증이 생각납니다. 9년 전에 자기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성격이 못되었든지 그녀만 가면 싸움이 나고 난리가 났습니다. 온 집안이 그녀로 인하여 날마다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남편이 집을 복덕방에 내놓고 딸들은 천만원, 아내는 3천만을 줄테니 나가라고 했겠습니까? 그녀를 향해 이집사님이 편지를 보내는 줄 알게 되자 교인들은 술렁댔습니다. 그런 사람 교회오면 교회가 난장판 된다고 사랑의 편지를 쓰는 것조차 말렸습니다. 그러나 이 집사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 두달만 보낸 것이 아니라 2년 반 동안 보냈습니다. 그 동안 그분이 당한 수모는 많습니다. 성북교회만은 절대 안간다고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당신의 편지를 보니가 어떤 사람이 내 사정을 낱낱이 고하는 모양인데 누구냐고 닥달하는 봉변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이혼직전에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교회 부엌에서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신실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하나님의 복음을 영접하게 하였습니까?
‘아하, 나도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구나.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바로 이 마음입니다. 이제 그녀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크고작은 그릇들을 씻으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답니다.
주여, 나의 이런 큰 죄를 용서하소서.
주여, 나의 이런 더러운 죄를 용서하소서.
주여 나의 이렇게 엉겨붙은 죄를 보혈로 정케 하소서.

누가 이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까? 이 정희 집사님의 기도와 인내에 넘치는 봉사와 관심이 그녀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누가 완악한 사울의 마음을 옥토로 바꾸었습니까? 스데반은 순교하고 있었지만, 사울과 같이 완악한 돌짝 밭을 하나님의 오른 편에 서 계신 주님께서는 옥토로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누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까?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관심해도 하나님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우리의 관심이 사람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감격적인 일입니다.

3.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主)

예수님은 그분의 생애에서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에게 분명히 ‘주’라는 정중한 칭호로서 환영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지상의 예수님을 주! 라고 불렀습니다. 주인이란 말입니다. 제자들도 공경하는 주로 불렀음 ‘주께서 쓰시겠다 하십니다.’  종들은 주께 속했습니다. 우리는 ‘주께 속한 자들’입니다. 초대 기독교인 공동체는 예수님을 ‘우리 주’님으로 고백했습니다.

고전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영광 중에 주권자로 오실 부활의 예수님’을 초대교인들은 주인으로 대망했습니다.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마라나 따)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크리스챤이란  ‘주 예수 X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신 자 안에서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시는가?

1]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룸

롬10: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2]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심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3] 삶에서 승리를 주심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공동체는 예배 때에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그분을 만나는 것이 옳습니다. ‘주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실존이 바로 ’주‘와 종’의 관계 속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 이래 하나님의 행동을 통하여 주가 되셨으며 이러한 주의 지위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 온 세상과도 관계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인간 예수는 이제 하나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가 굴복해야 하는 하늘의 주가 되십니다.”

그리스도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고유명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빌2:0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왜입니까? 그리스도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때문입니다.제사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 저는 ‘이슬비전도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핵심 중 하나는 ‘여리고작전’입니다. 그 여리고는 굳게 닫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을 다스리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주인이기를 원합니다. 우상 섬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여리고를 무너뜨리십니다.

수6:0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0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0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0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0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그리하여 온 천하에 하나님께서 이땅의 진정한 왕이시오, 주인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저는 이 작전을 살펴보면서, 오늘 바로 나의 옛사람이  여리고 성과 같은 존재였음을 보게되었습니다. 죄 아래서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세상 것들을 바라보고 세상 법칙대로 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는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나에게 말씀을 주시고,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셔서, 나를 점령하셨습니다.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이 교회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점령하시고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주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그리스도가 되시길 원하십니다.
나아가 주님은 우리 주위 사람들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굳게 닫쳐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성령의 사람을 세상은 두려워 합니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잠급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믿음없는 사람들을 맡기십니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노라.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였습니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0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그 온 백성을 몰살시키는 대신 예수님 자신의 몸을 내놓았습니다. 자신이 무너지시고, 찢기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에게 새롭고 산 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무장한 군대를 앞세우는 대신 사랑의 봉사를 앞세웁니다.

할머니 한분이 서울 목동에 사는 아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늘 수고를 같이 나눕니다. 마늘도 까주고, 김치도 담궈주고, 말벗이 되어줍니다. 그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이 할머니의 사랑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를 사랑하고, 그 할머니를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그 할머니의 신세를 톡톡이 본 아주머니 한 분이 그 할머니의 손에 돈 얼마를 꼭 쥐어주었습니다. 고마워서 용돈에 보태쓰시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극구 사양했습니다. 할머니는 자꾸만 권하는 아주머니에 말했습니다.
“아들이 주는 돈만으로도 용돈은 충분해.
정 그렇게 미안하면, 교회 한 번 나와.”
그 할머니의 사랑의 봉사는 수십명의 닫쳐진 사람들의 마음문 빗장을 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수많은 여리고성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양각나팔 소리도 한몫을 하였습니다. 이는 성도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데는 누군가의 중보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자기 가정의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데에는 누군가의 중보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둘째날 이정희 집사(성북교회 집사, 고 김재준 목사의 며느리) 간증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30년이 다된 교회가 두동강이 났습니다. 온 교우들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수6:0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기도도 없고, 주를 위한 열심도 없는 무너진 교회에 주저앉아 빗물과 눈물을 분간 못할 만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자들 9사람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7/9가 돌아왔고, 여기서 힘을 얻은 이집사는 매주 50통씩 사랑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일년만에 교회는 온전히 회복되었다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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