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기오 베스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당시 유명한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Antiq, XX 8:9)는 그가 전임자나 후임자에 비해 성실하고 유능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총독으로서 공정한 통치를 하려고 애썼습니다. 벨릭스에 비해 자기 구역의 강도들을 제거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 베스도 총독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1 베스도가 도임한 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삼일 후에'라는 표현은 제3일째를 가리키는 유대적 어법입니다. 그러니까 베스도 신임 총독은 부임한 다음 날 하루를 쉬고 사흘째 되는 날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입니다. 새로운 곳에 처음 부임한 베스도로서는 자기 관할 구역의 실태를 하루라도 빨리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담당한 지역의 유지들과 친밀한 관계를 여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유대의 수도이자 종교적 중심지였으므로 그곳부터 방문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무에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2] 베스도는 유능한 사람입니다.
대제사장들 이하 산헤드린은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바울을 죽일 수 없으므로 불법적으로 살해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새로 부임한 베스도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을 악용하여 다시 바울에 대한 재판을 청구하되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열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올 경우 자객을 매복(埋伏)시켰다가 중간에서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유능했습니다. 그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인간적 우호와 행정적인 일의 처리를 구분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첫째,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금되어 있는 만큼 그가 도주할 염려는 없다.
둘째, 베스도 자신이 '미구(未久)에' 가이사랴로 떠나갈 것이므로 굳이 바울을 불러 올릴 필요가 없다.
베스도는 그들의 재판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중 책임있는 대표자들이 가이사랴에 내려가서 소송을 하라했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바울을 호송해오자면 여러 면에서 번잡스러우며 또 로마 시민으로서 가이사의 법정에 구류되어있는 자를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에 데려와 재판한다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베스도의 신중한 판단으로 바울은 다시 한번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된 셈이다.
이를 통해 볼 때, 베스도는 유능한 사람입니다.
3] 베스도는 법에 공정한 사람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행25:15 ]
유대 지도자들의 억지 주장과 총독 베스도의 법적 공정성이 대조적입니다. 로마의 사법 관행은 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며, 피고는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었습니다. 베스도는 사사로운 감정에 매이지 않고(3절) 법을 준수함으로써 로마법의 정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스도의 진술은 그가 법에 의해 직무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한 사람인가를 말해 줍니다.
또한 베스도는 재판을 신속하게 열었었습니다(6절). 그는 재판을 지연시키면서 직무를 유기(遺棄)하거나 뇌물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하였습니다 전임자인 벨릭스의 우유부단한 처사와 대조됩니다(24:22).
그러나 베스도 인생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베스도 인생에는 하나님 경외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베스도 인생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좋은 가지일수록 줄기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으면 인생에 열매가 많습니다. 결론이 좋습니다. 베스도는 생각할수록 아까운 사람입니다. 그 좋은 성실이, 유능함이, 공정한 법 집행이 믿음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역사에 참으로 의미 있는 열매를 남겼을 것입니다.
2. 여론을 중시하는 정치가였습니다.
0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여론을 무시한 채 통치하다가 로마정부로부터 소환(召還)되었습니다. 그의 소환 이유에 대해서는 가이사랴에 있었던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의 내전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즉 당시 가이사랴에 있었던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는 가이사랴 주도권 장악을 놓고 분쟁이 있었습니다. 이 분쟁에 벨릭스가 개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되고 투옥당하였습니다. 재산을 약탈당했습니다. 여기에는 벨릭스의 사리 사욕과 잔인성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표를 파견하여 강력한 항의를 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끝내는 소환되었습니다. 그는 소환되어 엄한 형벌을 받아야 했으나 그의 형 팔라스(Pallas)의 중재로 형벌을 면하였습니다(Josephus, Wars II;Antiq.XX).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여론을 무시한 통치자입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전임자 벨릭스와는 대조적입니다. 여론을 중시하는 정치가입니다. 비록 식민지 백성들이지만 그들의 의견을 들을 줄 아는 통치자입니다. 식민지 백성들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는 정치를 합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도 지혜롭게 합력합니다. 아그립바 왕의 명성과 권위로 보아 바울에 관하여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판단하고서 바울이 겪은 사건의 줄거리를 아그립바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스도가 자신은 유대의 종교적 배경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으므로 바울에 대한 심문을 아그립바에게 일임할 정도로 현명한 판단력을 가졌습니다.
베스도는 황제에게도 지혜롭게 충성합니다. 천부장 루시아가 벧릭스에게 써보낸 것과 같은(23:26-29) 애매 모호한 조서(調書)를 올려보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합리적인 조서를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보면, 베스도는 아래로는 여론에 민감하고, 옆으로는 동역에 능하고, 위로는 지혜롭게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여론과 사람만 따르다가 진리를 놓쳤습니다.
잠1:0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그의 성실과 유능은 한계가 있습니다. 성실과 유능함으로 법에 공정하려고 힘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죄한 사람 바울 사도를 여전히 불법으로 감금하고 있습니다.
여론에 충실하고 아그립바 왕의 경험을 얻어 바울을 재판하려고 힘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유대 지도자들의 여론을 의식하다 보니 바른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원고측과 피고의 진술을 다 들은 베스도는 즉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소송을 제기했던 유대인들의 고소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되었고(7, 8절), 따라서 바울에게 무죄 선언을 한 후 즉시 석방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다시 심문을 받겠느냐고 묻습니다. 베스도가 이런 제의를 하는 것은, 만약 그가 바울을 석방할 경우 유대 지도자들의 반감을 살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부임(赴任) 초부터 유대의 지도자들과 부딪쳐 그들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면 그의 통치는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총독 관할 지역의 주민들이 총독에 대한 불평을 황제에게 고할 수 있었고, 그럴 경우 고발을 당한 총독은 정치적으로 치명타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베스도는 이런 경우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진 여론 존중이란 무엇입니까? 여론이 분명히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까지 죽이려는 불의를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 여론이 무서워서 한 사람의 바른 사도가 미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면, 그가 가진 여론 존중이란 무엇입니까? 베스도는 여론만 따르다가 진리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의 마음은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즈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리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론은 늘 변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영원합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 시대에는 지구가 온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여론이었습니다. 로마 교황까지 지구가 둥굴고, 돌고 있다는 갈릴레오의 주장을 묵살했습니다. 재판을 통해 생명을 담보로 그를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 교황은 공식적으로 로마 카톨릭의 오류를 시인했습니다.
여기서 여론의 귀재 베스도는 여론을 그토록 의식하면서 살았지만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여론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는 참으로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3. 베스도는 기회를 받았습니다.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한 해는 58-60년경이었습니다. 62년경 사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소중한 지역 팔레스타인의 총독 직분을 허락하셨습니다. 많아야 4년이란 기간에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으셨습니다. 베스도는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영적으로 무지하였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이 예수님께 '미쳤도다!'고 소리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야기하였지만 그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문외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론지었습니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베스도는 바울과 같이 희랍의 철학이나 당시의 최고 학문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베스도의 생각에는 바울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그토록 몰두함으로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민족적 차원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게끔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Bruce). 바울이 전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바울이 너무나 공부를 많이 해서 정도를 넘었나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이는 베스도가 영적으로는 무지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베스도의 영적 무지 때문에 바울이 미친 것으로 생각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바울의 전폭적인 충성은 가이사에게 충성하고 있는 자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습니다. 로마에 대한 철저한 헌신자 베스도에게는 하나님나라의 선포자, 바울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베스도는 복음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도 영안이 닫힌 베스도에게는 무용지물입니다. 구원받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구원의 역사에 쓰임 받을 길도 놓쳤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자기들의 삶 속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베스도에 있어서 이런 바울은 예수님께 미친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 빠진 사람입니다. 베스도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이 바울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나사렛 예수님이 죽으셨건 살으셨건 그 사건이 바울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베스도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기 일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건이 바로 나를 위한 일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0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요3:16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건이 바로 나를 위한 일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며칠 전, 새벽 기도를 드리려고 오는데 온통 길이 막혔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자기 차에 사람이 치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집에까지 온 것입니다. 끌려오던 사람이 죽어가면서 얼마나 외쳤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귀가 쇠한 할아버지는 듣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끔찍한 교통 사고가 났습니다.
이런 사건을 들을 때, 우리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훨씬 조심해서 운전을 하게 됩니다. 더 살피고 운전합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에게 일어난 일은 결코 작은 일이라도 상관이 있습니다. 부모가 하는 일은 자녀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 외아들을 주신 일은 자녀된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자녀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날 위해 행하신 일과 연관하여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베스도의 실패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무관한 생을 살았다는 점입니다. 자신에게 자리를 맡기신 하나님의 기대를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 구원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영원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붙들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붙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영적으로 무지했습니다.
01 베스도가 도임한 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0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0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0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05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아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0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0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 서서 여러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08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0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 10 바울이 가로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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