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예수님의 부활을 주장한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2000년 전 가이사랴에서 열렸던 사실을 아십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 부활을 주장한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어떻게 열리게 되었는가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신문소'(23절)라는 곳이 바로 공개적으로 청문회를 공청하는 공청실(公聽室)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 본문에서 베스도가 진행한 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바울의 항소가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재판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없습니다. 로마에 가서 황제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대신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이 청문회에 가이사랴 최고의 권력자들과 실력자들의 위세와 화려함을 갖추고 청문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맨 먼저 입장합니다. 군의 지도자들인 천부장들이 입장합니다. 성중의 유력 인사들이 뒤따라 들어옵니다. 이러한 고위층 사람들의 참석은 청문회의 권위를 말해줍니다.
청문회의 목적(目的)은 '황제께 보고할 만한 확실한 죄목이 바울에게 있느냐!'를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임을 베스도가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청문회의 주제(主題)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들 앞에 서 있는 바울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입니다. 엉뚱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다시 한번 '예수라 하는 분은 살아 나셨다!'는 복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주께서 처음 그를 찾아 오셔서 하신 말씀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9:15)
'예수라 하는 분은 살아 나셨다!'는 바울을
1. 유대인들은 정죄하였습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15)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24)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는 바울을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정죄하였습니다.
송사내용은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부활에 관해서는 바리새인들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만큼은 그들을 포함한 유대교 지도자들 전체가 기를 쓰고 반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경우에도 종교적 문제로써 정치적 올가미를 씌우고자 안간힘을 썼습니다(눅 23:4,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단지 바울을 고소만 한 것이 아니라(2절),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유죄 판결을 요구했습니다.
유대의 모든 무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는 바울을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바울이 '살아나셨다!' 주장하는 '예수님' 을
2. 베스도는 죽었다 ale고 있습니다.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베스도 총독은 로마인의 특성이라 할 법적 공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억지 주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의 사법 관행을 따라 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습니다. 피고로 하여금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부여했습니다. 베스도는 재판을 신속하게 열었습니다(6절). 그는 재판을 지연시키면서 직무를 유기(遺棄)하거나 뇌물을 기대하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하였습니다. 베스도는 사사로운 감정에 매이지 않고(3절) 법을 준수함으로써 로마법의 정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로마인입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볼 때, 로마인들이 가진 한계를 드러냅니다.
1] 바울을 처벌하자니 로마법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력한 산헤드린의 의원들이 바울을 고소했을 때,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명망으로 보아 베스도는 필시 바울이라는 자가 상당히 중대한 악행을 범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스도의 짐작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로마법에 의해 유죄에 처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7절).
'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베스도 자신이 말한 대로 부활을 믿는다고 해서 유대인 지도자들처럼 바울을 범죄자로 정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로마 법정에서 이러한 문제로 유죄에 처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법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베스도는 그의 로마법 정신을 따라, 바울의 무죄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천부장도 그러했고(23:29), 벨릭스도 마찬가지였으며(24:22, 23), 지금은 베스도까지도 바울의 무죄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2] 바울을 석방시키자니 여론이 두려웠습니다.
무죄하면 석방해야지요. 그게 로마법을 따르는 바른 관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석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법과 양심을 따라서 석방시키자니 여론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민심을 바로 추스려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로마 정부에 충성을 하도록 해야겠는데, 여론과는 정반대로 바울을 석방해 버리면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날 것은 본인이 더 잘 아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3] 여론을 따라 유대인들에게 바울을 내어주려 했더니 로마 시민인 바울이 상소를 했습니다.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고육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종교에 관한 사건이니까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의 재판을 받게 해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심도 추스리고 법도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으면서도 유대인들이 원하는 제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여기에서 전형적인 로마인 베스도의 한계가 다시 한번 노출됩니다. 무죄하면 석방해야지요. 법은 좋으나 그 법을 따르지 않고, 결사적으로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 여론을 계산하는 것은 로마인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베스도 안에서 무죄로 선언하기를 원치 않은 심리를 파악한 바울은 즉각 로마 황제에게 항소를 하였습니다(11절). 베스도는 그것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4] 로마 황제에게로 보내자니 상소할 혐의가 없습니다.
로마 시민인 바울이 상소를 했으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바울을 최고 법정인 로마에 보낼 때 함께 보내야 할 혐의 사실이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황제가 보아서 재판의 필요성을 인정할 만한 상소(上訴) 재료도 없이 바울을 올려 보낸다면 그에게는 무능력가라는 낙인과 문책이 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베스도에게는 또 하나의 난관이 생긴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베스도의 형편을 간단히 정리하여 봅시다.
1] 바울을 처벌하자니 로마법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2] 바울을 석방시키자니 여론이 두려웠습니다.
3] 여론을 따라 유대인들에게 바울을 내어주려 했더니 로마 시민인 바울이 상소를 했습니다.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4] 로마 황제에게로 보내자니 상소할 혐의가 없습니다.
분명한 죄목도 없이 사람을 로마 황제 앞에 세우는 것은 그가 충성하는 로마인의 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황제에게도 그의 무능을 고백하는 이성이 없는 일입니다.
26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여론과 법, 양심과 체면, 이런 것들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로마인 베스도 총독의 한계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상소(上訴) 재료를 찾기 위하여 이 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입니다. 아그립바의 심문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26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로마인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로마법이 아무리 훌륭하고, 로마 관원이 아무리 유능해도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인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는 롦1:13-15에서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3. 아그립바 왕(2)은 들을거리로 생각했습니다.
22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아그립바 왕이 누구입니까?
헤롯 대왕은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듣고 불안을 느낀 나머니 베들레헴의 어린이들을 살해한 장본인입니다.
그 아들 헤롯 안디바는 불의한 결혼을 지적하는 세례 요한을 살해했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아그립바 1세는 헤롯대왕의 손자로 12제자 중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베드로를 옥에 가둔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었다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 급사했습니다.
본문의 아그립바 2세는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자 헤롯 대왕의 증손인 '마르쿠스 율리우스 아그립바 2세'(Marcus Julius Agrippa II, A.D. 27-100)입니다.
그는 어려서 로마의 글라우디우스(Claudius)황실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의 부친처럼 친로마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A.D.44년 그의 아버지가 별세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토를 이어받아 다스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틴은 로마 행정관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A.D. 50년경에 글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아그립바 2세는 갈기스(Chalcis)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팔레스틴의 통치자로 부상되었습니다. 그후 글라우디우스는 그에게 더 많은 영토를 맡겼습니다. 빌립의 관할 지역, 아빌라(Abila), 트라코니티스(Trachonitis), 아크라(Acra)등입니다. 아그립바의 통치지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네로에 의해 갈릴리, 다리게아(Tarichea), 디베랴(Tiberias)등에 까지 확장되었습니다(Jos., Wars II). 아그립바는 매우 친로마적이어서 유대인들이 반로마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공작을 하였습니다. 66-70년에 걸쳐 있었던 전쟁기간에는 더욱 철저히 로마에 충성했던 관계로 전쟁 후 더 많은 영토를 부여받았습니다. 이처럼 아그립바 왕은 로마와의 밀착된 관계 속에서 특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로마 총독이 부임할 때마다 예방(禮訪)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직접 유대를 통치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글라우디우스 황제가 '성전의 후견인'의 자격과 대제사장의 임명 및 파면권, 그리고 성전 창고와 제사장의 예복을 관리하는 권한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에 유대 사회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 2세의 한 살 아래 누이이자 벨릭스 전(前) 총독의 처인 드루실라(24:24)의 언니입니다. 그녀는 일찍이 철학자 필로(Philo)의 조카인 마르쿠스와 약혼한 적이 있었으나 결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후에 그녀는 삼촌인 헤롯과 첫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48년에 남편이 죽자 오빠인 아그립바 2세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후 그녀는 길리기아 왕 폴레몬(Polemon)과 두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곧 이혼하고 다시 오빠에게 돌아왔습니다. 이때 이들 사이에는 근친상간(近親相姦)의 불륜이 저질러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었습니다. 70년 이후에는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Vespasian)의 아들인 티투스(Titus)와도 애정 행각을 벌였으나 여론의 악화로 끝내는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빠와 함께 베스도의 취임을 축하하러 온 지금은 아마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후 오빠 집에서 함께 거할 때였을 것입니다. 버니게의 사치와 화려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유대 전쟁의 긴장이 감돌던 시기에 그의 오빠 아그립바가 유대인들에게 전쟁을 피하도록 권유하는 순간에도 사치스럽게 치장하고 오빠 옆에 앉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살리신 사건이 '들을거리'로 끝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상사태를 선포하시고 역사에 개입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세속화된 아그립바에게는 이 역사적인 사건이 '들을거리'밖에 되지 못합니다. 이는 그의 일생일대의 비극입니다. 그에게 부활의 복음은 들을거리 이상이었습니다. 구경거리 이상이었습니다. 듣고 영접하였더라면 영생하였을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 심판이 있었습니다.
맺는말
오늘 우리들도 나름대로 고상한 삶을 삽니다.
베스도 총독만큼 지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만큼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만큼 현실에 민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바울은 성경을 통해서 중대한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 그러므로 저희가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20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의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26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27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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