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는 불신으로 흩어진 제자들의 전열을 재정비하십니다. 무덤으로 찾아온 여인들을 만나십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찾아가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다시 돌려놓으십니다. 그들에게 뜨거운 신앙을 회복시키심으로 하나님나라를 위한 부활의 증인들을 세우십니다. 이 모든 일이 극적이요, 경이의 연속입니다.
그중 가장 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기독교의 가장 악랄하고 파괴적인 적대자 바울을 찾아가셔서 그의 마음을 돌려놓으신 사건입니다. 바울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고, 그를 부활의 증인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오히려 적대했던 반그리스도의 선봉장입니다. 지금 청문회에 참석한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는가를 이야기함으로 그의 간증을 시작합니다.
1. 그때 사울은 성도를 핍박 중이었습니다.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 내면적 동기: 바울이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핍박했던 데에는 나름대로의 투철한 종교적 신념이 있었습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재판할 때, 사형에 처하는 판결에 찬성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내에 있는 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을 채찍질을 하였습니다. 예수를 부인하거나 저주하는 말을 하게 하여 성도들을 배교자(背敎者)가 되게 하려했습니다. 핍박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것은 참으로 지독한 정도였습니다. 마치 사냥감을 쫓는 자나 적을 섬멸하기 위하여 뒤쫓는 자와 같았습니다. 얼마나 열심이 있었는지 비교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려했던 유대인들을 능가하였습니다.
2] 외적 동기: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핍박할 수 있었던 것은 사울이 이방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대제사장에게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제사장은 이방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 또한 중요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발본 색원(拔本塞源)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바울에게 '권세와 위임'을 맡겼습니다.
아무튼 그는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였습니다. 기독교인에 대한 사울의 잔혹한 행위를 심리는 당장이라도 '살해'할 것 같은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 사울의 호흡이 살기와 위협의 숨소리로 들릴 만큼 박해가 잔인했습니다. 사울 자신은 박해 행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사울이 이와 같이 죄인 되었을 때에
2. 부활하신 주께서 사울을 찾아오셨습니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아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부활을 믿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꼭 증인으로 살아야 할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불신자 중에서는 가장 선봉에 선 사울을 만나셨습니다. 이 한 사람 바울을 지목하여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성난 황소와 같은 사울을 꺾어 주님의 일을 맡기시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사용하실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1] 이 사건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날의 중간'(in the middle of the day), 곧 오정쯤이란 공개적인 시간을 사용하셨습니다. 공개채용이었습니다. 팔레스틴의 정오는 매우 무덥기 때문에 대개 이때쯤이면 일손을 놓고 휴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일을 위해 강행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사용하신 또하나의 방법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내리비추었습니다. 어떤 땅의 방법이 사울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힘으로 할 수 없고 능으로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기에, 본 구절은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초자연적 개입이 일어난 것입니다.
'빛'이 22:6에서는 '큰 빛'이라고 언급되고 26:13에서는 '해보다 더 밝았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해보다 밝은 큰 빛이십니다. 사울이 핍박했던 그리스도는 해보다 밝은 큰 빛이셨습니다.
3] 그러나 그 방법은 온유하고 깊은 사랑이 담긴 방법이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사울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음성은 분명히 애정이 어린 음성입니다. 아브라함(창 22:11), 모세(출 3:4), 사무엘(삼상 3:10), 시몬(눅 22:31)을 부르신 것처럼 분명히 애정이 어린 음성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두 번씩 불렀던 경우는 이는 부르는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4] 잘못된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일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울의 확신이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빛의 증인들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이 당신과 동일시(同一視)하는 존재입니다. 성도들이 당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늘 함께 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해보다 밝은 큰 빛이 제자들의 고통을 아시고 사울을 찾으신 것입니다. 일찍이 주님께서 성도들과 항상 함께 있었다고 약속하셨던 바의 성취입니다(마 28:20).
5] 불순종의 고통을 자세히 알려 주셨습니다. '가시채를...고생이니라' 이 말은 헬라와 라틴 세계에 널리 알려진 속담과 같은 것으로 본래적 의미는 '신을 대적하는 행동이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농경 문화에 배경에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시채'는 끝에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채찍을 가리킵니다. 밭을 갈 때 소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이 가시채로 때립니다. 만약 매를 맞은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이 가시채에 찔립니다. 반항하면 할수록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여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 속담은 유대교 내에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솔로몬의 시가 16:4) 감히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그 정해진 섭리를 거역했던 바울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을 꾸짖으신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박해하다가 도리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 역사에 의한 것임을 이 속담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시채는 순종을 끌어내는 도구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주인이 필요해서 마련한 도구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사명을 새롭게 하시는 도구입니다.
6] 자아가 무너진 자리에게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나는...예수라. 본 절의 헬라어 본문에는 복음서에서 예수의 자기 선언의 한 양태인 '에고 에이미'(*)가 언급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선언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를 70인역(LXX)이 '에고 에이미'의 문장으로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에고 에이미'를 사용하심으로써 구약에서 모세가 만난 그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기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3. 주께서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주님께서 왜 그를 찾아 오셨습니까?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함입니다. 부활을 선포하는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지금 약속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손발이, 하나님의 입이 될 수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 가능합니다. 주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마른 뼈들이 살아나고 군대를 이기기지 합니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는 말씀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로 서라는 것입니다. '네 발로 서라'는 이 말씀은 에스겔과 예레미야가 소명을 빋을 때를 상기시킵니다.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0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겔2:2-3)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0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 1:7-8)
뿐만 아니라 바울의 소명 내용은(18절) 또한 사 42:6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의 소명과 유사한 면을 보여줍니다. 본문에서는 '아나니아'에 대한 이야기가 생략되고 대신 아나니아를 통해 받은 소명에 관한 이야기를 바울이 직접 주님으로부터 들은 것으로 진술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불가항력적인 주님의 부르심에 바울이 어떻게 부르심 받았는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부르신 목적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나를 본 일(부활)...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을 증거 하게 하려함이었습니다. 주께서 바울을 부르신 것은 그를 일꾼으로 삼아 보고들은 바를 증거 하게 하려함이었습니다. 여기서 '나를 본 일'은 지금 다메섹에서 경험한 것을 가리키며, '장차...나타날 일'은, 앞으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보여질 것(16:9, 10;18:9;22:17, 18;23:11;27:23; 고후 12:1-4, 7)을 가리킵니다. 이는 바울이 두려움과 외경심에만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주께 받은 사명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가도록 명령받았음을 시사합니다
2] 이방인들이 어두움 가운데서 눈을 뜨게 하여...빛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하려함입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 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사42:5)
빛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종이(사42:6) 어두움에서 헤매이고 있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여 빛의 세계로 인도해야 하듯이 바울도 사람들의 소경된 영안을 뜨게 하여 죄악과 방탕한 어두움의 생활에서(롬 1:24;엡 5:18) 벗어나 빛을 발견케 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요 8:12;요일 1:5). 사단의 권세에서, 흑암의 세계에서는 죄의 지배를 받으나 하나님의 지배 아래서는 죄사함을 받고 그의 자녀로서 하나님나라의 기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코 자의적인 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사명임을 깨달았습니다(렘 20:9). 그가 그리스도인 된 것이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진 것처럼(13-18절), 복음을 증거 하는 것도 거역할 수 없는 소명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의 본 바를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셈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의 본 바를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그의 삶을 불가항력적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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