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7 March 2015

행26:19-32 참되고 정신차린 말

들어가는 말

어떤 대사 한 분이 근무를 마치고, 카지노에 드나들다 많은 돈을 잃고 교민으로부터 6천을 빌려쓰고 했다가 결국 대사직에서 면직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대사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인데 카지노를 왜 드나들며 교민들에게 돈을 빌려 카지노를 할 수 있느냐는 질책으로 보입니다. 대사다운 대사를 필요로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대사를 만납니다. 바울 사도, 그는 참되고 정신차린 말 곧, 복음을 힘있게 증거 합니다. 자기의 일신상 안전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1.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비록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나라의 대사로서 중심을 지켰습니다.
자기가 받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코 자의적인 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바울은 압니다.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역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만일 그가 자기의 본 바를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셈이었습니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그가 그리스도인 된 것이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13-18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음이기 때문에 자기 사역의 중요하다고 힘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청중들을 이해시키자는 논리가 아닙니다. 듣는 사람들이 옳소! 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그의 삶을 불가항력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강하심을 인정했습니다. (고전 15:43)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자신의 죄악됨과 하나님의 거룩하심(딤전1:15)에 대해 말할 수 있었습니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에 거스를 수 없는 많은 진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이런 진리가 중심을 이룹니다. 삼위일체의 진리가 그 하나입니다.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은 이렇게 삼위일체의 진리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나 삼위로 계신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이해난망입니다. 토마스 아담스란 분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삼위일체를 연구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요
삼위일체를 믿는 것은 경건한 태도요
삼위일체를 선포하는 것은 영원한 복이다.
.....
삼위일체는 오직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성의 판단으로 그 신비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이성이 건널 수 없는 그곳을 신앙은 헤엄쳐 건널 수 있다. 이 오묘한 교리는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상 탁월한 인물이 어거스틴입니다. 그는 이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방법을 고심 중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모래에 웅덩이를 파고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떠서 그 웅덩이에 퍼 담고 있는 한 소년을 보았습니다.
"바닷물을 전부 이 웅덩이에 담으려구요."
그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비로움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하려는 것과 같구만."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삼위일체를 이해시켜주면 예수님을 믿겠다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장님인 사람에게 초록색을 설명해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인간이 똑똑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만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제자입니까?'라는 책의 저자로도 유명한 후안 까를로스 목사님은 게릴라들이 교회를 짓밟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교회를 떠나느니 차라리 죽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은 늘 이렇게 듣고 삽니다. 거스르지 않고 받아서 양식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복음을 그대로 받아 영원한 예정(豫定)을 믿었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롬 9:19-24;엡 3:9-11). 사도 바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복음을 그대로 받아 회개의 복음을 외칠 수 있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방향이 있습니다. 진리를 따르고, 사랑하며, 선교에 동참하는 300명의 기드온 용사를 키우는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2. 회개의 복음입니다(20).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주실지라도 그 말씀대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회개의 촉구는 가장 기본적인 사역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마 3:2)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02 `회개하라 !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 하시더라(마 4:17)

초대교회의 사도들도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20)


이로 보면, 회개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귀한 성전에 성전의 주인 되신 주님을 모셔들이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릇된 행실을 중지하고 나아가 삶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18절) 옮겨가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는 말씀이 주시는 표현처럼 마 3:8의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갈 5:22, 23). 진정한 의미에서의 회개는 그 열매로써 증거된다 하겠습니다.
회개를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害)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9-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회개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교회들이 이 회개를 바로 외친다면 순교가 일어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했던 보다 궁극적 이유는 그가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에게나 회개하라고 했다면 문제 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한 까닭에 그는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22:21,22). 유대인들의 배타적 선민 의식을 잘 알고 있던 아그립바는 바울의 소명 즉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회개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유대인들이 왜 그토록 바울을 죽이려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교도소나 범죄가 득실거리는 거리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쳐야 옳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가장 고상하고 잘 믿는다고 기고만장한 유대인들을 향해 회개할 것을 외쳤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그는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처럼 유대인의 눈밖에 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이라 일컽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복음입니다(22-23).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을 전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바울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일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니라!'는 말씀대로 저주를 받아 처형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그 저주받은 예수를 살아났다고 전하고 다니면서 그리스도라 하니 분노가 치솟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이 분노가 결단난 것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참으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나서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대한 생각을 온통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예수님은 결코 저주를 받은 분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가 나무에 달린 것은 다른 의미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다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과는 상이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똑같아 보이는 성경말씀도 믿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예언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야 한다는 선지자들의 예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 - 사 53장의 고난 받는 종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한 것인데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메시야에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는 의미에서의 메시야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영웅적 존재로서 옛 유다 왕국의 영광을 재건하여 하나님의 공의로 통치할 지상적. 정치적 인물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죄로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죄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인하여 대신 고난을 당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다시 살아나실 것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라(시16:10)"

사두개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부활을 믿고 있었으나, 메시야가 고난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자처럼 죽으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메시야가 죽었다가 첫 번째로 부활하리라는 생각 역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예수는 메시야로서 고난을 당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 다윗을 통해 주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기로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지성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베스도 총독은 외쳤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도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당시 아그립바 왕은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짓이라고 질책했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와 아그립바에게 침착하게 전했습니다. 이제 역사는 말합니다. 그가 전한 말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던 것입니다.

25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이 부활의 메시야가 이방 세계를 포함한 만방의 빛이 되셨습니다. 참 빛으로서의 메시야는 유대 민족은 물론이고 모든 민족에게 빛이 되셨습니다. 빛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을 증거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어두움이 아니라 밝음이시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되십니다. 바울의 왕을 향한 선포는 옳았습니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네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네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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