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계 목사님께서 혼절하셨습니다. 심장에 위기가 왔기 때문입니다. 응급차에 실려 가셔서 병원의 많은 치료를 받고서야 겨우 제정신이 돌아오셨습니다. 함께 중국에 가시려던 계획도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한국 할머니 한 분이 사흘만에 퇴원하는 계 목사님께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셨습니까?"
".............. ."
계 목사님도 사모님께서도 유구무언입니다. 안녕하다고 예! 하자니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셨고, 사연을 설명하자니 길고. 불과 며칠 사이에 생과 사를 오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란 항해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항해를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과 일행이 되어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목적지는 로마입니다. 그 도중에 겨울은 닥쳐오고 풍랑이 일어납니다.
주님 없이 항해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믿고 넓은 길을 가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러나 주의 길을 따라 좁은 길을 가던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들을 구합니다.
우리 인생이란 이런 항로와도 같습니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참된 선장이신 주와 함께 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께서 함께 하시면,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머물 수 있습니다. 주와 함께 머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께서 함께 하시면, 좁은 길도 갈 수 있습니다.
주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함께 하시면,
주의 음성을 듣고 전할 수 있습니다.
1.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와 함께 머물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0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0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0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0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0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
무라를 출발한 배는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하다가 강한 북서풍을 만나 매우 어려운 항해 끝에 겨우 니도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고생을 하면서 어렵게 항해하여 니도에 다다랐습니다. 니도는 소아시아 서남단의 도리스 반도 서남쪽 끝에 있는 도시로 무라에서 약 223Km정도 떨어져 있어서 순풍을 등지고 항해할 경우 이틀 정도면 족히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 정도의 거리를 여러 날 걸려 힘겹게 갔습니다.
갈 길은 멀고, 풍랑은 앞을 가로막습니다. 로마를 향한 백부장의 마음은 급한데, 배는 뜻대로 잘 나아가지 않습니다. 풍세가 허락치 아니하니 배는 더디 갑니다. 여러 날 만에 간신히 , 사람의 모든 지혜와 힘을 동원하여 정말 간신히 미항이란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지금은 주와 함께 머물러야 할 때입니다.
이쯤 경고를 받았으면 깨달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중에 지긋이 누르시는 경고가 있습니다. 자연 현상을 통해 주시는 경고가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할 때, 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발람이 나귀의 경고를 무시할 때, 영원한 거짓 선지자의 치욕에 떨어집니다.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막고 또 막으시는데 구태여 우겨서 가려 하느냐! 주와 함께 머무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무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이것입니다.
미항(美港 칼루스 리메나스)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항구'라는 뜻인데 이곳은 지금도 동일한 뜻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Limeonas Kalous). 이 미항은 그레테 섬의 중간쯤에 위치한 남해안의 자그마한 만(灣)으로 오래도록 머물어 살만한 곳은 못됩니다. 그러나 얼마 동안 풍랑을 피할 수 있는 항구입니다. 평생을 말뚝박고 살기에는 적합치 않으나 단기간 지내기에는 그런 대로 구색을 갖춘 곳입니다. 그레데섬이 충분히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일정 기간(겨울)을 머물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동한 후에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와 함께 가지만 자연조건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자연 조건은 그와 함께 동행하시는 주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이 경고한 것은 자연 조건을 통해서입니다.
0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은 이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지금은 금식하는 절기인 속죄일 입니다. 9월 하순쯤 됩니다. 이 기간은 '지중해 계절'이 몰아닥치고 심한 풍랑이 무서운 바람과 함께 몰려옵니다. 당시에는 바람의 힘을 빌어 항해하는 시절인지라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큰배라도 자연을 거스를 방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동한 후에 출발하자! 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연의 방도를 존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연법칙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자연법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지요.
낮과 밤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사시사철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평일과 주일을 주님께서 구분하셨습니다.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즈음은 유니섹스 시대를 지향하는 모습을 봅니다. 과거에는 남녀가 유별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남녀가 無別합니다. 평일과 주일의 구별이 없습니다. 밤낮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른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생명을 다투는 일이나,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야 할 일이 있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일상적으로 세워주신 자연법칙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믿음을 자연과 상식을 초월해서 생각하는 발상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믿음의 표현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연의 법칙을 존중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무는 것은 결코 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름길입니다.
주님의 섭리 안에서, 그 섭리를 즐거워하며 쉼을 필요한 때에 쉬고, 쉴만한 물가에 머무르다 전진이 필요한 때 나가는 것은 지혜로운 신앙인의 방법입니다.
자연 법칙을 거스르면서 하나님께 도와주십시오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은 지금이 항해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러 차례의 여행 경험이 있었고 또한 세 차례나 파선을 당하여 위험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고후 11:25). 그 나름대로 파선하여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입니다.
바울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주를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충성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결코 목숨이 아까워서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부족해서는 더욱 아닙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열사의 사막을 대낮이라도 달렸습니다. 풍랑 속이라도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받은 교훈이 있습니다. 지금은 머물러야 할 때이다.
주와 함께 머무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무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지금은 항해를 중단하고 겨울을 지낸 후에 다시 항해를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가장 역량 있게 일할 수 있는 그 귀한 시기를 하나님은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 머무는 시기가 지나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힘있게 정진하게 하십니다. 그가 주와 함께 40년 머물렀던 광야 경험은 40년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인도하는데 적합한 경험 축적이었습니다.
요셉은 10년이 넘도록 젊은 날을 종살이, 옥살이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머무르도록 하신 보디발의 집에서, 억울하게 던져진 감옥에서 길을 열어주실 때까지 주와 함께 머물렀습니다.
다윗도 어린 시절을 푸른 초장에서 목동으로 머물렀습니다. 젊은 날은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시편 23편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곳은 광야든 목초지이든 그에게 천국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도 아라비아 사막과 고향 다소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바나바가 그를 찾으러 올 때까지 그는 10년 이상을 주와 함께 머물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디가 놀라운 목회자가 된 동기를 아십니까? 그는 한 때, 많이 지쳤습니다. 시카고에 불어닥친 화재는 그가 섬기던 교회를 깨끗이 태워버렸습니다. 맨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꿈을 가지고 뛰었지만 지쳤습니다. 그는 영국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레시의 설교초청!- 힘들게 설교. -다시 저녁 설교- 대반응?- 기도자가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때로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풀려나가지 않을 때, 안타깝지만 막으시면 주와 함께 머물 줄 아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2. 주 없이 가는 길은 잘 나가는 것 같아도 형통한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자연법칙을 무시한 것입니다.
주의 뜻에 순종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바울과 선주 선장 사이에는 견해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겨울을 이곳 미항에서 나느냐 아니면 다른 곳에서 나느냐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는 것입니다. 저들은 초라하고 불편한 미항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12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여기서 최종적인 결정권은 백부장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이 배에서 가장 높은 로마의 장교였습니다. 그 배는 로마 정부와의 계약 관계로 로마의 통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의 입장으로는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이송되고 있는 바울의 말보다는 항해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선장과 선주의 경험을 더 무겁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는 소수였습니다. 그는 죄수였습니다. 그는 경험 많은 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수를 더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주장하는 뵈닉스에는 바울이 머물자고 주장하는 미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항이 과동하기에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미항이 겨울을 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숙소를 구하기 힘듭니다. 추워서 겨울철의 거센 폭풍을 견디기에 뵈닉스 만큼 적합하지 않습니다 (Bruce, Lenski) 몇 개월을 즐기기에는 뵈닉스가 좋습니다. 겨울 한 철 즐겁게 보내기에 좋은 뵈닉스를 눈앞에 두고 미항에서 무슨 재미로 답답하게 지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1]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항해를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 부칩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가 아닌 다수의 사람은 아무리 다수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가 있습니다.
3] 편하고 안락한 장소를 찾아 항해합니다.
곽선희 목사님께서 이 부분을 설교하시면서 흥미 있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의 폐암 발병률이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보다 60배가 높다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함께만 살아도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보다 두 배나 더 폐암 발병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여전히 담배를 피우면서 건강을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얘기지요. 그러나 그는 기도하는 것보다 의사들이 알려주는 경고를 먼저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경고를 받습니까?
주 없이 가는 길은 잘 나가는 것 같아도 형통한 길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의 뜻에 순종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3.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히 경고하셨고 미항에 머무르도록 기회를 주셨지만, 제 고집대로 부득불 뵈닉스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그 삯은 사망입니다.
주 없이 가는 길이 처음에야 잘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역시 우리 결정이 옳았어!' 했지요. 그러나 그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바다에 던져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사망의 그늘이 저들을 완전히 덮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는 죄의 삯인 사망이 이른 것입니다.
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우시면서 경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자주 경고를 주십니다.
눅23:37 예루살렘아 ! 예루살렘아 !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이런 중대한 경고를 유대인들은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리고 구원의 '메시야'는 기다린다는 이 모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는 좁은 길은 가지않고 천국은 가겠다는 이 모순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이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길이라는데 말입니다. 넒은 길을 통해서 천국을 가겠다는 이 고집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이런 확신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서운 심판을 불과 40년도 안되어서 받았습니다. 100만명이 로마군에 의하여 몰살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경고를 그대로 믿어서 피한 믿음의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죄의 삯으로 사망만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주의 뜻에 순종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맺음말: 이제는 안심하라.
그러나 이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라면 협착한 미항에 머물러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남남 사이인 많은 불신자들에게 뵈닉스는 사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생명처럼 사랑하던 재물도, 배도 모두 잃어버리고, 끝내는 생명까지 잃어버릴 뻔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조금더 편하게 할 줄 알았던 뵈닉스엔 발조차 들여보지 못하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넓은 길을 가다가, 욕심의 길을 가다가 죄를 낳고,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그러나 하나님과 남남이 아닌 바울은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다시 제시합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고 하나님을 믿노라
한사람 복의 근원이 있음으로 인하여 저들에게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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