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March 2015

빌립 3:12-21 크리스찬이 바라보는 꼭지점

   [빌립보서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찬양]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54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들어가는 말]

    2009년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엊그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벌써 일 년 열두 달 365일이 훌쩍 지나가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의 나는 어디쯤에 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내가 좇아가는 꼭지점은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3장 16절 말씀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빌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꼭지점(골대)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는 내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다른 지체와 '보조를 맞추라'는 말씀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이청용(21세·볼턴 원더러스)이 영국 스포츠전문채널 스카이스포츠가 선정한 주간 베스트 11에 2주 연속 선정됐다.'
    이런 인터넷 신문 기사를 접하고, 도대체 어떻게 골을 넣었기에 최고의 골, 환상적인 골이란 찬사를 보내고 있는가 궁굼해서 1분짜리 동영상을 열어보았습니다.
    그가 골대가 있는 근처로 찬 공이 골대를 향해 날아가고
그곳을 향해 돌진하던 여러 선수들가운데 동료 선수가 그것을 받아
골대 근처로 대쉬하는 이청용에게 다시 리턴 패스를 합니다.
이청용은 그것을 받아
결사적으로 그를 막는 수비 선수들과 골키퍼를 살짝 피하며
골문 안으로 공을 차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골문을 향해 돌진할 때의 이청용 선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숨막힐듯이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뒤로 하고서라도
우선 운동장 안에 있는 동료 선수와 기가 막히게 호흡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좇아가는 꼭지점(목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잡힌 바된 바로 그 꼭지점입니다. 신앙인의 경주는 그 꼭지점을 향해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 꼭지점(골대)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는 내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다른 지체와 '보조를 맞추라', 다른 지체와 '일치하도록 행하라'는 말씀입니다(갈 6:16). 성도들 상호간에 성숙과 차이를 알아 서로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이 지향해야 할 꼭지점은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본문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잡으려고 좇아가고 있었습니다.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은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 없었던 그 부활이란 꼭지점에 예수님은 도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그 꼭지점 앞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때문입니다.


    2] 우리는 아직 온전한 꼭지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성도들 이미 도달한  현재의 상태는 꼭지점이 아닙니다.
며칠을 달려왔든 30년을 달려왔든 진보는 있으나, 아직 꼭지점에 도달한 상태는 아닙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를 사망의 권세가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 아직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우리를 사로 잡아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직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닙니다."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앞에 있는 꼭지점을 향해 살아갑니다.


    3] 감사한 일은 우리 성도들 앞에 도달할 수 있는 꼭지점(목표)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은 바울 사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울 사도가 체험했을 때, 그는 외칠 수 있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권세와 굴레를 모두 끊어버리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울 사도가 도달하고 싶고, 또 도달해야만 하는 꼭지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만난 그곳에서
그는 좇아가야할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른 바 회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율법주의자로서 몸부림을 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면 되었습니다.
도달해야만 하는 꼭지점을 향해 회심한 그는 주인으로 모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본격적인 믿음의 경주를 시작합니다.


    4]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이런 점에서 그에 있어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도달하기를 열망하며 믿음으로 그 부활을 좇아 달음질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좇아가노라'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말입니다.
'좇아가노라'는 말은 꼭지점을 향해 좀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강한 표현입니다.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바울의 진지한 노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꼭지점에 도달한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목적을 계속 추구하고 좇아가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윌리엄 로우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누가 가장 훌륭한 성인인가?
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인가?
금식을 많이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주기와 정절을 지키며 정의를 실현하는 지사들인가?
아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따라서 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성인이다"

    성인이란 그리스도인이 좇아가는 꼭지점 가까이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누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장미 꽃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장미꽃 가시에 찔리고서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만날 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입니다.
부활의 주 안에 있는 자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거할 때,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소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좇아가는 꼭지점은 무엇입니까?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십자가입니다.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 그리스도인이 좇아가는 꼭지점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지신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를 구원해 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꼭지점(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바울 사도는 좇아갔고, 또 우리 성도는 좇아가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2]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는 이 꼭지점은 율법을 행한다고 하여 도달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는 행위와 의식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받은 영적 은혜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극단적 완전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행위와 의식을 열심히 행한다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루어 놓은 업적들로 인해 얻을 수 상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 도달할 수 있는 꼭지점입니다.
믿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꼭지점입니다.


    4]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십시오.
지난 날 자신이 행하였던 선행이나 공로를 내려놓으십시오.
    과거 자신이 쌓아온 어떤 공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간직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의와 공로만이 우리 성도들이 잡아야 할 상입니다.

    찬송가 188장(토플래디)이 무엇을 찬송하고 있습니까?

      2.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 쉬임 없이 힘쓰고 눈물 근심 많으나 구속못할 죄인을 예수 홀로 속하네  
3.빈손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주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백성이 받을 상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5] 14절 말씀처럼 우리의 '푯대'인 십자가를 똑바로 쳐다보십시오.

우리의 푯대가 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시선을 고정시키십시오. 경주자가 달려갈 때, 푯대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삶에서 경주해야 합니다

   그곳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습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은 경주의 승리자에게 상을 주기 위해 심판관 앞에 있는 높은 단으로 올라오도록 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6] 십자가에 이르러 받을 '상'은 경주 뒤에 있을 영광입니다.
십자가에 이르러 받을 '상'은구원의 완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행하십시오.

    1988년 10월 6일. 모 제약회사 사원이었던 전용기씨가 아침 조깅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전주예수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개골 골절에 열 네가지 합병증세가 겹쳐 그는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급보를 접한 부인 성정식씨는 당시 네 살 난 딸과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을 대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병원부근에 월세 5만원의 방을 얻어 남편 간병을 시작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수십 차례씩 끓어오르는 가래를 뽑아내야 했습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갓난애처럼 기저귀를 갈아 채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목욕을 시켜야 했습니다.
급성폐렴으로 수차례 사경을 헤매는 남편 곁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했습니다.
지친 나머지 성정식씨도 쓰러져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평소 배워둔 미용기술로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받은 5만여원으로 남편의 기저귀를 샀고 약값에 보태기도 했습니다.
그러기를 5년 11개월. 너무나 길고도 고통스런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시댁식구들마저 발길이 뜸해지고, 주위에선 일찌감치 포기할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포기하고 새 출발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의사들도 희망이 없다며 소생한다해도 식물인간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정식씨는 매일같이 병원교회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피맺힌 탄원이었습니다.
    5년 11개월만에 남편이 길고 긴 식물인간의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게 되었습니다.
의식을 되찾고 잃었던 언어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담당의사들은 이것을 가리켜 있을 수 없는 기적이라며 놀라워했고, 그녀의 기도를 아는 주변에선 기도의 응답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과 정성을 지켜본 사람들은 사랑의 개가였다고 손뼉을 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좇아가는 꼭지점은 무엇입니까?

    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재림의 날 성도가 얻을 천국 시민권입니다.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의 연고지가 하늘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의 꼭지점은 하늘에 있습니다.

    2] 그곳으로부터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십니다(롬 8:21-23).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재림의 주님께서 다시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3]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갖고 있는 현재의 몸은 '낮은 몸'입니다.

    죄짓기 쉬운 욕망, 죽음, 질병, 고난등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연약한 육체입니다.

     4] 그리스도인들에게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 주십니다.

재림의 그리스도는 온  우주와  원수들,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초자연적이며 주권적인 능력을 가지시기에  마지막날 성도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인은 '낮은 몸'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으로 완전히 변화됩니다.


     5]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현재의 썩어질 낮은 몸은, 재림의 날에 주님께서 입으신 부활의 몸, '영광의 몸' 즉 '썩지 아니할 몸', '신령한 몸'을 압개 됩니다.(고전 15:42-44)

     이러한 변화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 곧 '그리스도'의 역사(초자연적인 능력)
로 이루어집니다.


    6] 재림의 날, 참 그리스도인을 구분해 주는 것은 하늘에 있는 시민권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당시 로마제국의 지경에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시민권은 아주 중요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잡혀 많은 매를 맞고 잡혀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로마 시민임을 밝힘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행22:27-29]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빌립보 시민들이 비록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로마 제국에 속해 있어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면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벧전 2:11)처럼 산다 할지라도 하늘에 소속된 시민입니다.

    7] 우리 성도들이 비록 지금은 지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므로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합당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기뻐하여야 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빌3:18]이 무엇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말세지말에는 '여러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밖에서 행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와 공로만 부각시키려 안달을 합니다.
     다시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위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바울 사도와 같은 롤 모델을 온전히 본받는 것입니다.
그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좇아가는 꼭지점이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3] 재림의 날입니다.

    이 복된 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선한 경주를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성경본문]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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