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다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성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골3:1]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성도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이 편지 서두 인사말에서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발신자 바울 자신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빌립보서를 보내는 자신의 존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바로 자신의 정체입니다.
둘째는 수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과 집사들이라 칭합니다. 수신자들의 정체성입니다.
세 번째는 축도 가운데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라고 했습니다. 축복의 정체성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부터 존재합니다.
바울 자신의 정체성도 그리스도,
수신자들의 정체성도 그리스도,
축복도 그리스도로부터라고 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en Cristo)이란 말은 바울 사도의 인생 생존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신비로운 연합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그 줄기에 붙어 있음 같습니다.
대기(산소) 가운데 사람이 생존함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는 그리스도에게 밀착된 불가분리의 생명적 관계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비로소‘성도’입니다.
여기 「성도」(하기오스)란 히브리 말 카도쉬(Kadosh)와 동의어로 대개‘거룩’(holy)이라고 번역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 뿌리부터 다르게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레위기 21장 6절에 ‘제사장’은 봉사를 위하여 백성 중에서 [구별된 사람]였습니다.
레위기 27장 30절에 십일조는 모든 생산물 중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재물]입니다.
출애굽기 26장 33절에 성전의 성소는 하나님 섬기는 장소로 모든 공간 중에서 [구별된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하나님 섬기는 백성(성민, 선민)으로 구별된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출19;6, 신7;6, 단7;2)
레위기 20장 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것으로 구별시켰습니다. 아모스 3장 2절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과 목적 중에 성별되었습니다.
신약에서 이 말은
성부 하나님께(요 17:11),
성자 예수께(행 2:14),
보혜사 성령님께(롬 5:5),
세례 요한에게(막 6:20)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롬 7:12)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박해자였던 사울은 ‘성도’들을 잔해하던 자였습니다.
베드로는 룻다에 사는 ‘성도’(하기오스)를 방문했습니다(행 9:32).
따라서 ‘성도’(거룩한 무리)란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 신분과 삶의 내용과 목적이 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란 말이 바울 서신에 48회,
‘그리스도 안에서’는 34회,
「주 안에서」 는 50회 나옵니다.
그러므로 빈센트(M. Vincent)는 크리스천이 주 안에 산다는 것에 대해
'마치 새가 공기 중에,
고기가 수중에,
나무뿌리가 토양 속에 사는 것과 같이
크리스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받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언제나 그 생존 자체가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리스도의 능력과 보호와 축복 속에서 호흡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라도 그리스도의 은총 아래 지배되고, 되고, 보호받는 그야말로 임마누엘의 삶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이렇게 구별된 사람입니다.
‘성도’는 창세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그에게 속하였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어 가는 독특한 무리들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성화)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배와 기도와 찬미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말씀) 전파를 중심 사명으로 여깁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해 나가는 독특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으로 영접한 자는 존재 의미가 달라집니다.
[골3:10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회복하여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2. 위의 것을 추구하십시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세상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으시고 위의 세상 곧 천국에 관하여만 말씀하셨을까요?
주님께서 천국에서 오셨기 때문에 천국의 찬란하고 영화로우신 천국에 비해서 이땅은 너무나 빈약하고 초라한 곳이기 때문에 이 땅에 관심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에 비하여 이 땅에서는 너무나 짧아요. 할 일이 이 땅에서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세상일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천 년을 살아도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한 시간밖에 안되는데 그 시간 속에서 집짓고 아옹다옹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해야 될 일은 천국일 밖에 없는 것임을 아시기에 천국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일 자체가 천국이요, 축복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땅의 거짓보따리에서 축복을 추구합니다.
거지 중에 가장 불쌍한 거지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쓰레기통을 뒤져서 이것저것 모아서 보따리에 그것들을 보따리에 가득 담아서 혹시 그 보따리를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거지가 아니겠습니까? 그 보따리를. 이곳에서 저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생하는 인생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교
살면 전도하고 죽으면 천국
(최자실 목사 표어)
김남수 목사님께서 순복음 교회에서 처음 선교사로 파송을 받을 때였습니다. 순복음 교회는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사람은 미국 선교사로, 한 사람은 월남 선교사로 명을 받았습니다. 월남으로 파송 명령을 받은 선교사님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에서까지도 사람을 차별하는구나 하는 섭섭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김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나는 이미 미국을 가보았다. 그러나 별로 미국이 내 맘에 들지 않더라. 나와 선교지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는가?'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파송 교회에 요청하여 선교지를 바꾸었습니다. 자신은 월남으로 그 친구는 미국으로. 그런데 김목사님은 월남 패망으로 인해 선교지를 떠나야 했습니다. 패망의 날에 극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태국으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자녀를 낳고 미국 뉴욕에 와서 순복음 교회를 세워 성공적인 목회를 잘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그 친구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직도 한국에 머물러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서류상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모릅니다.
3.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십시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1] 한국이 요즈음 세계 제일이라는 것들이 곧잘 나타납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혼율이 세계 제일이라는 기사를 볼 때는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성경에도 이혼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믿는 자는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이혼이 금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화 율이 세계적이라는 한국이, 50000교회와 20%가까운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한국이 이혼율이 세계제일이라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오늘 말씀에 맞추어 생각해 보면, 정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2]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슬픔 중 하나는 이 세상에서 잘 사는 일에 푹 빠져서 하나님 나라 왕국개념이 약해진 것이라고 말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사실 세상이 곤고하면 곤고하기 때문에라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제 시대나 동란을 거치던 전후 세대에는 예수 천당이란 말만 외쳐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잘 살고 세상에서 즐길 일이 많고, 누리는 일이 많다 보니까 하나님 나라 개념이 약해졌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왜 가냐'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지나치게 탐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3] 중앙일보 기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두 교회가 합심하여 이런 선한 사역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교회들이 서로 합심하여 어떤 사역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런 귀한 사역을 하게 되었느냐고.
현대 교회의 건강을 염려하는 많은 분들이 교회의 거식증을 지적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이 거식증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선한 열정은 얼마든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교인이라도 빼앗아 모아서 교회 몸집을 불리기 위한 마음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뼈아픈 반성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교회가 어떻게 탐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개 교회는 너무 중요합니다.
개 교회가 잘 되어야 합니다.
연약한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특히 연약한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개교회가 하나님 왕국의식을 가지고 연합을 해야 합니다. 교회들이 연합하려면, 교회들이 탐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4] 선교를 하는 일에도 탐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선교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로 지적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선교사님들이 개인적으로 재능과 열정과 믿음이 특심하다는 보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왕국의식을 가지고 한 마음을 갖기가 힘들다는 말도 많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선교사님들이 연합 사역에 함께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왕국적인 생각을 우선시 하고, 개교회 중심적 사고를 뒤로 놓아야 합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가 이번 4월 24일에 중앙교회와 연합하여 동족을 돕기 위한 음악회를 합니다. 물론 여러분이 그곳에 참가하여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올려드리는 헌금은 동족을 방문하는 장로님들을 통해 전액 전달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깃발 아래 하나로 뭉쳐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탐욕을 내려놓은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연합 사역에 함께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연합 사역에 함께 할 수 있습니까?
이를 위해 땅의 욕심과 지체를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탐심을 내려놓으므로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가 뿐만 아니라 각 기관이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5] 기도하는 일에서도 탐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탐심을 가질 때 기도 자체가 복음의 본질적 축복에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탐심 기도입니다.
조상 고유의 기도는 귀신더러 나를 건드리지 말고 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와서도 아버지라 불러놓고 빌어요. 이방인의 기도와 같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면서 빌어요. 우리가 다분히 지상적인 것만을 탐하며 구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빌어먹는 탐심기도는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빌고 비는 빌어먹는 자식들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아시는 분이시고, 구하는 이상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중의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백합화도 기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늘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녀를 책임지시는 중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시옵소서란 말이 너무 송구해서 주시옵소서를 뺄까 기도제목으로 놓고 기도하다가
주님 주시옵소서를 빼주시옵소서 기도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김남수 목사님은 주시옵소서를 빼는 기도를 교인들에게 연습시켰답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뭐하러 왔냐?
그냥 왔습니다.
바쁜데 그냥 뭐하러 왔냐?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뭘 줄까?
됐습니다. 지금 받은 것도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이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뭘 더 달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 한 분 만으로 감사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있으면 먹고 없어도 감사하자 하였습니다.
물질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거지 보따리와 같은 것입니다.
좀더 큰 관심을 가지고 살자고 강조 합니다.
캐릭터(가치관)을 위의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로 변화하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율법에서 저주에서 속럏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주신 은혜를 받았으니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안에서 축복을 누리고 감사를 누리는 것이 가장 귀한 것인 줄 압니다.
주시옵소서란 자기 동굴에서 나와 하나님의 영적인 진리를 갈망하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김목사님의 교회관은 무엇입니까?
유람선 같은 교회 체질을 항공모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배에 탄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고 히히덕거리고 먹고 마시고 수군거리는 유람섬 같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항공모함과 같아야 합니다.
항공모함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항공모함에는 일하는 사람으로 넘칩니다.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는 목적이 지배합니다.
어떤 분이 항공모함의 유래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대포를 배에서 쏠 수 있도록 49m가 되는 큰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갑판에 포를 싣고 사용하려니 흔들거려 큰 배가 제 구실을 못합니다. 항구에 쳐 박아 놓으니 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어떤 사람이 그 포를 지우고 비행기를 실었습니다. 49m나 되는 갑판에 실었더니 위대한 군사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제 항공모함이 뜨면 육해공군이 모두 모여서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두고 말할 때, 놀고먹고 사는 유람선 교회를 지향하고, 전 교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영적 전투 대세를 갖추고 일하는 항공모함이 되어야 합니다.
월남전이 종국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였습니다. 공산군은 머물고 있던 도시를 포위하고 시시각각 그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표를 구하기 위해 헤매고 다녔지만, 한 장밖에 구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린 아기를 복중에 가지고 있던 사모님께 먼저 비행기를 타고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사모님이 떠나면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아이랑, 복중에 있는 아기 이렇게 세 사람이 살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모님은 목사님이 살아나가셔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하면서 홀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밤늦도록 서로 먼저 나가라 다투다가 결국 둘이 다 떠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힘들게 얻은 한 장의 표는 사역을 돕고 있던 현지인 영어 선생님께 드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날, 사정은 더 열악했습니다. 밤새워 폭격이 계속되었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한 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사방에서 폭탄 떨어지는 소리와 총격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공포에 가득 찬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일어나 보니 목사님이나 사모님의 입술이 다 온통 벗겨져 있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밤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목사님이 나가보니 미국 선교사님 한 분이 와 계셨습니다. 미국 선교사님들이 모두 철수하였는데, 자신은 병원을 현지인에게 인수인계하느라 아직 떠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떠나려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는데 목사님 가정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모시러 왔다는 것입니다. 공군기지로 가니 공군 전용기에 그 선교사님과 김목사님 가정을 태울 수 있는 아담한 전용기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목숨과 같은 한 장의 표를 형제에게 주었더니 하나님께서는 온 가족이 살아날 수 있는 표를 주신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는 그가 지은 「거룩한 생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상에서 짧은 시간을 살도록 하셨는데 이 짧은 시간에 영원성이 달려있다. 자기 시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내놓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상인은 없다.”
죤 웨슬레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절대로 일이 없이 지내지 말라. 그리고 하찮은 일에 고용되지도 말라.”
죤 R. 모트 박사는 하루의 반을 현재를 위해 사용했으며 다른 12시간은 앞으로 올 날들을 위해 계획을 짜는데 사용했는데 이것은 시간을 잘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어떻게 해야 오늘을 가장 잘 계획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는 태도로 기도하라.
아래 인용한 문구는 어떤 사람이 해시계에 새겨놓은 글인데 이러한 진리를 강조한다.
내 바늘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미래와 과거를 나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어두움 속에 당신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서 있다.
돌아오지 않는 선(line) 뒤로
사라진 시간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시간만이 당신의 손에 있다
현재란 그림자가 멈춘 그 곳이다.
[성경본문: 골3:1-11]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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