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March 2015

약3:1-12 하나님 자녀의 언어 회복

약3:1-12

[들어가는 말]

영국 속담에는 "현명한 자는 긴 귀와 짧은 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온전함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약3:2]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오늘 야고보서 본문은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회복하기 원하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하나님 자녀의 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말이 온전한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지요.


1. 외적 신분이 사람을 온전하게 못합니다.

[약3:1]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이란 말은 헬라어로 디다스칼로스, 오늘날로 말하면 좁은 의미에서는 목회자요, 넓은 의미에서는 교회의 지도적인 사람들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 교리도 모르고 기독교적 삶의 윤리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인 이방인들, 성경을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따라 바르게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권면하던 분들이 바로 교사였습니다.

당시 교사나 오늘날의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입니다.

선생된 자는 하나님의 복음을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 받은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할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세계를 말과 글을 통해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 직분이 세상에서는 명예로운 자리로 바꾸어지고, 많은 사람이 그 복음의 황홀함에 매료된 나머지 전하는 자리를 사모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직분은 [디모데전서4:6,16] 성도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직분을 사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그러나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복음을 바로 전해야 할 '책임'을 수반합니다. 하나님 복음을 바로 전하는 '선생'의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 복음을 바로 전해 주지 못한 선생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심판관의 대가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선생 지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만일 너를 낳고 길러주신 육신의 부모님과 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함께 물에 빠져서 죽어 간다고 할 때, 두 분 중에 한 분만 구해야 할 때, 너는 먼저 누구를 구출해야 하느냐?”
“선생님을 먼저 구해내라!”

그래서 랍비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았죠.

'선생', 곧 목회자라는 직임의 권위와 명성에 매료되어 영성이나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감 없이 어떻게든 선생이 되려하였습니다. 선생 되려는 갈망이 공동체 전반에 깔려 있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행동으로 범죄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 우리의 언어생활을 보면 범죄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음담패설을 어렵지 않게 하는 사람,
거짓말을 술술하는 경우,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며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 보이는 사람도 그 언어생활에 들어가면 경건치 못한 삶을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많은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고, 또한 자신이 말해 놓고 지키지 못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습니다.

[잠언 10:19-20]

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20.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사람 내면에 들어있는 내용은 많지 않은데 우리는 많은 말을 하려 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입술을 제어하고 말을 아끼는 자가 지혜롭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착각하지만 말입니다.

"입다"는 전쟁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 .
입다는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데 자기 무남독녀가 춤을 추면서 환영합니다. 입다는 이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옷을 찢으며 슬퍼하였지만 하나님께 입을 연 것이었기에 그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불필요한 말 한 마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의 말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잠언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왕후장상이 온전한 사람이란 표는 없습니다.
부귀영화가 온전함을 말해주지 못합니다.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중히 여길 일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두 개를 들었으면 말은 하나만 하라는 것입니다. 아마 그런 자세로 자신의 언어를 절제하고 통제한다면 그 사람은 풍성한 영성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를 듣고 둘을 말하고 셋을 말하는 걸 똑똑 하다고 생각합니다. 듣기는 하나를 들었는데 그래서 그 내면이 비어 있는데 둘, 셋, 그리고 그 이상을 말하려 합니다.

[시편 141:3]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힘으로 안되고 능으로 안되는 것이 언어를 바꾸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봅시다.




2. 좋은 언어는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좋은 장치입니다.

[약3:2]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그 사람의 언어생활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요, 인격의 표현이며, 신앙의 표현입니다. 말(언어)는 인격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말은 행동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행동하기 이전에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혼돈스럽고 어두울 때 긍정적이고 복된 말을 하면 그 말처럼 우리의 마음은 빛이 나고 정리가 됩니다.

[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는 말은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표정에 담겨진 아름다운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표현하며, 그 사람 때문에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로 성숙해 갈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복된 말을 하면서 복된 환경을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잠언 18:21을 보면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롯의 사위가 하나님의 사자의 말을 농담으로 듣다가 심판에 떨어졌습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이 너무 어렵고 고달프다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럴 줄 알았더면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함부로 말합니다. 여기에 대하 하나님 민수기 14:27,28에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대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 질 것이라" 너희가 말한 그대로 내가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죽고 싶다고 그렇게 불평 원망하니 죽여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며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에 궤휼을 말하지 말고”

어머니가 아들이 집을 나가 괴로워 하다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께 여러 가지로 그 마음 아픈 것을 하소연하다가, 하나님 내 기도는 듣지도 않는다고 원망까지 합니다. 목사님께서 물었습니다. 혹시 전에 아들이 속 썩일 때 차라리 없어져버리라는 그런 말한 적은 없습니까?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아 속 썩일 때야 그런 말 많이 했지요. 차라리 나가서 죽어버리라는 말도 많이 했습니다."

[에베소서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실 때, 말 속에 인격을 담고 있음을 지적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2:34-35]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언어는 그 내면을 표현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을 잘 사용하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을 잘못 사용하면 큰 후유증이 옵니다.

"촌철살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한 치밖에 안 되는 바늘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로, 우리의 혀가 크기로 따지자면 비록 세 치에 지나지 않으나, 그 혀가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말의 위력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을 좋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


1] 자갈 물린 말처럼 온몸을 제어하라

[약3: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말은 비록 사람보다 힘이 세지만, 그 입에 재갈을 물리면 사람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말의 입에 물리는 조그마한 재갈이 말의 온 몸을 어거하고 제어하여 사람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2] 배를 작동하는 키

[약3:4]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배의 뒤꽁무니에 붙어 있는 키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물 속에 들어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배의 전면에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모양새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키가 없으면 배는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조그마한 키를 이용하여 선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조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 고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상 최고의 바람을 몰고 혼 '프라피룬'이라는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이 때,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를 급습한 태풍 속에서 고흥산이라는 63세의 할아버지가 신문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방파제 안으로 배를 피항시킬 무렵에 3톤 밖에 되지 않는 '해두호'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는 6시간 여 동안 배의 키를 꼭 붙잡고 파도를 대하여 정면으로 섰습니다.
키를 놓쳐서 배가 파도와 정면으로 서지 못하게 되는 날에는 순식간에 파선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파도에 따라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무사히 귀항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파도 속에서 배를 지켜 주었던 것은 작은 키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키를 붙잡고 배가 파도를 향하여 정면으로 서도록 조종을 했던 것입니다.


3] 작은 불씨를 크게 보라.

많은 나무를 태워 큰 불을 일으키는 작은 불씨와 같습니다. 어떠한 불이든지 작은 불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그런 산불은 등산객들이 버린 담배꽁초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우리의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다시 말하면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은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요즘 애들은 어른을 봐도 자리를 양보할 줄 몰라!"라는 할아버지의 꾸중 한 마디가 중학교 3학년 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를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슬렁거리면서 일어날 때를 기다려서,
“어쩌면 자네 같은 마음 깊은 학생이 요즘에도 있구만. 고맙네”
"당신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이런 말보다 힘을 주는 말은 없겠습니까?
거울을 쳐다보며 얼굴을 다듬는 딸에게 "그런다고 이뻐지니?" 보다, “너 눈에 띄에 얼굴이 고와진다. 좋은 일 있니?”
어렵게 성적표를 들이미는 아들에게 "너 그럴 줄 알았어?" 보다 “야, 요즈음 점수 따기 힘들다는데 어쩜 낙제가 하나도 없니?”

말은 내 인격입니다.

살리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의 말, 세워 주는 말, 위로의 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인 말을 합니다. 믿음이 담긴 말을 합니다. 꿈이 담겨있습니다. 섬김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용기를 주는 말을 합니다. 향기가 있습니다. 향기 나는 언어는 무례하고 거친 말. 불평과 원망의 말, 욕설과 누추한 말이 아닙니다.(엡4:29). 향기로운 말, 그것은 듣는 이를 즐겁게 하며, 매력이 있는 맛난 말입니다. 감사하는 말(엡5:4)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말(엡4:25). 선한 말(엡4:29) .칭찬하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선행을 격려하는 말, 상대방을 세우는 말이 신앙인의 언어입니다. 유순한 말(잠15:1a; 25:15), 은혜로운 말(골4:6)로 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입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며 칭찬하는 말(사50:4, 창50:21)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이 말의 열매는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말에는 창조성이 있습니다. 왜곡된 말이 던져지면 왜곡된 현상이 나타나고, 온유한 말이 던져지면 온유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한 폴란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소년은 음악학교에 입학했으나 교수로부터 매우 비관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네 손가락은 너무 짧고 굵다. 유연성도 부족하다. 다른 악기를 택하도록 하라" 소년은 다른 악기에 몰입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소년은 만찬회에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신사가 소년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너는 피아노에 탁월한 소질을 갖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라" 소년은 중년신사의 격려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이 노신사의 이름은 안톤 루빈스타인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날부터 하루에 일곱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피아노의 천재'로 불리는 잔 파데레우스키입니다.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배드로는 일평생이 변하였고 바울은 예수님을 통하여 부름을 받고 생이 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을 듣고 그들의 삶이 변하였습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까지 불태우는, 그 인생을 망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말의 파급효과가 큽니다.

“주여, 내 입술에 파숫군을 세워 주시옵소서(시 141:3)!"



3. 하나님 찬양하고 이웃을 축복하면 온전한 삶입니다.

[고전3:9-10]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첫 번째 비유는 한 우물에서 두 가지 종류의 물을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쓴 물을 내는 우물에서 단물을 동시에 낼 수 없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입은 하나인데, 그 한 입으로 찬양과 저주를 낼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한 나무에서 두 가지 종류의 열매를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감을 맺을 수 없으며, 감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걸작을 저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입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형제를 저주합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지만, 그 입술로 형제를 비판하고 비방하는 말을 합니다. 형제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이간질하는 말을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탁월한 예술성은 다윗상에 나타납니다.
다윗상을 보면서 미켈란젤로를 찬양합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밀레의 만종을 보면서
우리는 작품을 보면서 그 예술가의 탁월함을 칭찬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지으신 최고의 걸작입니다.
하나님의 걸작을 제대로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합니다.
숲속이나 고요히 흐르는 시냇물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약3:11-12]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

우선, 언어는 인식적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부세계를 말과 글을 통해 알게 됩니다.
또, 말은 표현적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면세계를 세상에 알립니다.
끝으로, 말은 수행적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내 말이 내 운명을 끌어가는 기능을 뜻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현상’이라 합니다. ‘자성예언’입니다. 내 운명이 내가 말하는 대로 수행된다는 것입니다.
‘난 이런 사람’ ‘난 안돼.’ 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안 되는 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어,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합니다. 궂은 일이 벌어지면
‘맞아!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 어디가?’ 나 스스로 자의식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심리학자들의 말입니다.
사람의 신경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중추신경입니다.
중추신경은 뇌에서부터 허리에까지 이어지는데 신경외과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중추신경중에서도 언어중추신경이 인간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말이 행동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하는 일은 잘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와
"하는 짓 보니 삯이 노랗다. 네가 그 꼴로 장래 뭘 하겠노?" 라는 말을 듣고자란 아이를 비교해 보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말에는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주변에 입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쁜 말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 것입니다.
“나는 안 하려고 하는데 자꾸 다른 사람들이 내게 나쁜 말을 해요”
똥파리가 한두 번 날아오면 똥파리가 날 오해 한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날아오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좋은 말을 하고 일관되게 칭찬하는 말을 합시다.

다윗이 왜 그렇게 형통합니까?

시편을 보면, 이분은 잘될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옵니다.
하나님만 왕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찾습니다.
하나님만 찬양합니다.
죄송하지만 그 자신도 아니에요.
벌레요, 양일 뿐입니다.

요셉을 보면 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높입니다.
원수에 대해서는 축복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언어 속에는 역동적인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좋은 말은 사람에게 힘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말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 말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마태복음 12:34-37]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형제들이여 말 좀 조심해 하십시오
사람이 말에 실수하지 않는다면 그는 두 말없이 완전한 사람이요
사람의 혀는 신체에 비해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마치 큰 대양 선박을 움직이는 키와 같이 인생행로를 결정할 만큼 소중한 지체입니다.
작은 성냥불이 모닥불을 일구고 마침내 대형화제를 일으키듯이
만일 혀가 잘못 사용되어지면 지옥 불과 같은 불이 인생의 수레바퀴를 불사를 것입니다.
천하만상 모든 사물들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가 있지만
인간의 혀를 길들여 주는 조련사는 없습니다.
샘은 한 구멍으로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 한 입으로 하나님은 찬송하면서 그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을 저주 할 수 있겠습니까?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본문]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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