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March 2015

약3:13-18 선행이 열린 지혜로운 신앙인

선행이 있는 지혜


[들어가는 말]

“산골짜기 농부가 암소를 샀습니다. 젖이 철철 넘치는 소였습니다. 그는 우유를 보자 몇 달 후에 있을 노모의 환갑 잔치가 생각났습니다. 노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우유를 저장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손님들에게 싱싱한 우유를 주기 위해서 그 날 가서 한꺼번에 짜야지’.
농부는 우유를 마시고 싶어도, 아이들이 마시고 싶다고 해도 모른 체 했습니다. 그러나 잔칫날 아침에 소의 젖을 짰더니 젖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때 행하는 선을 통해 지혜는 빛을 발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사야12:2]

이 놀라운 구원의 하나님을 모신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지혜로운 삶을 사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지혜와 총명은 선행으로 입증됩니다.

[약3:13]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지혜'(소포스)는 유대인들이 교사, 서기관, 랍비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총명'(에피스테몬)도 특별한 지식이나 훈련을 받은 전문인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지혜와 총명'은 1절에서 언급한 '선생이 되려하는 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많이 선생이 되지 말 것을 권면하신 주님께서 그러나 선생이 되어야만 할 때,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여기서 지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실제적인 히브리적 개념의 지혜 곧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성취될 수 있는 부드러움,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으로 선행을 보여주라는 말입니다.

선행을 하는 데도 조건이 있습니다.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선행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선행을 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선행을 한다면, 그건 온유함으로 겸손함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행이란 온유함입니다. 즉 비이기적 선행이라는 말입니다. 지혜란 비이기적이고 선한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지혜에는 선행의 열매가 있습니다. 머리 속에 내재하여 생각으로만 있는 지혜는 온전한 지혜가 아닙니다.
선행이란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선행’을 동반하는 지혜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다니엘의 지혜와 총명이 있었습니다.
그의 지혜와 총명은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알아 맞추고, 벨사살 왕 앞에 나타난 손이 새긴 신의 문자를 해석하는 것을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서 9장을 보십시오.

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전합니다.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그의 지혜와 총명은 진심어린 회개와 기도라는 선한 행위로 입증되었습니다.

- 우상에게 드린 제물 거부
- 목숨을 내놓은 왕의 신격화를 거부

지혜와 총명이 우리의 삶 속에서 가치를 발하기 위해서는 선한 행위가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시카고 세계 선교대회에서 여러 귀한 선교사님들이 오셨고, 선교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분들은 정말 열정이 넘쳤습니다.
사랑이 넘쳤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넘쳤습니다.

어떤 선교사님께서는 선교지의 주민들이 너무 쉽게 어린 나이에 젊은 나이게 질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일까 연구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질병의 원인은 더러운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데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만사를 뒤로하고 우물을 파고 좋은 생수를 주민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전기를 공급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그분의 사역을 통해 그 주민들의 질병은 1/4로 떨어졌습니다.
주민들은 자신들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선교사님께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정말 지혜와 총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와 총명은 깨끗한 우물물을 공급하고,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밝은 전깃불을 공급하는 선행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2. 세상 지혜에도 선행이 있습니다.

[약3:14-16]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알 카포네라는 사람이 미국의 암흑가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세대 동안 전 미국의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였고. 정부도 그에게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탈세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하여튼 그의 대담한 범죄는 대단히 유명하였습니다.
저는 알 카포네가 군림하고 있던 시카고 교외의 시세로라는 곳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알 카포네가 그렇게 미국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지하 세계를 다스릴 수 있었지요.”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시세로에서 사는 가난한 과부가 겨울에 석탄이 부족하면 알 카포네는 그녀에게 석탄을 한 짐 가져다주었습니다. 전기가 끊어질 지경에 처한 가난한 집의 전기세를 대신 내주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아가 있으면 돌봐주었습니다. 시세로에 있는 모든 자선 기관들은 알 카포네의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전 주민이 그와 그의 선행에 빚을 진 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배심원이 되면 알 카포네를 도와주었죠. 이 때문에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지혜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고, 세상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지혜라 하여 모두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1] ‘세상적’지혜란, 목적이 세상을 향하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입각한 지혜입니다.
자신만 나아지려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기적인 지혜, 위를 보지 않고 현세에 묶인 그런 지혜가 세상의 지혜입니다.

그런 세상 지혜 속에는 선행이 없습니다.
이기적인 꾀만 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살리는 선행이 빠진 세상적 잔꾀는 지혜다운 지혜가 아닙니다.

2] ‘정욕적’지혜입니다.
동물적 본능으로 사는 지혜를 말합니다.
동물적 지혜입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자는 지혜입니다.
자기만 살고, 자기만 보호하는 지혜입니다.

맹수가 다른 짐승을 잡아 자기의 욕심을 채웁니다.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 중심적 지혜입니다.
오직 나, 나만 생각하는 지혜니, 남을 배려하는 선행이 빠진 바로 동물과 다름없는 지혜입니다.



3] ‘마귀적’ 지혜란 사탄으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마귀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지혜입니다.
악에 의하여 쓰이는 지혜입니다.
마귀적이란 다이모니오데스(δαιμονιώδης)인데,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 작용하므로 발휘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귀적 지혜를 가지게 될 때에는 시기와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약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시기
다툼
혼란
악한 일

다툼이란 '이기적인 야망'의 의미로 자기나 자기편의 특권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지혜가 있다고 하면서 그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분열이 있다면, 싸움이 있다면, 그 지혜는 완전한 지혜가 아닙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농촌 친구도 별로 없이 인색한 부인이 어느 날 자기 채소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배고픈 거지가, "마님! 먹을 것 하나만 주세요."하고 구걸을 했다. 그러나 이 인색한 부인은 탐스럽게 열린 토마토나 오이, 가지 같은 것은 아깝게 생각하고, 다른 것이 없나 하고 돌아보니 밭고랑 언덕에 씨가 잘못 떨어져 자라고 있는 무 한 포기가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뽑아서는 선심이나 쓰듯이 거지에게 던졌다. 인색한 부인으로서는 그 나마 평생 처음 좋은 일을 한 셈이었다. 얼마 후, 이 부인이 죽게 되어 세상을 떠나간 곳이 지옥이었다. 지옥에서 고생을 하고 있을 때에 한동안 부인을 맡고 있던 천사가 그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부인은 큰 소리로 천사를 불렀다. 그리고는, "나는 세상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하였는데 왜 이런 지옥에 보냈느냐?"고 항의를 했다. 그러자 이 천사는, "무슨 착한 일을 하였느냐?"고 물었더니, 부인은 대답하기를 "아무 때나 배가 고파하는 거지에게 무 한 포기를 준 일이 있다."고 했다. 이때에 천사는, "한번 확인하고 오겠다."고 하고는, 창고에 들어가서 여인이 행한 착한 일을 찾아보니 과연 시들시들한 무 한 포기가 여인의 이름밑에 놓여져 있었다. 천사는 그 무 한 포기로 부인을 건질 수 있을까 하여 무잎을 들고는 부인더러 무 밑동을 단단히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지옥에서 낙원을 향하여 날아올라갔다. 부인은 너무 기뻐서 옆을 바라보니 평소 원수처럼 지내던 이웃집 부인도 무엇을 붙잡고 따라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순간 이 부인은 눈을 흘기면서 '원, 저 따위가 다 낙원에 가다니'하고는 옆에 있는 부인을 발길롤 걷어찼다. 그랬더니 무를 잡고 올라가던 부인은 그네를 뛰듯이 흔들거리다가 줄기가 끊어지는 바람에 지옥으로 다시 떨어지고 알았다는 것이다.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마음,
독한 시기와
다툼
비방
시기
파당
이런 것은 세상적 지혜입니다.
마귀적 지혜입니다.
정욕적 지혜입니다.
절대로 이러한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볼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어, 이건 나의 작품이 아닌데."

하지 않겠습니까?

[창세기 2:16-17]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는 준행하면 삶을 얻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창3장에 보면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지혜가 등장합니다.

[창3:6]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지혜가 인류를 죄 가운데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서로 비방이 일어납니다.
아담은 살 중의 살이라 칭송하던 하와를 비방합니다.
하와는 뱀을 비방합니다.

[창3:12-13]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어떤 분이 저분 참 잘 생겼지요? 합니다.
“그럼요. 우리 하나님의 작품인데요.”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은 실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심으로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지혜를 극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선행은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약3:17-18]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약3:17]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일곱 지혜의 열매입니다.

1] ‘성결’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 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마음이 성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이 지혜를 가지게 되면 내가 성결해져요.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2] ‘화평’입니다. 성결이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자세라면, 화평은 인간에 대한 자세가 됩니다.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합니다(히 12:11). 이것 역시 독한 시기와 대조를 이루는 것입니다. 모든 위로 난 지혜가 그렇듯이 모든 이에게 화평을 가져다줍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내 우월감에 사로잡힌 그런 마음에서는 화평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너와 나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차별하지 않는 화평입니다.

3] 관용입니다. 주로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 죄인에 대해 단호하게 징벌하실수 있음에도 블구하고 용서하고 인내하는 온유와 자비입니다.

4] 양순입니다. ‘유순하여’ '잘 순종하는' 뜻입니다. 이것은 교만하여 진리를 대적하는 것과(14절) 대조되는 성품입니다.
위로 난 지혜는 양순하여 하나님께 잘 순응합니다.

5] 긍휼입니다. '긍휼'과 '선한 열매'는 상관 관계를 갖습니다. '긍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 주는 마음 자세로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 있는 자입니다(2:13).


6] 편견이 없습니다.

거짓된 지혜의 당을 만들고 구별하며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다릅니다. 위로 난 지혜는 구별이나 위선이 없는 공평함과 신실함이 가득합니다.


7] 거짓이 없습니다.

‘거짓이 없나니’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실제 목적은 딴 데 있는데 교묘하게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서 그 사람의 것을 빼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7가지 열매를 드러낼 때 그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최웅섭 선교사님의 지혜로운 사역을 들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NGO로 사역
$300 수익부터 시작 $700만, $1,200만, $2억 수주를 따는 귀히 쓰임받았습니다.
공사를 시작할 때마다 늘 크리스천임을 선언했습니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회에서 거짓 없이 행하였습니다.
공사 일정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담당 관리를 찾아가서 자신이 선교사로 이 나라에 왔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컴퓨터 학원 세울 때부터 그의 서류 가짜임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자신들에게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학교 사업, IT 산업, 등은 그 나라에 너무 소중하다 했어요. 당신이 크리스찬이냐, 선교사냐는 당신의 문제다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분은 뇌물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얻은 수익금으로 그분의 이름으로 아름다운 일을 합니다. 사회를 살리고, 나라를 발전시키고,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합니다.
그들은 이 선교사님에 대하여 환호합니다.
삶을 통해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지요.
만나주지 않던 분들이 오히려 기다리더라
채용한 직원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이라.
전도를 못한 목사가 싸이트에 230만 명이 싸이트에 들어와 필요한 것을 배우고 갑니다.

\
[마무리하는 말]

지혜란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고 선한 행위로 나타납니다.


*랍비 시몬은 어느 날 천국에서 자기의 자리가 어디쯤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기원을 했다. 하나님은 시몬의 자리가 어느 백정의 자리 바로 옆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랍비 사몬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밤낮으로 성전 연구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나의 마음은 온통 신앙심으로 가득차 있고, 주위에서도 나를 현명한 랍비라고 칭송하고 있는 입장이 아닌가. 그런데 한낱 백정을 이웃으로 해야 한다니.... 어디 한번 가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아야겠다.'

이웃이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 랍비는 그 백정이 사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 백정의 손님이 되어 여러 날을 머물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랍비는 백정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하여 왔는지 얘기를 좀 해보게.
몹시 궁금하다네."

"뭐, 얘기할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죄가 많은 사람으로서 성
서는 전혀 읽은 바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백정의 직업을 가졌
었고 덕분에 돈은 좀 벌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부터
는 저도 선행을 베풀고 싶어서, 매주 이 고을의 가난한 사람들
에게 고기를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헌금도 자주 하는 편이죠."

그 말을 듣고 현자는 말했다.
"그 밖에 또 무슨 선행을 했는지 들려주시오." 그러자 백정은 과거에 잠깐동안 세무원으로 일했을 때 있었던 일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죠. 어느 날 배가 입항하여 제가 그 배로부터 세금을 받고 막 돌아가려 할 때였습니다. 돌아서는 나를 선장이 부르더군요.

"정말 멋진 물건이 있는데 살 생각이 없으시오? 꼭 당신한테 팔고 싶은데...."

"그게 무엇인데요? 뭔지 알아야지요."

"돈을 내기 전에는 가르쳐 줄 수 없지요. 사겠소? 아니면 팔겠소? 안 사겠다면 가시오."

"그것의 가격이 얼 만데요?"

"일만 냥만 내시오."

"도대체 그 물건이 뭔지 알아야 살 것 아니겠소? 내 그 물건을 꼭 살 테니 귀뜸이라도 해주시오. 뭔지 감은 잡아야 사든지 말든지 하지 않겠소?"

"사만 냥이오. 사겠소, 말겠소?"
내가 되물을 때마다 그는 대답을 않고 값만 자꾸 올리더이다.
그래서 무엇인지 오르지만 뭔가 귀한 물건인가 보다고 생각하고는 그 가격에 물건을 사기로 했지요.

"우선 돈부터 내시오. 물건을 넘겨드리리다."
그래서 저는 돈을 치렀죠. 돈을 받은 선장은 배 밑창에 있는
창고에서 2백 명의 유태인 포로들을 끌고 와서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사지 않았다면 이 2백 명의 사람들은 모두 바닷물에 빠져 고기밥이 되었을 것이오."
저는 그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가 먹이고 옷도 새로 갈아 입혔습니다. 그 중에는 미혼 남녀도 꽤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들을 서로 짝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눈에 뜨이는 유난히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습죠. 그래서 제 아들의 신부 감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제 아들과 그 처녀 아이가 결혼하는 날이 되었죠. 많은 사람들의 기쁜 얼굴 속에서 유독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어느 젊은이가 마음에 걸리더군요. 그래서 밖으로 조용히 불러내어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느냐?"
처음엔 아무 대답도 않더군요. 내가 재차 묻자 그는 대답했습니
다.
"오늘 댁의 아드님과 결혼하게 되는 처녀는 바로 나의 아내가 될
여자였습니다. 우리 유태인 2백여 명이 포로로 잡히던 그날이
바로 우리 두 사람의 결혼식 날이었죠. 결국 결혼식도 못 올리고
포로 신세로 끌려 다니다, 오늘 그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슬프지 않겠습니까." 나는 은 2백 냥을 내놓으며 그 처녀를 잊을 수 없겠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덧붙여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녀와 나의 주인이자 은인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녀를 당신의 며느리로 삼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돈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나는 그것을 나의 아들에게 자세히 이야기했지요. 그러자 아들이 그 처녀를 양보하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젊은이와 그 처녀를 결혼시켜 주었지요.
그 백정은 회상하듯이 이야기를 마치고는,
"아마도 무언가 선행을 했다면 바로 그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고 덧붙였다.
이상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랍비 시몬은 감탄하며 말했다.

"그대의 이웃이 되는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하네."

18절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여기서 두 가지가 열매로 나타납니다. ‘화평과 의’ 이 두 가지 개념은 서로 반대 개념입니다. 화평만을 추구하면 의가 없어집니다. 불의와 화평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또한 의만 있으면 그것은 차갑습니다. 두 가지가 잘 결합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입니까?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인 화평을 소유하고 닮은 자녀답게 화평을 이루어 '의'를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마 5:9)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잔꾀를 많이 부리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잔꾀를 참 많이 부린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지혜롭습니다. 그런데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지 못합니다.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해 놓고도 말씀을 취사선택하고, 항상 내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보다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박성양집사님이 이번 선교대회에 강사로 참석하였습니다. 모자를 만드는 일로 이민 사회에 성공을 거둔 분입니다.

빌4:9을 믿고, 21년간 모자 회사에서 매일 예배 드리고, 말씀 외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의 방패, 의의 흉배, 성령의 검이 위로부터 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22년간 세우고 운영하던 교육기관을 세우고 이양하는 등의 선한 일을 하였더니 키르키스탄 정부가 감자 배양 국책 사을 맡겼다는 선교사도 있었습니다.

선행이 있는 지혜가 우리 자신을 복되게 합니다.


[약3:13-18]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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