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6 March 2015

갈5:1-15 그리스도인의 자유

 [들어가는 말]

    1980년대 초, 미국 메릴랜드 주의 작은 중산층 교회에 경기 침체와 인종 폭동으로 인한 불안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를 섬기던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목사님은 성도들이 그 불안에 허무하게 굴복하는 것을 목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공동체의 일원들이 세상으로부터 너무나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잔뜩 움츠리고 근심에 가득 차 있었고, 방어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병폐는 우리 세대 안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교육도 충분히 받고 기독교 신앙 생활도 어느 정도 정립이 되었다 싶은데 삶의 현장은 너무 자유함이 없습니다.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경비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인플레이션 등의 경제 불안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무서운 무기가 가득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평화를 누리며 살기 보다는 지나친 불안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유진 목사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제발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소심한 삶으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북한 동족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자유 없음에 대해 아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또한 자유 없는 삶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에 대한 환상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그런 생각은 옳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이 환상에 엄청난 돈과 거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권력으로
섹스로
명성으로
여가 활용으로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자유를 거의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실제 삶은 대부분 무력하고 지루하고 모호하고 혼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만남으로 자유인의 삶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 인류는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왔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 모든 사람은 죄의 종 멍에를 메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자유라는 단어를 너무 우습게 남용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위해 아이디어와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이 진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그 단어를 끌어다 씁니다.
    정치 선동가들과 광고 카피라이터들이  그 단어를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유라는 단어를 내세운 정치 사회적 혁명이 끊임없이 있었고 특히 서구에서 그런 열망은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유를 남용하는 방종일 뿐입니다.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유의 땅에 살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 땅은 중독자들과 불평자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억압적인 이교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미신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고,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라는 자유에 대한 선포를 듣는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거짓 자유 속에서 우리가 정말 자유롭다고 믿고 사는 정도입니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끌려 다니고, 현상 유지를 위해, 어떻게든 늙고 병드는 것은 막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사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자유란, 실재의 대부분은 버리고 단편들만을 붙잡는 방식이 아니라, 실재 전체를 다 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p57

    팔만 자유하다면 그는 진정 자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장애인입니다.

    그러면 자유는?

자유는 실재합니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로움 속에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실 때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내 의지대로 살 때는 자유가 현저하게 줄어들지요. 깝갑하고 염려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오늘 갈라디아서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참된 정체성을 깨달음으로써 자유를 회복하도록 도전하며, 우리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자유의 넓은 지평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종노릇하던 인간에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두신 특별한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관습 때문에 모호해져 버렸을 뿐입니다.



    어떻게 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까?

    2.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1]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체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속박의 체험이요
다른 하나는 자유의 체험입니다.

    율법은 규모 없는 인간들에게 속박을 통해 다가옵니다.

    이 경우, 신앙인은 종과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율법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사과나무 과수원을 이렇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 소망하는 종류의 사과를 구입합니다.
다음에 사과나무를 구합니다.
그리고 가지마다 사과를 달아놓습니다.
그 후 뿌리를 구해서 사과나무 밑둥에 붙여놓습니다
최종적으로 알맞는 토지를 사서 그곳에 이미 만들어진 나무를 심어놓습니다.
율법적인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런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속박의 종교는 항상 자기를 높입니다.

나의 노력, 나의 투쟁, 나의 신실성을 내세웁니다.



    2]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일하는 경우는 판이합니다.

    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뿌리에서 시작하여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으며 모두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유의 생활에서 "주님 안에서 자랑" 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분히 공급하는 분이심을 배워서
알았기 때문입니다.

    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사랑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그 분으 주시는 사랑으로 working을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믿으로 받아들입니다.

    긴장과 압박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결코 염려에서 자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하여 마음과 뜻을 다해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릴 때, 하나님 사랑에 접목될 때, 우리는 염려로 지친 우리 자신에게서 진정한 미소가 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 나라의 광경을 보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를 열러 하나님 나라의 소리를  듣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3]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신 목적은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회복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요한복음 8:31~32, 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자유함을 얻은 자는?

    3.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자유에 관한 모든 것이 환상은 아닙니다.
자유가 실재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자유로운 뜻을 따라 이 세상을 만드시고 그 안에 살 인간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유로우신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중심에 계시고, 모든 창조 세계와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필요성이 아닌 자유는 언제나 더 깊고 더 오래 지속되는 실재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약속을 하는 사람들을 좇음으로써가 아니라, 긍휼과 사랑 어린 섬김의 행위를 통해 자유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유명 인사나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삶의 부드러운 해결책을 움켜쥠으로써가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과 질병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의 삶을 깨닫습니다.”-p170

이러한 믿음의 중심에, 자유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임의로 부는"바람 같은, 자유로우신 성령의 증거가 자유를 우리 성도들 안에 접목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자유를 주신 주님을 믿고 그분 안에 살 때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자유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둘 때
나는 엄청난 자유와 놀랄 만한 자발성을 깨닫게 됩니다.

    내 의지대로 살아갈 때는 자유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그것은 갑갑하고 염려가 많은 삶입니다
그러나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에 접목될 때,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

    우리는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출21:2-6] 종에 관한 법을 잠깐 들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3.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것이로되
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 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분명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자유함을 얻은 자입니다.
그런데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내 자유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영영히 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존 번연은 이런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유일하게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유는 한계를 가지는데, 그것은 선한 일만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


    사도 바울은 그 대표적인 분입니다


    [고린도전서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마무리하는 말]

    불안의 횡포, 돈의 힘, 타인의 시선을 벗고 주님이 허락하신 자유 속으로 들어가기 원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모든 것에 대한 자유가 있습니다.
2. 살아갈 자유가 있습니다.
3. 나누어 줄 자유가 있습니다.
4. 변화될 자유가 있습니다.
5. 저항할 자유가 있습니다.
6. 탐구할 자유가 있습니다.
7. 생각할 자유가 있습니다.
8. 창조할 자유가 있습니다.
9. 사랑할 자유가 있습니다.
10. 신뢰할 자유가 있습니다.
11. 서 있을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당연히 그분의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행함으로 의로워지는 종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음으로써 얻게 된 상속자입니다.


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하나님의 상속자' 답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만나보기 힘이 듭니까?
제발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소심한 삶으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 설교에 많이 참고한 저술

    깊은 영성과 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개신교 영성을 이끄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유진 피터슨 (Eugene H.Peterson) 목사님
저술: '자유 - 갇힌 세대를 위한 구원의 노래 | 원제 Traveling Light'





[설교할 성경 본문]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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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말]

    왜 기도해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시는 듯하고 삶의 고난과 영적 암흑은 깊어지기만 할까요?
    처음 그리스도를 알았을 때의 기쁨은 어디 가고 온통 마음이 메마르기만 할까요?



    논리가 아닌 삶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길 바라지만 삶은 합리적이지 않다. 영적 성장도 논리로 풀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알아야 사랑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사랑해야 자신에 대한 지식을 계시하신다. 바로 그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이 중요하다.
    인간은 알아가며 사랑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랑하면 자신을 알려주신다고 한다. 성장의 단계에서 결국 하나님을 깊이 알기 위해 우린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사랑해야 하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어떻게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주님을 바로 알아갈 수 있는지
   욥이 경험한 고통의 바닥과 아가서가 말하는 사랑의 극치가 성경에 있듯 성도의 삶에도 있다. 정말 욥처럼 구차한 목숨말고 아무 것도 남아있질 않다면 과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영적 성장의 진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변치않는 사랑의 고백이다.

    삶이 폭풍우같았다. 왜냐고 묻는 것도 지쳐, 버티기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프고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이 그냥 온 몸과 마음이 이를 악물다 굳어져갔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감사했다.
왜냐고 물었는데...십자가를 알려주셨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 물어도 너 밖에 없어서라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아가5:1-2]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잔느 귀용(Jeanne-Marie Bouvier de la Motte-Guyon, 1648-1717)

생의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경험한 여인이다. 17세기 프랑스 경건 운동의 주요 인물로 유럽의 경건주의와 존 웨슬리, 제시 펜 루이스, 앤드류 머리, 허드슨 테일러 등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삶에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의 진수인 "십자가의 도"가 잘 드러나 있다.

   잔느 귀용은 1648년 4월 18일,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 부유한 귀족가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했던 그녀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수녀원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았다.

   잔느 귀용이 15세가 되었을 때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잭 귀용이라는 부유한 상이군과 결혼시켰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으나 남편의 병수발과 시어머니와 심지어 하녀의 학대까지 받아가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다.
   그 결혼은 그녀가 살면서 겪은 수많은 고통 중 하나였고, 그 이후로 그녀의 일생은 거의 끊임없는 재난과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1676년 남편이 병으로 죽고 난 후 그녀는 재혼하지 않고 평생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리라 서약했다. 남편의 뒤를 이어 아들까지 둘이나 잃었고, 철저히 주님을 따르는 삶 가운데서도 많은 박해와 오해, 비난을 받았다.
   1681년 잔느 귀용은 파리에서 제네바로 이주한 후 60여 권이 넘는
영적 서적들을 발간했으나, 이 책들은 당시 형식에 사로잡혀있던 카톨릭 성직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결국 신비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8년 동안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그 가운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는 기도를 깊이 경험하였다. 결혼 생활의 고통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손길에 철저히 순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옛 자아를 철저히 못박고 그녀를 주인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시며, 주님과 동행하는 내적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다.

    성장의 시간, 겨울을 맞이하다

   “나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삶에서 불완전한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행하시는 정화 작업을 겨울을 맞이하는 식물의 세계가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가벗은 채 황량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를 떠올려보라.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도 나무는 자신을 치장하고 아름답게 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본모습이 그대로 드러날 날이 반드시 온다. 외적인 덕목들로 숨겨져 있었던 결함들이 가감없이 볼썽사람게 드러나는 그런 날이. 그러나 겨울 나무 내부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지난 봄, 내부 깊숙한 곳 아름다운 잎들을 틔워냈던 생명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나 초록의 아름다운 잎사귀들 아래에는 온갖 종류의 불완전함과 결함이 숨어 있다. 단지 아름다운 잎사귀들이 그 결점들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 결함들이 당신 앞에 충격적일 정도로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잎사귀들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견뎌내고 있는 나무의 겉모습만 보면 나무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그 나무가 변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무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처음부터 그 모습이었다. 다만 실제 모습을 가려줄 잎들이 사라졌을 뿐이다. 다시 말해 겉을 둘러싼 잎사귀들의 외면적 아름다움이 항상 존재해 왔던 내면을 숨겨주었을 뿐이다.
    밖으로 드러난 것들은 그리 보기 좋지는 않다. 그러나 그 영혼에게 새로운 결함이 생겨난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이미 존재했던 결함들이 드러났을 뿐이다. 결함을 밖으로 드러내면서 점점 치유가 이루어진다. 당신의 영혼이 순례의 길을 걷고 있다면, 재앙을 당하거나 메마른 건기가 계속될 때, 그리고 사람들이 영적인 겨울이라고 부르는 때가 찾아올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생명은 계속 그 자리에 있다. 겨울이 와도 말이다.”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자아에 대한 절대적 포기와 멸시가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우리 내면의 인격은 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십자가는 매우 잘 받아들이지만 모든 십자가에 자신을 포기하고 내어주는 일은 거부한다.
    명성 박탈의 십자가를 거부한 이후로, 그는 자신의 삶에서 어떤 영적인 진보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자발적이고 고의적인 저항'과 '본성의 저항', 이 두 저항을 하나님은 다루신다. 그리스도인이 생존 본능까지 포기하는 의지의 복종은 그 영혼 깊숙한 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어 종종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오직 하나님의 눈에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영혼의 깜깜한 밤이 오면, 내면의 결점을 모두 끄집어내신다.
그때, 유혹과 자신의 비참함 곤고함을 안고, 주님을 바라본다.

내 영혼이 무엇을 포기하고 어떻게 희생하는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끔찍하고 파괴적이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에 대해 절망하면 할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에 이어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는 온전하고 절대적인 희생으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 채 '순결한 희생'을 통해 '다 이루었다'는 완성을 선언하는 것이다.

    오직 소수만이 이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녀의 대표작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가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은 그 깊은 삶을 계속 걸어가 우리가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성장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정말 그 길을 끝까지 인내하며 갔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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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빨간 트럭을 보더니 웁니다.
미친 사람이 아닌데 웁니다.
사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자기가 치일 뻔한 위급한 상황에서 그의 친구가 자기를 밀쳐 내고 그런 빨간 트럭에 치여 죽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그는 그런 빨간 트럭을 보면 자기 대신 치여 죽은 친구가 생각나고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1-3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십자가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이 감사하고 생각이 나서 그냥 옛날처럼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에게는 갖추어 입어야 할 옷이 있게 된 것입니다.


 1. 소명 자다운 삶입니다.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오늘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하는 분은   "주 안에서 갇힌" 바울 사도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  충성하다가 감옥에  갇혔던 사도가 그 사랑하는 교회에 메시지를 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

    들보를 하나 더 세우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어떤 기준을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이 들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기둥에 부합되는 삶을 실현하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성도가 세울 기둥 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1)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부족과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자세입니다(빌 2:3).
    당시 '겸손'은 비열한 마음과 노예 상태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었기 때문에 결코 미덕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친히 낮아지시는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셨습니다(빌 2:6-11; 벧전 5:5)

    이 예수님의 모범을 인하여 겸손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미덕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2)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은 '이해심 깊고', '정중함'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다고 겸손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온유함은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고후 10:1)
그리고 온유함은 9가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갈 5:22, 23)
    온유함은 '중용'(中庸)에 설 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온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본능적인 욕구 등을 스스로 자제할 때 온유할 수 있습니다(약 3:3-8).


(3) 오래 참음입니다.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롬  2:4;9:22;  벧전3:20; 벧후 3:15)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통을 당하시는 가운데 오래 참으시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입맞춤으로 배신하는 가룟 유다와 그를 따라 예수님을 압송해가려는 군사 말고의 귀를 베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그래서 오래 참음은 9가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갈 5:22, 23)
    그리스도인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래 참음의 열매를 나타내야 합니다.(고전 13:4; 고후 6:6; 갈 5:22; 골 3:12),

    어떤 사람이 복수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복수하지 않았다면 그런 정신은 바로 오래 참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야고보서 5:7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4)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여야 합니다.

     ‘어떤 보상이나 조건을 내걸지 않은  자기희생적 무조건적 '사랑'을 통해서 서로 용납함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오직 성령에 의해 공급되어지는 것입니다.

.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상대방의 연약함과 결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Lincoln).

 2.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교회를 힘써 지키는 일입니다.

 [3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1] 그리스도 안에서 한 통일된 유기체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원수된  관계를 어떤 족쇄보다 강한 결속력으로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끊어질 수 없는 화목을 이루신 것입니다.

1] 주님이 하나이십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를 따르며 복종한다는 신앙 고백을 주(퀴리오스)란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교회는 한 통치자의  인도하에 있으므로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2]  믿음도 하나입니다.

  내 자신의 삶  전체를  의탁(依托)하는 까닭은 믿음 때문입니다.

3] 세례도 하나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고 하는 의식입니다.
세례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와 연합된 표시입니다(1:13;2:5,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이십니다.

  온 우주의  아버지이신 '한 하나님'은 교회의 통일성을 위한 근거가 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화해를 이루셨습니다.(2:14-18)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교회란 통일된 유기체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이방인과 유대인은 '한 몸'입니다.

  [2] 성령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입은 교회가 하나의  유기체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일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성령이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특별한 소망을 위해서 부르셨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이는 교회를 하나로 통일시키고 화해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됨'을 유지(維持)하도록 평화의 대사요 화해의 대리자로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고후 5:18).

 이렇게 볼 때, 성도의 일치됨은 궁극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배입니다(Calvin,  Bruce).


  [3] 평안의 메는 줄로 교회 통일을 지키십니다.

 하나됨의 생활 곧 일치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수단은 '평안의 매는 줄'입니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치가 분열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매는 줄'은 성도들을 서로 묶어 주는 족쇄보다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성도는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교회를 힘써 지킬 일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평안한 가운데 하나됨을  목적으로 삼고   진지하고  열심있는  태도를 유지할 일입니다.


 [5] 하나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한 몸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연합하여 하나됨으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장에서 위로부터의 부르심에 대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가 하나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생활을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6] 연합을 유지하십시오.

 하나됨은 흩어진 마음들을 단합하라고 말씀하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 안에 이미 존재하는 연합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직적인 통일체, 즉 하나의 "초월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유기적인 연합이며 통일입니다(요 17:20-23).

 4-6절에 열거되어 있는 연합의 근거가 "한 분이신 주님"이십니다. '한 몸"이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전체계획과 영적 진리들을 관련지우고 있습니다.

 [예화]

 어떤 술 취한 사람이 가로등 밑에서 무엇을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무엇을 찾으시는지 물었습니다. 지갑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어디서 잃어버렸습니까 물었더니 놀랍게도 저 뒤편에서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지갑을 찾으십니까?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곳에는 가로등이 없지 않소!



 3. 받은 은사로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 1-6절이 한 몸과 그 연합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7-11절은 여러 지체들과 은사들의 다양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땅에 '내리셨던('성육신')하셨던 주님께서  하늘 높은 보좌에 앉으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온 우주에 임재해 계실 뿐만  아니라, 만물을 그의 주권 아래 두시고, 온 우주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되셔서 모든 존재들의 생명을 주관하심인 줄 압니다(Bruce).

  이때 교회 성도를 인도하시는 방법이 몇 직분이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가 있는데 이들은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사역했습니다.
나머지 두  직분  곧  '목사'와 '교사'는 지역 교회에 국한된 직분자입니다.

사도 -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자로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섬긴  자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 바울 자신과 바나바(행 14:14), 실라(살전 2:6) 등, 예수님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를 증거하였던 분들을 말합니다(행 14:4,  14;  고전15:5; 갈 1:19).
선지자 - 하나님의 계시를 중재하며, 죄를 깨닫게 하고(고전 14:24) 교회를 훈계하기도 하였습니다(행 15:32).
복음 전하는 자 - 선교의 차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빌립(행 8:4-7),  디모데(딤후 4:5), 에바브라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목사'는  교회를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자이며
'교사'는 사도적 교훈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직분이 다양합니다(고전 12:5). 교회는 한가지 직무나 은사만으로 운영될 수 없으며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개성이나 은사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유기체적  하나됨을 확인하게 됩니다.
   직분이 통일성을 가집니다.  비록 직분은  다양하지만 이 직분들은 서로 협력하여 한 몸을 이루는 영적인 유기체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부활하신 후,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대적한 자를 정복하신 후 하나님 보좌에 오르셔서 자기 백성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승리의 찬송인 시 68:18의 인용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3]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교회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지체는 누구나 '은혜' 곧, '은사'(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롬 12:1; 고전 12:4). 이런 은사의 다양성은 하나된 교회의 하나됨을 충만한 상태로 계속 유지하게 합니다(Calvin).
그리스도는 모든 은혜의 수여자이며 성령을 통해서 은사를 수여하십니다.

   [4] 하나님께서는 성령 강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은사받은 사람들을 지교회들에게 보내셨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을 세우신 목적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성도를 온전케 하며 - 외과 의학에서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수리할 때(마 4:21), 또는 범죄한 자를 바로잡는다고 할 때(갈 6:1) 사용되었습니다. 즉 복음을 가르침으로 인하여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회복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고전 1:10; 살전 3:10,).

   2]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이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직분이나 기능을 따라 감당할 수 있도록 '틀'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성도 각자의 특별한 직분을 사용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온 성도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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