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는 시기와 분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우들이 육신에 속한 상태로 머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성령에 속하여, 성령을 좇아 행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육신에 속하여 시기와 분쟁의 병에 떨어져 병들어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시기와 분쟁을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해답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고린도 교회가 시기와 분쟁을 극복하고 교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1. 교회 건강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1]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중요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시기와 분쟁 등으로 교회 건강이 약화된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놀랍게도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발전시키고 지탱하게 한 인물들을 필요 이상으로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잘 심었다!
아볼로가 물을 잘 주었다!
이런 분파주의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시기 분쟁의 병이 든 이유는 인물들을 앞세운데 있습니다.
요즈음 많은 신앙인들이 교회를 이런 기준으로 옮깁니다.
큰 교회를 찾는 분도 많습니다.
이름 난 목회자를 찾고, 그 설교를 즐기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바울이냐 아볼로 등이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는 이런 외적 요인이 시기와 분쟁을 유발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라지 않는 식물을 심고, 자랄 수 없는 식물에 물을 주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뒷전에 둔 채,
심고 물주는 사람을 강조할수록 교회건강은 약해집니다.
시기 분쟁이 무성합니다.
모국 교계 소식을 들으면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교회 목사님들이 큰 고초를 당하고 계시는 것을 듣습니다.
김명혁 목사님을 잠깐 뵈었는데 조용기 목사님의 고소를 취하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조용기 목사의 첫 공판은 이달 말에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그 귀한 분이 분쟁 사건에 휘말려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30년 전 이 교회 성도 한 분과 버스 안에서 나누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예수님 비판에 대하여는 웃을 수 있던 분이 그 교회 지도자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 대하여 분노하던 때의 모습 말입니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가 중요하지만 절대적 자리에 앉을 때, 시기와 분쟁이 생깁니다.
2]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은 바울이 중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물주는 아볼로가 중요하다는 확신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두 분 모두 교회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든 탁월한 교회 건강에 업적을 끼친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확신을 가지면 가질수록 교회는 병들어갔습니다.
이를 자라게 하시는 분 앞에 강조할수록 교회건강은 시기와 분쟁으로 약해집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 아볼로 등의 이름을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이 분파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는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심고 또는 물을 준 지도자를 교회의 주체로 세우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사람에 맞추고 있었습니다.
결국 교회에 아름다운 사역자들은 시기하고 분쟁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빼어난 교회 설립자
탁월한 명설교자가 중요하지만
성도를 자라게 하시는 분보다 앞세울 게 아니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바울이 어떤 분입니까?
아볼로가 얼마나 탁월한 설교자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기준을 내립니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만이 중요합니다.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2. 사역자는 주께서 주신 믿음의 통로입니다.
(고전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1] 주님으로부터 각각 맡은 청지기입니다.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주님께서 아볼로에게 맡기셨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셨습니다.
한 달란트를 종에게 맡기신 주님께서
두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 맡기신 주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 맡기신 주님께서
아볼로에게 어떤 사람들을 맡겼습니다.
바울에게 어떤 사람들을 맡기셨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는 40대에 들어서면서 찬란한 부흥 시대를 맞이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들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그의 목회는 예전만큼 눈길을 끌지 못했고 영광의 시대는 흘러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존 녹스는 이런 일기를 썼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일굴 것이다. 그러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다시 불을 붙여주실 것이다. 하지만 불을 붙여주시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나는 계속 밭을 갈 것이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심는 자는 심는 일에 쓰임을 받은 것만으로 감사
물 주는 자는 물 주는 일에 쓰임 받은 것만으로 감사
맡은 자는 맡겨주신 일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2] 주께 맡은 각 사람에게 믿음을 전해준 사역자(일꾼)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받은 믿음을 전해주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믿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아볼로는 그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전해주라고 맡기신 믿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 2:19)
바울 사도에게 디모데를 맡겨주셨을 때, 아들처럼 잘 양육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마가 요한을 맡겨주셨을 때, 아들처럼 잘 양육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그들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했다 해도 그 마음에 시기심이 남아 있고 지체와 분쟁하기를 잘한다면 그는 영적인 사람이 아니요 육신에 속한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기와 다툼은 그 사람 안에 자아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각자는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습니다.
(고전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1]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 가지입니다.
상급기준의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심는 이가 더 상급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물 주는 이가 상급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심는 일이나 물주는 일이 더 상 받는 일에서 한 가지입니다.
주의 일을 맡은 사람들은 이 점에서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지 그 일에 더 귀하거나 천한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더 귀하고, 상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되어야 상을 더 많이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가 다 한 가지입니다.
2] 그러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심느냐, 어떤 자세로 물을 주느냐는 중요합니다.
심을 때를 주님께서 보십니다.
물을 줄 때 주님께서 보십니다.
그리고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 상을 받습니다.
유명한 아이언사이드 목사가 성도들이 앞으로 받을 면류관과 상급에 대해 설교를 하고 내려오니 한 부인이 목사님께 다가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장차 상을 받고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하시는 것인가요?”
“네, 저는 면류관을 위해서 일을 합니다.”
“저는 그 말씀에 실망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일을 하시는 줄 알았지요.”
그러자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앞으로 받을 면류관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저의 면류관을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발 앞에 바치며 경배를 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어윈 W. 루처는 이런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급을 주신다는 약속에 우리를 초대하신다. 어떤 상급을 주실지는 그 분이 결정하신다. 그 분의 결정에 우리는 만족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함으로써 상을 받듯이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할 때 우리는 상급을 약속받는다. 우리가 그 분의 인정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기 위해 하는 노력은 잘못이 아니다. 모슬렘 지역의 선교사인 사무엘 줴머는 팔 일 사이에 네 살과 일곱 살 된 두 딸을 잃었다. 베란다의 가장 시원한 곳에서도 기온이 평균 41도까지 올랐고, 사역에는 열매가 거의 없으며, 좌절되는 일만 일어났다. 그러나 50년 후 그때를 돌아보며 그는“그때의 순전했던 기쁨을 기억한다. 기꺼이 나는 그 모든 일을 다시 하겠다”라고 고백했다. 많은 선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쁨이 모든 희생을 보상해준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파이퍼는“당신이 가까이 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포기한다면 늘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백 배나 되는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된다.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을 포기한다면 어느 집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시냇가에서나 나무 숲에서도 주님께 속한 위로와 안전을 백 배나 돌려받는다”라고 말했다. 헌신에 주어지는 영원한 상급이 있다. 그 상급은 당신이 포기한 것보다 훨씬 큰 것이다."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마무리하는 말]
시기 분쟁의 중심에 교회 성도가 서 있을 때, 당혹스럽습니다.
주님께서 하나 됨을 부탁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기셨는데 그 유언을 받은 교회 성도가 시기 분쟁으로 얼룩질 때 많은 사람들은 절망합니다.
이런 시기 분쟁이 어디서 왜 어떻게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것일까요?
오늘 성경에서는 두가지 종류의 인간상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육신에 속한 자 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안에 있으나 어린 아이와 같이 행하는 자들입니다. 아직 영적으로 미성숙하여 젖만 먹을 수 있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시기와 분쟁은 육에 속한 자에게 피어나는 독버섯과 같은 것입니다.
육신에 속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영에 속한 자 즉, 영적으로 성숙한 자로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을 쫓아 매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땀을 흘리는 자들입니다.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에게 시기와 분쟁은 낯선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세 가지 질문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첫째, 너에게 준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느냐?
둘째, 너에게 준 재산을 어떻게 관리했느냐?
셋째, 너에게 맡긴 자녀를 어떻게 양육했느냐?
우리는 부지런히 심고 물주는 일에 충성합시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은 자라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 잠잠할지어다.
시기와 분쟁은 사람을 앞세우는 병든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맞추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성경본문]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 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고전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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