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1 March 2015

히3:7-11 모세와 예수님의 차이 셋

(들어가는 말)

   오늘 말씀 히3:7-11은 시95:7-11에서 인용하신 성령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의 표상처럼 생각하던 당시 히브리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보다 우월하심을 설명해주시려고 주신 말씀입니다.

   인간 가운데 모세를 능가할 인물이 있는가 생각해 볼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신적인 위치까지 격상시키고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구원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 말씀은 이런 모세와 비교할 수 없는 한 분을 소개합니다.

   모세와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신 바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 시험을 당할 때 그 반응에 차이가 있습니다.

   [히3:7-8]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풍랑 앞에 서면 그 바다의 깊이를 알지만, 그 풍랑을 헤쳐가는 어부의 실력을 알게 됩니다.
    시험 앞에 서면 그 사람의 신앙과 인품을 알게 됩니다.

   1) 시험을 당하여 원망과 불평하는 백성들을 만납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험에 들었습니다.

   [민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광야 길을 지름길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시험이 되었습니다.

   [민21:5]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온 백성에게 시험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가 병이 드신 것을 보고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원망 불평하다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리심으로 말씀을 따라 놋뱀을 장대에 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함'은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의 이적을 보면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대적했던 것처럼(출9:35)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일절 거부하는 성향으로 굳어져 버린 인간의 심성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진노와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모세는 놋뱀을 장대에 달아 말씀대로 백성들이 쳐다보게 함으로 치유받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모세를 따르던 사람들이 반역했을 때 심판받았는데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의 불순종은 얼마나 더한 심판을 받겠느냐며 그의 논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점을 강조하고자 시편 95:7-8을 세 번이나 인용합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반역은 모세와 하나님 모두에게 불평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죄는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시험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의 땅을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세대 백성들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심판하셔야 했습니다.

   여기에 인용된 시편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했다고 말합니다.
강퍅한 마음은 시험받을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 것입니다.

    2] 모세 또한 시험 앞에 흔들렸습니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시험이 왔고, 그는 흔들렸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보다 앞섬으로 시험에 들었습니다.

   모세와 백성에게 시험이 왔습니다.

   그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물을 주기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호렙산의 반석을 가리키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반석을 쳤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출17:7). 그러나 70인역에서는 '맛사'와 '므리바'라는 지명(地名) 대신에 '격동'과 '시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시험 앞에서 격동한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시험을 당하여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분노하는 모세를 만납니다.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의심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의 전능한 역사하심에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방법을 따릅니다.



   2) 예수님의 경우

    예수님은 몸으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반응은 다릅니다.

   (1) 시험을 당하실 때에도 자신을 부인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2) 십자가에 친히 달리심으로 믿는 자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나의 마음상태는 어떠합니까?
내가 처한 곤경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게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둔하게 합니까?

   [일화]

  원주민 마을로 가는 차를 탔습니다. 약 50명이 버스와 차량 세 대에 나누어 타고 원주민 마을을 찾아갑니다.

  이준영 전도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일터에서 아침 일찍부터 일을 마무리 했어야 하는 관계로 혼자 차를 운전하여 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와, 그 귀한 차에 빈자리가 있구나!

  몇 시간을 운전하여 중간 지점 Perry Sound Macdonald 에서 만나 아침 겸 점심을 마쳤습니다.

  우리는 원주민들에게 나눌 선물과 선교팀에게 필요한 몇 가지 신선한 음식을 사고 있었습니다. 세 자매는 신선한 음식을 사고, 저와 송집사님은 원주민과 나눌 선물을 사고 있었습니다.

  박충은 전도사님으로터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그분들을 그곳까지 태우고 오신 김제화 선교사님께서 자기를 비롯한 동행을 두고 홀로 차를 몰고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정을 우리가 알고 있느냐 질문한 것입니다.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혼자 차를 몰고 오신 이준형 전도사님 차로 목적지를 향했습니다.

  이어서 김제화 선교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동행을 찾는 전화입니다. Gas를 넣고 돌아와 보니 일행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아, 저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샤핑을 한  내용물이 많았기 때문에 제 차에
그 음식물과 선물들, 그리고 다섯 사람이 타는 것이 버거운 것을 다 아시는 분이 스케줄을 이렇게 짜신 것입니다.

  이준형 전도사님의 빈 차에 김제화 선교사님 일행을 태워 보내고, 김제화 선교사님 차에 쇼핑한 사람을 태워 보내니 저의 차엔 짐을 가득 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일을 추진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저는 머리가 좀 조직적인 면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 60년간 이만큼 은혜롭게 살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좋으신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내 삶의 연약한 부분을 이리저리 잘 맞추어서 인도하십니다. 너무 정확하게 너무 섬세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왜 전도사님은 그 귀한 차를 혼자 몰고 오실까?"
   "왜 선교사님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을까?"
   "왜 함께 탔던 일행은 좀 진중히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다른 차를 타고 떠났을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읍니다."

  나는 이 말씀을 정말 믿습니다.
그리고 나의 목자되신 주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경우를 따르면 됩니다.

   (1) 시험을 당하실 때에도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2) 시험의 순간에 십자가에 친히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의 길이 열립니다.



   2. 순종의 차이입니다.

   [히3:9]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증험"이란 말은 KJV에서 Prov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증거와 체험을 통해 사실임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신 18:22; 히 3:9).
선지자는 그가 예언한 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지자인지 아닌지 증험되었습니다(신 18:2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로 하나님의 '행사'(*, 에르가)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여 광야 생활을 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한 마음에 대해 격노하셨습니다.  '증오' 혹은 '극도의 혐오'를 느끼는 감정을 의미하는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뢰하지 않음과 강퍅한 마음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분노하셨습니다.

   1) 모세는 상대적 순종을 하였습니다.

   모세는 온유하고 겸비한 신앙인입니다.
인류 역사상 모세만큼 온유하고 겸비한 지도자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마음으로 모세는 언제나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내면에는 자아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 자아가 최종적 결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부름받았을 때 모세는 여섯 번이나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2) 므리바에서 모세는 가르치기만 해도 물이 솟아나올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3) 시내산에서 배역한 백성을 보았을 때. 돌판을 던져 깨뜨렸습니니다.


   2) 예수님은 절대적 순종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절대적 순종자였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탄생부터 죽으심까지 그분의 생애에는 절대적 순종으로 가득하였습니다.

   (1)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빌2:5-8)

   (2)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3)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겸손하며 온유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구요.

   상대적 순종자 모세, 절대적 순종자이신 예수님, 나의 순종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3. 하나님께 나아가는 구원의 길이 다릅니다.

   [히3:10]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 모세의 경우

   (1) 계명을 전하여 줌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2) 자신도 온전히 지키지 못함으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신명기 32: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2) 예수님의 경우

   (1)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십니다.

   (2) 부활 승천하심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의의 첫 열내가 되셨습니다.

    모세는 길 안내자입니다
예수님은 길 자체이십니다.
 
   지난 금요일(2011.8.26) 밤에 원주민 마을에서 사역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는 거울을 선물했어요. 그 회관에 거울이 없더구요. 그래서 회관에 걸어두도록 거울을 선물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담은 액자를 줍니다.
그분들은 창조자는 믿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가 없습니다.
타락시키는 죄는 많은데 구원자가 없습니다.
그들이 죄 아래 타락하였는데 그 죄로부터 죄 사함을 주시는 구주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마무리하는 말]

  시험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주 안에 시험에 바로 반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순종을 사모하십니까?
구원의 길이신 주님을 따라 천국을 향해 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안식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시험에 바로 반응하고, 진리에 순종하고, 구원의 주님을 누림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히3,7-11]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성경본문; 히3,7-11]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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