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6 March 2015

벧전3:8-12 하나님께 복을 받는 마음

[들어가는 말]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대대로 이어받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복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어받습니다.
형통한 사람이지요.

요셉같은!

오늘은 그 비밀 6원칙을 알려주십니다.


1. 형제 사랑입니다.

[벧전3:8-9]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2년 전부터 겨울이 되면, 발이 시려옵니다.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데, 발이 시립니다. 좀 몸을 덥게 하면 되려나 해서 전기장판을 사용해 보는데 발이 시린 것은 여전합니다.
어떤 형제가 나의 고충을 듣더니 발 마사지를 권합니다. 그러나 제가 무슨 방도로 발마사지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더니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틈틈이 제 발을 마사지해주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손이 아프더니 이제는 할 만 해요. 손이 발을 위해 봉사하니까 발도 행복하고 손도 튼튼하고 서로 좋아요.
온 몸이 행복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몸의 지체를 만드실 때, 서로를 위해 봉사하도록 만드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서로를 위해 봉사할 때 온 몸이 건강하게 되는 것이지요.
몸의 어떤 기관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건 없습니다.
온몸을 위해 존재하지요.
손이 손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체를 섬기도록 온몸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하면 잘 이해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6원칙을 알려주심으로 축복의 통로를 열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얼굴 앞에서 신자들이 지녀야 할 특성을 신자의 상호 관계에서 힘쓸 일입니다.

1] '마음을 같이하여'

'어떤 일에 뜻을 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동일한 의견을 가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각자가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영적인 끈으로 연합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NIV성경은 이 의미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라”(live in harmony with one another)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제 각기 다르고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의 생각의 틀에만 맞추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여 하나 되기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빌립보서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출발이 성령 안에서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행2:44-47]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연약한 형제를 배려했습니다.

[행4:32]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갖지 않은 형제에 대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발이 시립니다. 이건 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발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온 몸 우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발의 시림을 머리가 해결해야 될 일로 생각합니다.
입이 나서서 발이 시림을 알립니다.
귀가 발이 시릴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듣습니다. 발의 문제 해결 방안이 들리면 솔깃합니다.
손이 발에 피가 통하도록 봉사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발의 시림이 극복됩니다.
이것이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리십니다.


2] '동정하며'

개역한글 성경에는 '체휼하며'란 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고통을 함께(같이) 받다'는 뜻입니다. 동정은 영어로 sympathy인데, 헬라어로는 συμπαθής입니다. sym은 같다는 뜻이고, pathes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플 때 나도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린 자녀를 키울 때 그런 경우가 많지요? 어린 아이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이 동정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난에 참여하여 고난 받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동정한다는 뜻입니다.

[롬12:15-16a]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고전12:25-27]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몸으로 체휼하셨습니다. 동정하셨습니다.

[히4:14-15]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고난 당한 형제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그런 동정입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시는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 앞에 고통당하는 나사로의 연약함을 동정입니다.

체휼하는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흘러넘치도록 부으십니다.

3] 형제를 사랑하며

형제를 사랑하며('필라델포이')는 '사랑'에 해당하는 '필로스'와 '형제'에 해당하는 '아델포스'의 합성어입니다. 이는 단순한 형제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속시키는 형제애로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윤리적 덕목입니다.

[롬 12:10-11]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주님을 섬길 때 형제를 사랑하여 주를 섬기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만나며 형제를 서로 사랑하며 배려한다는 의미를 진솔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살전 4:9,10]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동족을 도움으로 형제 사랑을 실천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귀하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동족을 품는 사랑에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 사랑에 열린 서머나 교회를 축복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 삶을 형제를 향해 열려 있습니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흘러넘치도록 부으십니다.


4] 불쌍히 여기며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이나 동정심을 나타내는 인정이 있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흘 동안이나 따라 다니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막8:2)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떡 7개와 작은 생선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NIV성경에는 이 단어를 compassionate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필요를 서로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삶을 함께 나누고 우리의 지갑을 열어서 그분의 필요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9:35-36]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께서 전도하시는 동기는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때문입니다.

수가성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세리와 창기와 소외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형제를 배려하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흘러넘치도록 부으십니다.


5] 겸손하며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입어야 할 옷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빌2:3)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예수님을 가장 잘 형용한 말은 무엇일까요?
겸손만큼 예수님을 잘 형용한 말은 없습니다.

나는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로 와서 배우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탓습니다(슥9:9, 마21:5)

빌2장에서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겸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말세가 오면, 사람들이 교만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딤후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겸손은 형제를 배려할 때 가지는 몸과 마음의 자세입니다.
형제를 배려한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흘러넘치도록 부으십니다.

6]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 뿐만 아니라 자기를 해치고 욕하는 자에게도 보복하는 일이 없이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대합니다. 복을 빌어줍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교훈입니다.
사랑하면, 불쌍히 여겨지면, 복을 빌어 주라십니다. 그런데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복을 빌어 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복을 빌어주는 일은 곧 내가 복을 받는 일입니다. 복 받기를 원하면 복을 빌어 주는 사랑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눅 6:27-31]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산상 수훈의 백미는 바로 원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놀라운 말씀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조롱하는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눅23:34]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악이나 욕으로 갚아도 될 만한 상황 속에서라도 저주나 앙갚음을 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고, 위하여 그를 위한 기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쉽지 않게 형제를 배려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바로 형제를 배려하도록 하심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복을 빌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복을 빌어야 합니다.

복을 빌어주는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흘러넘치도록 부으십니다.


2. 생명을 사랑합니다.

[벧전3:10]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십니다.

[요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생명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입니다.
생명을 사랑한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인 영생을 사랑함을 뜻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창조의 섭리를 깨달아서 그 목적에 맞게 좋은 날 보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장차 올, '그리스도인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날'을 소망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소망하고 사랑하며 다가올 세계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정체성을 가진 성도는 이 세상에서 언어생활에서 본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혀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혀가 욕도 할 수 있고 복도 빌어 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것도 되고 나쁜 것도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혀를 잘 사용해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하는 것입니까?

생명을 사랑하는 자의 혀는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합니다.

욕하면 욕이 돌아옵니다.
복을 빌면 복이 돌아옵니다.
여러분은 복을 빌어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혀를 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혀를 바로 사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해치는 혀는 하나님의 성도에게 치명적입니다.

남을 저주하는 일
수근대는 일
부정적인 말
남을 해치는 말

이런 말들에는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없습니다. 혀를 금하는 것이 옳습니다.

[약3:5-8]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2] 악한 말을 그칩니다.

호빙 이펙트'(The Hoving Effect)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교육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토마스 호빙'은 퇴학을 받을 정도로 부족한 학생이었지만 교수님의 인정을 받고 힘을 얻어 예술품을 평가하는 인정받는 감정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호빙의 이펙트라는 말은 인정해 줌으로 생기는 교육적인 효과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능력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 줄 때, 나타나는 교육적인 효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보 온달에게 평강공주는 시집만 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바보가 아닙니다.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로 인해서 바보로 불리던 온달이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말이라도 인정을 해주면 이것 또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가수 마돈나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불우했습니다. 마돈나가 초등학교 시절에 무용반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은 마돈나가 키도 작고 말도 잘 할 줄도 모른다고 놀려대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던 선생님은 마돈나에게

"마돈나, 너는 참으로 예쁘구나! 노래도 잘하고, 무용도 잘하고 너는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될거다!"

선생님은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마돈나는 친구들의 말에 낙심을 했지만 선생님의 이 말씀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무용과 노래와 춤 등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시며 칭찬해 주셨어요.
마돈나는 선생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선을 행하는 것이 꼭 돈을 들여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한마로 천량 빚을 갚는 것처럼 인정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 후 세계적인 가수로 성공한 마돈나는 "지금 나의 성공은 그 선생님의 그 한마디로 인해 오늘의 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선생님을 못 잊고, 가난한 선생님의 생활비와 병들었을 때에 병원비 일체를 책임져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장례비 일체를 부담하며 가장 슬프게 끝까지 울었습니다. 선생님의 인정해 주신 그 말 한 마디가 놀림의 대상이었던 한 소녀의 일생을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그 선생님의 생활도 책임져 주는 제자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헐뜯는 것을 삼가하여야 합니다. 혀를 삼가므로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화평은 세상에 목표를 두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이루어집니다.

한 가정사역 연구소에서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소중하다.”,
“난 너를 위해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어.”,
“너만 보면 하나님께 감사해.”,
“언제나 나는 널 사랑한단다.”,
“난 너를 믿는다.”,
“네가 자랑스럽다. 난 행복해.”

3]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짓은 사탄의 영역에서 온 것입니다. 영생을 사랑하고 다가올 세계를 간절히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혀를 조심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난한 전도사님이 한경직 목사님을 뵈러 갔습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서 과자를 사가지고 갔습니다. 그는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목사님도 과자 좋아하세요? 과자를 드세요?"

그 때 한 경직 목사님은 그 전도사님의 평생 잊지 못할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노인도 좋아해!"
거짓말이 아니지만 힘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사랑 받는 것만을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도 자녀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엄마, 아빠랑 있으면 행복해",
"엄마 아빠, 세상에서 제일 존경해요."

이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복을 빌어오는 말입니다.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인정해 주고 감사해야 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입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말,
미워하는 말,
부정적인 말,
과장하는 말,
거짓말 등을 버리고 정직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입을 성령께 맡긴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흘러넘치도록 부으십니다.

3. 화평을 구하고 따릅니다.

[벧전3:11]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악에서 떠난다는 말씀은 악으로부터 '돌아서라'를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의지로 악에서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가운데 선을 행해야합니다.

2] 선을 행합니다.
3] 화평을 구하고 따릅니다.

'화평을 구하는 것'은 서로를 세워 주는 것입니다. 화평을 구하는 말을 한다는 것은 관계의 언어를 말합니다.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갓 결혼한 아내가 식사 시간이 되어서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국시 드세요.” 이 말을 들은
남편: “이것은 국시가 아니라, 국수라고 하는거요!”
아내: “그게 국수예요? 국시지.”
둘은 팽팽하게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다가 옆집에 사는 국문학자에게 가서 물어봅니다. 국문학자는 대답합니다. “국시와 국수는 서로 다릅니다.” “국시와 국수가 왜 다르지요?” “국시는 밀가리로 만들고,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밀가리와 밀가루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네,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겨있고, 밀가루는 봉투에 담겨 있습니다.”
“봉다리와 봉투는 어떻게 다릅니까?”
“봉다리는 손으로 만드는 것이고 봉투는 기계로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화평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부분 국시와 국수 차이 아닐까요?
밀가리와 밀가루 차이 아닐까요?
봉다리와 봉투 차이 아닐까요?
차이를 옳고 그름으로 해석하는 마음들이 화평을 해칩니다.

우리는 간혹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어떤 문제를 볼 때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생김새와 기능과 은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 마다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약점을 감싸야 합니다.

화평을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현실적인 삶에 순응하여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삶입니다.
이런 '화평'은 상대가 불신자라 할지라도 추구해야 합니다.(롬 12:18)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든 간에(고후 13:11; 살전 5:13)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윤리적 덕목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을 다해 붙잡아야 할 덕목입니다.

어떤 분이 화평을 구하는 대화 방법 5가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 기대를 낮춰라.
2) 잘 들어라.
3) 상대가 하는 말을 평가하지 마라.
4) '나 전달법'으로 말을 하라. (나를 생각하지도 않았나 해서 섭했어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요?)
5) 상대에 대한 요구나 바람을 말하지 말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화평케 하는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흘러넘치도록 부으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화니 크로스비아시지요?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92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렇게 은혜로운 찬송을 지을 수 있었는지 물었더니

"나는 늘 만나는 사람에게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이라고 복을 빌어 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빌어 줬던 것이 다 내게 와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찬송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벧전3:12]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눈'은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귀'는 자신이 백성의 필요한 간구를 들으십니다.
'주의 낯'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형제에게 복을 빌어 줄 때 하나님께서 보고 들으십니다.
이것은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시다가 우리가 형제를 위해 복을 빌어줄 때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형제를 축복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십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보십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을 들으십니다.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설교 성경 본문]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는데, 현대 교회는 포도주를 물로 바꾸고 있다.
그뿐인가 포도주가 담긴 항아리까지 깨뜨렸다. 키엘게골이란 철학자의 지적인데요.
맹물같은 크리스천들의 세속화를 고발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맹물같은 크리스천들이 잔치집 포도주와 같은 기독교의 맛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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