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6 March 2015

갈4:1-20 하나님 유업을 이을 자

[들어가는 말]

     신앙의 용장 손양원 목사님은 당시 살아 있었던 아들 동인에게 이런 글을 보냈습니다.

     "먹고 입는 것이 귀해졌다 하여 마음까지 잃지 않아야 하고,
음식을 잘 먹는 것보다 마음을 잘 먹는 것이 좋고,
의복으로 몸을 단장하는 것보다 선행을 옷 입듯 할지니라."

     하나님 유업을 이을 만한 성숙한 신앙을 우리는 그에게서 봅니다.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로 받아들이고,
한센 환우들을 섬기며
신사참배와 공산주의를 끝까지 거부할 수 있었던
그 성숙한 신앙에서 하나님 유업을 이을 모본을 만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과 함께 하나님 유업을 이을 자가 거치는 과정을 만납니다.



1. 후견인(청지기) 아래서 자라는 미성년기가  있습니다.(1-2,8)

     [갈4:1-2,8]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하나님 유업을 이을 자에게도 '젖'을 먹어야 하는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하나님 유업을 이을 자에게도  제대로 말을 못하는 시절이 있습니다.
   하나님 유업을 이을 자에게도 진리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한 시기가 있습니다.
   하나님 유업을 이을 자에게도 미성년의 상태가 있습니다.
   하나님 유업을 이을 자에게도 후견인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던 유년시절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하나님 유업을 이을 만한 성도일지라도 스스로 선택권과 자유를 갖지 못하는 후견인의 통제 아래 있는 시절이 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만 12세까지를 미성년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재산을 소유할 수는 있었으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유업을 이을 자에게도 어린 유년기는 유업과 무관한 삶이라는 점에서 종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로마에서의 관습법상 미성년자는 14세까지 그의  아버지가 의뢰한 후견인 아래 있었습니다.
     유업을 이을 자에게도 재산권은 25세가 될 때까지 청지기가 대신 관리했습니다.
     유업을 이을 로마의 아이들은 매년 3월 17일에 열리는 '리베랄리아'(Liberalia)라는 가족들의 잔치에서  성인이  되었고, 그 아이는 공식적으로  아버지에 의해  아들이자  상속자로  받아들여졌습니다(Boice).

     본문에서 율법은 '어린 아이를 책임지는 자'인 '후견인'[에피트로푸스;'보호자'(guardians)]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율법은 어린 아이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오이코노무스;'가문의 )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몽학선생보다  더 구체적이고 법률적인 지위를 가진 이런 직책들을 비유로 사용한 것은 율법 아래 매인 자들의 종속 상태를 더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였을지라도, 그들은 율법이란 청지기와 후견인에게 매인 자들로서 하나님 유업을 이을 실제적인  권한은 없습니다.
신앙의  참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미성년의 상태와 같습니다.

     8절]

  .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로 볼 때,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는 시기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우리에게도 율법 아래서의 일정 기간, 일정 통제를 과정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라도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세워주신 후견인과 청지기를 존중하십시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가 영원히 후견인과 청지기의 통제를 따라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면
후견인과 청지기에 매인 자가 아니라 후견인과 청지기를 손 아래 부리는 주인이 됩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이지만, 후견인과 청지기의 통제를 받는 자가 아니라 후견인과 청지기의 통제하는 자가 됩니다.
물론 그는 후견인과 청지기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통제 아래 있지는 않습니다.
이 얼마나 신비한 신분입니까?

     바울은 질병으로 고생하는 디모데에 포도주를 쓰라고 권했습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이지만, 후견인과 청지기의 통제를 받는 자가 아니라 후견인과 청지기의 통제하는 자가 됩니다.
물론 그는 후견인과 청지기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통제 아래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제직들이 임명을 받을 때 서약하는 것이 있습니다.
술 담배를 금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주일을 성수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십일조를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우리 서머나교회 교우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술 담배를 금하는 것은 율법적입니다. 후견인과 청지기와 같습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율법적입니다. 후견인과 청지기와 같습니다.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율법적입니다. 후견인과 청지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임을 명심하십시오.
후견인과 청지기의 통제를 받는 자가 아니라 후견인과 청지기의 통제하는 자가 됩니다.
물론 그는 후견인과 청지기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존중합니다.
우리는 주초문제도 주일성수도 십일조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통제 아래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2. 우리는 종이 아니요 하나님 유업을 이을 아들입니다.(6-7)

    [갈3:6-7]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1]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바'는 아람어로서 '아버지'를 뜻하며 탈무드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입니다. 이는 어린아이가 '아빠'라고 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더욱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입니다. 우리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빠와 아들처럼 가까운 것임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아들로 부르고 계십니다.
이를 아는 선지자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출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사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렘3:19]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 중에 아름다운 산업인 이 낙토를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것이니라 하였노라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기도문에서 보는 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늘 모시고 부르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제도와 율법을 순종하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신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눅 2:21), 유월절 절기를 지키셨으며(눅 2:41; 요 2:13) 모든 모세 율법을  지키면서 자라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충만하게 임하였을 때'(When the time had fully come),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삶속에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  시키셨습니다.(마5:17, 18) 율법의 속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빌 2:8).
죽으심으로 율법의 진노를 짊어지셨습니다(3:13; 빌 2:8).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성령의 내주(內主)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졌고 그 새로워진 관계를 '아바'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Longenecker).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됨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들의 영'이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영'은 '하나님의 영'(롬 8:14) 또는 '그리스도의 영'(롬 8:9)으로서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약속대로 오순절 다락방에 강림하신 이후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거하십니다.


     2]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을 때, 특별한 임무를  주어 보내셨습니다(요 17:18).
'사도'란  유업을 이을 자라는 '상속자', '후사'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종'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누리는 모든  축복을  소유한  자입니다(롬  8:14-17).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특권을 소유한 자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3:24, 26),
'약속으로 말미암아'(3:18),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3:26)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됨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  은혜의 결과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Longenecker).

  [갈3:6-7]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예화]

     1989년 5월 6일 부산 백병원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얘기다. 이 일이 있기 사흘 전, 부산에서 전경으로 복무하던 서원석(당시 25세)씨는 전역을 90일 앞두고 일명 ‘부산 동의대 사태’ 현장에 투입됐다가 시위자들이 던진 화염병과 시너로 얼굴과 팔 등에 중화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은 사흘만에 정신을 차렸다. 상반신에 중화상을 입은 그는 갑자기 하얀 헝겊으로 칭칭 감겨 권투 글러브만해진 손을 허공에 올리더니 뭔가 천천히 써내려갔다.

‘엄 마 아 버 지, 예 수 믿 으 세 요…’

     이 장면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부모는 어안이 벙벙했다. 살아난 것은 한없이 고마운데 너무나 황당했다. 아버지 서정길(63.왼쪽)씨는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끊었던 담배까지 사서 피워물었다. ‘저 놈이 죽다 살아나서 실성을 한 건가. 장남이라는 놈이 부모 애간장 탔는 줄은 모르고 밑도 끝도 없이 예수를 믿으라니….’

그 사이 어머니 장계화(65.가운데)씨는 아들의 침대 맡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약속했다. “그래, 네가 살기만 하면 이 어미가 뭘 못하겠냐. 예수 믿을게. 지금부터 믿으마.”

“형은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서 주일학교에 나갔어요. 교회 친구들과 운동하기를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아버지가 워낙 엄하셔서 성경책은 허리춤에 숨기고 다녔고, 다른 식구들은 아예 교회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서씨 가족들에 따르면 원석씨는 결코 전도를 할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얌전하고 온순하며 조용한 성격인데다 불교신자였던 아버지한테는 무서워서 말도 잘 못 건넬 정도였다. 어머니 장씨는 “원석이가 의식불명상태에 있던 3일 동안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셨다고 믿고 있다”면서 “그러지 않고서는 밖에 뛰쳐나간 아버지를 세 번씩이나 불러 들여서 예수 믿으라고 애원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72시간 만에 깨어난 그가 말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던진 메시지는 ‘복음’이었던 것이다. 서씨는 팔의 힘이 떨어지자 나중에는 두 발로 침대시트에 ‘예수 믿으세요’라는 글자를 새겨가며 가족을 전도했다. 그리고 병원에 실려온지 23일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이들 가정에는 ‘영적 전쟁’이 시작됐다.

    “아들이 유언까지 했는데, 교회는 나가야지요. 약속 했잖아요.” “나중에 나가면 되잖아. 설치지 마라.”

아내 장씨와 남편 사이에 벌어진 실랑이는 부부싸움으로, 급기야 이혼도장을 찍니 마니 하는 얘기까지 오갈 때쯤 남편이 결국 항복했다. 아들 장례식을 치른지 꼭 6개월만의 열매였다. 부부는 함께 교회 새신자반 교육과정을 마치고 세례를 받았다.

     순간 순간 신앙의 고비가 찾아왔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서씨 가정은 교회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사기까지 당하고 빚더미에 앉아야 했다. 남편 서씨는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면서 “솔직히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다”고 털어놨다(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20년이 지난 지금, 서씨의 부모와 남은 3형제 등 다섯 식구는 저마다 믿음의 강도는 다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됨의 신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를 낳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습니다.


  [갈3:6-7]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3. 해산의 수고를 하며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갑니다(19절)

    [갈4:19]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하나님의 자녀됨은 영광스런 정체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중요한 출발선상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린 자녀가 잉태되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입니다.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의 수고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자녀다운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수많은 헌신과 노고가 필요합니다.

     '해산의 수고'란 분만하는 고통입니다. 즉, 교인들을 양육하는 것을 어머니가 아기를 출산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거듭난 자가 가야 할 성화 과정, 교회를 살리려는 사랑은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예화]

    서두에서 언급한  손양원 목사님을 '성자(聖子)'로 불리게 한 것은 인고의 세월 속에서 자잘한 것까지 자기를 죽이며 '죄의 뿌리를 뽑아달라'고 기도하고 실천한 삶의 열매 때문"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기복적이고 상징적인 기도가 아닌, 자신을 채찍질하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하는 모습이 하도 측은해 누군가가 왜 그리 슬프게 기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도 한센병에 걸려 당신들과 같이 살기를 원하는데, 내가 안 죽어진다. 나의 죄뿌리가 안 죽어져 이렇게 울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손 목사의 인생에서 절정의 순간은 한센병 환우들과 함께 한 애양원 시절이다. 그는 1939년 애양원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11년2개월을 보냈다. 그 중 6년은 감옥에서, 나머지 시간은 한센병 환우들과 교회를 지켰다.

한센인들과의 인연은 24년 부산 감만동의 한센병 환우 집단 치료소인 '상애원'에서부터 시작됐다. 손 목사도 처음에는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꺼렸다. 오죽했으면 이런 기도를 드렸을까. "하나님, 환우들의 얼굴이 무섭게 보이니 그들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이게 해주세요. 냄새가 심해 숨을 쉬기 힘드니 그것을 향기로 맡게 해주세요. 제가 이들과 평생 같이 하다가 죽으렵니다. 그러니 아버지, 형님으로 섬기게 해주세요."

     그는 한센인들의 희망이었다. 육체가 일그러진 그들의 영혼에 찬송과 감사 기도의 아름다운 옷을 입혔다.
중환자들이 모인 병실을 자주 찾아가 그들의 얼굴을 만지며 기도했고,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냈고,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
이 같은 삶의 실천은 곧, 사랑의 대폭발로 이어졌다. 48년 여순사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잃고 아들을 죽인 주동자 안재선을 양자로 삼은 것이다.

당시 손 목사는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용서가 아닌, 사랑이다. 재선이를 양아들 삼아 사람답게 키워내는 것이 진정 사랑이다"고 말하며 기도를 부탁했다.
이어 두 아들의 장례를 치르며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한데 두 아들의 순교로 축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손 목사는 '작은 예수'로 불린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용서의 한계는 어디일까. 손양원 목사는 짧은 삶을 통해 그 대답을 들려주고 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

[마무리하는 말]

    오늘 북한이 엄청 많은 돈을 들여 로켓 위성을 쏘았다는 보도가 온 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북한 백성들은 보릿고개를 당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영적 한센병자를 봅니다. 어떤 기능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을 탓할 형편도 아닙니다.

     한센병자와 같이 마비된 현상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많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백성다운 법도를 세우자는 율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저들은 영적 한센병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후견인 아래서 율법주의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분 안에서 거듭났고
하나님 유업을 이을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한 수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며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은 후 한센병자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은 자들입니다.
바울 사도처럼, 손 양원 목사님처럼
세상 넘치는 한센병자들을 영적으로 회복시키는 일에 쓰임을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할 줄 압니다.



     [설교할 성경 본문]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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