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전4:6-7 이런 일에서 본이 되라-건강한 교회 11

[들어가는 말]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나타나 교회 건강을 잃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그 분쟁을 조장함으로 교회 건강을 해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와 아볼로, 베드로와 같은 선한 사도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한 교회 건강을 회복할 길은 무엇입니까?

  바울과 같은 사도가 교회의 본이 됨으로 교회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규범을 말한 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본을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에게 적용'시켰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바울 사도 자신과 아볼로, 베드로 사도의 관계에 적용(適用)시켰습니다.

심는 자와 물주는 자(3:5-9),
터 닦는 자와 건축자!
경쟁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없어서는 아니될 협력자로서의 교회지체의 정체성을 답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은 교회는 바로 이런 유기체적인 협력 속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 모든 것을 판단하실 분은 주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교회 건강을 위한 하나님의 권면은 계속됩니다.

바울과 같은 교회 일꾼이 어떤 본을 보여야 합니까?
니다.



1.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고전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교회가 건강하려면 교회 지체들이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이단들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신 말씀에 머무르지 않아요.

     성경에는 예수님을 말씀하실 때,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는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나 이단 종파 가운데 하나인 여호와 증인을 예로 봅시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신 말씀에 머무르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에 천사장 미가엘이었다고 말합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 가운데 거하셨다는 말씀을 부인합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대속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이 소중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이단을 교만하다고 말해요.

     귀신론에 푹 젖은 제자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이단에 빠진 제자였어요. 이 사람을 여러 가지로 설득해 보는데 막무가내예요. 나를 이단으로 인도하겠다고 찾아올 정도니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지요.
전에 학창시절에는 착하고 말도 잘 듣는 그런 학생이었는데 엄청 교만에 떨어졌어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본이 되는 일꾼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게 되면 하나님도 컨트롤 하지 않습니다.
이단이 그것을 노리는 것이지요.


사탄이 이브를 유혹할 때, 그 수법을 쓴 거 아시지요?

[창3:1-5]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2:16]에 보면,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답합니다.
사탄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단정하고 나섭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이런 아담을 몰몬교에서는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담이 우리가 함께 해야될 유일한 하나님이시라고 해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창2:7-8]은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그런데 몰몬교는 말합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존재가 아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 천상의 몸을 입고 들어왔으며 세상을 창조하고 형성하는 것을 도왔다”
“아담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유일한 하나님이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갑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겸손하십니다.
근본 하나님이시나 종의 형체를 입으실 만큼 겸손하십니다.

기독교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은 성도들은 겸손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신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겸손해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앞에서...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겸손의 예화]

유명한 흑인 교육가 부커 워싱턴 박사가 앨라배마에 있는 터스키기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후 그 지역의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 때 어느 백인 부인이 그가 워싱턴 박사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흑인이려니 해서 멈춰 세우고 몇 달러 줄 테니 장작이나 패달라고 요청했다.
총장은 그때 특별한 일이 없었고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웃으며 소매를 겉어붙이고 장작을 패서 그녀의 벽난로 옆에 차곡차곡 쌓아주었다. 일이 끝나 그가 돌아간
후 그 집 흑인 하녀가 그를 알아보고 주인에게 알려주었다.
그 부인은 너무 부끄럽고 당황해서 다음날 아침에 총장실로 찾아가 백배 사죄했다.
그러자 부커 워싱턴 총장은 "부인, 괜찮습니다. 저는 가끔 가벼운 육체노동을 좋아합니다. 그 뿐 입니까? 이웃을 위해 돕는 것은 언제나 기쁜일이지요"


[벧전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빌2:3-4]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2.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자랑하지 않습니다.

 [고전4:7-8]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자랑이 어디서 옵니까?

나는 남과 다르다의 우월감에서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믿음 있는 성도라면 하나님께서 나를 남달리 구별하셨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코카콜라 전 CEO인 더글러스 태프트(Douglas Taft)가 명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미스터리며,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 the Present.).”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자랑하려면 선물을 주신 분을 자랑하면 됩니다.
자랑이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어리석은 자를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자랑이 또 어디서 나옵니까?

내가 왕의 자리에 앉는 왕노릇에서 나옵니다.

내가 배부르며 풍성하며 잘 나갈 때 갖는 왕의식으로 인해 자랑이 나옵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이 되는 성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ST.를 앞에 붙여서 가장 잘 어울리는 분입니다.
그분 일화는 언제 들어도 늘 감동적입니다.


“선생님,선생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하는데 그 놀라운 사역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땅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통해서 내 강함과 지혜로움과 능력을 나타내리라’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자랑은 인간의 본능입니다.누구에게나 자랑거리가 하나씩은 다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와 가문과 권력과 학위를 자랑합니다.또 어떤 이는 인생경험을 자랑하고 지시과 지혜를,영어 실력을 자랑하고 자식을 자랑하고 자신의 힘을 자랑합니다.
터키는 한때 유럽을 재패했던 오스만제국의 역사를 자랑하고
영국은 대영제국의 영화를 자랑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인인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뒤 자랑의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갈 6:14).

사도 바울은 이전에 자기의 자랑으로 삼았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를 원했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오직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예수 그리스도만이 능력이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자랑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일꾼은 자신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내가 한 일은 뒷전이오 늘 부끄러울 뿐인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많고 크기만 하여 하나님 자랑합니다.




3.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고전4:10-13]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분쟁과 다툼 속에 있는 교인들이 방종과 안일 속에 있으면서도 서로 왕되려는 마음으로 시기하고 다툴 때,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은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가를 비교법을 사용하여 웅변적으로 서술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 교인들의 방종과 안일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미련함', '약함','비천함'을 나열함으로써 앞절에서 말한 구경거리가 구체적으로 자신들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연고로' 바보가 되었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세상 지혜와 경험을 소유함으로 마치 자기들만 지혜로운 자들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스스로 세상 지혜에 대하여 무지(無知)한 자들이 되었습니다.1:17,21;3:18)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비천한 자같이 매맞으며 핍박을 당하는 자(11,12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까닭에 지혜롭고 강하며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세상의 찌꺼기 같은 우리'의 소중함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13)"

     이 말씀은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위 내용이 오늘날 소위 복음 사역자들인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유는, 바울이 이 내용을 쓸 당시 정확한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세상의 애착들이 남아 있어서 우리는 만물의 찌꺼기가 되기를 스스로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서 거룩하게 될 때 누구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 따로 구별된 자"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게 됩니다.

     베드로는 "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을 당한 것같이 여기지 말라(벧전4:12)"고 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을 이상하게 여긴다면, 이는 우리 마음이 겁으로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 시험을 피할 수만 있다면 약삭빠르게 빠져나갈 것입니다. "나는 복음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싶지는 않아. 사람들에게 굽히고 싶지 않아." 물론 당신은 얼마든지 복음을 위해 당신을 따로 구별하시는 하나님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은 "복음이 증거된다면 나는 이 땅에서 찌꺼기같이 대우받아도 상관없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하나님의 복음의 실체를 위해 순교할 각오를 한 자들입니다. 세상의 찌꺼기가 되는 것을 혹시 주님의 거룩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살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그것이 오히려 주님이 기대하는 모습인 것조차 모르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죄에 대해 죽었다고 선포한 입술의 고백과 인정은 순간의 기억이고 우리의 삶은 여전히 죄된 자아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의 정반대편에서 우리에게 손짓하십니다.


저는 한국 초대교회 선진들과 요즈음 우리들의 신앙 차이를 본문에 봅니다. 우리들의 현재 부요한 모습이 선진들의 수고를 통해 온 것 아닙니까?

지혜를 자랑하는 요즈음 신세대 신앙인들 앞에서 우리 선진들은 무척 어리석어 보입니다.
주일을 성수함으로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성실히 지켰고
십일조를 드림으로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고백했던 선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만물의 찌거기같이 되었던 분들입니다.

강함을 자랑하는 자들 앞에서 약하였습니다.
존귀함을 자랑하는 자들 앞에서 비천하였습니다.
강함을 자랑하는 자들 앞에서 약하였습니다.
배부르고 풍성함을 복받은 것으로 자랑하는 자들 앞에서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었습니다.
말로 정체성을 찾는 자들 가운데서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합니다.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하게 되었습니다.
신체적인 박해를 참았습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습니다.

     사도가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을지라도, 그것이 찌꺼기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폐품 수집가(이중수 목사임 저서 ‘화가 복이 될 때까지’ 제 1편)란 글을 인용함으로 좀 화제를 돌려 봅니다.

     "사람들이 멸시하고 버린 인생들을 주님은 수집하신다. 주님은 폐품 이용(recycle)의 매니저다. 주님의 손에서 재생되고 회생되지 못할 폐품 인생은 없다. 당신은 버림을 당한 적이 있는가? 배신을 당하였는가? 쓸모 없는 자로 낙인이 찍혔는가? 주님은 당신을 찾아 나선다. 날마다 주님은 폐품 수집을 위해 나가신다. 하늘 아버지가 세상의 찌꺼기들을 모으라고 아들에게 명령하셨다. 아들은 주님의 뜻을 기쁨으로 행하신다. 아무리 더럽고 무시 받는 폐품이라도 주님의 손에 잡히면 몰라보게 새로워진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대상임을 알게 된다.

◐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버려진 폐품 인생이다.
◐ 주님을 배반하고 통곡하던 베드로는 폐품이었다.
◐ 선교 여행에서 탈락했던 마가도 폐품이었다.
◐ 밧세바와 동침했던 다윗도 폐품이었다.
◐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아브라함도 폐품이었다.
◐ 동생을 죽였던 가인도 폐품이었다.
◐ 뱀의 말을 들었던 하와도 폐품이었다.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던 아담도 폐품이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우리들의 인격과 성품에는 죄악으로 물든 오염된 자국들이 즐비하다. 내 인생의 여러 곳에서 폐품들이 쌓여 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폐품들이 나를 썩히고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찾아 나선다.

십자가는 모든 폐품 인생들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버려진 인생들을 재창조하신다. 사람들은 날마다 쓰레기를 버린다. 버린 쓰레기를 주우면 사람들의 눈에 귀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기는 원하지만, 버린 쓰레기를 줍기는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버리는 인생 쓰레기들을 하나님은 줍기를 즐거워하신다. 하나님에게는 창피도 수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날마다 인생 폐품들을 수집하러 나가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에 의해 내버려진 폐품 인생들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하나님의 작품 전시실에는 어떤 품목들이 전시되어 있을까? 걸작품만 전시되어 있다. 완전한 예술품만 수집되어 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하였다(엡 2:10). 어느 날 새 땅과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작품들이 온 만물 앞에서 전시된 날이 올 것이다. 그 때 천사들과 우리들은 놀라고 또 놀랄 것이다. 세상의 폐물들이 위대한 걸작품으로 변화된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 걸작품 중에는 나도 끼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의 주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 4:13)고 말하였다. 세상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더럽고 우리가 만물의 찌꺼기들이다. 나 자신이 더럽고 또한 세상이 나를 그렇게 취급한다. 그러나 현재의 아픔과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롬 8:18).
그렇다면 우리들의 미래는 얼마나 밝고 복된 것인가! 새 날이 밝아 온다. 폐품들을 수집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서 우리들의 영광된 새 날이 밝아 온다!

     제가 좀 주제가 다른 글을 인용한 까닭을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어떻게 된 것일까요?

강함을 자랑하였습니다.
존귀함을 자랑하였습니다.
배부르고 풍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랑이 달라져야 할 겁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13)"

주님 때문에 만물의 찌꺼기가 되는 것을 자랑합시다.
주님은 찌꺼기가 된 우리를 찌꺼기로 두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로 깨끗게 하시고 재생하실 것입니다.

     찌꺼기가 되는 일, 궂은 일을 오히려 마다하는 고급 크리스찬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영광의 날, 주님 때문에 깨끗케 하실 걸작품으로 그 전에 세우실 것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는 주님 때문에 만물의 찌꺼기가 될지라도 그 삶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마무리하는 말]

     말씀 앞에서 겸비합시다. 뱀처럼, 이브처럼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명심합시다.
자랑하려면 그러므로 주신 분을 자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일꾼 ‘우리’는 하나님의 사도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대적하며 말씀을 넘어가는 사람들
사이에게 무엇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겸비하고
주님만 자랑하는 성도가 살아있는 교회를 하나님은 건강하게 세우십니다.

나는 남다르다고 자랑을 하는 사람은 주님께 받은 것임을 고백하고 주신분을 자랑합시다.

낮고 비천한 자리를 사랑합니다.








 [성경본문]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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