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로마서5:5-6)
[들어가는 말]
퍼시스는 침체된 한국 가구산업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가구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현지공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가구업체와 달리 퍼시스는 한국내에서 가구를 제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시스는 한국 내수 시장에서 전체 사무가구시장의 18% 가량을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수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국내 사무용 가구업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 답은 최근 창립 25주년을 맞은 퍼시스의 손동창 회장(60)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손 회장은 국내 가구산업도 충분히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가구 코리아`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5년 동안 꾸준하게 연 25%씩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의 지론은 간단합니다.
"부자 되려면 부자가 될 짓을 하라"
'부자될 짓'이 무엇일까요?
그분을 인터뷰한 박응식,김은정기자는 18세기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쉴러가 남긴 말을 인용합니다.
"겸손할 줄 모르는 자가 성공한 적이 있는가. 겸손은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한 첫번째 열쇠이다."
좀 엇박자처럼 느껴지는 두 기자의 시각에서 저는 답을 찾게 됩니다.
겸손을 갖춘 최고경영자(CEO)에게 하나님은 성공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성금요일에 여러분과 함께 인류 최고의 경영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겸손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겸손이 우리 인류 가운데서 이룬 최고의 성공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도다(로마서5:5-6)
아담이란 흙이란 뜻입니다. 티끌이란 뜻이예요. 하나님께서 이 흙 속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인간을 빚으셨어요.
하나님께서 아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두신 일은 하나님의 큰 겸손입니다.
흙으로서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겸손은 티끌과 같은 우리에게 그분의 형상을 담아두신 겸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를 찾아오신 겸손은 우리 연약한 자를 위한 겸손입니다.
[예화]
1950년대에 스위스 출신의 유명 건축가인 르 코르뷔제(Le Corbusier)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네레트(Jeanneret)가 인도 찬디가르市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위대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도시를 설계했습니다. 이들은 가로등, 맨홀 뚜껑은 물론, 공공 건물에 들어갈 소파 겸용 의자·책장·걸상 등도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잔네레트가 디자인한 티크 나무의자 수천 개는 공공 기관과 대학, 교도소 등에 공급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낡아버린 이 제품들의 가치는 잊혔습니다. 낡은 의자는 부서져 폐기되거나 창고에 보관됐고 재활용됐습니다.
그런데 1999년 해외 골동품 수집가들이 '소문'을 듣고 이곳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건축가 피에레 잔네레트가 디자인한 의자들. 경매가는 미국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 이렇게 유출된 나무 의자 2점이 이달 중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동일한 의자를 20년간 사용해 온 찬디가르 시의 한 공무원은 의자 가격을 '10달러'쯤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골동품상들은 나무의자는 8000~1만2000달러, 맨홀 뚜껑은 2만 달러(약 2000만원)를 요구하며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은 1만달러짜리 의자인줄도 모르고… 수 천 점을 '고물'로 해외에 팔거나 폐기처분을 해버렸던 것입니다.
자신이 20년간 깔고 앉았던 의자를 $10 정도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었던 한 관리를 망연자실하여 뇌까렸습니다.
'20년간 깔고 앉았던 나무 의자가 최소 8000달러짜리였다고?'
우리는 연약한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의 겸손을 우리의 삶에 새겨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신 사실을 받아들인 인생은 그날에 놀라운 진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로마서5:5-6)
하나님 겸손의 최절정은 경건치 않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입니다.
멜 깁슨이 몇 년 전에 우리 가운데 보여준 Passion of Christ란 영화의 한 장면을 보시겠습니다.
경건치 않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서 받아야 할 진노를 대신 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
그분의 겸손하심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값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는말]
하나님의 겸손이 우리 성도의 마음에 부은 바 되었습니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이 놀라운 주님의 사랑이 우리 인생에 접목될 때,
우리 인생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화]
알프레드 노벨은 1867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였습니다.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투과성이 높은 규산이 함유된 규조토에 스며들게 해 말리면 사용과 취급이 훨씬 용이하고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이 새 제품에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여 영국(1867)과 미국(1868)에서 특허를 받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는 노벨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굴착공사, 수로발파, 철도 및 도로 건설에도 곧바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다이나마이트가 바로 사용될 때는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모릅니다. 지난 중국 우루무치 여행 중에 우리는 비단길이 아주 높은 고산지대를 넘어가는 것을 알았습니다. 험산 준령을 넘어서 서역3만리를 따라 가는데 험산계곡을 지나갑니다. 그런데 근래에 그런 험산준령에 차들이 상당한 고속으로 질주할 수 있는 도로가 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다이나마이트의 공이 크다고 생각이 됩니다. 같은 다이너마이트라 할지라도 누구의 손에 들려 쓰임을 받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고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말씀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들어가는 말]
엄정화 자매는 고국에서 잘 나가는 가수인가 봅니다.
27일 온누리교회(담임목사 하용조)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엄 자매는 이날 이런 간증을 했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 행복하고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고
하나님께로 나오고 싶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 들어올 때, 이런 깊은 감동을 고백하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속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1. 우리가 연약할 때, 죽기까지 우리 연약함을 감당하셨습니다.(5-6)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1] 인간은 강해보이지만, 사실 연약한 존재입니다.
경건해 보이지만 경건치 않은 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
= 우리는 육신이 연약하고 경건치 못한 존재입니다.
- 쓰나미와 같은 자연 재해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는 존재입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도 한 번 태풍이 몰아쳐오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강한 것 같으나 연약한 미국입니다.
- 몇 분만 숨을 못쉬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시편 기자는 인생이 연약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개나 짐승들보다 어떤 면은 연약해 보입니다.
개들은 태어난 지 몇 달만 되어도 자기 앞가림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6-7년이 지나서야 겨우 학교에 가서 배울 정도입니다.
약합니다. 웬만한 짐승은 그 나이면 중년인데 말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독감 바이러스에게만 노출되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어 눕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약이라고 값을 들여 달여드렸는데 그것을 자신 할아버지가 두달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보약이 체질에 맞지 않아 간이 다 녹아버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 계속적으로 쏟아지는 눈을 치우다가 허리가 삐끗하여 상당히 고통을 받았습니다. 저 아름답게 흩날리는 입으로 훅 불어도 날려가는 눈 앞에서도 무력한 것이 제 몸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약하고 경건하지 못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2] 마음도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가 인간입니다.
몸만 깨어지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도 깨어지기 쉽습니다. 질그릇 같아요.
저는 어릴 때 동굴테를 굴리다가 그것이 장독에 뛰어드는 통에 장독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다행이 금이 가서 다 새어나오기 전에 장을 다른 곳에 옮기긴 하였지만 항아리는 쉽게 깨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도 이렇게 깨어지기 쉽습니다. 약하고 경건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3] 어떤 사람은 말할 지 모릅니다. 관리문제라고 말입니다.
잘 간수하면 건강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사실 중요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간수할 능력도 약합니다.
지글러 박사는 말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100만불짜리 말이 있다면 운동을 매일 시키지 않겠는가? 건강에 나쁜 습관을 허락하겠는가?"
그렇습니다. 건강에 나쁜 음식도 먹이지 않을 것입니다.
과식도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약해요. 그래서 100만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연약함 때문입니다.
4] 죄와 사망의 권세 앞에서도 연약하고 경건치 못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 믿음의 용장 다윗이 죄의 권세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의 용장이 죄의 권세 앞에서 한탄합니다.
[롬7:23-24]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5] 한 때, 역사를 움직이는 일에 쓰임을 받았던 신앙의 용장들도 때로는 연약함을 극복할 수 없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다윗과 바울 뿐이겠습니까?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생명을 취하여 가시기를 간구하는 엘리야를 보십시오.
[왕상19:3-4]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갈멜산상에서 850명의 이방 선지자를 물리친 그 엘리야의 고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약5:17에서는 엘리야를 소개할 때,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1]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것과 병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2]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3]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징계와 채찍을 받으셨습니다.
[사53:5]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4] 성령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5]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연약함을 돌아보십니다.
[왕상19:5-6]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3.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도 연약한 자를 도와야 합니다.
12] 그러므로 우리가 연약하고 불경건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불경건함을 도우셨으므로 우리 성도들도 연약하고 불경건한 형제들을 도와야 합니다.
어떻게 연약한 형제를 도울 수 있습니까?
1] 우선 어떤 형제는 더욱 연약한 존재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서 14: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인디애나 주의 시골 학교에서 키모테라피를 받아 머리가 다빠져 오는 친구를 위해 모든 학생들이 머리를 깎은 채로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형제의 연약함을 사랑으로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북한 동족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연약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랑으로 받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할 줄 믿습니다.
2] 연약한 형제를 돕는 방법은 비판보다 그 약점은 담당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로마서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는 자녀를 잘 기르는 부모들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끊임없이 잔소리만 해보세요. 아이가 성질이 덧납니다. 그런데 교육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고쳐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3] 생명을 걸고 연약함을 회복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나나 자매가 모레 수술대에 오릅니다.
함께 나누고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 연약함을 감당하기 위해서 집을 내놓은 분도 있습니다.
거의 매일 일용할 양식을 공급합니다.
돈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닌데 전심을 다 기울입니다.
어느날 사냥개 한 마리가 토끼를 잡기 위해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토끼를 놓치고 말았어요. 다른 개들이 웃습니다. 망신을 당한 것이지요.
그때 그 개는 말했습니다. 그 토끼는 생명을 걸고 뛰었고, 나는 저녁 식사를 위해 달렸다.
형제의 연약함과 경건치 못함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 기독교인이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과 원수되어 평생을 죄에 매여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한 존재이지만, 경건치 못한 사람이지만, 죄인이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연약함을 감당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화목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자다웁게, 하나님의 대사다웁게 이 세상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명언처럼
"목숨을 걸만한 일을 찾지 못한 사람의 삶은 가치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연약함을 대신 담당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사명을 향해, 생명을 걸고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연약한 형제를 돕는 사명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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