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국의 인터넷 소식을 보니 이런 기사가 눈에 띕니다.
"수혈을 금기시하는 특정종교를 가진 부모 때문에 2개월 된 영아가 수술도 받지 못한 채 숨지는 일이 발생해 많은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12일 서울 소재 A대학병원에 따르면 대동맥과 폐동맥이 모두 우심실로 연결되는 선천성 심기형으로 고통 받던 이모(생후 2개월)양이 제때 수술 치료를 받지 못해 최근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이런 복음이 있습니다.
[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 성도들이 바람직한 신앙을 갖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서 아름답고 건강한 인생을 이룰 수 있기 바랍니다.
1. 연약한 성도를 하나님의 가족답게 사랑합니다.(사랑)
[1-2절]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연약한 자를 두셨습니다. 우리로 그들을 감당케 하시기 원하십니다.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몸이 된 교회에는 강건하고 온전한 성도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상처를 입고 상하고 찢긴 연약한 교우들도 있습니다.
병들고 낭패한 교우들도 있습니다. 교회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이 연약한 지체들과 합하여 선을 이루어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갑니다.
1] 연로하신 어른들에게 갖추어야 할 예절이 있습니다.
디모데는 목회자로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연장자들에게도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지켜야 할 예절이 있습니다.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비인격적인 언행은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권면을 하더라도 온유한 태도를 견지하라는 말씀이지요.
모든 예의와 겸손함을 갖추라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에게 하듯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처럼, 어머니께 하듯' 그렇게 연장자를 권면할 때 예수님이 생각나고 덕스럽습니다.
인간적인 예의 범절은 종교나 시대, 공간을 막론하고 지켜져야 할 영속적인 규범입니다. 특별히 노인을 존대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기본적인 윤리이기 때문입니다(레 19:32).
나보다 나이가 어린 젊은이에게는 어떻게 권면해야 합니까?
2] 젊은이는 형제 자매로 받을 일입니다.
교회 내에서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같은 하늘의 아버지를 모신 '형제자매'입니다.(고전 12:26, 27). 모든 젊은이들에게도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된 형제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3] 참 과부를 존대해야 합니다.
[3-4절]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참과부'란 남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과부를 말합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사회 복지나 생계 보조 수단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이들을 돕는데 교회가 적극 참여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역이었습니다(행 6:1). 여기서 과부는 연약한 성도를 대표하는 말씀입니다.
노령이나 연약함으로 인해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지체를 배려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의지할 곳이 없는 당시 고아와 과부를 연약한 성도의 대표적 지체로 말씀하시고 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과부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신 10:18 ; 24:17 ; 시 68:5).
하나님께서는 과부와 고아의 보호자가 되십니다.(사 1:17).
예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막 12:42, 43 ; 눅 7:11-17 ;18:3-5).
초대 교회안에 집사 제도가 생기게 된 큰 원인으로서 과부를 보살피는 일을 들 수 있습니다(행 6:1-6). 과부를 돕는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으므로(행 6:1) 교회는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에 대한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참과부의 실례는 눅 2:36, 37에 성전에서 주야(晝夜)로 금식하며 기도한 과부 [안나]를 들 수 있습니다.
2. 참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주야로 기도합니다.(소망)
[5절]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1] 소망은 가장 좋은 대상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일입니다.
[1] 우리는 세상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소식을 기다립니다.
그런 사람을 기다립니다.
어떤 행운을 기대하면서 복권을 사는 사람이 있고
또 증권 같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을 보기도 합니다.
TV를 틀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인터넷을 열어 최근 소식을 열어봅니다.
그렇게 해서 그런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시간을 사용한 것을 계산하면 저도 엄청난 시간 낭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수많은 소식들, 홍수와 같이 밀려든 소망이기를 원하며 대하였던 소식들이 대부분 쓰레기로 버려졌습니다.
그것은 소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당장 눈 앞에 없어서 보지 못하는 대상입니다.
누가 보는 것을 기다립니까?
만일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 일입니다.(롬8:24-25)
[3] 이스라엘의 참 소망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렘 17:13).
[합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내 눈에 아무 것도 아니 보이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이시기에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 또한 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는 나의 소망 (시 71:5) 이라 찬양합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참된 소망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참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 소망은 메시야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시던 때에도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이 소망이 실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되었고 구원의 완성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자신이 매인 바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5]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은 우리 소망이십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의 재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 몸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뿐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곤고할 때, 소망을 둘 곳을 찾습니다.
그러나 참 소망은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2] 기도와 간구입니다.
왜 중요한 일을 할때 기도와 간구로 하라 하지 않으시고, 모든 일에 하라고 하셨을까요?
기도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내 인생 안에 모셔들이는 일이요, 그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요,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의 손발로 우리 자신을 내어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께서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기도 중,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음성을 듣고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면 들어오십니다. 들어오신 그분과 더불어 먹는다는 것은 친밀하고 즐거운 교재를 의미합니다. 그 교제의 주제도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 선지자는 그 백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 백성의 행복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또있나 합니다 기도가 살아나고 기도를 통하여 매일 주님을 만나면 아무리 힘든일이나 업무도 솜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3. 선한 행실을 보배같이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10절]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믿음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곧 선한 행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을 통해 가르치신 일입니다(요 13:14).
가정과 교회, 이웃과 나그네를 위한 겸손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의미합니다.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한다', '헌신하다'의 뜻입니다. 단순히 선한 양심과 신앙을 갖는 의미를 넘어 실제 생활에서 선행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1] 자녀를 양육하며 선행행실의 증거를 보입니다.
출산하는 일과 집안을 관할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허락하신 특권이며 사명입니다.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고 참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장점은 성도들의 이러한 헌신적 사랑과 변화된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직분을 헌신짝처럼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가 믿음으로 디모데를 양육하였습니다.
수산나가 웨슬레를 믿음으로 양육하여 바로 이런 믿음을 보였습니다.
마가 요한이나 어거스틴 배경에는 이런 위대한 믿음의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2] 나그네를 대접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는 선은 아름답습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나그네를 대접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왕상 17:9).
수넴 여인은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함으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왕하 4:8-11).
루디아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함으로 역사상 기념비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행 16:40)
들 수 있다.
3]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이것은 종이나 하는 천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이 일을 감당할 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4]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환난'은 교회 성도들이 신앙으로 인해 받은 박해입니다.
[행 20:23-24]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달려가던 사도에게 환난이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힘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경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살전 1:6]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살후1:4]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난 당한 형제를 구제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시편 86:7]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요한계시록 2장]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5] 연약한 가족을 돌아보는 선입니다.
[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연약한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요, 어떤 사랑보다 우월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직계가족조차 돌보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신자보다 못한 자입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이 어떻든 간에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할 만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인간의 원초적인 책무를 무시하는 자이므로 정죄받습니다.
이런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명부에 올리라는 말씀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푸시는 하나님께서 생명 책에 올리시겠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마무리하는 말]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우리 마음에 늘 새롭게 떠오르는 말씀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비하지요. 그러나 너무 신적인 요소에 몰입하다 보면, 인격적인 부분을 간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으로 빚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빚었습니다. 인간다웁고 자연 섭리를 존중하면서도 하나님을 더 갈망하는 인격적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 원합니다.
세상 불신자들도 우리 신앙인들이 이런 중심을 갖고 살기 원합니다.
다음 기사도 참고합시다.
울 종로4가에서 귀금속 가게를 운영하는 박현용(39)씨와 이준섭(39)씨는 운동으로 친해진 친구다.
4년 전 몸무게가 100㎏까지 나가던 박씨가 소개팅에서 만난 여성에게 ’뚱뚱한 사람은 싫다’며 거절당한 충격에 먼저 운동을 시작했다.
박씨가 달리기 등으로 30㎏ 정도 살을 빼자, 역시 좀 뚱뚱한 편이던 이씨도 자극을 받아 운동을 시작했고 함께 한강을 달리거나 헬스장에 다니며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둘은 건강을 위해 달리다 마라톤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한 박씨가 ’달릴 때마다 1m에 1원씩 적립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이씨가 흔쾌히 받아들여 두 사람은 풀코스(42.195㎞)를 뛸 때마다 4만2천195원씩 적립해 나갔다.
2007년 첫해에는 둘이 뛴 거리만큼의 액수에다 상가 동료 2명이 후원금을 보태 연탄 3천장을 마련했고 아현동과 후암동, 상암동 이웃에게 배달했다.
2008년에는 박씨가 운동을 하다 다리를 다쳐 마라톤 대회에 많이 나가지 못한 탓에 모금액이 줄어 연탄도 2천장으로 줄었지만, 작년에는 다시 3천장을 마련해 상계동 주민들에게 전했다.
그 사이 두 사람의 미담이 알려지면서 이들이 적립한 금액만큼 액수를 보태주거나 일정 금액씩 후원해주는 상가 동료가 20명 정도로 늘어 올해는 연탄 5천300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강남의 판자촌인 개포동 구룡마을에 한 가구당 연탄 100장씩 배달했다. 올해는 성균관대 통계학과 홍종선 교수와 학생 11명이 찾아와 일손을 보탰다.
홍 교수도 역시 마라톤 마니아로 박씨와 마라톤 코스에서 알게 된 사이다.
박씨는 “연탄 한 장에 500원 정도밖에 하지 않아 모은 돈이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면서 “하지만 직접 배달을 하면서 어려운 이웃의 실상을 보게 되니까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올해 연탄 배달에는 상가 동료가 8명밖에 참가하지 못했는데도 홍 교수님과 학생들 덕에 훨씬 수월하게 일을 마쳤다”며 “내년에도 더 많이 뛰고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경 본문]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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