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2월 마지막 주일 공동의회에서는 서머나 교회 제 2기를 섬기게 될 장로 두 분을 선출합니다.
장로를 세우는 일은 매우 아름답고 값진 일입니다.
장로는 역사의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십니다.
다윗이 그 뒤를 이은 것도,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것도 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서 하신다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장로는 어떤 분일까요?
1. 주님의 양무리를 섬기는 일을 기뻐합니다.
[벧전5:2]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장로는 교회에서 전반적인 것을 관리하는 영적 지도자로서 교인들을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양무리를 치는 직분자가 맡은 자 답게 가져야 할 마음 가짐이 있습니다.
1] 양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감당하여야 합니다.
'부득이함으로'는 '자원함으로'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억지로'의 뜻입니다.
4년간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북군의 승리에 크게 쓰임을 받은 링컨 대통령과 스토 부인이 만났습니다.
“외모가 강인할 줄 알았습니다.”
“노예제도를 보고 노여워하신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 저는 단지 그분의 도구였을 뿐이지요. 각하의 모습도 제가 상상한 것과는 너무 다릅니다. 의외로 인자한 표정이군요.”
“사실은 제가 싸운 것이 아닙니다. 저도 작은 도구였을 뿐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감당하여야 합니다.
장로들은 주어진 직임을 행할 때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고 성령께서 주신 마음으로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심으로 행해야 합니다(행 20:28).
양무리를 인도할 때, 양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3]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꺼이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 본절은 당시의 장로직에 일정한 보수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딤전 5:17, 18). '더러운 이'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지요.
'즐거운 뜻'으로 ‘헌신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장로들은 자신의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거나 돈을 목적으로 직임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알렉산더(BC356∼323)는 왕위에 오른 후 그리스를 평정,위용을 과시했습니다.
그의 진가는 그가 헤레스본드 해협을 건너면서 드러났습니다. 그는 이때 자신의 소유를 장병과 지역주민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를 본 한 신하가 『폐하,그렇게 다 나누어주시면 폐하에게 무엇이 남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짐은 앞에 있는 희망을 갖겠노라』
세상을 정복하는 일개 대왕도 이런 멋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위대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2. 양무리의 본이 됩니다.
[벧전5:3]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본이 되는 장로는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장로는 위에서 군림하기 보다 맨 앞에 서서 따르는 사람들을 미래로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려고만 하는 이 때에, "나를 따르라"고, "나를 본받으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장로가 필요합니다.
1] 장로 된 분들이 받는 가장 큰 유혹은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입니다.
어떤 집단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목표가 있어야 하고, 또한 목표를 향해 이끌고 갈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장로가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점입니다.
결코 어떤 사람이 사람위에 존재하거나 군림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한 말을 두 사람이 타려면 부득이 앞에 타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뒤에 타는 사람도 있듯이 한 교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민족 어느 나라든지 그 시대에 맞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한 나라와 민족, 그리고 한 집단의 흥망성쇠가 지도자에 달려있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위한]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양무리에 [의한] 일꾼입니다. 양무리에 의해서 피택된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양무리의 일꾼입니다.
양무리를 섬기는 청지기가 장로입니다.
이 존귀한 장로는 해서는 아니될 일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맡은 양무리를 주장하는 자세를 내려놓고
양무리의 본이 되는 겁니다.
요 21:15 - 17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부탁했던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는 다른 목자들 즉 장로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래 '양'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요 10:14; 21:15)
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행 20:28). 그런데 목자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 무리를 돌보는 직임(職任)을 사람들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양 무리'를 돌보고 양육하는 직임을 다하라고 장로들에게 권면합니다.
런던에 세계 최대의 백화점을 세운 고든 셀프리지는 "고용주"가 아닌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고용주와 지도자는 무엇이 다릅니까? 고용주는 권위에 의존하고 지도자는 친절한 설득에 의존합니다.
고용주는 공포를 불어 넣고, 지도자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고용주는 "나"라고 말하고 지도자는 "우리"라고 말합니다.
고용주는 문제에 대한 책임만을 말하고 지도자는 그 문제를 고칩니다.
고용주는 "일하라"고 말하고 지도자는 "일합시다"라고 말합니다.
3. 그리스도의 고난을 넘어 영광에 참여할 자입니다.
[벧전5:1]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장로의 자격을 세 가지 측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함께 동역하는 분입니다.
‘함께’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동역자’임을 강조하는 주장입니다. 이는 결코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도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동등한 '장로' 신분으로 동역하는 자, 그런 동역자 '장로'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낮아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 보는 일입니다.
사무엘 로간 브렝글은 구세군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순전한 영적 능력을 소유할 뿐 아니라 학자였던 그는 도덕적인 언어로 영적인 권위와 리더쉽의 길을 설명하였습니다.
"지도권이란 승진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도와 눈물로 얻어지는 것이다.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자기의 마음을 살피고, 자신을 포기하고, 모든 우상에게서 떠나는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고, 용감하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불평 없이 십자가를 지고, 영원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흔들림 없이 바라봄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들을 위해 위대한 일을 구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처럼 우리에게 유익한 것일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해 해로 여길 때 얻어지는 것이다. 이는 실로 커다란 대가이지만 참된 영적 지도자, 곧 하늘과 땅과 음부조차도 그의 권세를 알고 인정하는 그런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찾고 있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분명하게 나타내신다.(대하16:9)
(2)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직접 그리스도의 고난을 목격한 증인입니다.(행 5:32; 10:39)
그리스도 고난을 증거할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요 21:18).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우리 주변에는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을 기다리는 손길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예요.
구로 초등학교 3학년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
벌집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잘 아시지요?
한 울타리에 55가구가 사는데요.
방문에 1, 2, 3, 4, 5...번호가 써 있어요.
우리 집은 32호예요.
화장실은 동네 공중변소를 쓰는데,
아침에는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줄을 설 때마다 저는 21호에 사는 순희 보기가 부끄러워서
못 본 척 하거나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기도 해요.
우리 식구는 외할머니와 엄마,
여동생 용숙이랑 4식구가 살아요.
우리 방은 할머니 말씀대로 라면박스만해서
4식구가 다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엄마는 구로2동에 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할머니는 운이 좋아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취로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시고 있어요.
아빠는 청송교도소에 계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죽었다고 말해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 못 싸 가는 날이 더 많아요.
엄마는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나쁘다는데도
매일 술 취해서 어린애 마냥 엉엉 우시길 잘하고
우리를 보고 "이 애물 단지들아! 왜 태어났니...
같이 죽어버리자" 고 하실 때가 많아요.
지난 4월달 부활절날 제가 엄마 때문에
회개하면서 운 것 예수님은 보셨죠.
저는 예수님이 제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 못했거든요.
저는 죄가 통 없는 사람인줄만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죄인인 것을 알았어요.
저는 친구들이 우리 엄마보고 '술집 작부'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구요.
매일 술 먹고 주정하면서 다같이 죽자고 하는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아시죠.
지난 부활절날 저는 '엄마 미워했던 거 용서해주세요'라고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모습으로 '용욱아 내가 너를 용서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만 와락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그날 교회에서 찐 계란 두 개를 부활절 선물로 주시길래
집에 갖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생전 처음으로 전도를 했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구요.
몸이 아파서 누워계시던 엄마는 화를 내시면서
"흥, 구원만 받아서 사냐" 하시면서
"집주인이 전세금 50만원에 월세 3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구원만 말고 50만원만 주시면
네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도 믿겠다" 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을 믿겠다는 말이 신이 나서
기도한 거 예수님은 아시지요?
학교 갔다 집에 올 때도 몰래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했잖아요.
근데 마침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뽑아서 보내 주셨어요.
저는 청송에 계신 아버지와 서초동에서 꽃가게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던 때 얘기를 그리워하면서 불행한 지금의 상황을 썼거든요.
청송에 계신 아버지도 어린이날에는
그때를 분명히 그리워하시고 계실테니
엄마도 술 취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살아주면 좋겠다고 썼어요
.
예수님, 그 날 제가 1등 상을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지요?
그 날 엄마는 너무 몸이 아파서 술도 못 드시고 울지도 못하셨어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 오셨어요.
글짓기의 심사위원장을 맡으신 노 할아버지 동화작가 선생님이
물어 물어 저희 집에 오신 거예요.
대접할게 하나도 없다고 할머니는 급히 동네 구멍가게에
가셔서 사이다 한 병을 사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똑똑한 아들을 두었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엄마는 눈물만 줄줄 흘리면서 엄마가 일하는
술집에 내려가시면 약주라도 한잔 대접하겠다고 하니까
그 할아버지는 자신이 지으신 동화책 다섯 권을 놓고 돌아가셨어요.
저는 밤늦게까지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동화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책갈피에서 흰봉투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펴보니 생전 처음 보는 수표가 아니겠어요.
엄마에게 보여 드렸더니 엄마도 깜짝 놀라시며
"세상에 이럴수가...이렇게 고마운 분이 계시다니"
말씀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께서 가져 오셨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주신 거예요' 라고 말하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얘 용욱아 예수님이 구원만 주신 것이 아니라
50만원도 주셨구나" 라고 우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도 우시고 저도 감사의 눈물이 나왔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울면서
"오빠, 그럼 우리 안 쫓겨나구 여기서 계속 사는거야?" 말했어요.
너무나 신기한 일이 주일날 또 벌어졌어요.
엄마가 주일날 교회에 가겠다고 화장을 엷게 하시고 나선 것이예요.
대예배에 가신 엄마가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방울만해 가지고 집에 오셨더라구요.
나는 엄마가 우셨길래 또 같이 죽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고 있는데 "용욱아, 그 할아버지한테 빨리 편지 써.
엄마가 죽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주신 돈을
꼭 갚아 드린다고 말이야" 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엄마가 저렇게 변하신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고마우신 예수님! 참 좋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신 수표는 제가 커서 꼭 갚을께요.
그러니까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동화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사시도록 예수님이 돌봐주세요.
이것만은 꼭 약속해 주세요.
예수님!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예수님을 용욱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용욱이 드림.
좋은 지도자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예]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게티즈버그 전투 때 링컨은 마이드 장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편지 한 통을 함께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마이드 장군,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공로입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만약 작전이 실패한다면 장군은 링컨 대통령의 명령이었다고 말하시오. 그리고 이 편지를 모두에게 공개하시오! A.링컨"
(2)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벧전5:4]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나타날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보여 주실 영광입니다.
(벧전4:13-14)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동시에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누릴 영광입니다.
(롬 8:17-18)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마무리하는 말]
요즘 경영학에서 ‘서번트 리더십’이 회자된다. 섬김의 지도자란 말입니다.
로버트 그린리프는 서번트 리더십의 기본 아이디어를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동방으로 가는 여행’에서 얻었습니다.
단체여행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심부름꾼 레오가 없어지자 여행이 계속될 수 없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몇 년 만에 레오를 만났는데, 레오는 사실 심부름꾼이 아니라 여행을 후원한 교단의 책임자이자 정신적 리더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이런 섬기는 지도자의 특징은
1. 주님의 양무리를 섬기는 일을 기뻐합니다.
2. 양무리의 본이 됩니다.
3. 그리스도의 고난을 넘어 영광에 참여할 자입니다.
[설교할 성경 본문]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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