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봄비를 연일 촉촉하게 내리시고,
산천초목은 그 비를 받아마시며 아름다운 꽃들을 찬란하게 피우고 있습니다.
사과꽃은 사과 열매를 맺고
배꽃은 배 열매를 맺고
크랜베리 꽃은 크랜베리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저렇게 화사한 것을 보니 얼마나 좋은 열매를 맺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돌사과 열매를 맺는 나무도 있습니다.
하얗고 소박한 배꽃이 그렇게 크고 맛있는 배 열매로 맺히는 것을 보면 놀랍니다.
우리 인생도 꽃만 피우고 저마다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의 종류는 다양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1.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인생엔 벌레먹은 열매가 열립니다.
[갈 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공원이나 야산에서 과일나무를 만납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점이 벌레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점입니다.
열매는 많이 달렸는데 무수히 달린 과일이면 뭐합니까?
벌레가 그 속에 무차별로 공격해 들어갑니다.
그래서 자라기도 전에 떨어집니다.
떨어지지 않더라도 흉측스럽게 망가져서 자랍니다.
보기에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육체"는 하나님과 원수된 부패성입니다. 죄 아래 있는 "육체"는 누구나 그런 것처럼 벌레 먹은 나무와 같습니다. '본성이 이미 타락해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몸 자체를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식욕이나 성욕을 죄악이라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옛사람이 가진 '욕망이란 전차'를 죄가 운전하고 있습니다.
옛사람 자체를 죄란 벌레가 갉아먹고 있습니다.
옛사람에 맺히는 모든 열매까지도 죄란 벌레가 노립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쉬운 성경의 번역으로 읽어봅니다.
"19. 육체가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음란과
20. 우상 섬기기와 마술과 미움과 다툼과 질투와 화내기와 이기심과 편 가르기와 분열과
21. 시기와 술 취하기와 흥청거리는 잔치와 같은 것들입니다. 전에도 경고했지만,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
벌레 먹은 인생의 모습이 이렇게 볼성사납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옛사람에 속한 벌레를 인생에서 극복할 수 있습니까?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루터는 다음고 같이 말한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된다는 것은 사람이 감심으로 육체(옛 사람)를 죽임이니 곧,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버리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버림이다. 그것은 죽음과 죽음의 친구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며, 허탄한 이 세상 쾌락과 그것으로 말미암은 부패하고 더러운 열매를 내어 버림이며, 이 세상의 모든 좋다는것들을 버리고 그 대신 고난(환란)을 위함이다. 이것은 우리 본성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의 역사이다."(Vorlesung ber den R merbrief, 1965, s.270).
칼빈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된"자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마음이 간절하다. 그는 자기의 사욕을 따르지 않는다(벧후 1:21). 양이 목자를 따르는것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좋아한다. 이런 사람은 벌써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정죄를 면한 자이니(롬 8:1), 율법 아래 있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행실에 허물과 결점을 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허물 없는 것과 같이 보아주신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 지 말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좋은 열매 맺는 성도로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 육체의 욕심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좋은 사과나무라는 사실은 귀한 것이지만, 아무데서나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벌레가 만연한 산중에서 홀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공해문제가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제 3국에 가면 나의 깨끗한 옷은 쉽게 더럽혀집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해도 결코 육체의 욕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해도 결코 옛사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해서, 육체의 욕심이 저절로 극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2]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우리 자신이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었으면 무엇으로 삽니까?
3]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영으로 더불어 살아가면 육체의 욕심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화]
요즈음 교회 친목의 수단으로 탁구하는 일이 유행입니다.
서로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탁구를 하는 일이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습니다.
저는 잘하는 사람과 짝을 이루면 더 잘하게 되고 하는 게임에서 이기는 일이 많습니다.
내가 못해도 실수해도 잘하는 사람이 짝이 되어 있으면 극복이 되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좋은 열매를 맺는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를 곁에서 돕도록 부름을 받으신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성령을 좇아 행하면 됩니다.
성령을 좇아 행함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하는 이유는,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는 육체를 거스려 싸워 육체의 야욕을 이루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영적 전쟁의 연속입니다.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곧,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싸움으로 인하여 육체(인간의 부패한 성질)의 소원이 이루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영전(靈戰)은 참된 기독신자에게만 있습니다. 영전이 있으므로 죄악에 대한 승리가 온다. 이 세상 전쟁에 있어서는 언제나 필승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전에 가담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는 법입니다. 요 16:33 참
"성령으로 행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1. 매일의 삶이 주님의 조절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 아래 있다는 의미입니다.
3] 율법주의적 생활에서 구조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눅 15장), 형은 속박된 중에서 살았으므로 행동이나 섬기는 데에서 기쁨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와 같이 살고 있습니까?
이 결과 아름답고 건강한 열매가 맺힙니다.
[갈 5:22-23]
3. 성령과 연합된 삶에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맺힙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께 접목된 그리스도인은 내면으로부터 성령님만이 맺을 수 있는 열매를 형성됩니다.
행위와 열매 사이에는 참으로 큰 대조점이 있습니다.
열매는 살아 있는 연합으로 말미암은 결과입니다.
율법은 기계와 같아서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율법이란 기계를 사용할 때 나름대로 일을 해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계가 산출한 일들을 죽은 행실일 뿐입니다(히 6:1).
율법이란 기계로는 결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같은 은혜로운 열매를 산출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여기 "열매"란 말은 신자의 여러가지 덕행(德行)을 말합니다. 성령의 단일하신 역사이지만 9가지 방면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1]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 "사랑"은 사람과는 반대말입니다.
사람에게서는 이런 사랑의 열매를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속에 피어난 사랑입니다.
손양완 목사님이 성령 안에서 맺은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우리 민족이 두고두고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열매입니다.
2] 희락의 열매가 맺힙니다.
"희락"은 처음부터 창조주 하나님 중심에 있습니다.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나고 기쁨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시편 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 당신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도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신명기 28: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희락은 하나님 사랑하는 자에게 맺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희락(喜樂)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세요. 희락(喜樂)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을 보세요. 희락(喜樂)이 있습니다.
희락이 있을 때 얼굴에 빛이납니다.
남을 미워하는 자의 얼굴을 보세요. 희락(喜樂)이 없습니다. 수심과 번민과 고통의 그늘이 있습니다. 얼굴이 썩어갑니다.
3] 화평 열매가 맺힙니다.
화평은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자(히12:14)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약3:17-18). 마 5:9; 막9:50)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 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1) 서로 사과함으로 이루어집니다(마 5:24-26),
(2) 서로 용서함으로 성립됩니다.(엠4:2-3).
4] 오래 참음의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 줄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그 모진 고통을 오래 참으셨습니다.
말세가 될 수록 많은 사람이 조급하고 참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인력으로 할 수 없는 때에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림이 좋습니다.
힘들지만 참고 기다리는 백성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 백성에게 홍해 앞에서 선포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모압과 압몬 족속이 큰 무리로 유대에 육박하였을 떼에 여호사밧 왕을 통해 그 백성에게 홍해 앞에서 선포합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대하 20:17)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5] 자비 열매가 맺힙니다.
"자비"란 말은 남에게 베푸는 '친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친절"이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자비로운 주하나님 날 구원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신 것은 나의 공로가 아닙니다. 하나님 자비로우신 성품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에 접목되면 사람들이 자비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에 접목되면 사람들이 행실로 자비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에 접목되면 사람들이 언어로 자비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에 접목되면 사람들이 생각으로 자비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 찾아오셨을 때, 모습이 생각나시지요?
자비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말은 중요합니다.
[잠 12:18]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良藥)과 같으니라"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15:4]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노여운 말 한마디가 한 친절한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부지중에 나온 실언(失言)이 앞날을 캄캄하게 만들고,
찌르는 가시를 일평생 남겼도다.
그러나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슬펐던 마음에 광명을 주고,
동정의 말 한 미디가 한 영혼을 살려 놓고,
기쁨의 말 한마디가 캄캄하던 앞길을 광명하게 만든다.
남의 마음을 섭섭케 만드는 것은 네가 발표한 말뿐이 아니다.
네가 말하지 아니하는 그 때에 많은 마음들이 아픈 상처를 받는다.
네가 말했더면 많은 아픈 마음이 풀어졌으리라.
사림들이 언필칭(言必稱) 공평을 부르짖으며 사람에게 사납게 행한다.
그러나 격분된 말로 의(義)를 말할진대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
언어에서 성령의 열매가 얼마는 중요한가를 알게 해서 인용하였습니다.
6] 양선의 열매가 맺힙니다.
"양선"은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베푸는 자선 행위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선 사업이나 적선(積善)을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많고 실행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생명없는 사업 혹은 외식(外飾)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진정한 자선은 세상 끝날의 심판의 불에도 남습니다.
양선은 소망을 가진 자가 가진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몸을 이루는 지체 중 어느 정도 이상의 소수가 병이 들면 몸 전체가 병이 듭니다.
헤비타트 운동을 아시지요?
국경없는 의사회를 아시지요?
평화 봉사단, 적십자사, 구세군
그 중심에는 양선이란 성령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7] 충성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충성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헬쿨라네움(Herculaneum)이 함락당할 때에 로마 파수병이 죽기까지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임무를 다하였습니다.
당(唐)나라의 충신 장흥(張興)이 역적(逆賊) 안록산(安祿山)의 부하에게 잡혀서도 항복하지 않고 톱에 키워 죽으면서 끝까지 원수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성의 액기스를 만납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충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에 우리 인생에 접목이 될 때, 우리 안에서도 충성이 나타납니다.
(1) 주님만을 두려워하면 주님께 충성하는 자가 충성할 수 있습니다.
(2)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께 접목될 때, 우리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3) 의로우신 주님께 연합할 때 우리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8] 온유의 열매가 맺힙니다.
"온유"란 말은 특히 대적에게 복수하지 않고 부드러운 인격으로 이기는 덕목입니다.
모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크렌머(Cranmer)에 대한 후세(後世)의 속담을 아십니까?
"캔터베리의 감독 크렌머와 충돌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영원히 그의 친구사 되리라."
중세의 성자라 불리우는 버나드(Bernard)는 그 눈이 비둘기 눈같은 온유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리겐(Origen)은 말하기를 , "우리는 남을 위해서 지음이 되었고, 남을 저주하기 위함은 아니라"고 하면서 논쟁에 있어서도 온유를 주장하였습니다.
9] "절제"란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절제란 '자기 자신을 붙잡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죄를 묶는 사람 안에 열리는 영적 열매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쳐 복종하게"하였습니다(고전9:27), \
[마무리하는 말]
[갈 5:24-2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나의 인생에는 어떤 열매가 맺혀 있습니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벌레먹은 과일들입니까?
아니면
성령을 따라 삶으로 인한 성령의 9가지 열매들입니까?
"성령으로 행합시다.
5-6장에서 육체와 성령이라는 단어가 각기 10회씩 사용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신의 힘에 의존하지만 은혜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의존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우리를 성화시킵니다(고후 3:18/롬 8:29/롬 12:1-2). 육신의 욕망이 아닙니다. 결심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성도인 우리를 성화시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산다면"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행합시다.
에베소서 5장 18-24절과 골로새서 3장 15-19절을 보면, 성령으로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할 때 이루어지는 신자의 일상적인 경험입니다.
[설교본문]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갈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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