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March 2015

(죽으심) 사53:1-6, 여호와의 팔이 성도에게

[들어가는 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일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고,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종려주일인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주 역사상 가장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신 말씀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음을 받습니다.

     살아계신 여호와,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오늘날 누구에게 나타나는가?


1. 멸시받고, 버림당한 그입니다.

[사53:2-3]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로마 왕궁의 시저나 대제국에 나타났습니까?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세계적인 철학자들에게 나타났습니까?
헤롯왕이나 빌라도 같은 정치가에게 나타났습니까?
제사장이나 바리새인, 사두개인과 같은 종교지도자에게 나타났습니까?

그럼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아기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신 그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던 그 예수님께 하나님의 팔이 나타났습니다.

     주 앞에서 연한 순같이 자라나신 그 예수님께 여호와의 팔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기였을 때,  헤롯왕이 죽이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마리아와 요셉 품에 안겨 애굽으로 피하실 수밖에 없던 그 예수님께 하나님의 팔이 나타났습니다.

왜 입니까?

     세상은 마른땅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마른땅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마른땅이었습니다.

미천하고 연약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을 노렸습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아 마른 땅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사신 시대가 마른땅이었습니다.
불의와 죄악으로 황폐한 마른 시대였습니다.
악과 부패가 가득한 메마른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가 되셨습니다.

선한 것을 찾기 힘든 마른 땅과 같은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으셨습니다.

위클리프, 루터, 웨슬리 등은 이 은혜를 깨닫고 그 시대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마른땅에 생명의 줄기를 나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청교도들이 연약하여 멸시를 받고 마른땅이 되었을 때, 주님은 그들의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셨습니다.

그 마른 땅 같은 강도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줄기 같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하심이 마른 땅 같은 우리 안에 생명의 줄기가 되십니다.

미련해서 땅이 말라갈 때 주님은 지혜의 줄기가 되십니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황폐한 심령에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줄기가 되어 주십니다.
말씀 앞에서 메마르고 황폐한 자신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마른땅에서 나온  말씀의 줄기가 되십니다.
쓰임 받기에 부족한 마른땅이라고 느끼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넉넉히 채워 쓰시는 줄기가 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이십니다.

시대가 어두움을 탓하지 마십시오.
밝은 태양이 빛날 때, 별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어두움이 오면 별은 빛납니다.

그는 메시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메시아, 그런 연약하고 멸시받고 힘없으신 구원자라는 사실은, 연약하고 멸시받고 힘없는 우리에게도 복된 소식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팔이 연약하고 멸시받고 힘없고 가난한 성도들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연약하여 범죄할 수밖에 없고,
연약하여 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고,
도움이 없이는 자립할 힘도 없는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팔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 성도들에게
여호와의 팔이 나타나 함께 하신다는 소식은 좋은 소식입니다.

     롤프 이탈리안더란 사람은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의 빈민촌을 바라보고 서 있는 2310피트의 코르코바도의 그리스도상에 열심히 기어오르는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그리스도상에게 말합니다.

     "나는 저 아래 있는 더럽고 비좁은 숙소에서 당신께로 기어 올라왔습니다. 호화로운 이 도시 맞은 편에 있는 저 아래 빈민촌에는 나같은 사람이 900,000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빈민가로 가서 거기서 우리 함께 살아요. 우리 가운데 살면서 당신과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믿음을 주세요."

     주님께는 이런 연약한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팔이 있으십니다.

2천년전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 까닭은 바로 이런 연약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그 백성의 신음과 고통을 돌아보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죤 스타트 박사는 이방신을 연구하다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를 찾아온 신도는 너무나 연약하고 불쌍하여 도움을 요청하나 불상은 한없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좌정한 채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 백성의 고통에 눈감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고통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성도를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 거하시는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여호와의 팔이 그런 나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통당하는 나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도우시길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납니까?
여호와의 긍휼을 바라는 죄인에게 나타납니다.
우리 죄는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병임을 아십니다.
그리스도는 그 죄를 치료하시는 신묘한 약이십니다.
그 치료약은 효과가 즉각적이고 완벽합니다.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압니다. 하나님의 팔이 얼마나 연약한  자를 힘있게 붙드시는 지를 말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는 그 증인입니다.
로마 통치하에서 고통당하던 연약한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팔을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핍박을 당하는 자들에게 나타날 여호와의 강하신 팔을 믿습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납니까?

주 앞에서 연한 순같이 자라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연약해질 때, 죄에게 패배할 때, 연약한 자를 위해 준비하신 여호와의 팔을 기억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이 기이한 치료약을 세상 환자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기본 원리를 자랑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살아계신 여호와,일을 지어성취하시는 여호와의 손이
오늘날 누구에게 나타나는가?

비버리지 주교가 나이가 많아 임종에 이르렀을 때 주위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그때 전속사제 한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하니까,『당신 누구요?』그러더랍니다.


그의 아내가 다가가서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하니까,역시 『당신 누구요?』하더랍니다.그래서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했더니,금방 대답하기를 『물론이지요.나는 40년간 그와 사귀어 왔답니다.그분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랍니다』


2. 대신 허물과 죄를 지신 그분입니다.

     [사53:4-5]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이 짊어지신 것은 그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습니다. 이는 대리 개념입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대신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의 결과뿐 아니라 우리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설교 예화 4
키워드: 대속
죄를 대신 치른 형의 이야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실제로 일어난 실화이다.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형제가 미국땅에 적응해가기 시작 했다. 하지만 형에 비해서 동생은 한탕주의에 빠지고 그곳의 깡패들과 어울리게 되어 언제나 형의 걱정을 더해 주었다.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을 통해 동생을 말류 해보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그 자리였다. 동생도 형의 사랑을 아는지라 자신이 하는 것이 잘못됐다 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되돌이키기는 이미 늦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생은 피 묻은 옷을 입고 울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죽인 사람의 피가 흔건하게 묻은 외투를 걸치고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형에게 달려 왔다.
밖에서는 투항하라는 경찰들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찌 할 바를 모르던 형제는 그저 울기만하다가 동생의 자수로 결론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면 동생은 사형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형은 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동생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리곤 입고 있던 동생의 겉옷을 빼앗아 입고 문밖으로 뛰어 나간다.
경찰은 서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멈추지 않고 뛰게 되고 경찰은 죽인 살인범이라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죄의 피의에 대속의 피를 흘린다.
나중에 진짜 죄인이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가 죄의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동생은 사면이 되고 풀려난다. 그리고 그 동생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이제는 형이 소원한 올바른 인생을 살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모든 고초를 다 치르시고 죽으셨으니 이제 우리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출처: 극단 예수님의 공간 대본 중 “오빠의 십자가”

여호와의 팔은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를 누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질병
정신적인 질병
사회적인 질병
신체적인 질병
그 어떤 질병 속에서도 고통당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질고 때문에
우리의 슬픔 때문에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잃고 질병 속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실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팔은 로마 제국의 권세를 박살내고 그 백성을 로마통치에서 구원하여 낼 그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 까닭은 다윗왕조 때의 번영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팔이 그런 곳에 나타났습니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 대신 찔리고
우리 대신 상하고
우리 대신 징계를 받고
우리 대신 채찍에 맞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어떤 농장 집에 목사님이 머물게 되었어요. 그는 농장 주인을 예수님 믿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도해도 듣지 않습니다. 믿지 않더랍니다.
어느 날, 농장 주인이 목사님의 방문을 두드리며 빨리 좀 나와 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따라가 보았더니 닭장에 큰 암탉이 족제비한테 목이 물려서 피를 다 쏟고 죽어 있더랍니다. 그 주인이 그 암탉을 툭 치니까 죽은 채 쓰러지는데 그 품에는 병아리 여러 마리가 삐약삐약 하고 살아서 뛰어나왔습니다. 그 어미닭은 뛰어 도망가면 얼마든지 살 수가 있었지만 자기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앉아서 피 흘리고 죽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스펄전은 우리에게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분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지셨습니다.
시험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많이 아프셨습니다.
죽기까지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오 질고의 왕이여!
오, 상처의 왕이여!

나를 위해 모든 질고와 상처를 담당하신 나의 왕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찾아 주시려고 고엘로 우리에게 오신 왕!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시기까지  고통을 당하신 왕,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애3:1)

세세에 찬양을 받으셔야  할 그 하나님께서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셨습니다.
천사들에게 경배를 받으셔야 할 그 하나님께서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았습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

렘브란트란 화가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화폭에 담으면서 군중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었습니다. 그리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나는 그 일에 동참하였다.
육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몸에 내려쳐진 그 채찍은 로마병정의 채찍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려치신 채찍으로 그리스도가 그분의 몸과 영혼으로 가로막아 대신 맞으셨습니다.
여호와의 팔을 사랑합니다.
마른 땅 같은 내인생에 생명의 줄기가 되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모든 죗짐을 감당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간고를 많이 겪으셨습니다.



     [설교본문: 이사야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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