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절]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들어가는 말]
2010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자고, 좀더 경건한 삶을 살자고 몸부림친 금년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사한 일이 많습니다. 좀 안타까운 일도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아보고 싶었던 우리의 2010년 한 해에 부족했다면 도대체 어떤 점이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담백하지만 분명한 말씀 한 마디를 듣습니다.
[6절]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자족하는 마음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우리의 경건은 큰 이익을 얻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족은 헬라어로 ‘아우타르케이아'입니다.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덕목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행복이 자기 마음 안에 있다고 믿었습니다.자족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족하는 법을 사도 바울은 배웠다고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
1. 질서에 자족하는 마음(1-2)
[1-2절]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멍에 아래 있는 종"입니다. "상전이 있는 자들"이니 그에게는 상전이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들이 형성한 사회 역시 질서가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주인과 하인이라는 주종관계의 질서가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었습니다.
계급 사회질서 속에 사회 어떤 역할을 감당하게 함으로 사회를 유지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주종관계의 질서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질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일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초대 기독교는 주로 하층 계급에서부터 전파된었기 때문에 깨어있는 노예계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일 수밖에 없는 상전에 대한 바른 관계가 필요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 제도 가운데서 계층적으로 낮은 그러나 믿음에 있어서는 먼저 된 종이 상전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종된 사람이 상전에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1절]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상전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라 하십니다.
범사에 공경할 자입니다.
합리적일 때 공경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공경할 만한 경우에만 공경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 공경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이 마땅하다.당연지사라는 것이지요.
범사에! 공경할 분으로 구별해 놓으라 명하십니다.
마땅히! 공경할 분으로 구별해 놓으라 명하십니다.
[적용]
우리에게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분이 어떤 사람입니까?
군사부일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임금과 스승과 부모님이 누구입니까?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분으로 모실 수 있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상전이 있습니까?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분으로 모실 수 있기 바랍니다.
상전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라는 정체성을 두라 하십니다.
상전이 믿는 사람일 때는 어떻게 합니까?
[2절]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섬기는 종이 주인보다 빼어난 점이 많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상전은 믿음 안에서 형제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 위치에 서서 그 위치에 자족하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불행을 어떤 위치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나 무엇을 가졌는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삶의 조건이 좀 부실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삶의 조건을 갖추었더라도 불행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질서를 세우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지위를 맡기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있어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진정한 지위를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人各有所好(인각유소호: 사람마다 각자 좋아하는 바가 따로 있다)
物固無常宜(물고무상의: 모든 사물은 고정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誰謂爾能舞(수위이능무: 누군가는 너울너울 날아가는 학의 모습이 좋다한다)
不如閑立時(불여한립시: 누군가는 학이 한가로이 서 있는 모습이 좋다 한다)
누가 보아도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인데 불행한 사람이 있고, 누가 보아도 행복의 조건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각 사람의 마음의 태도 때문입니다.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환경이 개선되어도 감사하지 못할, 지혜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지위를 탓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높은 지위에 세워 두어도 탓하며 투덜거리며 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우주를 깊이 관찰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얼마나 확실한 질서 가운데 우주과 운행되고 있는가를 알고 놀랍니다.
온 우주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대신 자족하는 마음을 간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자족하는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자족하는 마음(3-6)
[3-5절]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온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바르게 반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짐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바른 반응을 오늘 말씀을 따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자족/이란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이카루스(Icarus)의 날개”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재적인 匠人(장인) 다이달루스(daedalus)는 죄를 짓고 그의 아들 이카루스(Icarus)와 함께 미노타우로스(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의 괴물 아들 - 머리는 소, 몸은 사람)를 가두기 위하여 자신이 설계한 迷宮(미궁)에 갇힙니다. 다이달로스는 미궁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새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인 날개 두 쌍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카루스에게 한 쌍의 날개를 달아주면서 이 날개는 밀랍으로 붙인 것이니 절대로 높이 날아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날기 시작한 이카루스는 너무 신나고 황홀하여 그만 아버지의 주의를 잊고 너무 높이 날아 태양 가까이 갔다가 밀랍이 녹아 새털 날개가 흩어져 바다로 추락하여 죽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 삶을 주는 말씀이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는 준행하면 삶을 얻을 나의 율례란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 아름다운 에덴 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울왕과 다윗왕은 똑같은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40년의 통치 기간을 왕으로 있으면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사울왕은 다윗왕과 달리 불행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말씀에 자족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하나님 말씀 앞에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 결과 생기는 암덩어리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할 때 생기는 암덩어리 하나는 교만이요 또 한 가지는 마음의 부패입니다.
1] 교만은 무서운 암덩어리입니다.
[4절]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우리의 신앙생활이 늘어가고, 알아가면서 우리들에게 부지불식간에 쌓이는 암덩어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이 귀한데요, 그것이 하나님 말씀보다 우선순위에 두면 암덩어리가 됩니다.
우리가 쌓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 순위에 두면 교만이란 암덩어리로 변하여 결국 변론과 언쟁이란 치명적 병을 유발합니다.
2] 마음의 부패 또한 무서운 암덩어리입니다.
[5절]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3] 그 결과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납니다.
[5b절]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4] 이를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는 것입니다.
[3절]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실지라도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의 구원을 우리 인류 가운데서 완성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서 교만과 마음의 부패와 같은 암덩어리를 극복할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만으로 자족하면 우리 내면에 하나님의 생명이 움틉니다.
君子貴遇時 不遇亦不嚬(군자귀우시 불우역부빈: 군자는 순경을 좋아한다. 그러나 역경을 만났을 때도 원망치 않는다)는 옛사람의 명언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는 順境(순경)과 逆境(역경)이 번갈아 갈마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순풍에 돛 단 듯 잘 나갈 때도 있지만 폭풍우 몰아치는 역경을 당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 때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살아납니다. 자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위기입니다.
“사람의 情緖的 感情(정서적 감정: 기분, 기쁨, 충만, 보람, 즐거움, 만족, 슬픔, 불만, 괴로움, 무의미 등)은 思考(사고-생각-Thought Form)에서 나온다"(심리학자 베크)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정서적 감정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좀 적극적으로 적용하자면 우리의 자족이“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아름답게 보람있게 잘 살기를 원하지만 불평 불만 한탄 원망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자족하여 마음을 지킬 때, 생명의 근원이 이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질 새와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먹이고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26-34)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30:8).
3. 먹을 것 입을 것으로 자족하는 마음
[7-10절]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알렉산더 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다음과 같은 대화는 유명합니다.
디오게네스는 조그만 나무 통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초청을 해도 응하지 않자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마침 디오게네스는 통속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대철학자의 그런 모습에 감동한 알렉산더 대왕이
“선생님, 당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청이 하나 있소. 저리 비켜 서 주시오. 당신이 햇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는 알렉산더의 권세나 물질이 전혀 부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알렉산더가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려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대왕이오. 누가 당신의 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결코 디오게네스가 되지 못했습니다. 알렉산더는 당시 땅 끝이라 생각했던 인도까지 정복했지만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 울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족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탈북자 호혜일씨는 (평양특별시 시민-김일성 대학 졸-북한 무역 대표단 근무-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측근 경호담당-남한 찬사 발언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고 남한으로 정치적 귀순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그의 책에 적었습니다.
"남한에서 살게 된 것이 너무 너무 너무 행복하다. 그런데 정작 남한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니 북한 사람들보다 더 불행하다고 느끼며 사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런 모순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사람들의 삶은 긍정적으로 보는 선순환 관점을 놓치고 성공 추구(긴 괴로움) - 조그만 성공(잠시 즐거움) - 더 큰 성공 추구(더 긴 괴로움) - 조금 더 큰 성공(잠시 즐거움) - 더 더 큰 성공 추구(더 더 큰 괴로움) - 어느 정도 성공(잠시 즐거움)....하는 구조로써 괴로움-불안-스트레스를 쌓아가는 부정적 악순환 구조를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천석군은 천 가지 걱정 만석군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받은 사람이 <먹을 것과 입을 것>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감사하고 즐거워 하면 그런 사람은 언제 어떤 환경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자족하는 삶이 열립니다.
人齩得菜根 則百事可作(인교득채근 즉백사가작: 사람이 나물 뿌리를 캐 먹고 살면서도 자족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이란 옛사람의 명언이 있습니다.
자족함은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선순환 관점에서 옵니다.
[마무리하는 말]
어느 날 랍비 샬롬과 아주 친한 한 친구가 자기 아들과 함께 랍비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친구와 그의 아들은 랍비와 부인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친구와 그의 아들이 랍비의 집안에 들어가 보니 방안에 가구나 장식이 하나도 없고 다만 평범한 밥상 하나만 덩그마니 놓여 있었습니다.
다음은 랍비와 헤어져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입니다.
父: 그래, 그 랍비와 그 부인의 인상이 어떻더냐?
子: 그 분들은 아담과 하와가 죄 짓기 이전 모습 같았습니다.
父: 그 방, 그건 어떻더냐?
子: 낙원 같던데요.
父: 잘 보았구나. 나도 그렇게 보았다.
유명한 랍비 벨츠의 샬롬(Shalom of Belz)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세상에 좀 부족하여도 살 의미가 있습니다.
[설교성경본문]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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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함의 유익
빌4:10-20, 딤전6:3-10
자족함은 삶의 역경에 처했을 때 위대한 힘을 발휘합니다.
부정적 이야기 - A는 은행원입니다. 그는 주식에 손을 대서 돈을 1억 정도 벌었습니다. 그러자 잘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계속하다가 결국 다 날렸습니다. 본전 생각이 나서 동생한테 500만원을 빌려 투자하여 날렸습니다. 동생한테 또 500만원을 빌렸습니다. 또 날렸습니다. 동생은 아내에게 말도 못하고 이자 무느라고 지금도 쩔쩔매고 있습니다.
B의 아버지는 강남에 5층 건물과 사우나를 운영하였습니다. B는 덕분에 어려서부터 고급 취미 생활(골프, 승마 등)을 하며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B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B는 남의 말에 솔깃하여 전혀 경험이 없는 제조업 공장을 하다가 유산을 다 날리고 지금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살고 있습니다.
긍정적 이야기 - 26세의 C는 한 달 전화료가 3-40만원이나 나올 정도로 친구 많고 놀기 좋아하고 천방지축이었습니다. 취직을 해도 한 두 달 다니다가 때려치우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C의 부모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C의 과거 행동거지로 보면 낙심하고 타락하기 쉬운 상황인데 오히려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조건이 전보다 못한 직장인데도 열심히 잘 나가고 있습니다. 부모의 의료보험료도 C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희망이 보이고 있습니다.
3년 전 퇴직한 50대 중반의 D는 퇴직증후군으로 낙심-허탈-삶의 무의미에 시달리며 허랑방탕하여 아내와도 이혼하고 작은 빌라에서 쓸쓸히 혼자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D는 자기 처지보다 못한 남자들이 부지기수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자족함을 배웠습니다. D는 지금 규칙적 생활과 함께 부지런히 산에 다니며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아, 좋다. 물이 참 맑고 시원하네” 하고 산 중턱 전망 좋은 바위를 만나면 아래를 내려다보며 “햐, 멋있네” 하며 오르는 사람들입니다.
정상은 아직 멀었어도 맑은 냇물을 만나면 “아, 좋다” 하고 전망 좋은 바위를 만나면 “아, 멋있다” 하며 현재를 누리며 즐기며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벌써 정상(보다 나은 삶)을 향하여 열심히 오르고 있지 않은가!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지족하여 자족한 사람은 남의 장단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남들이 잘 한다고 박수치고 찬양한다고 해서 우쭐거리며 과욕하지 않고, 남들이 못한다고 비난하고 손가락질 한다고 주눅들어 쪼그라들지도 않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지족하여 자족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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