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1 March 2015

히6:9-12 무엇보다 더 좋은 것

 [들어가는 말]

   기독교계의 세계적 지도자 빌리 그레이엄(92)목사가 ‘늙는다는 것’을 주제로 그의 30번째 책 ‘홈을 앞두고(Nearing Home)’를 펴냈습니다. 부제는 ‘삶과 믿음, 우아한 마무리’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책에서 삶을 어떻게 우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지에 관해 조언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줍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는 “누구도 당신이 겪을 외로움과 고통을 대신 준비해주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누구나 죽는데 왜 지금 나한테는 살아있는 시간이 주어졌느냐는 것입니다.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이 질문을 통해 쇠약해지는 것에 대처할 영적 힘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열정적 삶을 사는 것이 아름다운 말년을 보내는 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아하게 늙기 위해선 4가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시간이라는 선물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깨달아 은퇴 등 삶의 변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셋째는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영광임을 알아야 합니다.

   야구선수가 안타를 날리고 베이스를 돌아 힘차게 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에게 홈은 죽음을 의미하고, 베이스러닝은 인생을 뜻합니다.
그 역시 죽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93세가 된 파킨슨 병 환자로서 손은 떨리고 그가 자식들에게 “하나님이 나를 95세까지는 살게 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대로 삶을 주신다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나 우리 성도들에게 꼭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9절]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오늘 히브리 기독교인들에게 주님께서는 확신에 찬 메시지를 보냅니다.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확신에 찬 메시지를 보냅니다.
‘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진 ‘이 보다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도를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10절]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절대 잊지 않으시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랑으로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열매를 맺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가슴 뿌듯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우리가 성도를 섬길 수 있다는 자부심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서로 사랑 가운데서 연합하여 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 서로 섬기는 일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 성도들은 서로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 섬기고
서로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습니다.


   '섬긴다'는 말은 헬라어로 디아코네오(διακονεω)입니다. 이 말에서  하인, 일꾼, 집사로 번역한 (디아코노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교회의 제일 기본이 되는 일꾼이나 집사라는 말이 이 "섬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면 교회는 서로 섬기는 자들이 모인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서로 섬겨야 하는 사람들이요, 섬김을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교회 직분은 섬김으로 존재의미가 있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들이 더 많이 섬기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은 것을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많이 받은 자들은 받은 많은 것들로 섬기는 일을 합니다.

   과부의 두 렙돈을 하나님께서는 크게 생각하십니다.

   성도들 중에 적게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좀 적게 섬겨도 됩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이 적은 것으로 섬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절대평가를 하십니다.

   교회 안에는 아주 작은 소자 한 사람이라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사람도 업신여기거나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십니다.
서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섬김을 소중히 생각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찾아오신 목적을 이 섬김에 맞추셨습니다.

   [마가복음10:45]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랑으로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부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모여서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바나바는 좀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산을 팔아서 공동체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온 교회는 그것으로 함께 은혜를 누렸습니다.

   [행4:32-37]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다비다는 그렇게 넉넉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과부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섬김을 귀중히 보셨습니다.

   [행9:35+39]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마게도냐의 교회들은 극한 가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구제 헌금을 모아 그들을 위해서 섬김의 손길을 모았습니다.

   [롬15:25-27]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오늘날도 교회 안에는 좀 넉넉한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빠듯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섬기는 일을 기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도 돌아보는 일에 열심이 있습니다.
동족을 돕는 일에 열심을 냅니다.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에 열심입니다.
우리 주위에 환경이 좋지 않고 여러 가지 고통 속에 있는 성도가 있다면 그런 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들까지도 관심 깊게 보고 기도할 줄 압니다.
관심이 너무 지나쳐서 상처를 받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섬기는 일꾼들이요, 동시에 섬김의 대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섬기는 것이 옳습니까?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있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섬김에 있어서 기쁨으로 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자신의 재산으로 교회 성도들을 섬겼을 때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비다가 옷을 지어 가난한 과부들을 도울 때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마게도냐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때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많은 헌금으로 넘치는 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선교 헌금 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선교 구제 헌금하는 일을 기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후서 8장에 이 마게도냐 성도들의 섬김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고후8:1-2]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섬기는 일로 넘치는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들도 정치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압박을 받으며 착취를 당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유대인들의 난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을 가졌고, 그 기쁨은 넘치는 연보로 나타났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하나님께 헌금 생활을 했습니다.

   불신자들은 환난 중에서 낙심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기쁨으로 섬기는 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 형통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 남을 섬겨도 섬기는 것이지 내가 어려움을 당하는데 남을 어떻게 도우며 섬길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늘 입에 담고 사는 말이 있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돕겠다 하고 섬기겠다 합니다. 내 생활이 조금 넉넉해지면 그 때 남을 도우며 살아야지, 그 때에 헌금도 많이 하고, 구제도 멋지게 해야지 라는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의 섬김은 오히려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더 빛이 납니다. 나도 어려운데 어려운 사람은 없는가를 살피고 그들을 도와주고 섬길 때에 그 섬김은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힘에 지나도록' 섬겼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희생적인 섬김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극한 가난 속에 있지만 마치 부자처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는 성도들이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가난한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한 마음이 되어 함께 서로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이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린"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헌신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각 사람이 풍성한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히6:11]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교회에 대해 악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망교회에 소망이 없고, 사랑의 교회에 사랑이 없고, 순복음 교회에 순복음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소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소망의 이유'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그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말을 준비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소망은 가장 좋은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보는 것처럼 기대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소망을 누가 기다리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자신이 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단지 이생에 국한되지도 않습니다. 단지 이생뿐(?)이라면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소망을 하늘에 쌓아 두셨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소망을 기다리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이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찬송가 기억하시지요?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성도들의 소망이요 인류의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 성도들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우리 성도들은 소망 가운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타드 비머와 가족의 소망은 “Let's Roll(자, 나가자-한글 번역: 나는 소망을 믿는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01년 소위 9.11테러 사건이 났을 때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감동을 끼친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테러 당일 유나이티드 93편 비행기를 탑승했던 승객 중에 타드 비머라는 휘튼 대학 출신의 신실한 그리스도인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행기가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것을 깨닫는 순간 비행기내에서 주변 몇 사람과 함께 테러범들과 싸울 것을 의논하고 마지막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시편 23편을 암송한 다음 “자 나가자”(Let's Roll)고 외치며 조종실로 뛰어 들어 비행기를 추격시킴으로 와싱턴 국회의사당으로의 진격을 막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정한 영웅은 이 사건을 믿음으로 수용할줄 알았던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얼마후 그가 출석했던 뉴저지 프린스톤 연합교회에서 미 전역에 방영되는 추모예배가 열렸을 때 그의 누이동생 미셀 비머가 추모 찬송을 연주한 후 강단에 오른 타드 비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타드 비머를 저희의 아들로 저희 가정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고귀하신 선물,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심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지금까지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아들을 보내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아들 타드가 주 예수님의 선물인 영생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옵나니--제 아들 타드의 죽음의 스토리와 이웃과 이 땅을 구하기 위한 그의 행동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되게 도와 주시옵소서.--한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주신것과 함께 좋은 아들을 선물로 주셨던 것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내 아들과 천국에서의 만남의 소망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며칠 후 여기 전국에 방영된 래리 킹 프로그램에 출연한 타드 비머의 아내 리사 비머는 래리 킹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의 남편이 마지막에 기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리사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한 준비의 인생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타드와 저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타드는 최후까지 그렇게 산 것입니다.”

   그리고 두 달 후 11월초 리사 비머는 뉴저지에 약 2만 5천명이 모인 크리스챤 여성들의 세미나에 참여하게 됩니다. 본래 9.11테러 전에 리사비머는 이 모임에 참석하기로 신청을 해두었다고 합니다. 리사는 이 모임에 계획한대로 참석하는데 그냥 회원이 아닌 강사로 참여할 것을 요청 받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9.11전만해도 9.11은 저에게 평범한 달력에 나온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9.11날짜를 들을 때마다 공포와 분노, 그리고 개인적인 상처와 손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감정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의 몫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만을 생각할 것이지 아니면 아직도 남겨진 것들을 생각하며 살것인지. 계속적인 공포속에 살 것인지 아니면 소망속에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소망안에 살기를 선택하였습니다.--제가 이렇게 할수 있는 것은 제가 강한 여성이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소망안에 살기로 선택한 이유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영원한 소망 때문입니다. 저와 제 남편은 계획성이 철저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9.11을 대처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집회가 오래전에 계획된 것 처럼 9.11도 제 남편의 죽음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주관아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와 제 아이들의 미래도 그분의 신실하신 계획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앞날에 다하여도 소망이신 그분을 의지하며 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의 파도에 휩쓸려 간 아들이나 살아있는 아버지와 그 아내나 한 결같이 우리 성도들이 붙들어야 할 주제즈, 세상에서 무엇보다 좋은 것은 풍성한 소망에 이르는 것인 줄 압니다.

   [히6:11]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3. 믿음으로 하나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12절]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께로부터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변함없이 끝까지 믿음므로 25년 후인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은 사람은 애굽을 출발한 사람 가운데서는 극히 작은 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땅을 기업으로 얻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택함 받은 선민(選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영적 가나안 땅인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자는 어떠한 자일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는 자입니다.

    “약속들”은 에팡겔리아스로서 일방적인 호의에서 비롯된 약속이자 무조건으로 만들어진 약속을 의미합니다. 조건부 약속이 아닙니다. 약속들을 그냥 믿기만 하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다고 약속하면, 그냥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별도의 노력도, 행동도, 선행도, 공로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유대인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인류에게 하신 모든 축복의 약속들, 특히 메시아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증되고 확증되고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집니다(마 5:18).


   1] 기업으로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신 1:21)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약속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그 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나가야 합니다.


   2] 앞서 행하시며 싸워주시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 1:30)


   3],그 백성을 품에 안아주시겠다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신 1:31)


   4] 행할 길을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신 1:33)


   5] 후손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니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신 1:10,11)


   오늘 성경 본문 히브리서 6장의 12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12절]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믿음으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 되기 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커피는 씁쓸하지만 사과는 달콤하지요. 그런데 조화가 이루어져요.
현실과 소망도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과 권능에 근거한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역동적인 힘이다.(휴스 P. E. Hughes)

    현실은 다가오는 겨울처럼 춥지만, 우리에게는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내년 봄에 피우실 꽃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오늘 세상에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이 소망이 풍성해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셔서 이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성도를 섬기며 살아가는 성도를 보고 계십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
세상에서 무엇보다 좋은 것은
믿음이요
사랑이요
풍성한 소망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번 주간에 선교 부흥회가 우리 교회에서 있습니다.

    세상에 묻혀 이 놀라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상실하고 그냥 녹슬어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잔치로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들과 함께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권능에 근거한 소망의 풍성함을 찾으십시오.




 

 

   [성경본문  -  히6:9-12]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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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봉이라는 유명한 흉악범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복수심에 불타서 육군 중령의 일가족 네 명과 식모를 도끼로 쳐죽여 그 당시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은 살인마입니다.

그가 잡혀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에, 얼마나 살기가 등등했든지,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간수나 형무소 전담 목사도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과가 많은 죄수들조차도 그가 “내가 고재봉이야.”라고 말하면 형님으로 깍듯이 부르며 그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재봉 앞으로 소포가 하나 배달되어 왔습니다.

그가 소포 꾸러미를 열어보았더니 성경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그는 성경책을 보자마자 재수없다며 책을 냅다 집어던졌습니다.

그런데 문득 성경책을 찢어 화장실 휴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지가 매우 귀하던 때라 그 부드러운 종이가 그 용도로 쓰기에 제격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책을 찢어 휴지로 사용하다가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다가 그 말들이 예사 글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하더니 2천 명이나 되는 죄수 가운데 1,800여 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놈들아, 너희가 이렇게 살다가 갈거냐? 이 감방에서 다시 나같은 사람 안 만나려면 너희도 예수 믿어야 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단하고 손 들고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내 공로 아니라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았네.”라고 찬송하며 구원의 은혜에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죽으면서 “내가 좀 더 일찍 하나님을 알았다면 이렇게 악한 자가 되지 않았을 텐데…. 나에게 일찍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말하면서 사형이 집행되는 가운데서도 큰 소리로“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천국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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