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전 8장 사랑과 지식의 차이 -건강한 교회 20

[들어가는 말]

가장 높은 곳에 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까지 이르러야 할 신분입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에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복됩니다.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는 고린도 교회를 돌아보며 오늘날, 지상에 있는 교회의 건강을 기도하기 원합니다.



1.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고전8:1]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지식'(그노시스)은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을 시사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아느냐는 참 중요해요.

유대교로부터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숭배로 인하여 오염된 음식을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다른 교인들은 영지 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도살이나 우상 제물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 주장에 의하여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의 지식이 편견이나 교만에 빠져 분쟁을 유발시키는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을 회복할 것인가?


익지 않은 지식은 공동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하나님을 알면 우리가 얼마나 알겠어요. 그런데 교만이 그 지식에 들어가면 내가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단들이 그래요.
이것이 위험합니다.

우리가 쓰기에 좋은 말은 아니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합니다.

요일 2:4 에 따르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오, 하나님과 상통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고린도의 지식 있는 자들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짐으로 인하여 오혀려 자신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었습다. 그들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덕을 세워주는 사랑을 소유하지는 못했습니다.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교만은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까닭입니다.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한 사례를 알아보겠습니다.

사람에 따라 지식의 많고 적은 차이가 있고, 옛 지식이냐 신 지식이냐 질의 차이가 있지만, 사람마다 지식은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 대하여 전문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교만하게 하는 지식을 이길 일입니다.

에드워드 보크(Edward Bok:1889~1919)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했습니다.
그는 미국 보스턴에 도착하여 거리 한 모퉁이에서 신문팔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위를 언제나 말끔하게 청소를 했습니다.
보크는 웃음을 띠며 친절한 말로 손님들을 대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큰 빌딩의 청소담당사원으로 취직되었습니다.
그는 곧 빌딩 사장의 신임을 얻게 빌딩회사의 출판책임도 맡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브루클린 이글'이란 이름 없는 신문사의 말단 기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미국 제19대 대통령 루터포스 헤이스의 연설을 취재하러 갔지만 속기 실력이 없어 대통령의 연설을 제대로 받아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연설을 끝내고 나가는 대통령께 연설문 초고를 달라고 무례한 요청을 했습니다. 그의 열성과 진지함을 본 대통령은 그를 호텔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날 대통령의 연설 전문이 '브루클린 이글' 신문에만 실렸습니다. 특종을 낸 것이었습니다.

《레이디스 홈 저널》이라는 여성 잡지를 창간하여 미국 사회에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일에 앞섰습니다.  여성잡지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겸손은 세상 사람들도 춤을 추게 합니다.



지식에 교만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까지 오염시킵니다.

[고전8: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른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이방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중에는 고기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음식으로 생각지 않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른 우리가 연약한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산다면 더럽게 하는 죄를 짓는 것이지요.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이 있음을 알라 하십니다.

[고전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지식은 미완성된 지식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합니까?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지식은 위험성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이 사람을 망칠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랍비가 하인에게 시장에 가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혀를 사왔습니다.
이틀쯤 지나서 랍비는 그 하인에게 오늘은 가장 맛없는 음식을 사오도록 명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또 혀를 사왔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랍비가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내가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도 혀를 사왔고, 가장 맛없는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도 너는 똑같이 혀를 사왔다. 그 까닭을 말해 보겠느냐?"
그 하인의 대답했습니다.

"혀는 아주 좋으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고 또 나쁘면 그보다 나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익은 지식으로 그리스도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고전8:10-12]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2.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십니다.

[고전8:4-6]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며 우리의 기원은 그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자로서의 속성과 유일하심이 이방의 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아버지'란 표현에서 보는 것처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권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 간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이십니다.
'모든 것'의 기원과 존재 목적과 최종적인 귀결과 중보적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피조물인 이방의 우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아십니다.

[딤후 2:18-19]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하나님만 높여야 합니다.

‘20세기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전도 여행을 한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은사가 많았어요. 특별히 사람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의 은사와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가 뛰어 났습니다.
어느 날, 썬다는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윌리엄이라는 소년으로 부터 기도부탁을 받았습니다.
썬다싱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윌리엄의 병을 낫게 해주시기를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병원의 의사들과 윌리엄이 다니는 교회의 교인들은 윌리엄이 완쾌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 소식은 곧 온 마을로 퍼지고 여기저기서 썬다싱을 초청하였습니다. 그의 한 일들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향한 찬사와 명성을 두려워한 썬다싱은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오든지 병을 고쳐달라는 청을 거절하기로 하였습니다.

썬다싱이 병을 고쳐주면 사람들은 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보다도 자기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썬다가 병을 고쳐 주면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해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듣지 않았습니다.
신유의 은사가 그리스도의 덕을 세우지 못하자, 썬다싱은 스스로 그 은사를 절제하며 숨어 다녔습니다.



3.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고전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고린도교회에 표면적인 문제는 우상제물을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교리적인 논리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그게 아닙니다.
고린도교회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성도다웁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형제 서로 용납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답은 무엇입니까?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사랑의 회복이지요.
하나님 사랑회복이오
형제 사랑회복입니다.

우상제물의 시비를 가리고 지적인 접근을 할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덕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묵상한 성경 본문이 신명기 10장 말씀입니다.

[신명기 10:12-13]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모든 일에 주도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길 일입니다.

온 우주만물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세요.

[신10:14]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정하실 때에 그 백성의 삶에는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증거됩니다.
목을 곧게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결국 사랑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모든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그것이 고상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무가치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Calvin).

‘우상제물 먹는 것은 죄가 될 것이 없다’거나 ‘신전에 가서 제물을 먹는 것은 죄가 된다.’는 식으로 답을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고린도 교회의 발전과 고린도교회의 분열이 해소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일치와 발전을 위해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이것이 진리를 모르는 것 때문에 생겨난 갈등이라면 바울은 정답을 얘기하고 설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표면적으로 우상제물을 먹느냐 마느냐 갈등하고 있는 고린도교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논리적 시비가 아니라 포용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필요한 것이 단순히 신학적 해석이나 신학적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간의 사랑과 포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쪽으로 답을 하는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으나 신앙이 어리거나 오랜 신앙의 습관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시험꺼리가 될 수 있으니 그들에게 필요하다면 우상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지식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신앙이 성숙해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는 자들에게 아직 신앙이 어린 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지식, 자신의 의, 자신의 교리를 포기하고 접어둘 수 있는 사랑과 포용과 위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어떠한 덕을 세웁니까?


[고전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중요한 것은 어떤 교리나 올바른 지식이나 좋은 제도가 아닙니다. 진정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보다 정확한 성경 해석이나 보다 적합하고 올바른 형식이 아니라 용납하고 감싸줄 수 있는 형제 사랑입니다.

사랑이 덕을 세운 사례를 말해 보십시오.


사랑한 결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아브라함과 롯이 땅을 나눌 때에도 롯의 선택이 승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양보했고 포용했습니다. 이는 옳았습니다.
우리의 단순한 지식을 뛰어 넘는 진리가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에게도 늘 이런 시험은 곁에 있습니다.
정신차리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 전념해야 합니다.

1.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2.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십니다.
3.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고전8:13]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요셉의 형제 사랑을 보십시오.
연약한 형제를 살리는 데 요셉은 더 덕을 세웁니다.

요셉같이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교회를 세우는 성도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경본문]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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