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건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또 사도들로부터
교부로부터
받은 복음은 우리들에게까지 릴레이 선수가 바통을 받아 달려온 것처럼 교회는 대를 이어 복음을 전달했습니다.
[로마서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릴레이 선수에게 바통은 달리는 이유인 것처럼 교회의 복음은 떨어뜨려서도 안되고 놓쳐서도 안됩니다.
반드시 붙들어야 할 보배입니다.
오늘은 이 복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믿음의 경주자들이 유념해야 할 요소 몇 가지를 나누기 원합니다.
1. 가진 권리를 내려놓고 범사에 참습니다.
[고린도전서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최초로 설립하는 일에 중요하게 쓰임 받은 사도입니다.
그가 전한 복음 전파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가 생겨난 것이지요.
첫째, 먹고 마실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를 내려 놓았습니다 .
자신이 뿌린 씨앗의 열매가 바로 고린도 교인들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고, 영생을 얻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뵙고 직접 주님께 이방인의 사도로 미션을 받은 사도입니다.
삼층천 방문에 이르기까지 사도로서 주님께 받은 남다른 체험도 많습니다.
자신이 씨를 뿌렸다해도 하나님의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맺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열매가 많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당시 사도들이 교회로부터 그들의 생계비를 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자신의 비용으로 봉사 하지 않는다는 것과 일꾼들이 포도원이나 목장에서 일을 할 때에 보수를 기대하고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자신도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보조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린도전서 9: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들이 보수를 받고 신령한 일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세속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다른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든지 교회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인들로부터 생계에 필요한 물질적 원조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드려지고 남은 고기 중 일부를 그들의 몫으로 할당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율범이 규정하는 바였습니다(레 7:6, 8-10)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모든 것을 참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일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하지 아니할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바나바와 함께 자비량 선교를 하였습니다.
권한을 행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전파를 통하여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4:2에서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넷째, 고린도 교인들이 실족함 없이 신앙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 스스로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그러나 범사에 참고 그렇게 한 까닭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율법에 비추어 보아도 바울이 사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군사된 바울 사도에겐 참으로 비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자기 비용으로 군복무를 하는 것처럼
포도를 심고 열매를 남이 누리는 농부처럼
양 떼를 기르고 그 젖을 타인이 먹는 사람처럼
비상식적이기까지 한 일이었습니다
.
[고전9:8-10]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이 말씀은 신명기 25:4을 인용한 것입니다.
일하는 자가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렇게 일반적인 논리로나 율법의 가르침으로나 사역자가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다섯째, 신령한 복음을 전한 자가 그 대가로 육신적인 것을 받는 것이 결코 과한 일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어떤 성도가 목회자에게 자신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 주기를 바란다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 역시 성도들에게 자신의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기를 바란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길 떠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누가복음 10:7-9]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런 당연한 권리마저 내려놓고 참는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이 사역자의 삶의 필요를 채우는 일로 시험에 들거나 복음 받는 것을 포기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교우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부담감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온갖 종류의 곤궁함을 인내로써 참았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였습니다.
[예화]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가인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여행을 하던 중 어느 악기점에서 마음에 꼭 드는 바이올린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그것을 살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돈을 장만해서 그 악기점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미 악기는 한 수집가에게 팔리고 없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수집가를 찾아가 그 바이올린을 팔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수집가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몹시 실망한 크라이슬러가 수집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그 바이올린을 소장품으로 보관하시기 전에 제게 그 바이올린을 연주할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수집가는 허락하였고, 크라이슬러는 심금을 울리는 음악으로 방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크라이슬러의 연주를 듣고 있던 수집가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바이올린을 소장할 권리가 없습니다. 크라이슬러 씨, 이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에 가지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십시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권리를 가졌습니까?
그 권리를 그분을 위해 내려놓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로 인하여 참기 힘든 일을 인내하고 있습니까?
2. 부득불 전도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자랑할'이라는 말은 '자신이 취한 행동에 대하여 도덕적인 가치를 느끼고, 그로 인해 갖게 되는 즐거운 감정'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사역을 감당한 것은 그 일을 통해서 갖게 되는 즐거움과 보람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사명이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행 26:16-18]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가 부득불(不得不)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열정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행 9:1-9)와 그 영(행 13:2,행 22:21)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한 것은 부득불한 것이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열두 사도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자발적인 믿음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하는 중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소명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강권에 의한 역사였습니다.
[행 9:3-5]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행26:14-18]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 사도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였다면 상을 얻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발적인 선택으로 복음을 전파했다면, 그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요 그에 대한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리스도로부터 강권하여 복음 전도의 소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거기에 대해 어떠한 자랑거리나 보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청지기직을 부여받았습니다.
청지기들은 노예 계급에 속했었습니다.
[눅 12:42-43]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노예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고 하여 어떠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엄한 처벌만이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나는 노예로서 일을 수행할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堅持)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의 사명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취한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눅 17:7-10]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소련 스탈린 통치시절, 보리스 콘펠드라는 젊은 유대인 의사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의 열정적인 전도와 사랑의 보살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다시 의사로서 일하게 되었을 때, 한 젊은이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음을 알고 안타깝게 여겨 몰래 불법수술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발각되었어요. 그는 수용소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사형 전날 이 의사는 수술해 준 젊은이 곁에 앉아서 밤늦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진지하게 전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의사는 처형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그는 한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약속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이 의사로 인해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종에게는 부득불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불이익이 올지라도 부득불 주인을 위해 감당해야 할 수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득불 수고로 인해 복음은 전해집니다.
3. 종처럼 겸비하라.
[고린도전서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사람에게도 예속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민족이나 종교, 국가, 사상, 인습, 유대교의 율법주의 등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힌 바 된 종이 되었습니다.
[롬1: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 사도는 복음 전파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제적인 사례를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청지기, 즉 아무런 대가를 기대할수 없는 노예로서 복음 전하는 사명을 수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예도 주인으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공급받기 원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상을 바라지 않고 봉사하는 것과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것 자체를 자랑이며 보상으로 여겼습니다.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자기를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만 있게 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이 없어져도 좋다는 뜨거운 사랑의 심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1966년도에 빌리 그래함 목사가 하버드대학교에 초청을 받아 강의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내가 전도를 할 때는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하고자 노력했으나 그 후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힘을 완전히 빼버리고 전도에 임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나는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 일은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하시도록 나는 내 힘을 완전히 빼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기분 좋게 전도합니다. 그 다음 문제는 성령에게 맡기고 나는 전도합니다.”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것은 바울 사도가 자신을 부정하는 원리이며 그의 모든 행위는 이러한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겸비함입니다. 그가 스스로 종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고후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것이 바울이 스스로 겸비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포기한 이유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한없이 겸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베냐민 출신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더 이상 그에게는 율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유대인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같이 육체적으로는 온전한 유대인으로 행하였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유대인처럼 행동하여 자기의 동역자이며 제자였던 디모데에게 유대인의 상징인 할례를 시행하도록 하였습니다.(행 16:3) 예루살렘에서는 결례를 행하였습니다(행 21:17-29).
바울 사도와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처신했습니다.
유대인 사이에서 소외(疏外)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이나 혹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함이었습니다(롬 9 :3;갈 2:7). 이로 보건대 바울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겸비한 자유자였습니다.
바울은 때로 이방인들처럼, 즉 율법 밖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의 법'아래 있는 자였습니다. 그런 바울이었으나 율법 없는 이방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율법을 무시하고 그들의 문화적인 상황에 자신을 순응시켰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있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로서 믿음이 강한 상태에 있었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얻기 위하여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였으며, 그들의 믿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의 진정한 겸비함입니다. 유대인, 헬라인,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 가운데 약한 자들, 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도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모양대로 '여러 모양'이 된 것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어 같이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인도에서 선교사님 한 분이 어느 크리스천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두 다리를 몹시 저는 장애인 이 동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동전과 함께 그들의 언어로 된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여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당신의 전도지를 그에게 허비하지 마세요.”
“그는 결코 크리스천이 될 수 없어요.”
그러나 3일 후에 이 선교사는 자신의 집 문 앞에 나타난 이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전도지를 읽은 후 이곳까지 오기 위해 저는 다리임에도 불구하고 8마일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전도지를 원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전도지를 받은 뒤, 그 집 문 앞에 앉아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에게서 성경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세례까지 받고 기독교 서점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었습니다.
선교부흥 성회가 3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구를 위한 집회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번의 기회가 우리 인생을 역전시킨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주시는 기회입니다.
먼저 그 기회를 사십시오.
그리고 전하십시오.
구체적으로!
부득불 전도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나 같은 가지에서도 극상품의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날까지
가진 권리를 내려놓고 범사에 참습니다.
겸비합시다.
[고전9장 설교본문]
[고린도전서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린도전서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고린도전서 9: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고린도전서 9: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고린도전서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고린도전서 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고린도전서 9: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고린도전서 9: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고린도전서 9: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고린도전서 9: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고린도전서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고린도전서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9: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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