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어요?
하나님, 왜 저를 이런 나라에 태어나게 하셨어요?
하나님, 제 팔자는 왜 이렇습니까?
이렇게 투덜거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길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활짝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섭리를 외면한 채 파멸의 길로 가는 수많은 동족을 생각하면서 그러나 감격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민족을 바라보며 오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나를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토기장이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인간은 흙입니다.
그 흙으로 하나님께서는 토기를 만드십니다.
귀히 쓸 그릇도 만드시고
천히 쓸 그릇도 만드십니다.
우리가 어릴 때 이런 노래를 부른 기억이 납니다.
구름이 구름이 하늘에서 그림을 그림을 그립니다.
토끼도 그려놓고 여우도 그려놓고,
성경의 첫 절이 무엇으로 시작하고 있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장 말씀처럼
지으신 모든 것이 그분이 없이는 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십니다.
귀히 쓸 사람도 만드시고
천히 쓸 사람도 만드십니다.
이렇게 쓰실 사람도 만드시고
저렇게 쓰실 사람도 만드신다는 말씀입니다.
좀더 범위를 넓히면 인간뿐이 아닙니다.
토끼도 만드시고
여우도 만드십니다.
사자도 만드십니다.
독수리도 만드십니다.
또끼같은 인간도 만드시고
여우같은 인간도 만드십니다.
사자같은 인간도 만드십니다.
독수리같은 인간도 만드십니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작품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실수로
또끼같은 인간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실수로
여우같은 인간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실수로
사자같은 인간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실수로
독수리같은 인간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깊이 생각하심으로
또끼같은 인간도 만드시고
사랑으로
깊이 생각하심으로
여우같은 인간도 만드십니다.
사랑으로
깊이 생각하심으로
사자같은 인간도 만드십니다.
사랑으로
깊이 생각하심으로
독수리같은 인간도 만드십니다.
여우같이 만들어진 사람 입장에서
하나님 실수하셨습니다.
나를 토끼같은 인간으로 만드셨어야지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토끼같이 만들어진 사람 입장에서
하나님 실수하셨습니다.
나를 사자같은 인간으로 만드셨어야지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사자같이 만들어진 사람 입장에서
하나님 실수하셨습니다.
나를 독수리같은 인간으로 만드셨어야지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독수리같이 만들어진 사람 입장에서
하나님 실수하셨습니다.
나를 토까같은 인간으로 만드셨어야지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지요.
예정론은 창조주의 관점에서 본 신앙관입니다.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천지와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을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신앙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깊은 섭리 속에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계획하신 신묘막측한 섭리와 계획 속에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피조물에 대한 모든 계획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전 그림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란 존재가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예화]
저는 초등학교 때, 연극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연출가이시던 김의식 선생님께서 어떻게 시골 초등학교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몇 사람을 뽑아 연극단을 만드셨습니다.
그 이름은 금고기란 작품이었습니다.
금고기란 연극은 작은 시골초등학교에서 시작되었지만
계속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면 소재지 학교 대항 연극대회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면대표로 면대항 연극대회에 출전하여 광산군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광산군 대표로 군대항 연극대회에 출전하여 전라남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급기야 서울까지 올라가서 시도 대항 전국 연극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시골 학생이 서울 드라마센터에 서서 연극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 한 마리도 안낚여!
딴 데로 가볼까?
아참 저기 할아버지가 오시는구나.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아, 어멍이 자넨가?
어멍이가 헛탕치고 간 자리에 앉아서 하세월하고 낚시를 하던 할아버지에게
한 마리의 물고기가 잡히는데 그게 금고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할머니는 여 주인공입니다.
금고기도 상당히 인기 있는 조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역에도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김의식 선생님은 많이 생각한 끝에 저를 할머니 왕궁을 지키는 두 사람의 문지기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강권에 못이겨 금고기에게 부탁을 하고 또 하던 끝에 결국 여왕이 되게 하고 할머니는 궁궐에 살게 되는데
저는 그 할머니 여왕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어
궁궐을 찾아오신 그 착하고 못난 할아버지를 궁안에 못들어가게 하는 문지기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30분 넘게 연극이 진행되는데 저는 줄곧 무대 뒷면에서 마음을 조마조마 기다리다가 연극이 대단원에 나다를 즈음 종이로 만든 군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궐을 찾아오신 그 착하고 못난 할아버지를 궁안에 못들어가게 하는 문지기로 당당하게 나무 창을 들고 눈을 부라리며
"안돼요!"
외치는 것이 저의 배역 전부입니다.
그래서 왜 이리 밖이 시끄러우냐 데려오라 할 때 그 할아버지를 모시고 할머니 여왕 앞에 데리고 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엑스트라 배역 하나로 제가 드라마 센타에 섰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 연극을 마치고 동네로 돌아왔을 때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 마당에 몰려와 잔치를 벌인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많은 동네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하신 줄 압니까?
제 혼자 연극 전체를 외워 모노 드라마를 했습니다.
그 연극의 문지기 배역만 한 것 아닙니다.
TV도 우리 마을에는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문지기 출신이 제가 하는 연극을 보면서 환호를 했구요.
김의식 선생님 왜 저를 하필 문지기 배역을 맡기셨다고 해서
주연이 1등칸을 탈 때 저를 3등칸에 태운 적이 없습니다.
주역하는 친구들과 똑같이 음식을 먹었고
주역하는 친구들과 똑같은 여관에서 잠을 잤으며
주역하는 친구와 똑같은 환영을 받았습니다.
상을 탈 때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면 군 도를 순회하면서 최우수상을 받을 때에 저는 주역하는 친구와 동일한 영광을 누렸습니다.
서울에서는 애석하게도 장려상을 받았는데요.
그때도 동일한 아쉬움을 나누었습니다.
하필이면 문지입니까?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맡겨준 만으로 감격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이렇게 예정하셨다는 말씀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에는 6남매를 두신 농부의 막내 아들이었고
23년간 공부를 해야 했던 학생이었고
7년 반 동안 교사였고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이요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사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런 자리에 있게 하셨는데 이 일에 하나님의 깊은 마음이 계획이 있는 줄 압니다.
저는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뿐입니다.
저의 살아온 발자욱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1 .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 하셨네
(후렴)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 하셨네
2.
저 가시밭길 인생을 허덕이면서 갈 때에
시험과 환란 많으나 예수 인도하셨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를 어떤 배역에 부르셨든 감사하며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작품을 영화롭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 잠깐이요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구름타고 주님 오실 때,
내 이름을 부르실 그 모습을 생각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서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창조주 하나님께는 우리에 대한 목적이 있습니다.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한 이면엔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의 주권자이심을 말씀하심입니다.
22-23절에 하나님께서 빚으신 두 종류의 그릇을 만납니다.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야곱과 에서는 동 시대의 사람입니다.
함께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같은 집에서 수십 년 간 지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하나님은 지은 목적이 다릅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야곱은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모세와 바로가 동 시대의 사람입니다.
함께 애굽 궁궐에서 수십 년 간 지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하나님은 지은 목적이 다릅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모세는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다윗과 사울은 거의 동 시대의 사람입니다.
함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수십 년 간 지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하나님은 지은 목적이 다릅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모세는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에서가 완고하게 악역을 감당하는 인본주의자로서 자기 길을 가는 모습을 만납니다.
우리는 바로가 완고하게 악역을 감당하는 왕으로 멸망의 길을 가는 모습을 만납니다.
우리는 사울왕이 완고하게 악역을 감당하다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만납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모두 완악한 자신들의 마음으로 덮어버리고 하나님의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한계 속에서 살다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완고한 모습을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런 분들을 성경에 곳곳에 보여주시는가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 안에도 이분들이 가졌던 완고한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어제도 지난 달도 10년 전도 한결같이 고집하는 나의 완악한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그 완고한 모습을 따라 살다가 경겁간에 지옥까지 떨어져 갈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은 아닙니까?
역으로 야곱 모세 다윗에게서 우리는 소중한 축복을 만납니다.
저들은 저마다 약점을 가지고 있는 한계 속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야곱이 약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모세가 살인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다윗이 간음죄 살인교사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저런 모습의 한계와 약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을 따라 하나님께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시기 원하심을 감사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있었죠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사랑해요 축복해요
3. 하나님의 모든 믿는 자를 선택하시고 사용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도 남은 자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택함을 받았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을 자녀 중에서 [남은 자]인 이삭만이 언약의 씨가 됩니다.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습니다.
그 중에 구원을 받은 백성은 오직 [남은 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남은 자]를 구원하시리라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여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사실 지금까지 헤아려 보면,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구원을 받은 사람은 [남은 자]에 불과합니다.
남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특심하십니다.
[내 백성]
[사랑한 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 부르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가운데서도 그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25.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릴 때, 벌레요 구데기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분입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 음식물이 든 비닐 봉투를 두고 가셨습니다. 우유제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겉 포장이 매우 깨끗해 보여서 누군가 찾아가야 할 물건이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한 주일이 다 되어도 찾아가는 이가 없고, 안내 책상 위를 좀 깨끗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물건을 치우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 물건 밑에 구더기가 수백 마리 우굴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 것들을 좀처럼 무서워하지 않는 편인데 정말 역겹더라구요. 우리 교우들은 제가 다 치운 후에 남은 그 냄새만 맡고도 매우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기회에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교회당에는 음식물을 가져오시지 않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예배당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도 좋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정작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믿음의 용장 가운데 인생을 이런 구대기나 벌레에 비유한 분이 있습니다.
[욥기 25:4-6]
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6.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시편 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내 백성이 아니라 선포하였습니다.
[사랑치 아니한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벌레와 같고 구데기 같은 그 백성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내 백성]
[사랑한 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25.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믿음 안에 '남은 자'를 구원하십니다.
이방인이라고 하여 모두 멸망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 중에서도 믿는 자는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중심입니다.
로마서1:16-17을 함께 읽어봅시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하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는 우리 민족을 생각하면서 지금 기도를 절실하게 감당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지난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복음 밖에서 살았습니다.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0여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내 민족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왕같은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1800명 가까운 선교사님들이 열방을 섬기기 위해 5대양 6대주로 퍼져 나갔습니다.
700만 디아스포라 백성들이 그 든든한 후원자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보다 먼저 부름을 받았던 북한 동족은 유기 된 채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오직 남은 자들만 그 신앙의 명맥을 핍박 속에서 이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불러주신
[성경본문]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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