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수 장로님이 우리 곁에서 떠나 주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십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귀중한 분이 입국하셨기 때문입니다.
정장로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귀중한 분이셨습니다. 정 장로님께서 이 땅에서도 교회를 6개나 건축하신 분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를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곁에서 자세히 보아왔습니다.
부인 정양임 권사님과 그 따님 정선희 전도사님을 그분 곁에 두시고 수종들게 하시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 장로님을 정말 귀중히 여기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이 정 장로님과 같은 병을 얻으셨다면 벌써 병원으로 옮겨지든지, 거리에 방치된 채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 장로님은 지난 8년간 중병 중에 계시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숫가락 한 번 들어 식사하실 수 없었고, 화장실에 가실 수 없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한끼를 굶지 않으셨고, 매 주일 세 차례 병원 출입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억지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장로님을 수종드는 권사님과 따님을 뵈면서 하나님께서 정장로님을 매우 사랑하신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살아계실 때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귀중히 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얼마나 귀중히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께 귀중히 여김을 받는 정 장로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종으로 수종드는 모습을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은혜를 보답하실 것입니다. 정 장로님께서 운명하시기 몇 시간 전, 저는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은 가장 일반적인 인간사
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하게 죽습니다.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은 채 아무 것도 알려진 바 없는 미지
의 세계로 옮겨질 것입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죽고 싶은가?"
나는 얼만큼 죽음에 가까이 있을까?
"나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과 희망과 믿음을 가져
다 줄 것인가?"
가장 심각한 현실인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죽음을 잘 맞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죽음 준비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죽음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을 값지게 여기십니다.
성도의 죽음은 헛되지 않고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2. 주님께서 그분의 결박을 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성도에게는 이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습니다. 정 장로님의 죽으심은 이 세상의 결박이 풀리는 날입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이주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에 꽁꽁 묶여 있던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연약한 육체에 제한을 받으신 정 장로님을 결박에서 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귀중한 존재이실지라도 연약한 질고를 당하시는 모습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연약한 육신의 결박으로부터 정 장로님을 풀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책에 어머니 뱃속에 있는 이란성 쌍둥이의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난 태어난 후에도 삶이 있다고 믿어."
"여기가 전부야. 우리를 살려주는 탯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되"
"이 캄캄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거야. 마음껏 움직일 수 있고 환한 빛이 비치는 곳."
"여기가 전부야. 왜 늘 그 이상을 바라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이곳에 다 있지 않니?"
"난 엄마가 있다고 생각해."
“넌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니?”
"무언가 꼭 조여오는 것 같지 않아?"
"나도 그래. 그게 어때?"
"여기 보다 더 아름다운 곳, 엄마 얼굴을 보게 될 곳으로 갈 준비를 하라는 표시인 것 같아."
죽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생각해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 목줄을 매고 삽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전부가 아닙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의 세계가 전부일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너무 탯줄에 매여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시면 과감히 매인 결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면 , 우리는 죽음을 거쳐서 새로운 삶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곳엔 참 자유와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죽을 때, 육신의 죽음은 이 세상의 매인 결박들을 끊는 것이요, 새로운 세계에서 참 자유인으로의 삶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3. 죽음은 하나님께 내 영혼을 맡기는 것입니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에서 날 붙잡아 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하고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라는 고통스러운 외침 때문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부탁할 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예화]
'공중을 나는 로트라이히'란 공중 그네 팀과 한 주간의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우아한 무용수의 공중을 날아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우아한 무용수가 공중 날기를 하고, 조우는 붙잡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나는 공중날기를 할 때 나를 붙잡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대중들은 나를 위대한 스타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진짜 스타는 나를 붙잡아주는 조우입니다. 그는 1초의 몇분의 볓까지 맞출만큼 정확하게 내가 갈 자리에 있어야 하고, 내가 그네에서 길게 점프할 때, 공중에서 나를 잡아채야만 하니까요."
" 공중을 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붙잡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지요. 이것이 공중날기의 비밀입니다. 조우에게 날아갈 때 나는 그저 팔하고 손만 뻗으면 돼요. 그 다음엔 그가 나를 잡아 앞무대로 안전하게 끌어가 주기를 기다리면 되지요."
"그래요. 최악의 실수는 공중 나는 사람이 붙잡아 주는 사람을 잡으려 드는 거지요. 나는 절대 조우를 잡으려 들면 안됩니다. 나를 붙잡는 것은 조우의 임무에요. 만약 내가 조우의 손목을 잡는다면 그의 손목이 부러지거나 내 손목이 부러지고 말겁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끝장이지요.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날기만 하고, 붙잡아주는 사람은 붙잡기만 해야 합니다.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붙잡아 줄 사람이 자기를 위해 제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믿고 팔을 뻗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걸 생각하세요. 당신이 길게 점프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 자리에 와 계실 겁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분이 당신을 붙잡아주실 거예요. 그러니 그저 팔과 손을 앞으로 내밀기만 하세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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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정근수 장로님이 우리 곁에서 떠나 주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십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귀중한 분이 입국하셨기 때문입니다.
정장로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귀중한 분이셨습니다. 정 장로님께서 이 땅에서도 교회를 6개나 건축하신 분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를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곁에서 자세히 보아왔습니다.
부인 정양임 권사님과 그 따님 정선희 전도사님을 그분 곁에 두시고 수종들게 하시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 장로님을 정말 귀중히 여기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이 정 장로님과 같은 병을 얻으셨다면 벌써 병원으로 옮겨지든지, 거리에 방치된 채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 장로님은 지난 8년간 중병 중에 계시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숫가락 한 번 들어 식사하실 수 없었고, 화장실에 가실 수 없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한끼를 굶지 않으셨고, 매 주일 세 차례 병원 출입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억지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장로님을 수종드는 권사님과 따님을 뵈면서 하나님께서 정장로님을 매우 사랑하신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살아계실 때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귀중히 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얼마나 귀중히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께 귀중히 여김을 받는 정 장로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종으로 수종드는 모습을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은혜를 보답하실 것입니다. 정 장로님께서 운명하시기 몇 시간 전, 저는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은 가장 일반적인 인간사
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하게 죽습니다.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은 채 아무 것도 알려진 바 없는 미지
의 세계로 옮겨질 것입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죽고 싶은가?"
나는 얼만큼 죽음에 가까이 있을까?
"나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과 희망과 믿음을 가져
다 줄 것인가?"
가장 심각한 현실인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죽음을 잘 맞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죽음 준비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죽음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을 값지게 여기십니다.
성도의 죽음은 헛되지 않고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2. 주님께서 그분의 결박을 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성도에게는 이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습니다. 정 장로님의 죽으심은 이 세상의 결박이 풀리는 날입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이주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에 꽁꽁 묶여 있던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연약한 육체에 제한을 받으신 정 장로님을 결박에서 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귀중한 존재이실지라도 연약한 질고를 당하시는 모습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연약한 육신의 결박으로부터 정 장로님을 풀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책에 어머니 뱃속에 있는 이란성 쌍둥이의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난 태어난 후에도 삶이 있다고 믿어."
"여기가 전부야. 우리를 살려주는 탯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되"
"이 캄캄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거야. 마음껏 움직일 수 있고 환한 빛이 비치는 곳."
"여기가 전부야. 왜 늘 그 이상을 바라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이곳에 다 있지 않니?"
"난 엄마가 있다고 생각해."
“넌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니?”
"무언가 꼭 조여오는 것 같지 않아?"
"나도 그래. 그게 어때?"
"여기 보다 더 아름다운 곳, 엄마 얼굴을 보게 될 곳으로 갈 준비를 하라는 표시인 것 같아."
죽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생각해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 목줄을 매고 삽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전부가 아닙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의 세계가 전부일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너무 탯줄에 매여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시면 과감히 매인 결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면 , 우리는 죽음을 거쳐서 새로운 삶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곳엔 참 자유와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죽을 때, 육신의 죽음은 이 세상의 매인 결박들을 끊는 것이요, 새로운 세계에서 참 자유인으로의 삶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3. 죽음은 하나님께 내 영혼을 맡기는 것입니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에서 날 붙잡아 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하고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라는 고통스러운 외침 때문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부탁할 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예화]
'공중을 나는 로트라이히'란 공중 그네 팀과 한 주간의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우아한 무용수의 공중을 날아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우아한 무용수가 공중 날기를 하고, 조우는 붙잡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나는 공중날기를 할 때 나를 붙잡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대중들은 나를 위대한 스타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진짜 스타는 나를 붙잡아주는 조우입니다. 그는 1초의 몇분의 볓까지 맞출만큼 정확하게 내가 갈 자리에 있어야 하고, 내가 그네에서 길게 점프할 때, 공중에서 나를 잡아채야만 하니까요."
" 공중을 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붙잡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지요. 이것이 공중날기의 비밀입니다. 조우에게 날아갈 때 나는 그저 팔하고 손만 뻗으면 돼요. 그 다음엔 그가 나를 잡아 앞무대로 안전하게 끌어가 주기를 기다리면 되지요."
"그래요. 최악의 실수는 공중 나는 사람이 붙잡아 주는 사람을 잡으려 드는 거지요. 나는 절대 조우를 잡으려 들면 안됩니다. 나를 붙잡는 것은 조우의 임무에요. 만약 내가 조우의 손목을 잡는다면 그의 손목이 부러지거나 내 손목이 부러지고 말겁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끝장이지요.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날기만 하고, 붙잡아주는 사람은 붙잡기만 해야 합니다.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붙잡아 줄 사람이 자기를 위해 제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믿고 팔을 뻗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걸 생각하세요. 당신이 길게 점프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 자리에 와 계실 겁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분이 당신을 붙잡아주실 거예요. 그러니 그저 팔과 손을 앞으로 내밀기만 하세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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