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4 April 2015

(장례) 요14:1-6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

[예배 순서]

1. 인도자
다같이 마음을 모아 (고 허병렬집사)님의 추도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기도문:

2. 찬송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3. 대표 기도 / 정재환장로

4.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5. 말씀

6. 합심기도

7. 찬 송 / 606장 해보다 더 밝은 저천국

8. 축도: 안병한 목사

9. 고인에 대한 추모 /
윤혁기 장로
이정문 장로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

들어가는 말

죽음을 맞아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호스피스 사역과 연구를 하는 간호사 최화숙 교수의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란 책을 읽으면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으면 끝이잖아요" 다 큰 남자가, 그것도 가족이 아닌 사람 앞에서 죽음이 두렵다며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허공을 노려보며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여러 명 왔다고. '저리 가! 저리 가!'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권사님께서는 마지막 모습이 참 깨끗하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대로 우리 눈에 뵙기에도 복이 있는 모습이셨습니다.


1. 주님께서 고통을 대신 져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죽음의 치명적 단절 때문입니다.

폐암을 사망률이 몇 %나 될까요?
에이즈의 사망률은 몇 %나 될까요?
죽음은 세상의 어떤 병보다도 치명적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사망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망률 100%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질병보다 죽음은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양권사님께서는 그 죽음에서 예외가 되실 수는 없었습니다.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 말처럼 '걱정은 되지만 대단치 않은 것'쯤으로 생각이 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죽음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너무 큰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당하는 두려움은 어떤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강한 수면제를 먹습니다.
강한 진통제를 먹습니다.
항암제를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통하지 않을 때 괴로움이 극심합니다.
죽고 싶도록 아픈 통증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은 자살을 감행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권사님은 이런 통증이 없이 죽음의 강을 건넜습니다.
양권사님께서 받은 축복 중의 하나는 죽음의 강을 건너는 분들이 흔히 겪는 고통이 그분에게는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분의 눈을 감겨드리며, 양권사님께서 참 고통 없이 가셨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에 고통이 스쳐간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저는 양권사님으로부터 병원에 다녀오신 이야기와 감기 증세가 조금 있어서 새벽 예배와 수요예배에는 교회에 나오실 수 없겠다, 그러나 금요모임에는 꼭 나오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죽음의 고통이 없으셨으면 간단한 감기 정도의 증세로밖에 생각되지 않았겠습니까?

죽음 앞에서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은 파스칼의 명언처럼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깨끗케 하시려고 고통을 허락하신다는 고백을 합니다.
'당신은 나를 바꾸기 위해 병을 이용하고 계십니다'라고 파스칼은 명언을 남겼거든요. 그러나 양권사님께서는 평소에 회개를 많이 해두셨기 때문에 더 깨끗케 하려는 고통도 주실 필요가 없으셨나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권사님께 무엇을 바꾸기 위해 병을 주실 필요가 없으셨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죽음의 고통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권사님께서는 고통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그 죽음의 권세를 이미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고통 없이 죽음의 강을 그냥 건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 주님께서 무거운 짐을 감당하셨습니다.

오늘 발인 예배는 장차 죽어갈 분들이 몇 발짝 앞서 가신 분을 보내드리며 드리는 예배입니다.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조금 빨리 가신 분을 조금 늦게 갈 우리가 보내드리는 자리입니다.

양권사님께 죽음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일까요?
양권사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곳에 계신다는 의미일까요?
더 이상 눈물이 없는
짐이 없는 곳으로 이주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합니다.
무거운 짐이란 말은 병사가 등에 지고 있는 배낭을 의미합니다. 병사는 삶을 위해 그 배낭 안에 필요한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사의 그 배낭은 얼마나 무겁고 힘들게 하는 필요악인지 모릅니다.
정말 벗어버렸으면 싶지만 사실 벗어버릴 수 없는 그 지독한 배낭입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의식주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이기에 병사는 그 배낭을 행군이 끝나기까지 짊어지고 가야만 합니다.
우리 인간을 그 병사와 같이 인생의 배낭에 담고 세상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중병의 그 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궁핍함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 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문제가 무거운 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이 무거운 짐일 수 있습니다.
양권사님께도 그런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나 그런 짐에 대해서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양권사님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짐을 진 자들을 초청하셔서 그 짐을 책임져 주시는 분 앞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가장 좋은 것으로 오해하며 삽니다.

헨리 나우웬의 '죽음, 가장큰 선물'이란 책에 보면. 어머니의 모태 안에 있는 쌍둥이 아기가 대화를 합니다.

난 태어난 후에도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그렇지 않아. 여기가 전부야
이 캄캄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거야
이곳도 괜찮은 곳이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다 있잖아. 여긴 어두워도 따뜻하지. 먹여주고 살려주는 탯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다른 일이 필요 없잖아?
마음껏 움직일 수 있고 환한 빛이 비치는 곳이 반드시 있을 거야

난 엄마가 있다고 생각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엄마를 난 한 번도 본적이 없어
가끔 무언가 조여오는 것 같잖아?
그래. 그런데 그게 어떠니?
음...... 내 생각엔 이 꽉 조여오는 것이 다른 곳 그러니까 여기보다 훨씬 어 아름다운 곳 엄마 얼국을 보게 될 곳으로 갈 준비를 하라는 표시인 것 같아.
우린 필요한 것이 다 있으니까 여기에 만족하도록 해

"내려놓고서야 알게 되는 짐의 무게"(기하라 부이치)란 말이 있습니다. 지금 양권사님께서는 그 무게가 엄청났음을 깨닫고 놀라실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가 하고! 그리고 주님께서 그분의 멍애를 대신 져주셨음에 대하여 놀라실 것입니다.


양권사님께서 복이 있는 까닭은 이 세상의 얽매이고 무거운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먼저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3. 가장 좋은 안식처로 옮겨주셨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최선수 선교사님께서 양권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으시고 이런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권사님이 남기신 아름다운 여운들은
오랫동안 메아리쳐 올껍니다.
편히 쉬세요.
안식하기에는
그곳이 훨씬 좋으니까요.

그보다 더 좋은 안식처가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 속에 살러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신 것입니다.

몇 주일 전, 한국에서 한 귀한 분이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란 책으로도 상당히 알려진 호스피스 사역의 전문가였습니다. 우리 교회 식구들은 그분이 전해준 책과 강의를 통해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양권사님 오늘을 위해 이런 분을 보내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에서 날 붙잡아 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하고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라는 고통스러운 외침 때문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부탁할 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예화]
'공중을 나는 로트라이히'란 공중 그네 팀과 한 주간의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우아한 무용수의 공중을 날아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우아한 무용수가 공중 날기를 하고, 조우는 붙잡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나는 공중 날기를 할 때 나를 붙잡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대중들은 나를 위대한 스타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진짜 스타는 나를 붙잡아주는 조우입니다. 그는 1초의 몇 분의 몇까지 맞출 만큼 정확하게 내가 갈 자리에 있어야 하고, 내가 그네에서 길게 점프할 때, 공중에서 나를 잡아채야만 하니까요."
" 공중을 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붙잡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지요. 이것이 공중날기의 비밀입니다. 조우에게 날아갈 때 나는 그저 팔하고 손만 뻗으면 돼요. 그 다음엔 그가 나를 잡아 앞무대로 안전하게 끌어가 주기를 기다리면 되지요."
"그래요. 최악의 실수는 공중 나는 사람이 붙잡아 주는 사람을 잡으려 드는 거지요. 나는 절대 조우를 잡으려 들면 안됩니다. 나를 붙잡는 것은 조우의 임무에요. 만약 내가 조우의 손목을 잡는다면 그의 손목이 부러지거나 내 손목이 부러지고 말겁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끝장이지요.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날기만 하고, 붙잡아주는 사람은 붙잡기만 해야 합니다.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붙잡아 줄 사람이 자기를 위해 제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믿고 팔을 뻗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걸 생각하세요. 당신이 길게 점프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 자리에 와 계실 겁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분이 당신을 붙잡아주실 거예요. 그러니 그저 팔과 손을 앞으로 내밀기만 하세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한 알의 밀 알 되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하남에서 가장 큰 교회는 하남 장로교회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장년만 1200명이요 주일학교 학생까지 하면 2000명이나 되는 큰 교회입니다. 경기도 하남에 가면 한 중앙에 우뚝 서 있습니다. 그 교회가 어떻게 시작된 줄 아십니까?
양영숙 권사님은 부군이신 김인안 전도사님과 함게 하남 장로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그 교회 홈페이지 일부를 소개합니다.

"1964년 김인안 전도사님의 개척으로 시작된 교회로서 성삼위 일체의 하나님과 신구약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복음주의적 교회로서 성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2002년 1월 1일 현재 청,장년 예배참석자 1.200여명 주일학교 800여명이 믿음과 사랑.......
양권사님은 부군이시던 김인안 전도사님과 함께 처음 그 교회를 일구었고, 그곳에 그 씨앗을 뿌렸습니다.
공동묘지였던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귀신들의 소리를 들으면도 기도로 이기며 그 교회를 세웠습니다. 권사님은 하남 교회를 세우는 한 알의 밀알이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지나친 과로가 원인이 되어 부군 김인안 전도사님을 젊은 날에 보내시고 이번에는 일곱 살 난 아들 (김화훈 집사) 한 사람을 데리고 토론토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젊음을 아들을 키우는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김화훈 집사는 지금 현대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어 귀히 쓰임받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은영이도 낳아 예쁘게 잘 키우고 있습니다.
좋은 집도 사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양권사님께서 서머나교회에 오시게 된 동기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서머나교회를 세우는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서머나교회의 초대 권사로 취임하신 후, 한결같이 애쓰신 것은 서머나교회 도서관에 오시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머나교회 도서관에 있는 약800권 신간 도서 가운데 그중 절반 가량은 양권사님께서 기증하신 것입니다. 도서를 통한 선교에 헌신한 한 알의 밀 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7순이 넘으신 지난주까지도 사람을 키우는 한 알의 밀알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어제 그리고 오늘 예배 중에 기도의 편지를 낭독한 이 세은 자매, 그리고 이화연 집사님은 양권사님과 최근까지 성경공부를 한 분들입니다.
세 팀에게 매주 한 번씩 창세기 성경공부를 하셨습니다.
이세은 군은 양권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목요일 밤 6시 양권사님께 성경을 배우기 위해 양권사님 아파트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약속을 어길 리가 없는 양권사님께서 그 시간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까닭은 바로 그 시간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로 여행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양권사님께서는 이화연 집사님께 창세기 성경공부를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서머나교회에서 귀히 쓰임을 받도록 늘 기도하셨는데, 하나님 나라로 떠나시던 그날에도 이화연 집사님을 찾아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다만 Good Bye!라고 인사하시지 않았을 뿐입니다.
양권사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그분이 섬기던 세 그룹의 성경공부팀은 선생님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양권사님께서 그분들 안에 한 알의 밀알로 다시 움틀 것을 저는 믿습니다.

한 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반드시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고난 앞에서 떱니다.
그러나 밀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밀알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죽는 것을 끝장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밀알은 죽는 것을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알의 떨어진 밀알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떨어지셨고 또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떨어지고 떨어진 밀알들의 열매입니다.
오늘 양영숙 권사님께서 땅에 떨어지셨습니다.
권사님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권사님은 죽는 것을 끝장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권사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권사님은 주 안에서 떨어지고 죽는 일이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떨어지는 날을 의미있게 생각하셨습니다.
왜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안에서 더 풍성한 열매로 나타날 것을 그분은 믿음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경건주의와 복음주의로 무장했던 초기 선교사들은 조상숭배와 무속적 신앙문화를 단호하게 금지시켰다. 무속문화를 배격했던 데는 현실적인 문제도 걸려 있었다. 1890년대 당시 조정의 1년 예산이 452만 달러였는데 무당굿에 들어가는 비용이 국가 세입의 자그마치 5배가 넘는 2500만 달러 수준이었기 때문이다(‘Korea and Her Neighbours’, 1898). 이처럼 미신적 제의(祭儀)는 담배 도박 아편 등과 함께 민생을 어지럽히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조상 제사를 거부한 한국교회는 혈연관계의 연속성을 거부한다며 배척과 모함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것은 훗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복음주의적 정체성을 지키게 된 원동력이 됐다. 한국교회는 1890년대 말부터 조상숭배 대신 남은 자들의 신앙 결단과 재림, 부활을 기쁨으로 고대하는 차원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국기독교학술원장 이종윤 목사는 “제사가 민족 고유의 전통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조선왕조를 정당화하기 위해 ‘부모 섬기듯 왕에게도 충성하라’는 유교라는 정치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는데 죽은 조상에게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기복적이며 성경적이지도 않기에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어 선진편 11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느 날 계로가 제사를 통해 귀신 신 섬기는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나 공자가 말했습니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그러자 계로가 한번 더 질문을 했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季路 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未知生 言知死


얼마 전에 심리학자 존 힌튼 박사가 임종직전의 신앙인들에 관해 연구한 저서를 낸 일이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말하길 일생동안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많은 삶이 죽음에 대해 공포에 질려있었다고 지적했는데 그들이 공포에 질리는 이유는 신앙을 형식화했고 자신의 삶과 이 세상과 일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진화론을 추종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게놈을 연구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자 중 한 명인 콜린스는 세상의 악을 허용하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호건이라는 불가지론자에게 "세상의 악과 고통과 죽음은 인간에 의한 책임인 경우가 많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악과,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절대자 앞에서 겸손해지고 기도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이란 인간이 직면한 한계상황’으로 인간에게 삶에 대한 공허와 절망을 가져다준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에대한 극복은 하나님의 의지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은 신앙 좋은 배우자나 부모가 아닌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사각봉투에 담긴 사랑

1887년, 필라델피아 외각의 가난한 동네에 ‘찰스 스틸웰’이라는 소년이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찰스의 엄마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듯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찰스 스틸웰을 어려운 생활 중에도 학교에 보냈고, 아들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서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려운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절약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찰스와 어머니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사지 않았습니다.

찰스는 어머니가 자신을 교육시키기 위해 힘든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찰스는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찰스는 자신도 어머니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녁이면 다음날 먹을 음식거리들을 사오셨습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일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간 시장을 들러야 하기 때문에 장바구니를 들고 다닐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장바구니 대신 서류 봉투를 접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사야할 물건이 많은 날에는 여러 개의 봉투에 물건을 나누어서 담고, 두 팔로 봉투들을 끓어 안은 채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찰스는 밤늦게 들어오시는 어머니가 여러 개의 서류봉투에 야채와 음식거리를 사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피곤한 어머니는 손가락 끝으로 여러 개의 봉투를 잡기위해 너무 힘을 주어서 그러신지 물건을 내려놓으면 손을 흔들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시면서 손가락을 주무르셨습니다. 아마 손이 마비되시는 것 같았습니다.

찰스는 어머니를 위해 가볍고 가지고 다니기 쉬운 가방이 있나 알아보았습니다. 가방 가게에 가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은 후 얼마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찰스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힘들게 여러 개의 봉투에 물건을 담아서 다니시는지를 알았습니다. 찰스의 형편으로는 어머니를 위한 가방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1년 동안의 용돈을 다 모아도 가방을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날 이후 찰스는 어머니를 위한 가볍고 휴대하기 간편한 가방을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들고 다니시는 종이봉투를 가지고 좀 더 많이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서류봉투를 잘라서 붙이고, 접었다 펴기를 거듭한 끝에, 찰스는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사각 종이봉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사각 종이봉투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찰스는 서류 봉두 두 장의 분량으로 날개를 달아서 붙이기만 하면 다섯 배는 더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은 접어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아주 좋았습니다. 찰스는 정말 어머니를 위한 완벽한 봉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찰스는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오신 어머니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물하였습니다. 찰스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을 위해 만든 특별한 종이봉투를 받고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그 것은 정말 자신만을 위한 봉투였습니다. 언제고 서류봉투 두 장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찰스의 어머니는 아들이 만들어 준 봉투를 가지고 다니며 물건들을 담아왔습니다. 이제 한손으로도 충분히 봉투를 들 수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손가락을 주무를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찰스의 어머니는 비슷한 봉투를 여러 개 만들어 자신과 같이 종이봉투를 가지고 다니던 사람들에게 선물하였습니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에서 물건을 담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 지배인이 그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봉투를 어디서 낫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말에 그녀는 다시 한 번 아들의 봉투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찰스의 사각종이봉투는 쇼핑객을 위한 서비스 상품으로 제작되었고, 지금도 전 세계 백화점이 모두 찰스의 사각 봉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찰스 스틸웰은 어머니를 위해 만들어낸 사각 종이봉투로 인해 근세기 최대의 발명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찰스는 돈을 벌기 위해 사각 봉투를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여러 개의 종이봉투에 물건을 담아 힘들게 들고 다니는 어머니를 위해, 많이 담는 종이봉투를 생각해 낸 것 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발명품이 근대의 최대 발명품이 되었고, 그 어린 소년을 세계 최대의 발명가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위대한 일은 위대한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을 통해 위대한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저 어머니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어린 소년의 생각이 전 세계 어머니들의 필요를 채우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매일 흔히 볼 수 있는 사각 종이봉투에는 가난한 어머니를 위한 어린 아들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한 소년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대한 일은 큰 일이 아닙니다. 매일 우리를 위해 수고하시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근심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가 무엇인가 작은 일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일은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이 당하고 있는 불편은 곧 세상 모든 사람이 당하고 있는 불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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