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3 April 2015

(부활) (요21:1-19) 다시 사신 예수님

[들어가는 말]


당대 지성인이요, 과학자인 파스칼은 이런  극단적인 선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까지 당했다. 그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프랭크 모리슨이란 영국 변호사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거짓말이다는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세밀한 조사와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연구를 종합하여 “Who moved the stone?"란 을 썼습니다.
그 책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할 수록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오늘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묵상하시면서, 진실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고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공생애 3년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두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이적들을 현장에서 체험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시는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밤이 맟도록 그물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던 날, 예수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졌다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죽은 지 4일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하지 못했던 위대한 고백 두 가지를 처음으로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나는 죄인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도 자기는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을 체험했고, 그리스도이심을 알았고, 자신은 죄인임을 깨달았던 진짜 수제자였습니다.



2. 그는  그러나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틀에서 처형당했을 때, 모든 것은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은 고기잡는 어부로 돌아갑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다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아나신 예수님이 약속대로 찾아오셨지만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그렇게 깜깜한 밤, 어두운 인생이 그에게 왔습니다.
아무리 그물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 잡히지 않는 서글픈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후 약속대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이곳저곳
한 번,
두 번!
10번이나!

첫 번째] 마가복음 16:9-11
두 번째] 마태복음 28:9-10
세 번째] 고린도전서15:4-5
네 번째] 누가복음 24:34
다섯 번째]요20:19
여섯 번째] 요20:26
일곱 번째] 요21:20-22
여덟 번째] 고전15:6
아홉 번째] 고전15:7
열 번째] 마태복음 28:18-20

이는 예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갈릴리로 찾아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

마호멧을 섬기는 이슬람 국가 터키에서 선교하는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두 갈래 길에 서 있습니다. 어느 길이 내 목적지로 가는 길인지 모른 채.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다.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살아있었고,
한 사람은 죽어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요?”

“그야 산 사람에게 물어야지요.”

“그래서 그는 죽어있는 마호멧을 찾아가지 않고 살아있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살아나셨습니다.


4.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찾아온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세 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셨을까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를 나무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베드로의 마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처형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고 있었나 봐요.

프랑스 황제 루이14세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완성하고, ‘짐이 곧 국가다’라 외치던 오만무도한 왕으로 군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박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충신 세오졸프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파리탑에 감금하고 신앙의 자유를 박탈했습니다.
부활절 화려한 행렬의 주인공이 되어 파리 시가를 행진할 때, 그는 파리탑으로부터 힘차게 들려오는 한 찬송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되심 성령 증거하시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되셨네 ”

루이 14세는 행렬에서 내려 파리탑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왕 중 왕이심을 깨우쳐준 충신 세오졸프에게 감사하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부활하셔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깨워주시고
왕 중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우쳐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거듭거듭 부탁하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가 남은 생애 동안 해야 할 일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기나 잡아 먹고 살다 가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내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내 양’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부탁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가 섬길 양들은 주님의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라,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 백성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셨기 때문이지요.


[결론과 적용]

1885년 4월 5일에 두 분 선교사님이 인천 제물포항에 내렸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셀러였습니다.

아펜셀러는 첫 선교보고서에서 이렇게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나는 기도했다.

‘사망의 철장을 부수고 부활하신 주님, 조선인의 결박을 끊어주소서.
이 조선 민족을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하소서.’ ”


그로부터 130년이 지난 오늘, 한국 땅에는 5만여 교회가 서 있고, 5천여 디아스포라 교회와 2만여 선교사를 세계 곳곳에 세우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한국 땅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을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130년 전에 두 선교사님과 함께 한국민족을 찾아오셨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헛그물질로 점철된 우리 인생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예수님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주님의 양들을 섬기고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본문: 요한복음21:1-17]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예화]

소록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K목사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목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본 소리는 아닌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목사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모두 열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그 아이가 열 한 살 때였지요"

"......"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 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함께 올라와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펴 주면 드러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세째, 네째--….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 내다버린 아이,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 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 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고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음성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애는 내가 여기 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 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선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 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목사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

누군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부활의 약속을 성경책에만 쓰신 게 아니다.
봄날의 푸른 잎사귀에도 쓰셨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금년 봄날에 피어날 푸른 잎을 보시면서 부활의 소망을 새롭게 일구는 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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