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우리는 매주 사도 신경 속에 이런 고백을 담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공자도 죽고, 맹자도 죽었습니다.
석가도 죽었습니다.
마호맷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누우셨던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무덤은 지금도 비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우리 기독교는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성수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일 아침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던 마리아와 여인들이 다시 사신 주님을 뵈었습니다.
12제자가 만났습니다.
나중에는 5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되어 곳곳에 유포되던 AD 50년 경에는 부활의 증인들이 곳곳에 살아있었습니다.
500명 이상의 목격자들이 기독교 초기의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에는 대부분 살아있었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그들이 제시했던 높은 도덕적, 윤리적 교훈대로 훌륭하게 생애를 살던 사람들입니다. 거짓으로 사람들을 호도하며 살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거나 그것을 위해 순교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최초의 모습을 보이신 부활하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표현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어떤 부활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환각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Norman Anderson이 쓴 ‘부활의 증거’란 책을 보면,,
첫째, 500명의 군중이 동시에 환각을 체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둘째, 환각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결코 같은 현상을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 제자들은 결코 부활의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넷째, 환각은 모든 시간대에 걸쳐 모든 장소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다섯째, 어떤 사람이 망상적 강박관념을 가졌다면 보통 장기간에 걸쳐 반복되지만, 우리의 현상은 40일 동안만 나타났고, 그 뒤에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을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손으로 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엠마오로 가는 시골길을 제자들과 걸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물고기로 음식을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잡수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고난받은 흔적은 눈으로 볼 수도 있었습니다.
만져서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조차
1.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눅24:15-16]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본문 16절에 보니까 “저희의 눈이 가려져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라고 했습니다.
저희의 눈이 가려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헤어진 지 불과 며칠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16절에 저희 눈이 가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파스칼은 우리 눈이 지극히 큰 것도 지극히 작은 것도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구 도는 소리는 너무 커서 들울 수가 없습니다.
바이러스는 작아서 볼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은 살아나셔서 함께 계셔도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눅24:17-24]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이 제자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3] 그러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셔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심을 신앙고백 속에 고백합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심판하러 다시 오십니다.
그 사실을 믿습니까?
2. 제자들이 부활을 알기 원하십니다.
[눅24:25-27]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주님을 따르던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실망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기 잡으러 가던 제자들처럼
낙심 가운데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기 원했습니다.
1]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성경)을 마음에 더디 믿는 오류
2] 그리스도가 십자가 고난을 받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모르는 무지입니다.
이것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실 뿐 아니라 말씀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연약한 우리를 찾아오시고 이렇게 만나주시는 주님이십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주님을 알 때,
그날에 주님을 만나게 되면
제일 먼저 주님을 보리라
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안의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
3. 부활하신 주님을 알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눅24:31-34]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변화 1]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엠마오에 도착하여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할 때에 예수님께서 주신 떡을 받았을 때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았다고 했습니다.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축사하시며 떼어주셨을 때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변화 2]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32)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닫게 됐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함께 동행할 때, 열정이 살아납니다.
기도가 뜨거워집니다.
찬양이 뜨거워집니다.
헌신도 뜨거워집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스데반은 순교의 현장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얼굴이 천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변화3] 사명을 회복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라고 했습니다. 사명의 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행1:4-5]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 자리는 그러나 야고보가 순교한 자리였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사람들의 서슬이 퍼렇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힌 자리였습니다.
사울 같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감옥에 넘기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떠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명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곧 그 시로”, 즉시 돌아왔습니다.
변화 4]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듣고 본 사실,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35절)
부활의 증인으로, 길에서 만난 부활의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자신이 만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도들의 놀라운 변화를 보십시오.
여종의 한 마디 질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맹세하면서 부인한 겁쟁이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고 온유대와 사마리아 땅을 돌아다니면서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로 변화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전후무후한 부활의 증인인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이면서도 믿음 없는 자리에 있었던 야고보가 부활하신 형님 예수님을 만나고 죽음을 두려워 않는 교회 지도자로 변해 힘있게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워싱톤 시의 어느 신문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네치 그랜트라는 여자가 소아마비로 전신이 마비되어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말할 수 있고 듣는 것뿐입니다. 자살을 하려고 해도 어린 딸 때문에 차마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좌절 중에 살다가 자신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발가락 한 개를 가지고 전화국에 전화를 걸어서 자신을 전화국의 교환수로 취직시켜 줄 것을 요청했는데 수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16년 동안을 전화교환수로 일을 했습니다.
그녀는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을 대학까지 보내고 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은퇴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환경가운데서 승리하며 살 수 있었습니까?” 그 때 그녀의 마지막 말은 “나의 하나님,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 저주스러운 삶 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기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놀라운 변화를 누리기 원하십니다.
핧렐루야,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영접함으로
열정이 있는 신앙인!
하나님의 주신 사명으로 사는 신앙인!
부활을 증거하는 신앙인!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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